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3. 터울

드디어 페이드포 북토크의 마지막, 세 번째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터울님이 적어주셨어요.  맞아, 이런 얘기도 있었지! 하며 읽고

아 터울님은 이런 연결선상에서 성매매를 고민하는구나, 하며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후기를 읽으며  10월 18일 페이드 포 북토크로 잠시 이동해보아요.

<페이드포> 북토크 후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터울

 

2019년 10월 19일,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의 북토크가 개최되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인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풀어놓은 이 책은, 당사자만이 경험하고 기술할 수 있는 현장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현장 위에 도사리고 있는 성산업과 젠더 억압의 구조 양자 모두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드문 저작이다. 다만 이 책이 아일랜드의 성산업과 성매매 경험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번 북토크에서는 책의 내용과 비교하여 한국의 성산업과 성매매 관행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는지에 대해 집중했다. 패널로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과 김주희 선생님, 이루머인 별님께서 참석해주셨고, 장내는 자리를 가득 채운 청중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먼저 아일랜드와 한국 공히 별반 차이가 없다고 평가되었던 것들 중 인상깊었던 건 다음과 같았다. 성매매 여성 입장에서, 성구매자 남성들 중 성적 취향이 스스로 ‘변태적’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차라리 대하기 쉬웠고, 자신의 성욕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구매자 남성일 때 오히려 예기치 못한 다양한 폭력과 ‘변태적’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대목이다. 이것이야말로 젠더 기반 폭력(GBV)의 가해가 어떤 특수한 남성의 사례가 아니라,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제도적 남성성이 발현된 결과라는 증거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께서는, 성구매자 남성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성폭력 가해 남성의 경우에도 겉보기엔 너무나 멀쩡한, 소위 ‘일반적인’ 남성일 때가 많다고 덧붙이셨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 남성의 서사 또한, 피해자에게 딱히 해코지하려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 “남자라면 으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여겨서”라는 식이 많다. 이는 성매매를 비롯한 젠더 기반 폭력을 특수한 사례로 치부하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성욕’의 얼굴을 한 제도적 남성성에 대해 사회구성원들, 특히 남성들이 스스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물론 젠더 기반 폭력이 제도적 남성성의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과, 모든 남성들이 젠더 기반 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계급, 인종 등 모든 구조가 그렇듯이 가부장제 또한 개인의 행위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니고, 페미니즘에 대한 세간의 오해 또한 이렇게 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데서 출발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미투 운동을 겪어오면서, 모든 남성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성폭력 가해 남성만큼은, 가해가 발생한 그 순간 가부장제가 제공한 ‘일반적인 성욕’의 교범에 빙의된 ‘제도적 남성’으로 평가할 수 있고, 그의 행위가 그 자체로 범죄라는 합의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이 책은, 성구매자 (이성애)남성 또한 그 ‘제도적 남성’의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아일랜드와 한국의 사례 가운데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과 김주희 선생님께서 정리해주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양에서 구성된 남성공동체와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이 동등한 남성끼리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희화화하거나 실제로 ‘교환’하는)연대를 전제로 했다면, 한국은 여기에 미국(일본) 남성과 한국 남성의 위계가 추가되는 점이 서로 구분된다. 즉 동등한 남성이 아니라 외국 남성에게 뇌물(접대)를 주는 한국 남성의 구도가 자리잡고, 그 접대의 도구로 한국 여성들이 활동되는 방식이다. 이를 ‘식민지 남성성(colonial masculinity)’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외교매춘, 사업매춘, 기생관광으로 이어지는 밀실 성매매의 관행으로 반복되어왔고, 최근의 버닝썬 사태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재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날 북토크에는 다행히(?) 나 말고도 몇 명의 남성들이 더 있었다. 그 중에 게이인 남성은 아마도 더 드물었을 것이다. 반성매매 단체의 행사에 참석하는 게이의 입장으로서, 이런 자리에 올 때마다 느끼는 소회가 있다. 본래 이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스로 대단히 꺠어있거나 PC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게이/퀴어 커뮤니티를 직업상 바깥 세상에 설명하다보니 젠더·섹슈얼리티 체계를 다루는 페미니즘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와 이성애중심주의와 시스젠더 권력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동시에 작동하고, 최근의 퀴어·페미 관련 논쟁들은 저 구도에 대해 보다 통합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증거에 가깝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또 이 북토크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피해에 대한 공론’과 ‘프라이드’가 서로 양극단의 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전자는 여성운동, 후자는 퀴어운동의 전략으로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여성운동이 피해의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퀴어운동은 팔자가 편한 자들의 놀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운동이 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막대한 ‘피해’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동시에 여성단체들을 만난 내담자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피해’로 직면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에 경험하는 자력화를 ‘프라이드’라 부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이 책이 뜻깊었던 것은, 수많은 질곡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구조와 함께 응시해내고, 그럼으로써 이렇게 자신을 드러낼 만큼 과거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던 저자의 ‘프라이드’가 행간에 묻어났기 때문이다. 내 고통의 까닭을 알게 된 뒤에 짓는 환한 웃음과 그로부터 배어나는 한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이 날 북토크는 온 마음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존엄을 얻기 어려웠던 사람이 존엄을 되찾을 때, 인권의 원의 또한 그 자리에서 오롯해진다. 귀한 자리에 초대받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활동

