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처벌규정 위헌법률심판사건 공개변론 방청후기

성매매 처벌규정 위헌법률심판사건 공개변론 방청후기

 

1. 공개변론에 앞서 – 성적자기결정권과 생계형 성매매

 
4월 2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관으로 공개변론에 앞서 성매매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반성매매 입장을 견지한 패널들은 공개변론의 쟁점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꼽았다. 처음 위헌심판을 제청한 오원석 판사와 청구인 대리인은 성매매 처벌법 21조 1항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을 위헌의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이에 관한 좌담회의 전체적인 입장은 성매매는 성적자기결정권과 무관하며 ‘건전한 성풍속’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형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해당 조항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동의할 경우 형평성의 원리에 의거 성구매자/알선자 형사처벌 무효화를 포함하는 '성매매 합법화'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한편 4월 7일 백분토론이 방영되었다.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은 집결지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결코 떠날 수 없는 곳이기에 그녀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거꾸로 이야기해서 집결지 외부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모두 '비생계형 성매매'의 주범이므로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집결지 여성을 비롯 장애인 성구매자와 같은 이 사회의 '성적 약자'들에게 연민을 품은 강력한 성매매 근절주의자였고 가히 집결지를 성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의 공간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정확히 집결지 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2. 공개변론 당일 – 성매매의 당사자는 나오시오

 
4월 9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에는 위와 같은 위헌/합헌의 기묘한 대결구도를 한눈에 보이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졌다. 선착순 방청권 배부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선 상황에서 헌재는 예정된 백석으로부터 ‘당사자’를 위한 서른석의 좌석을 확보겠다고 사전고지 없이 통보했다. 헌재의 이러한 결정은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고 간주되는 집결지 성판매 여성과 업주들 이외의 사람들을 비당사자로 만들었다. 성매매특별법 입법 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매매 현장에 있어온 여성운동단체 활동가와 여성주의 연구자들은 반론도 못해보고 비당사자의 위치로 끌어내려졌다. 왼편에는 당사자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오른편에는 비당사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그 풍경은 양편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성매매에 대한 이해와 가치판단마저 첨예하게 갈릴 것 같은 갈등상황을 연출했다. (성노동운동의 연구활동가들은 줄을 서지 않고 피케팅을 할 수 있었는데, 당사자들이 그 서른석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위의 풍경들은 공개변론 전부터 당일까지, 위헌심판을 둘러싸고 가시화된 논쟁이 여성주의 정치를 사라지게 만드는 정황을 드러낸다. 위헌 측은 성매매처벌법이 상정하는 ‘자발적’ 성판매 여성의 형사처벌에 관한 찬성과 반대라는 이슈를 명백히 역이용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빈곤 여성이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고 성판매를 할 수 있는 권리’로서 제시한 것이다. 요약컨대 자발적인 생계형 성매매는 성적자기결정인 것이다. 위헌 측이 이러한 논리로 결국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성매매의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회적 낙인을 철저히 보존하되 성매매 구조는 재생산하는, 즉 ‘음성형’과는 구별되는 어떤 성매매가 가능한 공간으로서 집결지의 합법화가 목표였다. 합헌 측은 이러한 흐름에 괄호쳐져 놓여있는 여성가족부의 자활 대책 없는 집결지 폐쇄 정책을 좌시했다. 그저 '성은 특별하기에 거래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마찬가지로 성적 위계를 재생산하는 대답만을 반복했다. 결국 도마 위에 올라온 ‘자발성’과 ‘성적자기결정’을 정치적으로 파헤치지 못했으며, 여가부 대리인은 그 자발성을 법으로 판정 받은 성판매 여성은 성매매의 피해자도 소수자도 차별의 당사자도 아니라는 발언을 남겼다. 

 
3. 여성주의적 성매매 담론을 꿈꾸며
 

여성운동이 도입한 성적자기결정권의 언어가 여성주의 정치를 은폐하는데 사용되었으나 그것에 대항할 새로운 언어는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운동은 언어를 두고 치열하게 대결할 겨를 없이 위와 같은 여성가족부의 입장으로 재현되면서 “기득권 여성의 활동”으로 가두어져 버린다. 재개발의 논리를 공유하는 집결지 폐쇄 정책을 향해 소수자의 삶과 공간, 시간성에의 권리를 제시하는 저항이 보이지 않을 때, 집결지 합법화라는 이름의 '성매매를 할 권리'에 반대하는 사람들로만 남는다. 국내 상당수의 여성인권단체가 연명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의견서는 “성매매가 성차별적 관행과 여성의 낮은 사회경제문화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고, 한국사회 성별불평등은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 상품을 가속화시키면서도 성산업 확산의 책임을, 자유로운 선택으로 포장하면서,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이 현실은 처벌조항의 “위헌성 여부로 판가름 할 사안이 아닌, 입법정책적으로 그 대응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하는 사안”임을 피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관계로서의 여성을 향한 차별로서의 성매매를 이야기하며, 국가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한 성차별과 빈곤이라는 이중의 억압에 놓인 성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첫단추가 잘못 꿰어진 법의 공론장 안에서 휘발되어버렸다.

 
권리란 언제나 약자의 권리다. 권리란 현실을 증진시킬 운동성을 내포하며 현실의 차별을 존속시킬 권리란 그 정의상 모순이다. 개념은 가치와 당위를 요청하는 살아있는 것일 때 그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방패 삼은 집결지 합법화 주장은 성산업의 약자인 성판매 여성의 권리를 위한 비범죄화의 목소리를 업주와 구매자라는 성산업 수혜자들을 위한 권리 보전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그러니 음성형 성매매 대 집결지라는 이분법이 가능했고, 따라서 성매매 근절주의자인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이 위헌 측 참고인으로 서는 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합헌 측은 이 점을 논파하기는커녕 오염된 권리를 깔끔하게 제거하기를 선택했다. 보편적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설치된 정부 기관이 여성을 '창녀와 피해자'로 이분하여 선택적으로 권리를 배분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와중에 여성주의적 성매매 담론을 이야기해온 사람들은 제 3자로 빠져있어야만 했다.
 

결국 이번 공개변론의 프레임 자체가 어떻게 성산업을 은폐하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규명할 정치적인 논쟁은 재판장 내부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겨우 이 기묘한 판이 한국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성매매에 관한 인식의 전부란 말인가, 하는 회의는 잠깐만 하고 재판장 밖에서 운동을 계속해나갈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