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이룸과 많은 활동을 같이 하는 예지님이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를 적어주셨습니다. 현장을 접할 수록, 복잡다단한 현장을 따라 고민의 타래들도 부쩍 그 부피가 늘어난다지요.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상호 힘이 되길 바라며 후기를 공유합니다.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_이예지

 

구성된 개별 공간에는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따라 또 자신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어떤 장소에 개인이 진입할 수 있는 지 없는지가 나뉜다.

 

어떤 업소나 집결지이던지, 나는 아웃리치를 갈 때마다 이성애 남성 성구매자의 공간에 침입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지며 구매자를 맞닥뜨리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안게 된다. 이태원은 그 느낌은 덜하지만 “언니”들을 마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무슨 돈이 나서” 물품을 건네주냐고 물어오실 때마다 이 곳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성산업에서의 배치에 대해 고민한다.

 

이 사회에서 시민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개인들이 업소에 들어간 경로는 개인간의 차이만큼이나마 다양할터이다.

 

이태원 거리는 “트랜스젠더 빠” 라고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아니, 다른 지역 또한 그렇다. 이 공간 안에서 그들은 ‘트랜스젠더’임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사회 규범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 또는 2인 사람이 그/그녀의 지정된 성별과 젠더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지 않길 원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성기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주민등록번호 1 또는 2의 규범이 젠더표현의 자유와 충돌해도 ‘괜찮은’ 직장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경제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되는 노동조건 중 하나로 성매매가 배치되어있다. 빚으로 성판매자를 묶어두는 성매매와 그 산업을 절대로 자유로운 개인간의 거래로만 볼 수 없듯이 역설적으로 트랜스젠더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성산업 현장이다. 이러한 점들은 많은 성소수자 단체가 투쟁하듯 누구에게나 규범적인 젠더표현을 수행하기를 거부해야하는 운동과 성매매 운동이 같이 가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트랜스젠더가 혹은 다른 성소수자가 성매매 산업으로 모이게 되는 여러 동인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함을 시사한다. 물론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에서 적힌 루인의 지적대로 MTF 트랜스젠더 성판매자가 성기전환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업소에서 받아주지 않거나/성구매자의 ‘초이스’를 받지 못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젠더는 업소 안에서 완전한 자신의 뜻대로 트랜스젠더이기 어렵다. 업소에서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일 수 있는 점과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트랜스젠더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성매매 산업이 사회 규범과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권위, 이성애-남성들이 빚어낸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성매매 산업으로 배치했는지 엿볼 수 있다.

 

국가나 자본 권력이 성매매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어떤 위치에 배치시키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왜 특정 공간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을까. 배치라는 동학은 무엇이기에 이 이상한 현상을 당연하게 굳히고 있을까.

 

이태원 아웃리치를 하면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작년 11월쯤 맥양집 아웃리치했을 때가 떠올랐는데 당시 “법적인 지원체계 안에서 삼종, 게다가 맥양집 종사자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사법제도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규범성’을 생산해낸다. 피해자 규범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범법자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는다. 피해자 지원체계는 행위자와 피해자를 구분해서 지원하지는 않으나 정해진 지원체계의 내용이 제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 성판매를 경험하는 이들, 특히 맥양주집 종사자와 이태원의 성판매자들이 지원을 받는다면 현 지원체계에서 소화가 가능할까. MTF 트랜스젠더 성판매자는 또 어떤 상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웃리치 하면서 머릿속으로 대체 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겠다. 계란 흰자랑 노른자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주체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을까. 자발/비자발 논쟁만큼 지겨운 것도 없지만 계속 회자되는 이 논쟁 속에서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활동이야기

[후기]‘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 후기 -성형대출 철폐 운동을 ‘나’의 운동으로, 오현주(광어)

성형 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성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 속기록.pdf82.0K

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에 참여했던 광어님이 후기를 작성해주셨습니다.
뜨겁던 포럼의 열기가 알차게 담겨있네요!
후기와 더불어 포럼 당시의 속기록을 첨부하여 공유합니다. 못 오신 분들도 함께 성형대출을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성형대출의 구조적 책임을 묻다’ 포럼 후기
성형대출 철폐 운동을 ‘나’의 운동으로-

 

오현주(광어)