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2. 제이

10월 18일 스페이스청에서 열린 [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당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는데요,

그 날의 후끈후끈 열기를 전해줄 두 번째 후기를  ‘제이’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성매매 산업을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서로 기댈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공유합니다.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참여 후기

– 제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X 김주희 X 정희진>?! 천재적 콜라보잖아, 이건 꼭 가야 해! 그렇게 병원 예약 시간까지 조정해가며 북토크 현장에 뛰어갔습니다. 역시 그런 생각을 저만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꽤 넓은 행사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의 매끄럽고 여유로운 진행으로, 이룸의 별 활동가, 연구자 김주희 선생님, 정희진 선생님이 각각 패널로서 1부에서는 책 <페이드 포>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꼽으며 이야기했고, 2부에서는 <페이드 포>가 아일랜드 성매매 현장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생각으로 넓혀가게 도와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순서무관 후기로 적어보려 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의 손아귀에 놓여있을 때, 사람들은 현실에서 비롯된 수치심과 우울증에서 기인한 수치심을 구별할 수 없다.”, “성 구매자 중에서 ‘변태’가 ‘일반적인’ 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정희진 선생님이 <페이드 포>에서 짚은 구절입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여성 및 사회적 약자들의 경험을 연결하여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성애 성기결합 섹스 자체의 폭력성과 찝찝함, 그것이 정상이 되는 세계 안에서 여성이 겪게 되는 우울, 그리고 그 우울을 둘러싼 혼란(이건 병에 의한 증상일까, 끔찍한 세상에 대한 윤리적 반응일까?)에 대한 지적에 공감했습니다.

