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웹자보 수정에 대한 [이룸]의 입장(수정)

알립니다

8월 12일, 이룸에서는 곧 개최될 공개 포럼을 홍보하기 위해 이룸의 온라인 공간(홈페이지, 네이버 해피로그, 싸이월드 타운홈피)과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종이학’에 웹자보를 게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웹자보의 일부를 수정하여 다시 게재한 상태입니다. 웹자보에서 수정된 부분은 일종의 풍자적인 합성사진으로, 한겨레21에 보도되었던 이명박 대통령 소유 건물의 유흥업소 사진과 이명박 대통령 모습을 함께 붙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웹자보의 수정을 결정하기까지 이룸 활동가들 모두 고민이 컸으며,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진 속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업소 사진, 그리고 건물이 대통령 소유임을 알리는 문구 모두를 삭제하라는 여성부의 ‘요청’이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룸은 여성부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요하게 거듭되는 ‘요청’에 활동가 개개인의 희생과 상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고, 이 싸움의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웹자보를 삭제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다

지난 며칠간, 이룸 사무실은 온갖 곳에서 빗발치는 전화와 업무 공간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무원들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심한 몸살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룸 상담소와 센터는 모두 성매매 여성들이 상담을 위해 매일같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으면 방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룸에서 업무와 상담 활동에 방해가 되니 방문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무원들은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불쑥 찾아오거나 들어와 활동가들을 당황케 했습니다.

여성부에서는 이룸의 지역구인 동대문구청 담당 공무원을 통하여, 웹자보를 삭제 조치하라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했습니다. 그리고 포럼 장소를 대여해준 기관에 연락하여 장소 대여 취소가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기관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장소 대여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초대장을 문제 삼다가 이젠 사업 자체를 막으려 한 것입니다. 이룸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정식으로 문제제기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해당 공무원들 개인의 판단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공무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단체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식 절차도 없고, 실체도 모른 채 압력이 행사되고 있던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 이룸 상담소와 센터 각각의 대표를 맡고 있는 두 활동가들은 개인 핸드폰을 통해 공무원뿐 아니라 여성학자, 타단체 대표 등 이 일과 하등 관련이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웹자보를 내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설득하는 내용은 공무원들이 하는 말과 똑같았습니다. 이윽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동대문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전화하여 포럼 행사에 관해 알아보더니 웹자보에 문제가 있다며 삭제할 의사가 없냐고 물어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칠 때마다 이룸에서는 몇 시간씩 내부 회의를 가졌고, 결국 웹자보를 수정하고 입장을 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웹자보를 수정하기로 결정하다

외부의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마지막 논의를 하고 있던 오늘 오전, 갑자기 센터 입구가 수선스러워졌습니다. 또다시 연락 없이, 여성부와 동대문구청 공무원들 7명이 이룸에 방문한 겁니다. 우리는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여성부 성매매정책 담당자는, “여성부에도 외압이 들어오고 있다”(외압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묻자 대답을 회피), “성매매 단체와 오래 관계를 맺어온 우리는 이해하더라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반정부적이라 생각할 수 있어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성매매정책과 다른 단체들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며 계속 사진 수정을 ‘요청’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결정은 이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분명 ‘요청’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무엇보다 법률 자문 결과 “정책결정권자인 ‘그 분’을 이런 식으로 패러디하는 건 법적으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룸에서 처음부터 요구했듯이, 이러한 요청은 ‘공문’으로,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보내달라고 했지만 여성부 측은 이 포럼과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이미지를 패러디한 것만으로도 사진을 수정하든 않든 간에 이후에 어떤 ‘영향’을 받을 거고, 그 영향은 이룸을 넘어 성매매 정책에도 끼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이든 이룸이 선택한 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함께.