3년 만의 외출 : 용기,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나는 3년 간 매월 후원’만’ 하던 유령 회원이다.
내가 스스로를 ‘유령 이루머’로 정체화하고 있는 건 단순히 내가 부산에 산다거나, 독박 육아 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계속 이룸이 낯설었다. 아니, 이건 정확히는 ‘반성매매 운동’이 내 운동 같지가 않았다. 아마 학생 운동 시절 내 모습–반성매매/여성해방을 주구장창 외치면서도, 정작 성 판매 여성들의 삶은 (대학생인) 나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굳건히 벽을 치고 있던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번 2016년 포럼 주제를 본 후부터 ‘나와 이룸 간 경계를 허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은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해 준 이루머들, 13개월 아이를 안고 무턱대고 찾아간 날 따스하게(^^) 맞아준 패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최연소참가자와 광어님

 

무력했던 ‘나’ : ‘왜 빌려줬냐’ VS ‘왜 빌렸을까’
포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고백해야겠다. 나는 휴학생 시절 대부업체에서 꽤 큰 돈을 빌린 적이 있다. 수 백 만원의 학자금대출 이자를 연5%씩 내고 있었기에, 당시 ‘무조건/무이자 1개월’은 내게 참 매력적이었다. 대출은 전화 한 통으로 이루어졌고,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1개월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 결국 나는 원금의 25%가 넘는 이자와 함께 원금을 내고 나서야 대부업체와의 연을 끊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한 번 빌리면 돈 없을 때마다 귀신 같이 연락 온다더라’, ‘평생 기록이 남는다더라’ 등등의 카더라 통신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가장 비참했던 건 러시앤캐시의 빚을 결국 다른 친구의 돈으로 다시 빌려 막아야 했던 현실이었다. (만일 카드론이 가능했다면 분명 카드대출에 손 댔겠지.) 이후 나는 미친 듯이 사교육 아르바이트를 했고, 친구의 빚을 다 갚고 나서야 빚이 주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혐오했던 ‘나’ : ‘나는 페미니스트야’ VS ‘나는 뚱뚱해서 안돼’
복학 후, 여자동기들 사이에선 “단란주점에서 방학 때만 ‘빡세게’ 뛰어도 학비가 모인다는 데..명문대 여대생들도 많이 한다는데…진짜일까? 얼마를 버는 걸까?”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대출에 호되게 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수 초간 ‘진짜로 주2회에 몇 백 만원이 모이나? 과외보다 훨씬 나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말도 안 돼. 난 뚱뚱하고 못 생겼으니 애초에 단란주점은 말이 안되지. 과외나 해야지’라며 자조했다.
그 순간, 폭풍처럼 자괴감이 밀려왔다. 입으로는 성 매매 남성들의 가부장성/비인간성을 떠들면서, 나조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내가 정말 페미니스트 맞나? 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순간의 상상으로 시작된 자기혐오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혐오의 대상은 주점조차 갈 수 없다고 내 외모를 셀프-비하하는 ‘나’로, 그러면서도 이번 학기 학비를 또 빌리고 있는 ‘나’로 반복되었다. 졸업 후 나는 취업 전선에 나섰고, 이 기억을 꽁꽁 봉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면접 통과할 외모’ 강박에 시달리며 다이어트를 했고, 쌍커풀 수술도 했다. 나에게 ‘남성에게 매력 어필할 수 없는 몸’이란 곧 ‘취업에 불리한 면접 불합격용 몸’이었기에 또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룸에서 [성 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에 대한 포럼을 한다고 했을 때, 순간 기억 저 편에 묻어 두었던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꾸물꾸물한 느낌이 엄습했지만, 13개월 아이를 안고 무작정 포럼 참가를 강행했다. 더 이상 그 때의 무력함을 방치해 두면 안될 것 같았기에.