또 성구매자들의 습성과 ‘일반 남성’들의 일상 문화와의 연결선도 부각되었는데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담론의 특성으로서 소위 ‘양남’, ‘일남’에게 굽신거리고 ‘여자’를 제공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과정,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일부 한국 남성이 구매자가 될 수 있었고 자국 남성을 타겟으로 한 성산업이 형성되었던 역사가 거론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한국 남자들이 더 ‘잘나가는’ 남자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나도 성매매할 권리(또는 나도 강간할 권리)’를 평등에 대한 요구처럼 들먹이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희진 선생님이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명명한, 외세에 억압됐고 그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고수하면서 여성 성 착취의 문제에서 자기를 쏙 빼거나 오히려 자국 여성의 위로를 정당한 자기 몫으로 요구하는 남성들. 정말이지 한심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격렬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심하고 비겁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만들 수 있을지가 개인적으로 고민입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이 거래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별성’과 ‘일시성’이라고 짚은 김주희 선생님의 말에 몇 번이고 내적 무릎을 쳤습니다(의자 구조상 실제 무릎을 치기 어려웠음). 항상 성매매라는 문제를 다룰 때 ‘남성’의 돈으로 ‘여성’의 성을 산다는 점을 차치하고 관념적 ‘성의 거래’를 중심에 두는 게 현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고 느껴왔거든요. 레이첼 모렌이 성구매자가 성매매 여성에게 통제권을 주고 복종하는 상황을 즐기는 거래에서도 권력은 전적으로 구매자에게 있음을 적은 대목을 소개하며, 김주희 선생님은 흔히 ‘여자도 호스트바에서 남자 성 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현상을 대칭적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지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성산업에서 ‘남성의 돈으로 여성을 산다’는 것의 또 다른 핵심은 남성이 비용 지불 이외의 어떠한 감정노동도, 관계적 노동도 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여성을 쓴다는 것임을 짚어주셨어요. 비용을 지불한 이는 그 ‘비인격적 관계맺기’ 자체를 구입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돈 낸 만큼을 뽑아낼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되는 게 자연스런 수순일 것입니다. 그러니 성매매 현장에서 구매자가 사람을 비인격적 존재로 ‘막 다루는 것’은 월권의 영역이 아닌 상품에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일 거 같습니다. 이 ‘막 다룸’에는 물리적이고 명시적인 폭력만 해당하지 않을 거고요.

 

이 이야기는 별 활동가님이 발언한, 성구매자가 ‘구매하고자 욕망하는 것은 섹스가 아닌 성폭력’이라는 말과 연결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는 “Paid for ______”, 과연 무엇에 대한 지불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 활동가님은 성매매 여성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해 오면서, 바로 이렇게 그 자체로 비인격적인 거래의 경험이 누적됨으로써 그 당사자 개인들에게, 또 사회에 무엇을 남기는가- ‘그 고통과 효과를 언어화하고 문제화하기’라는 과제를 수행해오며 알게 된 것들, 고민한 것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늘 어떤 문제가 ‘왜’, ‘누구에게’ 그 문제의 ‘무엇이’ 문제적인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는 과정에 폭력이 추가되어서, 또 그 행위에 낙인이 추가되어서 문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폭력과 낙인이 제거된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곧 (남성을 위한) 몸이고 열등한 존재라는 자아인식을 체화하게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성매매 행위라는 점을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납득하게 만드는, 당사자에게 특히 은폐되어 있는 구조들이 있고, 그 구조 바깥엔 최저시급 이하의 임금으로 근근이 사는 것만이 대안으로 존재하는 상황- 이것 역시 그 자체로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심각한 사회적 고통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별 활동가님의 이야기는 다시금 성매매를 밀실 폭력이 발생하는 ‘특수한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뒷받침되고 또 그 둘을 지속하게 하는 구조로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주희 선생님이 여자들 사이에 소위 “끕”의 차이(위계)가 있다는 환상을 재생산하면서 구매합리성을 만들어내는 업계의 논리가 얼마나 성매매 바깥에 있는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위계와 조응하는지를 짚어주셨던 점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님은 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셨어요.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깊이 공감되는 고민이었습니다. 당사자를 피해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발화를 할 것인가- 항상 고심하게 되고, 자주 후회하게 되곤 합니다. 이날 자리에서 뚜렷한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희진 선생님이 레이첼 모렌은 자기가 경험하거나 생각한 것의 약 10퍼센트 정도를 썼을 거라며 “표현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협상력”이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사자의 증언이 당사자의 삶을 포함하여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그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별 활동가님이 북토크 중간쯤 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그 업계 밖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기 경험에 대해 다르게 의미화하거나 이해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다시 생각났습니다. 정답이나 힌트 같은 건 아마 없는 거 같아요. 더 말할 수 있는, 더 많이 귀 기울여 듣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윤리적 매개자’, ‘듣기의 공동체’로서의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요. (하지만 힌트나 정답이 혹 있다면 언제나 대환영..)

