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좌 : 퀴어+성매매 후속모임 성매매 세미나, 차차의 후기

소심한 아해의 세미나 스케치
 

2013 이룸의 절대강좌 <퀴어+성매매> 후~ 첫 세미나가 드디어 열리었습니다!
절대강좌와 관련한 소수자 성매매 문헌을 읽는 두 달 여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죠~.
 
첫 번째 세미나에서는 다음의 세 개의 텍스트를 보기로 하였어요.
 
원미혜, ‘성판매 여성’ 섹슈얼리티의 공간적 수행과 정체성의 (재)구성
원미혜, 여성의 성 위계와 ‘창녀’낙인 : 교차적 작용을 중심으로
이현재, 성적타자가 인정되는 도시공간을 위한 시론-매춘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발제문을 읽으며, ‘여성이라는 타자와 성판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격한 토론을 진행하였지요.
맹목적으로 강의나 토론내용을 적는 버리고 싶은 강박적 습관을 가진 저였기에 이렇게 후기도 쓰게 되었는데요.
빼곡하게 적인 종이를 보니 대략 이런 내용들이 있네용.
 
성판매 여성 전반에 대한 낙인이 다양한 차별과 억압의 문제와 연결, 성판매 업종 내부의 위계와 낙인 존재,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저항하는 가능성(노동조합이 있는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
세 개의 텍스트가 성판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등등.

 
으음. 좀 와 닿지 않네용. (거칠고 산만하지만) 원미혜씨의 텍스트 발제를 마치고 나눈 이야기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차례로 ‘조각조각’ 남겨봅니당.
 
– ‘창녀’ 낙인의 작용은 성판매 업종 내부에도 작동하는데 가령 룸사롱에서 집결지로 이동하기는 해도 집
결지에서 룸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집결지에서 일한 경험이 극비가 된다.
이는 자신의 혹은 특정 업종 내부의 노동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창녀’낙인은 여성 내부에서 낙인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래서 오히려 젠더 역할을 적극 수행하기도 하며, 낙인찍힌 정체성과 거리를 느끼게 한다.
또 한편으로 성판매 여성 스스로 ‘창녀’가 아니라 노동자 혹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점은 낙인을 부정한다기보다
낙인의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 성판매 여성의 나이에 따라 자원이 달라지고 낙인이 쌓여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체감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이에 따라 성판매 여성이(사실은 누구나 그렇다!) 맞서는 현실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 낙인은 다양한 범주와의 관계 속에서 시대에 따라 재구성되는데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현대에서는 능력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전에 예수가 죄없는 사람은 성판매 여성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한 말을 지금 한다면?
‘노력해서 능력 있으면 여성이 대통령되는 시대인데’ 라며 돌을 던질 것 같다.
(이 비유가 섬뜩하게 다가왔는데요, 과연 나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닷.)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반면,
(여성의 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애화/상품화되는 현실과 능력위주의 사회에서)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강화될 수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섹스화된 몸>과 게하드 폴크의 를 보고
고민을 더 활활 불타오르게 하고픈 각자의 욕구를 확인하였지만,
게하드 폴크의 원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구글 번역기를 어떻게 돌리면 번역이 잘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등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겨버리고 말았…;
 
이어서 ‘성적타자가 인정되는 도시공간을 위한 시론’ 텍스트를 보면서
‘성판매 여성이 아닌 ‘매춘 여성’이라는 용어를 쓴 의도가 무엇인가‘,
’글에서 ‘매춘 여성’의 범주를 ‘부르주아’ 계급의 결혼 여성과 대비하여 상정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대체 누가 매춘 여성인가‘, ’가정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고 있는 성판매 여성은 이 글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성애 남성 시민은 ‘매춘 여성’을 금지했던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노골적이고 자연스럽게 욕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 스스로 자신만의 기준에서 ‘매춘 여성’을 규정하고
‘매춘 여성’의 비규범적 이성애적 성적 수행을 단순하게 칭송하는 데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글에서 남성 장애인 성구매자에 대한 성판매 여성의 자긍심을 부각시킬 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언어화될 수 있는가‘,
’인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이 텍스트 내에서 이해가능한가‘ 등 무수한 질문이 쏟아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격한 토론을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말았지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세미나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에는 ’트랜스젠더‘와 성매매와 관련한 텍스트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하였답니다.
 
이상 원하는 만큼 전달하지 못해 자괴감에 쩔고 그래서 아쉽고 뭐 그렇다는 소심한 아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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