뜨거웠던 포럼현장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공모1 : 어떻게 연쇄고리를 끊어낼 것인가   
포럼은 이룸의 발제로 시작했다. 자료집에는 상당히 많은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발제문은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이 현실에서 어떻게 공모하고 있는지, 이로 인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었다.
수많은 업소 영업주들은 고리대 수준의 이자가 마치 ‘싼 금리’인 양, 이 정도 원금은 2~3개월 일하면 다 갚을 수 있는 빚인 양 소개하며 여성들을 설득한다. 성 산업 종사 여성들은 이 제안에 혹하며 더 나은 초이스를 위해, 혹은 ‘몸값 높이기’를 권하는 업소 운영진을 위해 이 수렁에 빠진다. 다수의 사례가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문제는 이것이 전형적인 불법 선불금 형태를 띄고 있어도 여성들이 악랄한 추심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문의 주장처럼 선불금을 무효화시키는 법적 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이를 활용해 여성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듯, 불법/합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성형대출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을 성 산업 내에 옭아매고 있다. 이제는 현재의 법제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규제와 개입으로 성형 대출을 몰아내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이룸의 문제의식에 적극 동의하며, 지지를 표한다. 여성 전용 대출과 성형의 실상이 대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성형 대출 철폐 운동은 (지금은 비록 ‘과제 세우기’ 단계라 해도) 여성 운동 진영에 작지 않은 의의를 차지할 것이다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공모2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이 ‘공모’를 공고히 하고 있는가
두 번째와 세 번째 토론은 이룸의 문제의식과 함께 하면서 또 다른 각도에서 성형 대출 철폐 운동의 당위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세 번째 패널은 오늘날 여성들이 어떻게 ‘신용 시스템’과 ‘부채 경제’ 속으로 대거 편입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성 산업과 금융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패널이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의 “끝판왕” 자리에 국가와 신자유주의(오늘날 자본주의)가 있음을 나지막이 폭로하고 있다고 여겼다.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포섭하는 과정이 곧 여성을 저렴하게 착취 시스템으로 포섭하는 작업이었음은, 지난 수 십 년의 역사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누리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각종 자유는 어떠한가? ‘성 노동’(성 판매)/미용성형/대출을 선택하는 것은 진정으로 ‘여성 자유’의 확대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反여성주의의 합작품인가? 분명 둘 다 존재하겠지만, 토론문은 후자를 절대 ‘자유의 확대’란 명목으로 포장해선 안 됨을 나직하게, 그러나 뼈 있는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성 산업/미용성형/여성 전용 대출의 확대는 결코 여성 선택지의 확대가 아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착취/여성에게 강제되는 ‘몸 규범’/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본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각종 서비스/비정규 노동이 ‘여성 전용’ 영역으로 할애되어 있다. 이는 매우 값 싼 노동이고, 심지어 가사/육아는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도 못 받는다. 여성들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남성과 똑같이 교육 받고, 경쟁하고, 때로는 (결혼 시장에서 나은 남자를 간택함으로써) 계층상승을 꿈 꾸지만, 이 극심한 경쟁을 뚫는 ‘예쁘고, 똑똑한’ 여성은 극소수다.
성 산업/대부업/성형 산업 간 유착은 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성 산업의 수렁으로 등 떠밀면서, 모든 건 여성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미용성형은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주기는커녕 각종 부작용과 의료사고, 중독, 성형대출에 노출시킨다. 이 뼈 속까지 反여성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억압 망이 너무나 촘촘해서 숨 쉬기 괴로울 정도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다 : 성형대출 철폐 운동은 ‘나’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억압 망을 뚫고, 과연 나는 선언만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예전에는 내가 내 삶을 잘 성찰하면 해방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정말 나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이후 만난 사회는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임에도 여전히 나는 취업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계속된 서류/면접 낙방을 맛 보며 불안해했다. 적은 너무나 거대하고 유리 천장은 공고한데, 그 안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요’라고 선언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취업 이후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이룸에 매월 후원금을 이체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나는 점점 사회와 타협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결국 나를 억누르는 것들과 행동으로 맞서야 한다는 걸. 내가 받은 억압이 내 딸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성형 대출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은 이룸의 과제, 성 판매 여성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나’를 위한 과제이다. 이제는 유령 이루머 생활을 청산하고 투쟁할 때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불타오르는 전의(?)와 현실의 괴리에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액션은 분명히 있다. 내가 나가는 촛불 집회에서 성형 대출의 폐해를 발언해 볼 수도 있겠다. 강남이 너무 멀면, 서면이나 삼산에서라도 뻥이요 과자를 돌려 보는 거다. 민우회에서 소개했던 ‘성형스파이’ 활동은 발상 자체가 굉장히 신선했다. 만일 그런 활동을 많은 여성 동지들과 함께 한다면 분명 즐거울 일일 것이다.
방학이 되면 단란주점을 향했던 그녀들, 당장의 선불금으로 성형수술을 하며 초이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제 칼 끝을 성 구매자/대부업자/브로커를 향해 겨누자. 국가에 요구하고, 운동을 만들어내자. 촛불 시위를 하자. 뒤엎자.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하자.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 착취를 중단하라!
여성을 이용해 돈 버는 성 산업 철폐하라!
대출 받지 않아도 여성의 주거안정,의료,생활안정 보장하라!
성산업-대부업-성형산업의 공모를 끊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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