 

두 시간에 어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쏙쏙 담았지 싶다가도, 한 시간쯤 더 들었으면 좋겠다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패널들 각자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케미’가 두드러지면서 책 내용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이 고민하며 행사를 준비했을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웠어요. 북토크 현장에선 사실 의자에서 떨어질 뻔할 정도로 웃긴 순간들이 꽤 있었는데 ‘오프더레코드’였던 터라 이 후기에 적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행사장을 나오면서는 홀린 듯이 <페이드 포>를 구입했습니다. 근데 아직 못 읽었네요… 조만간 꼭 읽고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활동

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1._숨

10월 18일 스페이스청에서 열린 [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당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는데요,

그 날의 후끈후끈 열기를 전해줄 첫번째 후기를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 샘에서 활동하고 있는 ‘숨’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성매매 산업을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서로 기댈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공유합니다.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 (조서윤숙)

뜨끈한 떡과 간식을 한아름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페이드포를 번역하고 이룸과 함께 출간작업을 한 안서진님이 소개됐다. 책출간의 배경을 담담히 이야기해 주었고 모두들 귀담아 들었다. 곧바로 여성학자 정희진, 김주희, 그리고 이룸의 별, 고진달래가 무대에 함께 올랐다.

그럴싸한 출판사를 낀 것도 아닌데, 오 참말로 보기가 좋고 아름답다. 성매매를 말하는 먼 나라의 책을 회원과 활동가와 여성학자가 함께 만들고 소개하는 오늘의 이 장면은 이룸의 현장성과 담론화 과정의 치열함을 오롯이 드러냈다.

1부에서는 패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소개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희진님의 자기고백에 가까운 토크들 무엇? 아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어버렸다. 김주희님은 그걸 또 수습한다며 잘 포장해 주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알아서 하랬다가. 결국은 두 사람의 케미라는 것이 이번 북토크에서 폭발했다. 이런 진귀한 장면 너무 좋다.

1부에서 소개된 구절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 소개된 와중에 내게 더욱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어본다.

 

성 구매자 중에서 변태일반적인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 6.첫 날

며칠 전 한 사회심리학자로부터 수년 전의 강간미수살인사건 범인과 면담한 사례를 들을 일이 있었다. 그 범인은 프로파일 과정에서 피해자를 몰래 훔쳐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제가 강간을 하면 했지 그런 변태 같은 짓은 안 해요”하며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에게 강간행위는 남성성을 표출하는 자랑스럽고 우쭐한 것이었고 그 밖의 것은 좀스럽고 남성으로서 하자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성구매를 하는 ‘일반적인’ 남성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도 어차피 구매자고 어차피 지갑 권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변태’나 ‘일반적인’ 구매자나 그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에서는 큰 차이는 없겠으나, 소위 ‘일반적인’ 구매자들이 과잉된 남성성을 폭력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경험한 저자에게는 이러한 분석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게 했을 것이다.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직업이라는 말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 1.첫 번째 질문

다른 직업들과 확연히 달리 성매매를 간단히 집 문밖에 두고 들어올 수 없는 복잡한 여러 요인들이 있기에 그러하다.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성매매라는 비밀에 매여 평범한 사회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구별되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몸이 남성의 성을 위한 도구로 끊임없이 사용되고 위험천만한 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순간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일의 맥락 상 다양한 중독에 처하게 되고 중독은 다시 성매매를 강요하면서 주류사회로부터 멀어져서 ‘타자성’이 극대화된 특수한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와 연결해서 내가 덧붙이고 싶은 인상 깊은 부분도 있다. 레이첼 모렌은 우리 사회가 성매매에 대해 ‘성인 간의 합의’라고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반격한다. 성매매라는 진면모를 알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에 합의하기란 불가능하다(- 6. 첫 날)는 것이다. 성매매 되는 많은 자들의 경우 성인이 아니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도 하고.

