<호스트 네이션> 프로그램 관객후기

_현주

 

영화제의 기억이 아주 좋아서 개인적으로 후기를 써 두려고 했는데, 후기 제안을 받게 되어 결국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중국 서북지역 간쑤성의 성도 난주로 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비행기라는 공간 내부는 물리적 제약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가 좋은 것 같아요. 챙겨온 이룸 영화제 프로그램북의 슬로건 해제 글부터 다시금 찬찬히 읽어가며 후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친구의 글에 적혀있던 <길을 잃었다>는 말이 오래 제 곁을 맴돌았습니다. 저 또한 오래도록 길을 잃었다는 감각을 앓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잡아채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아가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찬찬히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될수록 선명해지는건 내가 이 세계를 싫어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싫어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니까,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도 고민의 지평만 넓어질 뿐 무언가 해소되었다는 느낌은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곳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 오히려 그 세계를 잘 알기 위해서,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직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외로울 것이라는 믿음이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룸영화제 슬로건 해제 글, 소윤)

 

길을 잃어버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막막한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때, 그 순간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을 주던가요. 제가 생각하고 있던 고민들이 그대로 담긴 이룸 영화제의 슬로건 해제글을 보았을 때, 영화제에 가야겠다는 제 마음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길을 잃었다는 감각을 느끼며 사유하는 과정에서 이룸 영화제 기획단들이 뽑아낸 키워드는 ‘여성, 성산업, 빈곤’ 입니다. 아마 그들이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과 장면들이 이런 구체적 단어를 불러낼 수 있었겠죠. 이 세 개의 키워드는 ‘세계’와 연결되어 이 세계가 어떻게 여성들을 계속해서 빈곤한 삶을 살도록 하는지, 여성들로 하여금 성산업에 계속해서 연루되는 상태에 놓이도록 어떤 말들을 속삭이는데까지 확장됩니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도 이 키워드들을 단단히 그러쥐고 있습니다. 빈곤 여성이 국경을 넘어 성산업에 연루되는 과정, 영화는 주로 군산 미군기지와 밀접해있는 A-타운과 그 생태계의 구성원들을 조망합니다. 자본이 국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이기에 영화는 단순히 한국 사회만을 조망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남성과 함께 시작합니다. 이 남성은 필리핀 여성들을 A-타운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남성에게 현지인 여성을 ‘알선’해주는 사람은 필리핀 현지에서 하우스를 운영하는 마담 욜리입니다. 마담 욜리와 브로커정, 파파정은 모두 자신들이 가난하고 기회가 없는 필리핀 땅의 여성에게 외국에서 돈을 벌어올 기회를 주는 ‘선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자신은 여성들이 2차를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 ‘마른 여자’를 선호하고, 그 여자들에게 노래 연습을 시켜서 가수로 취업시켜준다는 사실을 어필하며 이렇게 계속 일을 해도 크게 남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나도 평온하게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풀어내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그런가 하는 묘한 혼란에 빠집니다.

 

하지만 영화가 조망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업소에서 탈출해서 쉼터에서 지내는 ‘조이’도, 계속해서 업소 생활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기를 원치 않고 자신의 딸 또한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아파하는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이와 마리아는 자신들이 미군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이야기합니다. 술에 취한 미군은 무릎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술을 뿌리고는 실수로 그랬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꼬집거나 때리는 행동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미군이나 업소에서 처벌받는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A-타운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있어 외출을 하더라도 어디에 가는지 당연히 알 수 있고, 통금과 같은 반인권적인 규칙이 있고 많은 권리들은 벌금으로 매겨져 결국 빚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지만 이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이 곳에 온 것이고 놀랍게도 이 유흥업소들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업주도 업소를 찾아가 여성을 괴롭힌 미군도 브로커도 모두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왜 이들은 처벌을 받지 않을까요? 이들과 최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주체가 필리핀, 미국, 한국이라는 세 개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정부의 연예인 비자를 받아 출국하는 것을 – 이름이 연예인 비자라 할지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 묵인하는 것은 필리핀 정부입니다. 주한미군이 A-타운을 방문해 여성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이고, 애초에 주한 미군기지를 설치한 것도 미국 정부입니다. 한국 정부 또한 이 여성들이 A-타운에서 성산업에 연루되기 위해서 E-6비자를 편법적으로 발급받지만 이 사실을 묵인하고 40만원에 달하는 심사 비용을 그대로 챙기고 있습니다. 얼굴이 나오는 마담 욜리나 파파정 혹은 브로커정만이 이 생태계의 가해자로 보일 수 있지만 <호스트 네이션> 이라는 제목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듯 사실 국가가 이 모든 판을 짜 놓았다고 볼 수도 있는 셈입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A-타운에 대한 미군의 off-limit, 즉 출입금지 명령을 내보낸 장면이 나옵니다. 사령부는 해당 행위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며 앞으로는 출입금지를 실시한다 하고, 이를 통해 국제 사회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지워지는 것은 여성들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가 대체 어떨지 예상할 수 없어 기도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 그 어떤 인권 침해를 당하더라도 안전장치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하는 이 여성들의 삶은 A-타운을 벗어나더라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하는 기도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물론 A-타운을 벗어나 쉼터에 왔을 때 그들을 지원해 줄 선생님들이 있긴 하지만, A-타운의 안과 밖은 결국 모두 한국 정부가 관할하는 영토이기 때문에 타운을 벗어나더라도 확실하게 그들이 보호받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방조한 이 판에서 결국 소모당하는 것은 여성들이지만, 여성들의 ‘자발적’이주를 확실하게 막을 방법 또한 영화 안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영화 이후에는 씨네톡이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영화 상영을 하고 대체 무슨 씨네톡이 1시간씩이나 붙어있는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제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을 보고 나서 최소한 1시간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이 감정을 추스릴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알았습니다. 갈곳을 잃은 감정들을 혼자 그러쥐는 것 만큼 외로운 일은 없을테니까요. 영화 상영관 위층에서는 불량언니작업장 갱상도 언니의 손뜨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실무자로 오래 지내온 입장에서는 시간 맞춰 영화를 틀고 씨네톡을 진행하는 것 마저 벅찰텐데, 전시까지 준비한 이룸 영화제 기획단의 치밀함에 존경을 표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갱상도 언니는 이 손뜨개를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라고 지령을 내리셨지만, 손뜨개가 죄 사라진 풍경보다 그 손뜨개가 편지로 바뀌는 풍경을 기획한 모습을 실제로 맞닥뜨리니 괜시리 마법같았습니다. 누군가의 불면의 밤을 나눠 갖고, 그 자리를 선물을 가져간 사람들의 따뜻한 말들로 채우는 풍경이니까요. 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계속 길을 잃게 하고 막막함에 빠뜨리더라도, 끝끝내 끈질기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게 내 목소리를 내보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길을 잃은 감각 속에서 제가 결국 얻은 대답은 나는 평생 인권운동을 할 것이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습니다. 어차피 달라지지 않을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마음 한켠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건넬수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삭을 대로 삭아 버린”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변화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거니까요.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한 시간을 이룸 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마음이 무너져 ‘이 세상 망해라’는 볼멘소리만 내뱉을 힘 밖에 없고, 어느 날에는 반갑고 즐거워 큰 웃음을 짓고 서로를 끌어안아도 벅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한 날들이 계속되고 쌓인 일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지라도 그 길이 외롭지 않을 수 있기를,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경청하며 나와 상대의 마음을 소중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세상이 싫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작은 실마리라도 그러쥘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한 번 이룸 영화제 기획단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올 초여름에도 어김없이 서울 하늘에 무지개를 띄울, 현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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