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북토크 후기 1탄 by. 안홍님

*북토크에 와주셨던 회원 안홍님이 정성스레 적어보내주신 후기를 공유합니다:) 

 

11월 30일 북창동 스페이스 노아에서 ‘청량리: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 북토크가 개최되었다. 북토크 행사장의 입구에서는 청량리에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와 책, 여성들이 직접 만든 불량작업장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재개발이라는 경제논리로 헐리는 청량리의 기록화 작업이 이렇게 꽃을 피우는구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놀렸다. 신나는 마음으로 가볍게 다녀왔다. 이렇게 후기를 쓸 줄 알았으면 질문도 하고 메모도 좀 했을텐데…ㅎㅎ 그 재미났던 시간을 되돌아본다.

 

역사로 남을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작년 이룸과 역사문제연구소가 함께 한 ‘도시 개발과 인권 : 청량리 재개발과 성매매집결지 여성의 삶’에 다녀온 후 이룸과 역사연구소가 만나는 접근이 신선하다고 느꼈었다.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성매매의 기원과 변천사를 보면 역사와 만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왜 신선하다고 느꼈을까? 성매매와 역사와의 간학문적 접근에 비중을 준 단행본이 레어템이라는 사실이 그 답이 아닐까싶다. 그래서 ‘청량리: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가 더욱 반갑다. 책이 1부(청량리의 역사와 여성들의 구술), 2부(이룸의 활동역사와 고민들), 3부(청량리 쪽방 여성들과 이룸의 활동)로 나뉘 듯 북토크도 1부(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들과의 대담), 2부(이루머들과의 대담), 3부(청량리 기록화 작업 및 불량작업장에 참여한 여성들의 소감) 그리고 질의응답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북토크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이야말로 책에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알게 돼서 책이 더 재미있을 이야기들이다. 청량리 기록에 참여하신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의 김대현, 김아람, 장원아, 한봉석 4인의 연구자들은 이룸과 함께 작업하면서 느꼈던 점들과 역사연구자 그리고 개인으로서 지닌 연구 배경과 맥락 그리고 쪽방 여성 5인을 인터뷰하고 이를 구술로 엮어 기록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자기 소개에 덧붙이셨다. 특히 한 연구자께서 자신은 사회적으로 억눌려온 섹슈얼리티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입장(게이로 정체화 하기에)인데, 청량리 집결지 현장을 접하고 그 이성애 중심적이고 다층적인 억압에 놀랐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성매매의 구조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고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 역사문제연구소 집필자들의 각기 다른 맥락을 알게 되니 책이 더욱  재밌을 거라 기대되었다.

 

이룸의 활동 역사, 증인이자 연결고리

집결지의 폐쇄성으로 인해 이룸이 청량리에서 처음 아웃리치를 시작하면서 겪은 일화들, 정부지원금을 받는 단체로서 제도화된 지원의 틀이 가지는 한계에서 비롯되는 고민들, 자본의 논리 앞에서 변하는 정부와 지자체, 업주와 그 공간을 생활 무대로 하던 사람들의 태도들, 페미니즘적 시각을 놓지 않으려 깊숙한 질문들을 던지며 틈새를 들여다보는 고민들로 인해 회색분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오해아닌 오해를 받는다는 고백 등 이루머 활동가들은 청량리 집결지와 함께한 이룸의 역사를 재미있게 이야기로 풀었다. 활동가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북토크와 책의 2부는 속했지만 속하지 않은 자들, 현장의 목격자이자 증인인 이루머들의 구술로 느껴졌다.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성매매의 지형 속에서 여성 인권을 말하는 자들의 카멜레온 같은 역할과 여성들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그리고 그 끈이 되려고 그렇게 흔들흔들 꿋꿋하게 버텨오며 활동할 수 밖에 없는 페미니스트들의 행보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활동의 역사와 그간의 고민은 마치 활동가들의 구술사 같다. 텀블벅의 성공과 북토크의 인기를 보니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틈새를 들여다보는 이룸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처럼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많으리라. 이룸과 함께 책읽기를 하고 있는 요즘은 더불어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다.

 

공간을 살아낸 당사자들의 참여

3부는 기록화 작업 인터뷰와 불량언니작업장에 참여한 여성들의 소감 및 이룸과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생각 등을 음성녹음으로 듣는 시간이었다. 여성들의 음성과 더불어 재치있는 스크린의 글과 그림이 좌중의 웃음을 빵빵 터트렸다. 답변들에서는 이룸에 대한 신뢰와 감사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의 성매매 경험에 초점을 맞춘 반성매매 운동 행사가 아닌 자리에서 여성들과 함께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여성들 자신이 기록화 작업을 통해 청량리라는 공간을 살아낸 역사적 주체로서 느끼지 않았다면 행사에 참여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공간을 살아낸 주체들로서 청량리라는 공간, 집결지 역사의 기록에 참여하고 행사에 자리한다는 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다.

청량리 집결지는 거대 자본이 들어서기 전까지 정부와 지자체들이 묵인하고 관리했던 곳이였으며,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머물렀던 생활 및 거주 공간이었다. 재개발 보상에서도 밀려난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머물렀던 공간에서 또 다시 생존을 위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젠더, 빈곤, 연령은 물론  여성들을 방관해왔던 사회의 낙인은 상호 교차하며 또다른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답답함과 분노가 꾸역꾸역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증인이 되었다. 기록화 작업은 여성들의 증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