2부에서는 각 패널들에게 한국 성산업의 구조적인 맥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국가와 여성을 식민지화한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도 식민주의가 군사주의로 확장한 가운데 권력형 성접대 안에서 여성들에게 같은 역할을 요구했던 한국사회의 맥락을 짚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흐름이 어떻게 남성문화와 여성들의 빈곤 문제에 기반한 성매매와 연결되는지, 여성의 몸을 남성경제의 도구로 활용하는 맥락 등을 살펴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고민들이 무게감 있게 오고 갔다. 그 중에서 달래의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성주의자들도 선뜻 쉽게 접근하기 힘든 것이 성매매 이야기다. 그렇게 어렵다.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고 세상에 내어 놓으려고 한다. 이 중요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어떤 윤리와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하는가(대략 이런 요지로 기억됨)” 그에 대한 답은 모두에게 어려웠으나 그 질문만은 모두에게 남았으리라.

이 질문을 곱씹다 보니 오래 전 이루머들과 함께 봤던 영화 <헬프>가 떠오른다. 백인 주인과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는 흑인여성가정부들의 목소리가 책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여성으로서의 억압은 주변화된 정체성과 계급까지 교차할 때, 그들의 목소리가 반란이 되고 변화를 이루기까지 수많은 장애물을 이중삼중으로 만나게 된다.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상호교차성을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만약 우리 사회가 사회에서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여기서는 이를테면 성매매를 경험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 하고자 세계를 재구성하고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그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이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성매매경험 여성 혹은 남성성에 포섭되지 않아 차별 받았던 남성들 또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어렵고 복잡한 싸움을 진득하게 붙잡고 가는 이룸이 필요한 이유다.

레이첼 모렌, 안서진과 함께 한 이룸의 페이드포 한국판 출간은 우리가 성매매에 대한 기억을 삭제한 채 여성인권을 논해도 되는지 질문을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페이드포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을 통해 ‘여성의 문제가 다양한 주변부의 문제들과 교차하고 경합하는 가장 첨예한 장이 성매매’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집단에 비판적인 언어를 발굴하고 이미 쓰던 언어도 다시 벼리어 개발하는 일은 페이드포와 이룸의 질문을 지속시키고 상기시킬 수 있다. 항상 가장 주변화된 이들을 상기시켰던 크렌쇼가 했던 말은 지금 여기에서도 필요해보인다. “그들이 들어갈 때, 우리 모두 들어갈 것이다.”

 

 

 

활동

2018년 5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이룸과 많은 활동을 같이 하는 예지님이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를 적어주셨습니다. 현장을 접할 수록, 복잡다단한 현장을 따라 고민의 타래들도 부쩍 그 부피가 늘어난다지요.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상호 힘이 되길 바라며 후기를 공유합니다.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_이예지

 

구성된 개별 공간에는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따라 또 자신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어떤 장소에 개인이 진입할 수 있는 지 없는지가 나뉜다.

 

어떤 업소나 집결지이던지, 나는 아웃리치를 갈 때마다 이성애 남성 성구매자의 공간에 침입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지며 구매자를 맞닥뜨리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안게 된다. 이태원은 그 느낌은 덜하지만 “언니”들을 마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무슨 돈이 나서” 물품을 건네주냐고 물어오실 때마다 이 곳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성산업에서의 배치에 대해 고민한다.

 

이 사회에서 시민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개인들이 업소에 들어간 경로는 개인간의 차이만큼이나마 다양할터이다.