공무원들이 돌아가고, 다시 회의를 시작하는데 분위기가 침통했습니다. 우리의 결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꺾이고 있었습니다. 열 명 남짓이 모여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쥐어짜보아도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어떨지 짐작도 되지 않았고, 싸움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계속 불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싸움에 버틸 힘이 우리에게 있느냐, 우리가 전면적으로 나설 때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누구도 정면대결을 힘주어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룸이라는 단체의 기조는 ‘평등한 노동과 공동의 책임’이지만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대표자를 괴롭히고 있었고, 나머지 성원들은 그에 도움을 주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자율성과 활동의 자유를 위해 국가 지원을 포기한다면, 단체를 꾸려가고 반성매매 활동을 계속하기에 치명적인 어려움이 될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룸의 지원에 때로는 인생이 걸려 있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생각하면 더욱 막막해졌습니다. 결국 그렇게 웹자보를 수정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권력 앞에 드러난 실체, 흔들리는 단체의 자율성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 실망하고 한탄한 것은 바로 권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이룸에 계속 웹자보를 내리라고 닦달하던 공무원들은, 높은 분의 지시 없이 알아서 그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민주화가 실현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수준이 어떤지 확인한 것입니다. 그 결과란 참으로 혹독하고 씁쓸합니다.

사실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정부기관과 심지어 수사기관에서까지 나서서 사진을 고치라고 했는지.
아니오,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성매매정책이 현재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여성부의 존립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도요.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여전히 공무를 수행하는 분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이나 단체는 정권을 비판할 수 없다, 나랏돈 받고 왜 대통령을 비판하느냐는 말씀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룸은 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주 국가에서 그런 통제는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비록 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그것은 정부의 일을 현장에서 대신하는 것일 뿐이고, 정부의 지원금은 결국 우리를 포함한 시민들이 낸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여성부의 전략은 잘 먹혔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로부터 점점 조여오는 어떤 힘을 느끼며 크게 불안하고 위축되었고, 더 이상의 싸움을 포기했으니까요. 이러한 압력과 결정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부의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몹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이룸을 비롯해 국가 정책을 위탁받는 단체들은 정부의 하부조직이 아닙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독립적인 한 단체로서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당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민간단체 활동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수용할 수 없다면 왜 단체와 정부의 협력 관계를 추구하나요? 그렇게 강조하는 단체와 정부간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정부에 대한 단체들의 건강한 비판과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룸은 걱정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혼란과 슬픔

어쩌면 이 글은 넋두리인지도 모릅니다. 웹자보를 왜 바꿀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을 하고 싶어서, 말하고 싶어서요. 물론 이 글이 또 한 번 위험을 감수하는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네, 우리는 참 바보입니다. 이 포럼 행사를 업무 연계 기관들에 널리 알리고, 또 우리의 연구결과를 자랑하고 싶어서 여성부와 지자체, 경찰서에까지 이 웹자보를 인화한 초대장을 만들어 손수 보냈으니까요. 더 바보스러운 것은 그 일을 별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겁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건지- 우리끼리도 혀를 끌끌 찼습니다.

오늘의 선택(?)에 대해 외부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지, 그것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부끄러워야 하나요? 비겁한 건가요? 우리는 다만 활동가들의 가슴에 이 일이 두고두고 어떤 의미로 남을지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자신을 배반하는 것만큼 아픈 일이 또 있을까요. 대의 또는 명분을 위해 상처입은 개인들의 자존감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보장되는 권리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안전과 교환하였습니다.

짧은 며칠 동안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 그 원칙과 신념이 하나씩 스러져가고 무너지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너무나도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아니게 되고, 어느새 우리의 안전을 보호할 방법을 찾고 있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이렇게 활동가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들이 자꾸 생겨나는 게 무섭습니다. 더 이상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자신의 힘을 벗어난 일에 스스로와 치열한 갈등을 벌이느라 소진된 이루머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2008년 8월 26일

성매매없는세상[이룸]

* 여성부 측에서 포럼 행사 장소 대여 취소 부분과 관련하여 문의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대여 취소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여, 일부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2008/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