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일다 기고] ‘청량리588’ 재개발… 여성들은 어디로든 떠나야한다

‘청량리588’ 재개발…여성들은 어디로든 떠나야한다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앞둔 거리에서

고진달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일하다 가려고요’

 

재개발을 앞둔 청량리 성매매집결지 거리에서 ⓒ 이룸

청량리 역사 바로 앞, 여자를 사려는 남자들이 넘쳐나고 성매매 일을 하는 여성들에게는 호황의 시기로 기억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그 곳.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588이 재개발 바람으로 시끄럽다.

 

유독 긴장이 가득한 날이다. <이룸> 활동가들이 성매매 집결지 아웃리치(out-reach, 거리상담)를 하는 날이면 구매남성과 업주, 삐끼, 성매매 여성,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섞여 있는 틈에서 이방인인 우리가 행여나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하루 일당을 방해하는 재수 없는 여자들로 보이지는 않을까, 혹여나 우리 때문에 업주에게 구박을 받지나 않을까 등의 부담으로 몸이 굳어있다. 우리 뒤를 졸졸 쫓아오며 갖은 욕을 해대는 업주들이 어디선가 지켜보는 것은 아닌지 촉이 곤두서있다.

 

집결지 재개발로 어쩜 이번 아웃리치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긴장과는 달리, 음산하고 조용할 것 같은 청량리 집결지는 여전히 유리관 안에 있는 여성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이가 있고, 흥정을 하는 이가 있고, 일본어로 “가와이 가와이”(귀여워)를 연발하며 슬렁슬렁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 빨간 스프레이 라카로 X가 그려져있다. ⓒ이룸

한 집 건너 한 집 빨간 스프레이 라카로 ‘X’가 그려져 있다. 그런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여전히 남자들의 눈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흥정할 여성들을 스캔하고 있었고, 여성들은 높은 의자에 앉아 영업 준비 중에 있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있다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다가 가려고요.’

 

청량리 유리방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A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녀는 예전만큼의 돈 벌이는 안 되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는 청량리에서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렇다. 이곳 성매매 집결지는 남자들에겐, 업주들에겐, 뒷일을 봐주는 깡패들에겐 성을 파는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일 뿐이겠지만, 성을 파는 여성들에게 이곳은 하루라도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절박함이 배어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쪽방 뒤 켠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곳은 밥을 해먹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빨래를 널고, 강아지를 기르고, 수다를 떠는 일상을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재개발 얘기로 술렁거리는 집결지

 

청량리 집결지 지역 재개발 시공사가 정해지고 실질적인 보상금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보상금과 이주비용이 본래 받아야하는 금액의 절반도 못 미친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가진 자들에게 재개발은 돈을 버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 껴있는 세입자들에겐 집 잃고 갈 곳을 찾아 이주해야하는 현실적인 일들이 막막하다. 특히나 불법 공간이란 딱지를 달고 그 곳에서 성매매를 해오던 여성들은 세입자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니다. 그저 불법을 저지른, 가시화되지 않은 존재일 뿐이다. 아무도 앞으로 그녀들이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여성들 스스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지금까지 배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삶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게 재개발은 돈버는 일이다. 이곳에서 먹고자고 살아온 여성들은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는다. ⓒ 이룸

청량리 집결지에서만 20년 넘게 성매매 일을 하던 여성들의 경우는 더욱 억울하다. 쪽방에서 일하던 40대 후반의 B씨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한다는 사실은 동네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다. 갓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청량리에 발을 들여놓고, 이곳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들어온 청량리 집결지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주는 ‘편안한’ 곳이다. 한때 그녀는 이곳을 떠날 계획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껏 자랑스러워했었다. 그 후 다시 만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며 ‘미안해요, 미안해요, 다시 돌아왔어요’ 라며 흐느꼈었다.