 

이태원 거리는 “트랜스젠더 빠” 라고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아니, 다른 지역 또한 그렇다. 이 공간 안에서 그들은 ‘트랜스젠더’임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사회 규범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 또는 2인 사람이 그/그녀의 지정된 성별과 젠더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지 않길 원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성기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주민등록번호 1 또는 2의 규범이 젠더표현의 자유와 충돌해도 ‘괜찮은’ 직장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경제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되는 노동조건 중 하나로 성매매가 배치되어있다. 빚으로 성판매자를 묶어두는 성매매와 그 산업을 절대로 자유로운 개인간의 거래로만 볼 수 없듯이 역설적으로 트랜스젠더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성산업 현장이다. 이러한 점들은 많은 성소수자 단체가 투쟁하듯 누구에게나 규범적인 젠더표현을 수행하기를 거부해야하는 운동과 성매매 운동이 같이 가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트랜스젠더가 혹은 다른 성소수자가 성매매 산업으로 모이게 되는 여러 동인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함을 시사한다. 물론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에서 적힌 루인의 지적대로 MTF 트랜스젠더 성판매자가 성기전환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업소에서 받아주지 않거나/성구매자의 ‘초이스’를 받지 못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젠더는 업소 안에서 완전한 자신의 뜻대로 트랜스젠더이기 어렵다. 업소에서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일 수 있는 점과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트랜스젠더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성매매 산업이 사회 규범과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권위, 이성애-남성들이 빚어낸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성매매 산업으로 배치했는지 엿볼 수 있다.

 

국가나 자본 권력이 성매매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어떤 위치에 배치시키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왜 특정 공간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을까. 배치라는 동학은 무엇이기에 이 이상한 현상을 당연하게 굳히고 있을까.

 

이태원 아웃리치를 하면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작년 11월쯤 맥양집 아웃리치했을 때가 떠올랐는데 당시 “법적인 지원체계 안에서 삼종, 게다가 맥양집 종사자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사법제도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규범성’을 생산해낸다. 피해자 규범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범법자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는다. 피해자 지원체계는 행위자와 피해자를 구분해서 지원하지는 않으나 정해진 지원체계의 내용이 제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 성판매를 경험하는 이들, 특히 맥양주집 종사자와 이태원의 성판매자들이 지원을 받는다면 현 지원체계에서 소화가 가능할까. MTF 트랜스젠더 성판매자는 또 어떤 상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웃리치 하면서 머릿속으로 대체 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계란 흰자랑 노른자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주체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을까. 자발/비자발 논쟁만큼 지겨운 것도 없지만 계속 회자되는 이 논쟁 속에서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활동이야기

[후기]‘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 후기 -성형대출 철폐 운동을 ‘나’의 운동으로, 오현주(광어)

성형 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성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 속기록.pdf82.0K

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에 참여했던 광어님이 후기를 작성해주셨습니다.
뜨겁던 포럼의 열기가 알차게 담겨있네요!
후기와 더불어 포럼 당시의 속기록을 첨부하여 공유합니다. 못 오신 분들도 함께 성형대출을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 후기
성형대출 철폐 운동을 ‘나’의 운동으로-

 

오현주(광어)

3년 만의 외출 : 용기,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나는 3년 간 매월 후원’만’ 하던 유령 회원이다.
내가 스스로를 ‘유령 이루머’로 정체화하고 있는 건 단순히 내가 부산에 산다거나, 독박 육아 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계속 이룸이 낯설었다. 아니, 이건 정확히는 ‘반성매매 운동’이 내 운동 같지가 않았다. 아마 학생 운동 시절 내 모습–반성매매/여성해방을 주구장창 외치면서도, 정작 성 판매 여성들의 삶은 (대학생인) 나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굳건히 벽을 치고 있던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번 2016년 포럼 주제를 본 후부터 ‘나와 이룸 간 경계를 허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은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해 준 이루머들, 13개월 아이를 안고 무턱대고 찾아간 날 따스하게(^^) 맞아준 패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최연소참가자와 광어님

 

