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칼럼]특별히 잘나지 않은,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_완두

특별히 잘나지 않은,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

 
완두
 
 
 
   “안 되겠어 나도 일을 해야지. 집에서 놀면서 뭐 하는 게 있다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빠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아니었다. 이건 주부인 엄마가 이따금씩 자기소개 하듯 던지는 대사다. 식탁위에 올라왔을 뻔 했던 세일기간을 놓쳐버린 반찬거리 얘기나, 공과금이 많이 나왔을 때, 혹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몇 주걱 더 밥을 퍼 담을 때면 어김없이 보태는 말이다. 젠장. 그럼 난 곧바로 “몸도 안 좋은데 일하면 병원비가 더 들지”라며 정수리까지 달궈진 얼굴로 엄마를 탓하곤 했다. 그러고 나면 꼭 화가 났다.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지금 생각하면 아마 엄마 자신도 그랬지 싶다. 
 
  하지만 그 날은 내가 좀 약을 먹었던 것 같다.
  “왜, 아빠가 눈치 줘? 무슨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나이엔 식당일 같이 몸 많이 쓰는 일 밖에 안 떠올라서”
  “하기야 그래, 괜히 몸만 더 망가지지”
  엄마가 가져가버린 내 대사에 놀라기도 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낙담한 목소리가 거슬렸다. 난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며 남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논다고? 엄마가 일을 안 하면 우리가 이 시간에 뜨신 밥 먹고 있겠어? 설마 진짜 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돈으로 환산하면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이 버는 거야 지금. 아빠도 엄마도 각자 자기 할 일에 충실하고 있잖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을 거다. 그런 내 얼굴을 향해 엄마는 듣기 힘들 정도로 어색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순간, 채 삼키지 못한 잇몸 사이를 떠돌던 얼큰한 찌개국물이 심장에 똑 떨어졌다. 그 멋쩍음에 난 “이게 내가 하는 일이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혹자는 내 말을 듣고 어머니가 된 여성에게 가사 일을 당연한 역할로 떠맡기고, 주체적인 여성이라면 필수로 가져야 하는 경제적 자립의지를 꺾었다며 “페미니스트가 어쩜!” 하며 아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마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내가 일과 관련해 하는 말에 엄마가 듣는 시늉을 하기 시작한 것은.

 
  가엾은 딸과 그 아버지에 대한 향수로 투표소에서 1번을 고집했던, 내가 하는 일을 봉사활동이라고 하던, ‘운동’이라는 말을 체육 아니면 최루탄으로 떠올리던 엄마는 내게 “오늘 하는 집회는 어디서 하냐”고 물었다. 대통령을 찬양하고 이를 보는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는 어떤 자리에 다녀와서는 “화가 났다”며 그때 “네가 떠올라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네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인 것 같다.”고도 말했다. 아주 최근에 난 엄마에게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눈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이야.”, “엄마한테도 활동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 아무렴 내가 괜히 이러겠어?”, “그렇다니까. 오늘 식탁에 무슨 반찬이 올라오고 못 올라오는지 그게 투표소에서 결정된다니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실은, 엄마를 그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완전한 타인이라고 생각해야 살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자본이 본인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며 사는 게 전쟁이라는 아빠의 독백이 BGM으로 깔리는 것이 보통의 우리집 식탁 풍경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아침 연속극 뺨치는 소재의 주인공으로 열연했었고, 주사를 놓기 전 엉덩이를 몇 대 때리는 것처럼 과거를 꺼내 현재를 위로하곤 했었다. 때문에 비밀일기장이 아니고서야 내 말과 글에 가족이 등장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요즘 난 부쩍 자주 스스로 금기와 같이 다뤘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내가 여성주의로 구원씩이나 받게 한 사람이자, 내가 여성주의를 배우고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사람이라고.  
 