 

자신의 사연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이곳은 성매매를 했다는 과거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면서 이질감을 느끼던 사회와 다르게, 마음 편히 밤에 있었던 진상을 욕하면서 속 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B씨는 이곳으로 주소를 이전해놓을 수가 없었다. ‘사회적인 낙인’이라는 굴레 때문에 주소 이전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상황이 지금 재개발을 앞둔 보상 문제에선 발목을 잡는다.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술 마시고 답답한 속을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다.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 자신의 푸념을 들어줄 사람 또한 딱히 없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꼬인 말투에, 술 냄새가 진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자랑스럽다는 것은 아닌데요, 내가 여기 있으면서 떳떳하지 못하는 것도 아는데…. 그런데도 억울해요. 억울해요.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돈이 움직이는 자리에 배신이 남는다

 

청량리 쪽방 안에서도 여러 소문들이 무성하게 피어오르고 여성들이 불안해질 한창 때, 유독 <이룸>으로 상담 전화가 많이 왔다. 보상금이 반쪽으로 날아갔는데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지,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서 주소 이전을 청량리로 할 수 없었는데 이사 비용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이사하는 과정에서 계약한 방이 하루 전에 파기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임대주택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불법 성매매를 하는 증거를 잡으려고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가 CCTV를 설치했는데 철거할 수는 없는지…. 다양한 문의가 들어왔지만 실질적으로 어떠한 대안을 줄 수 없어서 우린 허탈한 시간을 보냈다.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에서 붙인 경고. ⓒ 이룸

성매매 집결지는 철저하게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다. 돈이 무섭다는 것을 배운 곳, 그런 곳에 재개발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업주와 성매매 여성과 뒷일을 봐주는 사람들이 한 배를 탈 때는, 가족처럼 묶인 관계들이었다. 업주는 엄마가 되고, 이모가 되고, 깡패는 삼촌이 되던 그런 때, 여성들은 의리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우리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그래도 내가 아플 때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같은 한 솥 밥을 먹으며 정이 쌓였다고 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외로운 사람들끼리, 돈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의존하면서 한 사회를 이뤄나가는구나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가족과 연을 끊고 이 고립된 곳으로 들어와, 구매남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거나 위해를 받을 때 피붙이처럼 뒤를 봐주고 걱정해준다고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매매 산업 안에서 이득을 얻을 때는 여성들의 뒤를 봐주던 사람들은 재개발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성매매 여성들을 과감히 버린다. ‘삼촌’들은 이제 재개발위원회 일원이 되어 여성들을 내쫓는 일을 맡아 한다. 성매매를 하는 증거를 잡기 위해 CCTV를 설치하면서 빨리 이곳을 나가라고 협박한다. 불법 공간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보상금은 줄 수 없다고 외려 큰 소리를 친다.

 

집결지 재개발은 빽도 돈도 없는 사람, 더욱이 자신을 드러낼 방도가 없는 사람을 벼랑으로 떠민다. 같은 성매매 집결지 공간 안에 있어도 이렇듯 여성들이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그녀들은 손에 쥔 것 없이 쫓기듯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집결지 폐쇄…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될까

 

집결지의 그녀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 이룸

청량리 집결지에 있는 ‘그녀들’은 어디로든 떠나야한다. 몇 십 년을 살았던 곳인데 대체 어디를 갈수 있냐고 항변을 하고 망연자실한 처지를 한탄해보지만, 그녀들에게 대안은 없다.

 

치안과 안전을 위해서,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서, 지역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 성매매 집결지는 없어져야 한다고 사람들은 쉽게들 말한다. 그들의 논리 속에 그녀들은 불결한 사람이 되고, 경제적 이득에 도움이 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녀들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는지, 그 뒤의 삶은 또 어떠할지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신의 몸 하나 자신의 손으로 건사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이다. 일당을 벌어서 병원에 가고, 그 돈으로 밥을 먹고,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월세를 내면서 떳떳하게 삶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이다. 누군가는 꼭 성매매를 해서만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런 것 아닐까? 왜/무엇이 여성들에게 기본적인 삶을 꾸리기 위해 성매매를 하도록 만드는가.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또 과연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가.

 

청량리 집결지 폐쇄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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