무력했던 ‘나’ : ‘왜 빌려줬냐’ VS ‘왜 빌렸을까’
포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고백해야겠다. 나는 휴학생 시절 대부업체에서 꽤 큰 돈을 빌린 적이 있다. 수 백 만원의 학자금대출 이자를 연5%씩 내고 있었기에, 당시 ‘무조건/무이자 1개월’은 내게 참 매력적이었다. 대출은 전화 한 통으로 이루어졌고,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1개월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 결국 나는 원금의 25%가 넘는 이자와 함께 원금을 내고 나서야 대부업체와의 연을 끊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한 번 빌리면 돈 없을 때마다 귀신 같이 연락 온다더라’, ‘평생 기록이 남는다더라’ 등등의 카더라 통신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가장 비참했던 건 러시앤캐시의 빚을 결국 다른 친구의 돈으로 다시 빌려 막아야 했던 현실이었다. (만일 카드론이 가능했다면 분명 카드대출에 손 댔겠지.) 이후 나는 미친 듯이 사교육 아르바이트를 했고, 친구의 빚을 다 갚고 나서야 빚이 주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혐오했던 ‘나’ : ‘나는 페미니스트야’ VS ‘나는 뚱뚱해서 안돼’
복학 후, 여자동기들 사이에선 “단란주점에서 방학 때만 ‘빡세게’ 뛰어도 학비가 모인다는 데..명문대 여대생들도 많이 한다는데…진짜일까? 얼마를 버는 걸까?”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대출에 호되게 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수 초간 ‘진짜로 주2회에 몇 백 만원이 모이나? 과외보다 훨씬 나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말도 안 돼. 난 뚱뚱하고 못 생겼으니 애초에 단란주점은 말이 안되지. 과외나 해야지’라며 자조했다.
그 순간, 폭풍처럼 자괴감이 밀려왔다. 입으로는 성 매매 남성들의 가부장성/비인간성을 떠들면서, 나조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내가 정말 페미니스트 맞나? 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순간의 상상으로 시작된 자기혐오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혐오의 대상은 주점조차 갈 수 없다고 내 외모를 셀프-비하하는 ‘나’로, 그러면서도 이번 학기 학비를 또 빌리고 있는 ‘나’로 반복되었다. 졸업 후 나는 취업 전선에 나섰고, 이 기억을 꽁꽁 봉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면접 통과할 외모’ 강박에 시달리며 다이어트를 했고, 쌍커풀 수술도 했다. 나에게 ‘남성에게 매력 어필할 수 없는 몸’이란 곧 ‘취업에 불리한 면접 불합격용 몸’이었기에 또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룸에서 [성 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에 대한 포럼을 한다고 했을 때, 순간 기억 저 편에 묻어 두었던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꾸물꾸물한 느낌이 엄습했지만, 13개월 아이를 안고 무작정 포럼 참가를 강행했다. 더 이상 그 때의 무력함을 방치해 두면 안될 것 같았기에.

