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후기 2탄 by 소윤

 

예전부터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을 들으면 꼭 나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동안 살면서 ‘나’를 움직였던건 나 자신이 아닌 타자들, 구체적으로 나의 친구들이었는데, 이 날도 정신차려보니 친구 손에 이끌려 대방역 여성프라자에 와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 토론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화끈한 불량언니’가 만든 귀여운 수세미들이 나를 반겼다.

“도안은 됐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나는 내 맘대로. 내 맘껏 만들거야!” 화통. 화끈한 불량언니! 식당일부터 야채 판매까지 안 해 본 일 없는 거친 손으로 뭘해도 끝내주게 잘하는 재주꾼입니다.

꼼꼼하고 체계적인 토론회 자료집만큼이나 수세미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메모지에 적힌 말이 마음에 든다. 나랑 비슷하네. 나도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

토론회가 끝난 후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친구 손에 또 한번 이끌려서 소감문을 쓰게 되었다. 남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도 친구 따라서 소감문까지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정말 웃음이 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론회 들으면서 질문도 하고 필기라도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어쩔 수 없다. 기억나는대로, 내가 느낀대로, 내 맘대로 쓸 수밖에.

1. ‘임파워먼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말 걸기’의 정치학

‘반성매매운동’과 ‘성노동 담론’ 간의 긴장과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동안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접해왔던 텍스트 중엔 성노동 당사자들의 에세이나 인터뷰도 있었고, 이론적 차원에서 두 담론간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한 텍스트도 있었다. 그런데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참고문헌을 만난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최근 미투 운동이 이렇게 활발한데도 어째서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못했던 걸까’라는 질문도 생겼다. 집결지 여성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야말로 ‘안전하게 생존할 권리’, ‘여성의 안전공간 보장’이라는 반성폭력 운동의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내가 자료집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집결지 폐쇄 투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말 하기’ 자체가 굉장히 딜레마적인 조건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낙인찍히고 차별받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무엇을 주장하는 경험 자체는 특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집단을 이루어보는 경험이 여성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이 집단은 무감각하다.(자료집 36p.)”

“성매매 여성들은 재개발/폐쇄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 위기에 대해 발화할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을 겪는다. 성별화된 빈곤과 젠더폭력이 상호 교차하는 성매매의 복잡성을 담아낼, 성매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싸움 자체가 부재한다. 집결지 싸움에서 가장 쟁점이 되어야 할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일반적인 철거투쟁, 시민권투쟁의 언어로 표상될 수 없다. 다른 언어가 절실하다.(자료집 37p.)”

여성주의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핵심은 미투 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결지 여성들을 둘러싼 조건은 “위기에 대해 발화할 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이 되는 것이다. 집결지를 폐쇄하면, 자립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 당장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철거투쟁의 언어로 집결지 폐쇄 반대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 역시 사라져 버린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 뿐만 아니라 반성매매 인권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료집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그래, 집결지 폐쇄해야지. 그런데 집결지 폐쇄하면 여성들은 어떻게하지?”라는 질문은 집결지라는 공간 자체가 얼마나 모순이 팽배한 공간인지 보여준다. 집결지는 성매매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공간이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이 머무르고 구체적인 생활을 하는 거주 공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집결지를 계속 옮기며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거주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자발적 조직화를 실천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렇게 자발적 조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집결지 폐쇄 반대가 운동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집결지 이외의 장소”에서 살아갈 권리를 말하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임파워먼트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 가능성을 신박진영 선생님의 발표내용에서 참고하고 싶다. “여기서 계속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성매매 여성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은 종종 ‘왜 여성들이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개입하냐’는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이 자꾸만 (외부에서) ‘개입’을 하니까 성매매 여성들 내부에서 ‘자율성’과 ‘자발성’에 기반한 실천이 안 되는거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검토한 딜레마적 상황(발화할 수록 고립되는 이중적 억압)을 고려했을때 ‘자율성’과 ‘자발성’의 이름으로 ‘스스로 말하기’가 가능할때까지 개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말 걸기”를 (제3자, 혹은 외부인의) ‘개입’으로 부를게 아니라 “말 걸기”를 통해서 ‘말하기-듣기-다시 말하기’라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정치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 걸기에 동참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2.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화 기획과 여성의 몸

