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프로그램 관객후기

_빨간거북 양미(여성노동인권교육활동가)

 

 

영화 <이태원>은 영화제의 마지막 상영작이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당연하다. 이틀 내내 영화제에 함께 했으니. 종종 나의 기억의 시간은 과거에 멈춰져 과로를 부른다.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기를 잘했다. 아직도 영화 <이태원>이 내 마음과 머리를 온통 휘저어대는 것을 보니.

 

굳이 장소가 ‘이태원’이 아니어도 되었다. 여성의 서사-가족 또는 친족의 폭력, 성희롱과 성폭력, 가난, 나이 듦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그곳이 어디든 마찬가지일테니. 그러나 이태원이라는 장소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주인공(나키, 영화, 삼숙)의 이야기는 ‘이태원’이기에 더욱 잘 드러나는 여성의 서사가 있다.

 

살기위해 당도한 곳 – 이태원

 

폭력을 피해 당도한 곳에서 살아남은 시간들은 고스란히 그이 자신이 된다. ‘나를 알아주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비록 힘겹게 지탱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나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그 삶이 타인에 의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나키에게 그것은 스스로의 몸을 편안하게 눕힐 수 있는 자신만의 작은 방일 것이고, 영화에게는 조카딸을 잘 키워내는 것일 것이고, 삼숙에게는 (아마도)죽을 때까지 자신의 바를 운영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기에 재개발은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부정하고 싶고 막아야만 하는 일이 된다.

 

가난한 나이 듦의 쓸쓸함-나키

 

‘엉덩이국보’라는 명언을 남기며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나키는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식당 주인의 일방적인 통보로 줄어든 일거리는 나키의 생계유지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월세를 내 주고 있는 미군친구의 도움이 있지만 영 부족하다. 생계걱정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소환한다. 얼굴을 좀 땡기고 화장을 좀 더 하고 손을 보면 다시 손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하고 아픈 몸으로 돌봄-영화

 

남동생을 대신해서 (여자)조카를 키우는 영화는 아픈 몸을 산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지 나는 모른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감당해야 했을 폭력들을. 지불되지 않는 양육비를 기다리며 조카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토크시간에 감독은 영화의 분량이 적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외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같은 모습이 많아서 결국 분량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던가.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지만 여기서 이만 접어야 하는 이야기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그녀-삼숙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인 남편과 걸어갈 때 들었던 ‘양갈보’라는 말과 이태원행을 알린 후 택시기사들의 희롱섞인 말과 시선에 받았던 모욕을 새기고 산다.

 

나키, 영화, 삼숙…그녀들은 만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은 ‘그래서 세 사람은 언제 만나?’였던 것 같다. 그러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어느새 그 질문에 ‘만나지 못할 것’이란 답을 내어 놓고 홀로 납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사회/관계의 위치와 관련 있다고 믿는 편이다. 주로 미군이 방문하는 바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장소에 ‘뿌리내리기’에 성공한 삼숙은 한국남성을 싫어하고 미군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태원에서 사는 여성이 모두 성매매여성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반면 나키와 영숙은 미군을 불신하고 미워한다. 한국남성도 싫지만 미군도 싫다. 살기 위해 당도한 이태원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여성을 판매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부양하는 일이었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아마도 이태원에서 성매매여성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런 것 일 테다.

 

여성의 몸으로 나이 들기 혹은 나이든 여성의 몸으로 생존하기

 

누군가에게 함부로 대해지고 폭력을 감수하다가 결국 지워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 혹은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것. 아마도 이 사회에서 ‘이태원’과 ‘성매매여성’이라는 조합은 그랬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살아남았다. 홀로/가난과 폭력에 맞서/여성의 몸/으로 살아남았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녀들의 삶에 공감과 박수를 보낸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은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아마도 생존해 있는 동안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 여성(아직 ‘인간’이라는 지위를 완전히 획득하지 못했고, 사회가 만들어준 기준의 안과 밖에서 모두 소외되고 지워지고 폭력에 노출되어 왔던)으로서 나이들 때까지 살아남는 것도, 나이 들어 살아내는 것도 힘든 일이기에.

 

나는 꿈을 꾼다. 존엄을 지키며 살아낼 수 있는 (관계와) 장소 만들기를 꿈꾼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지를 계획한다. 그리고 바라건데 부디, 그 꿈이 모두 함께 기대어 어우러지는 삶이기를 바란다. 서로의 차이와 공통의 아픔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꿈을 꾼다. 나키와 영숙, 삼숙에게 뿌리내려 생존 가능한 이태원으로 그 장소가 지켜지고 꿈꿀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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