뜨거웠던 포럼현장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공모1 : 어떻게 연쇄고리를 끊어낼 것인가   
포럼은 이룸의 발제로 시작했다. 자료집에는 상당히 많은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발제문은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이 현실에서 어떻게 공모하고 있는지, 이로 인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었다.
수많은 업소 영업주들은 고리대 수준의 이자가 마치 ‘싼 금리’인 양, 이 정도 원금은 2~3개월 일하면 다 갚을 수 있는 빚인 양 소개하며 여성들을 설득한다. 성 산업 종사 여성들은 이 제안에 혹하며 더 나은 초이스를 위해, 혹은 ‘몸값 높이기’를 권하는 업소 운영진을 위해 이 수렁에 빠진다. 다수의 사례가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문제는 이것이 전형적인 불법 선불금 형태를 띄고 있어도 여성들이 악랄한 추심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문의 주장처럼 선불금을 무효화시키는 법적 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이를 활용해 여성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듯, 불법/합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성형대출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을 성 산업 내에 옭아매고 있다. 이제는 현재의 법제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규제와 개입으로 성형 대출을 몰아내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이룸의 문제의식에 적극 동의하며, 지지를 표한다. 여성 전용 대출과 성형의 실상이 대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성형 대출 철폐 운동은 (지금은 비록 ‘과제 세우기’ 단계라 해도) 여성 운동 진영에 작지 않은 의의를 차지할 것이다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공모2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이 ‘공모’를 공고히 하고 있는가
두 번째와 세 번째 토론은 이룸의 문제의식과 함께 하면서 또 다른 각도에서 성형 대출 철폐 운동의 당위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세 번째 패널은 오늘날 여성들이 어떻게 ‘신용 시스템’과 ‘부채 경제’ 속으로 대거 편입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성 산업과 금융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패널이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끝판왕” 자리에 국가와 신자유주의(오늘날 자본주의)가 있음을 나지막이 폭로하고 있다고 여겼다.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포섭하는 과정이 곧 여성을 저렴하게 착취 시스템으로 포섭하는 작업이었음은, 지난 수 십 년의 역사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누리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각종 자유는 어떠한가? ‘성 노동’(성 판매)/미용성형/대출을 선택하는 것은 진정으로 ‘여성 자유’의 확대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反여성주의의 합작품인가? 분명 둘 다 존재하겠지만, 토론문은 후자를 절대 ‘자유의 확대’란 명목으로 포장해선 안 됨을 나직하게, 그러나 뼈 있는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성 산업/미용성형/여성 전용 대출의 확대는 결코 여성 선택지의 확대가 아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착취/여성에게 강제되는 ‘몸 규범’/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본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각종 서비스/비정규 노동이 ‘여성 전용’ 영역으로 할애되어 있다. 이는 매우 값 싼 노동이고, 심지어 가사/육아는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도 못 받는다. 여성들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남성과 똑같이 교육 받고, 경쟁하고, 때로는 (결혼 시장에서 나은 남자를 간택함으로써) 계층상승을 꿈 꾸지만, 이 극심한 경쟁을 뚫는 ‘예쁘고, 똑똑한’ 여성은 극소수다.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 간 유착은 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성 산업의 수렁으로 등 떠밀면서, 모든 건 여성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미용성형은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주기는커녕 각종 부작용과 의료사고, 중독, 성형대출에 노출시킨다. 이 뼈 속까지 反여성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억압 망이 너무나 촘촘해서 숨 쉬기 괴로울 정도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다 : 성형대출 철폐 운동은 ‘나’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억압 망을 뚫고, 과연 나는 선언만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예전에는 내가 내 삶을 잘 성찰하면 해방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정말 나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이후 만난 사회는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임에도 여전히 나는 취업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계속된 서류/면접 낙방을 맛 보며 불안해했다. 적은 너무나 거대하고 유리 천장은 공고한데, 그 안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요’라고 선언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취업 이후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이룸에 매월 후원금을 이체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나는 점점 사회와 타협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결국 나를 억누르는 것들과 행동으로 맞서야 한다는 걸. 내가 받은 억압이 내 딸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성형 대출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은 이룸의 과제, 성 판매 여성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나’를 위한 과제이다. 이제는 유령 이루머 생활을 청산하고 투쟁할 때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불타오르는 전의(?)와 현실의 괴리에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액션은 분명히 있다. 내가 나가는 촛불 집회에서 성형 대출의 폐해를 발언해 볼 수도 있겠다. 강남이 너무 멀면, 서면이나 삼산에서라도 뻥이요 과자를 돌려 보는 거다. 민우회에서 소개했던 ‘성형스파이’ 활동은 발상 자체가 굉장히 신선했다. 만일 그런 활동을 많은 여성 동지들과 함께 한다면 분명 즐거울 일일 것이다.
방학이 되면 단란주점을 향했던 그녀들, 당장의 선불금으로 성형수술을 하며 초이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제 칼 끝을 성 구매자/대부업자/브로커를 향해 겨누자. 국가에 요구하고, 운동을 만들어내자. 촛불 시위를 하자. 뒤엎자.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하자.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 착취를 중단하라!
여성을 이용해 돈 버는 성 산업 철폐하라!
대출 받지 않아도 여성의 주거안정,의료,생활안정 보장하라!
성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를 끊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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