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오늘을 변호하기_별


오늘을 변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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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룸 상담현황과 분석>(클릭!)을 읽어 보면 ‘의료 지속 상담’이 증가했다고 나온다. ‘꾸준히 병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 갈 약속을 매개로 이룸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노년에 이르러 당뇨, 신경정신과 등 여러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있는 분, 자학과 피학 이외의 방법으로 몸을 어떻게 돌볼 수 있는지 알고자 하는 십대, 정착할 수 없던 시간들 속에서 상해버린 치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분, 몸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술을 마시고 반복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그래도 기어이 그 순간의 절망을 누르고 119를 부르는데 성공하는 분 등.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의료지원 약속을 잡았고 제시간에 만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보내고 있으리라 반추한다. 그중에는 한번 만나기기까지가 너무 힘든, 당장 오늘 살아남아 있기는 한지 걱정스러운 사람도 있다. 
 
다르크 여성 하우스(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 약물의존재활센터) 대표로 약물 의존 당사자/지원자인 가미오카 하루에 씨는 의존을 겪고 있는 폭력피해생존자들에게 있어 요리와 청소, 억압되고 왜곡된 신체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심호흡과 스트레칭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함께 하고 알려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담소에서는 일상의 기본 단위를 스스로 반복할 힘과 자원이 없는 경우 상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쉼터 입소를 권하게 된다.
 
이러한 수순에 따라 A 언니에게 몇 달 전부터 너무 당연해 보이는 입소를 권했고 그녀는 저울질 끝에 다시 자신의 원룸에서 혼자 지내기를 선택한다. 한 개인이 사적인 공간, 사생활의 자유,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삶이 나아질 거다, 어떻게든 굴러갈 거다, 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이전 삶과의 큰 단절을 경험하는 일이었고 자기를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입소를 더 긴 미래 계획 속에서 일시적인 단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검정고시랄지 직업훈련, 개인회생에 대한 희망도 별달리 보이지 않는 상태, 질병이나 노화로 죽음과 가까운 상태인 경우 더욱 그렇다. 
 
그녀는 생명이 위험하지만, 오히려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나의 원룸을 유지하기를 선택한다. 그녀가 놓지 않으려는 것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녀에게는 매 끼니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쓰러졌을 때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는 나의 방이 의미 있는 현실이다. 저 혼자 생존해온 이, 자신의 경계 안에 고립된 이가 외부와 연결되기란 크나큰 행운과 특권을 필요로 함을 확인한다.
 
우리는 다음 의료지원 약속을 잡는 것으로 서로를 향한 모든 바람을 함축한다. 의료지속상담은 할 수 있는 게 의료지원뿐인 상담소의 궁여지책이고 그녀의 불안정한 시간 속에 한 점 고정된 일상을 만들어내 보려는 시도이다. 그 잠깐의 만남 동안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내 삶과 거리를 두어보는 대화, 농담과 웃음이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변호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16.3.14 '소통과 치유' 가 추죄한 가미오카 하루에 씨의 강연 '여성 약물의존자에 대한 젠더관점의 이해와 효과적 지원' 내용 중에서. 통역을 맡으신 이룸 후원회원 승짱님이 초대해주셔서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