 
  내가 여성주의를 배울 때 스스로가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결벽증’이었다. 내 인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주의를 배우지 못한(지금은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표현하길 좋아하지만)친구들과 대화를 오래 이어가기 힘들었다. 드라마, 영화, 광고 등 보이고 들리는 대부분의 것에서 불편하지 않은 게 없었다. 늘 분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 그런 것에서 로맨틱함을 느끼는지 답답했다. 왜 승진한 동료 여직원은 상사에게 꼬리친 것이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나이 먹도록 귀가시간을 단속 받는 것이 미성숙하게 보였다. 그렇게 난 기껏 배워먹은 것으로 나에게 엄격했고, 그만큼 남에게 엄격해지는데 써먹으면서 내가 맺는 관계 사이에 거름망을 놓았다.    
 
  나는 여성주의가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이전과는 다른 삶을 계획하게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여성주의를 알기 전에 가졌던 상(像)과 ‘교체’된 것일 뿐 타인의 삶을 듣고 평가하는 습관까지 포함하는 변화는 아니었다. 최근 사랑하는 사람과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내 마음을 읽은 듯 크게 공감한 말을 하여 조금 덧붙여 옮긴다.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의 맥락을 보게 하는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공부할수록 공부하지 않게 하는 거야. 결벽이 생기는 거야. 오히려 그것을 기준 삼아 폄하하고 비하하기도 하면서”  
 
  여성들은 유사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개인 여성은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으로 인생에서 각자 나름의 삶의 기술을 쌓고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기술은 강요된 무엇이거나 평가절하 되곤 한다. 익숙한 문법을 따르고자 함이 때론 이론과 논문으로 짚어내기 힘든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놓치게 하는 건 아닌지 싶다. 


 ▶최근 6개월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석고방향제. 손재주가 좋은 9년지기 친구가 주문을 받아 만들고 있다. 

 
 
 나는 활동을 하면서 내가 ‘나쁜 질문’ 혹은 ‘멍청한 말’을 하진 않을까 노심초사 한다. 부족한 전문성을 가지고 행여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 ‘페미니스트다운’이라는 자기검열도 큰 이유다. 그렇게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을 놓치는 나를 발견한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에 관해, 성매매 여성에 관해, 성소수자에 관해, 장애인에 관해 선뜻 뱉기 어려운 말과 몇 가지 질문들… 이미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혹은 질문을 바꾼다고 지금의 내 관심이 더 무결하고 선해질까? 
  
  활동가라는 위치는 주로 차별적이고 왜곡된 시선으로 호명되는 정체성을 대면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대화를 이끌어 가는 생명력은 나 역시 우리 사회의 편견에 영향을 주고받는 특별히 잘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시작으로 그 정체성 자체가 아닌 그 사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현하는 용기에서 오지 않을까. 
 
  경험상 오해와 갈등은 질문을 했을 때 보다 질문하기 전 가정했을 때 더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난 ‘그런 질문’이라도 받아 ‘제대로’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경험을 안고 살면서, 실은 내가 그 무례하다는 질문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기도 했다. 덕분에 ‘똑똑한 말’, ‘좋은 질문’에 대한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적어도 난 배우는 과정에 있는 지금의 내가 바보같이 말하고 질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없는 질문을 무리하게 만들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자주 내가 똑똑하지 못함을 자책하곤 한다. 그런데 이제 똑똑함은 어떤 지식과 경험으로 쌓는 것이 아닌, 지식과 경험이 나오는 다양한 실천과 인식에 쏟는 관심으로 채우길 바란다. 그것이 여성주의가 내게 알려준 똑똑함일 테다. 그리고 “단체라기보다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곳에서 내가 머물며 남기고 싶은 나의 궤적일 테다.
 
 
  그날 난 엄마에게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그뿐이었다. 난 바람직하고 잘 사는 인생이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 식탁위에 고등어가 올라가는 것이 더 행복한지 갈치가 올라가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난, ‘바람직성’에 기대어 내 친구의 로맨스에 훌륭한 맛집이 있다는 것을, 뒷담화 하던 동료 여직원이 성추행 피해로 힘들어 했을 때 곁에서 도왔던 유일한 사람이 그녀였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 제목  '특별하지 않은,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은  시 <그것은 우리의 아름다움 입니다>(작자미상)에서 가져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