청량리 집결지 폐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 또한 토론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이었다. 성매매여성들과 업주의 관계 뿐 아니라 구청 공무원들, 구청장, 경찰 그리고 용역깡패들까지 이 사건의 이해관계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결지 폐쇄와 관련하여 ‘연대’를 하기 위해 투쟁에 함께하겠다던 조직, 단체들과의 이해관계 역시 결코 균질적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료집에 첨부되어있는 타임라인이 매우 복잡하게 느껴졌다. 집결지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가 폭발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잠시 고민해보니 집결지가 ‘도시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집결지가 완벽히 폐쇄되고 그때까지 남은 여성이 전부 전업한다 한들 그 과정이 도시를 더욱 자본주의적, 가부장적으로 재편하는데 기여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촘촘하게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도시만이 남는다. 성매매로 이윤을 축적해온 세력은 정작 더 거대해지고 교묘해지는 악순환이다.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 역사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성산업이 빈곤하고 취약한 여성들의 생존에 유일한 ‘안전망’으로 승승장구 하는 것에 개입할 수 없다.(자료집, 39쪽)”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울은 ‘고속성장’의 상징이었으며,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자리였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청계천 상인들을 몰아내고 청계천 복원을 강행했던 역사와 공권력을 투입해서 용산 철거민들을 제압했음에도 화재참사에 책임지지 않았던 역사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깨끗한 도시, 관리된 도시를 만들어 온 폭력의 역사에는 언제나 ‘격리와 배제’가 핵심적인 통제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원된 공무원, 경찰, 업주, 용역깡패들이 이런 폭력적인 세계를 만들어온 공모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성구매 남성들을 비롯한 공모자들에게 ‘집결지’라는 공간은 ‘(남성들간의 이익을 교환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이들이 도시에서 내몰린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김주희(2015)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와 금융화 과정에 주목해서 “‘부채 관계(debt nexus)’라는 분석틀”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몸이 어떻게 “담보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성산업’이 하나의 거대한 수익상품 구조로 자리잡고 “성매매 여성들의 채권을 담보로 거대한 규모의 대출이 일어나는 것은 여성의 몸을 합법적으로 담보화(securitization)하며 수익을 달성하는 금융경제적 실천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즉, “금융화된 경제에서의 ‘신용의 민주화’ 이면에는 대출 시장의 말단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몸과 삶을 이윤의 원천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금융적 실천, 즉 ‘담보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http://dspace.ewha.ac.kr/handle/2015.oak/213117)

 

3. 나이, 질병 그리고 빈곤 – 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

사실 여성주의를 공부할 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지점 중 하나가 여성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가정하고 말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즉, 여성으로서 겪게되는 경험은 결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성들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이 어떤 위계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스젠더-이성애자-비장애인 여성의 경험이 결코 여성들 ‘보편’의 경험이라거나 여성들을 ‘대표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을 읽어낼때도 그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서로 다른 위치들이 어떻게 상호교차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를 들으며 내가 가장 관심가졌던 변수들은 나이와 질병 그리고 빈곤이었는데, 성매매 여성들 중 특히나 질병에 취약하고 나이가 많은 빈곤한 여성들의 삶은 성노동 담론에서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주로 속해 있고 활동하는 공간은 캠퍼스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젊은 20대 중심의 대학생들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들이 더 익숙했었던 걸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서울에 있고, 청량리 집결지도 서울에 있는데 각자가 속해 있는 위치성에 따라 삶의 조건이 너무나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입장이 더 올바른가’의 문제라기보단,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일반화’해서 대변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입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들과의 차이와 결코 동일해질 수 없는 이질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끝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나에게 익숙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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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참여자 후기 1탄 by 현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과거 영국의 지주들이 경작지에서 농민을 몰아내고 양을 기른 것을 빗대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면, 한국에서는 재개발이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극소수의 지주와 투기자본만이 이득을 보고 대부분의 주민과 세입자는 삶의 공간을 잃은 채 이전만 못한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 현실의 재개발이다.

 

집결지 재개발, 그리고 생존권

 

국가의 묵인과 암묵적인 관리 속에 만들어진 성산업 집결지 역시 이런 재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량리 뿐만 아니라 미아리, 이태원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런 집결지 재개발 현장에서는 어제까지 성산업을 운영하던 포주가 어느 순간 철거민이 되어 성판매 여성의 생존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다른 포주는 성판매 여성들에게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몰아낸다.

 

피아의 구분이 없는 지난한 싸움 중에 성판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미처 건설업자로 탈바꿈하지 못한 성산업의 착취자들은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새 업소를 차린다. 여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빈곤과 폭력은 새로운 건물과 각종 개발에 묻혀 비가시화된다. 자본과 권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의 재생산에 비해 피착취자들의 저항은 힘에 부치기만 하다.

