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2 이룸공부방 1기 1회차 후기 ‘당신은 이룸 다락방에 가 본 적 있나요?’ by. 파니

지난 5월 22일, 이룸회원공부방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다함께 이룸의 청량리집결지관련 자료를 읽고 모였는데요.  발제는 현우님이, 후기는 파니님이 도맡아주셨어요!

8쪽에 다다르는 정성스런 발제문에 이어 사랑이 느껴지는 후기를 받아보니 마음이 따땃-합니다. 이 따뜻함을 같이 나누렵니다.

 

이룸 공부방 1기 1회차 후기

 

당신은 이룸 다락방에 가 본 적 있나요?

 2018. 6. 27. 파니

 

 

모임 장소가 이룸 사무실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가장 기대한 건 다락방이었습니다. 제가 이룸에 다락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최근의 일인데, 그 후엔 이루머를 만날 때마다 넌지시 그곳의 세목에 대해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별과 차차가 다락에 있던 물건을 옮겨서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빈 공간에 도달하려면 사다리를 타야 한다는 사실, 그곳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언젠가는 다락의 벽 한 면이 빔 프로젝터 화면으로 변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려면 벽을 하얗게 칠해둬야 할 텐데 그때 저에게도 페인트 붓을 들 기회가 생길까요?

이룸은 뭘 해도 이룸 같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를 주제로 포럼을 열어버리고, 포럼에 갔더니 서로 다른 식감을 가진 비스켓과 사탕을 엮어서 만든 간식주머니를 나눠주고, 사무실에 갔더니 여행자가 선물한 차를 끓여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 놓아줍니다. 이룸 공부방을 이룸 사무실에서 하게 된 과정도 참 이룸 같았어요. 공부방 참가자들은 이루머들이 공휴일에 추가 노동을 할까봐 염려되어서 다른 곳에서 공부하겠다고 하고, 이루머들은 이미 수없이 보았을 텍스트를 여기서 또 한 번 같이 읽어보자고 하고, 못이기는 척 이룸 사무실에 갔더니 커다란 탁자 위가 이미 여러 나라의 음식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조금만 챙겨갔던 마들렌조차 놓을 자리가 부족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인물과 늘 궁금했던 인물과 처음 봤지만 반가운 인물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이 건네는 예의를 갖춘 친밀함도 제겐 이룸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뻐져서, 평소보다 자주 웃고 안하던 농담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룸 사무실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데, 그건 아마도 이룸이 노동하고 관계 맺고 생활하는 방식이 그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 일겁니다. 실제로 모든 장소에는 그 장소에 깃든 자들의 이해관계, 욕망, 삶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소에 거주한다는 건 그 곳에 묶여있는 감정과 역사를 살아내고 또 자신의 감정과 역사를 그 공간에 놓아두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집결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생각이 자꾸 복잡해지는 이유는 집결지가 구체적인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공간에 거주하는 수많은 관계와 시간의 선들을 촘촘히 헤아리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고, 그러한 헤아림은 끝이 없기 때문이며,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야만 그 다음의 실천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우리는 이룸에서 발간한 자료집인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자료집,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천일야화>를 읽고 성매매 집결지, 특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을 이행하는 국가와 자본은 재개발 대상이 되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의 역사와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공간을 관광자원화하거나 경관을 정비하는 방식을 살펴봤습니다. 국가와 자본은 재개발 과정에서 일차원적이고 집계 가능한 이윤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추상적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실제의 공간을 구성해버린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집결지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행위자로 등장하는 정부, 토건자본, 성매매 업주, 성매매업소의 건물주, 철거 반대 사회단체들이 모두 성판매 여성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배제하고 이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성판매 여성은 집결지 부동산 소유자가 아니고,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았으므로 임차인으로서의 권리 역시 주장하지 못합니다. 성판매 여성은 어쩌면 집결지 공간을 가장 속속들이 파악하는 거주자이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지만, 그들의 이웃인 성매매 업주들은 성판매 여성을 착취하고 다른 성판매 여성은 낙인, 단속, 빚 독촉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집결지에서 생활하는 성판매 여성은 집결지라는 장소에 속해있었다는 사실만 밝혀져도 성매매특별법상 범죄자로 위치 지어질 뿐 아니라 도덕적인 낙인까지 받게 되기 때문에 그 공간에 속해있든, 그곳을 떠나든 집결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쉽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성매매 집결지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많은 곳이 청량리와 같이 이미 재개발되었고, 또 다른 곳은 재개발될 예정입니다. 집결지가 재개발되면 정부는 표를 얻고, 자본은 이윤을 얻고, 업주나 건물주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은 어떤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그 공간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장소를 본인의 욕구에 따라 구성할 힘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사라질 때도 본인이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나 애도의 방식을 부여받지 못한 채 그저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곧 허물려버리는 벽이나 지붕, 공간 그 자체처럼요.

 

우리는 내내 질문했고, 한 질문은 다른 질문과 이어졌습니다. 성판매여성에 대한 낙인, 특히 성매매특별법을 통한 범죄화 속에서 성판매여성이 어떻게 집결지 재개발 국면의 행위자로 등장하여 본인의 욕구와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성폭력 지원기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상담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 성폭력 피해생존자임을 확인하면 그에 대해 추가적인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낙인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지원체계를 집결지 재개발의 맥락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국가는 어떠한 지역을 개발대상에서 제외한 다음 그 지역에서 성매매처럼 범죄화된 행위들이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성판매자가 착취당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이를 오랫동안 묵인하였다가, 차후에 해당 지역을 재개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지지를 얻거나 토건자본과 연합하였는데, 이러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적당한 방식은 없을까? 마치 미군 기지촌을 조장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최근 판결에서처럼 집결지를 조장한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집결지의 성매매 업주 및 건물주가 성매매를 통해 얻은 이윤을 몰수 추징할 수 있다면,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를 배제하고 성판매 여성이 재개발 과정의 협상주체로 등장할 수 있다면, 집결지 재개발의 방식과 내용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러한 질문들은 집결지라는 현장과 계속하여 밀착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질문들은 기존의 재개발 국면에서 철거민 투쟁 등 사회운동 진영에서 논의되는 질문들과는 다른 특유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러한 질문들은 성매매 현장에 끝없이 머무르며 행위자들이 지닌 현재의 욕구와 미래의 전망 사이에서 무엇 하나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여성주의라는 관점으로 반성매매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성판매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룸의 활동과 닮아있었다고 느껴집니다.

 

첫 공부모임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이룸이라는 장소를 심어주었고, 서로가 지고 다니던 장소를 이룸에 풀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장소에서 이룸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평소 본인이 고민하던 주제들-성별화된 빈곤, 성애화, 정당정치, 법, 철거 투쟁-을 이룸에 내려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성애화된 몸이 왜, 어떻게 교환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지, 성애화된 여타 노동과 성매매의 차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나 충분히 벼려지지 못했던 질문들이 이룸이라는 울타리를 만나서 좀 더 자신을 밀고나갈 기회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은 우리는 그 다음 일정, 그 다음 커리큘럼을 금방 정해버렸고, 우리가 올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도 정해버렸습니다. 그 다음 일정, 그 다음 커리큘럼, 한 해의 끝도 서로와 함께. 물론 장소는 이룸입니다.

공부모임을 마치자마자 저는 이룸의 다락방으로 향했습니다. 소문대로 다락 입구를 향해 사다리가 놓여있었고, 사다리의 각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팔랐습니다. 다락에 어떤 물건이 놓여있는지, 창문으로 이른 저녁 빛이 들어왔는데 그 빛이 십자모양의 창살로 나뉘면서 어떤 문양을 그려냈는지, 한 개의 다락이 총 몇 개의 구획으로 다시금 나뉠 수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딱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이룸의 다락방에는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바닥으로 뚫려있습니다. 그 문을 열었더니 이룸 현관이 보였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셋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학교 친구이지만 졸업 하고 나서야 친해진 사람, 한 사람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무척 좋아하지만 저는 처음 보는 사람, 한 사람은 언젠가 이룸 토론회에서 인사만 나눴던 회원입니다. 제가 안녕, 하니까 셋이서 안녕, 합니다. 맥주를 사러 갈 거라면서 무슨 술을 마실 거냐고 묻습니다. 제가 맥주, 하니까 셋이서 활짝 웃습니다. 다락방 천장에 그 미소를 온전히 옮겨둔 다음, 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이룸이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과정에서 여성주의 활동가이자 동시에 성판매자의 조력자로서 개입하면서 겪은 딜레마에 대해서 함께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우리로서 어떤 주체가 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서 누구를 적대하고 누구와 협상하는 전선을 그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장소에 함께 속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어떤 감정과 역동들, 담론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어떤 얼굴과 신체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구체성 속에서 딜레마를 더욱 깊게 만들고 그처럼 깊은 곳을 현실로 삼아 활동을 펼치려는 힘. 저는 공부모임을 하면서 이러한 이룸의 역량과 방향성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