 

대구 자갈마당과 제2, 3의 청량리

 

실제로 모든 것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집결지의 여성과 공간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는 퇴거와 철거를 막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적 변화와 개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대구 자갈마당의 자활사업 조례 역시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라는, 어찌 보면 비어있고 별 힘이 없어 보이는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그 공간에서 억압받고 착취받은 이들의 기억과 삶, 역사 그 자체다. 성판매 여성으로 자갈마당에서 삶을 살아가게 한 이 사회와 구조를 지켜봐온 피억압자의 기억이 역으로 그들의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개입을 가능케 했다.

 

물론 청량리와 자갈마당은 다르다. 공무원과 지역 조폭이자 포주가 합심하여 수십억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기소까지 된 것이 청량리 재개발이었다. 제2, 제3의 청량리가 될 서울 내 집결지 역시 각기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실에서 집결지 폐쇄 또는 성매매 합법화 같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재개발에 대한 접근만으로 또는 성산업에 대한 판단만으로 집결지 재개발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룸의 딜레마, 자본주의의 딜레마

 

집결지 재개발에 대한 이룸의 딜레마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면서도 억압과 불평등에 고통받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딜레마와 닮아 있다. 특히 상품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삶의 포기와 맞닿아 있는 사회에서 상품되기 말기와 같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이 강제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하듯이 집결지 재개발과 성산업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명료히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토론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 이름이 토론회가 아닐 지라도 대부업과 성형대출의 연결고리를 폭로했던 것처럼 성산업의 문제와 재개발의 문제가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짧은 토론회 시간 동안 방대한 고민을 정리해서 발제하신 별님과 복잡다단한 내용들을 함께 정리하느라 고생하신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움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이 가는 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듣는 이가 책임을 나눠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활동력이 부족한 회원이라 매번 토론회에만 참석하게 되는 것 같지만 덕분에 항상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게 된다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후기 아닌 후기를 마무리한다.

 

 

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자료집 및 속기록(2018.04.12)

발간물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가 열립니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대응이 한텀 마무리된 현재, 당시에는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현장을 복원, 고발, 정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현장을 가로질러 놓여있었던 성매매, 재개발, 여성운동과 정책, 집결지 업주/조폭들의 움직임과 같은 맥락들을 흝어 보고, 이룸이 대응 과정에서의 안고 있었던 딜레마, 고민, 제안을 구체화하여 다른 현장에서 다른 고민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와 또 토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잔뜩 만나고 싶어요.  많이 신청해 주세요.

 

[발제]
이룸의 현장활동으로 녹여내는 청량리 집결지 청량리4구역 재개발/폐쇄에 대한 질문들
_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토론]
1) 대구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한 여성/지역 운동의 경험에서 길어내 보는, 집결지 공간 안팎 여성주의 활동의 고민과 모색
_신박진영(대구여성인권센터)

 

2)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활동과 청량리 집결지, 어떻게 연결하여 볼 수 있을까?
_박은선(리슨투더시티)

 

 

일시  2018.4.12. 19:00-21:00

장소  서울여성플라자 4층 아트컬리지 2관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54길 18, 대방역 3번 출구)

신청  https://goo.gl/forms/ZvooJkbPtQiuFTYB3

 

 

 

문의)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이룸
02-953-6280 eloom2003@naver.com

활동

2018.3.15 청량리 집결지 라운딩 + 기록화 회의 with 역사문제연구소

2018.3. 15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라운딩 + 기록화 회의 with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자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자들과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라운딩에 다녀왔습니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 하였고, 한동안 먹먹한 기분을 추스리지 못하였습니다. 이 정도의 규모일지 몰랐다,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할수 있는지 의문이 들만큼 청량리 집결지는 큰 블럭의 타운 면적으로 거대합니다.

이곳이 돈이 될 때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아무말이 없다가, 롯데의 자본이 들어선다고 하니 철거하는 이 현실과 남성들의 욕망의 현장을 날것으로 마주하고나니, 이 기분을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리방과 쪽방 모두 이제 업소의 모습은 볼수 없습니다. 철거 공사는 시작되었고 예전의 흔적은 찾을수가 없습니다. 정말 몇달 후면 이곳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테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현장을 직접 보고 나니 청량리 집결지를 기록하는 것이 정말로 큰 의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활동

[활동한꼭지] 영화 <공동정범> 그리고 청량리 반상회 –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함께 있는 곳

한국도시연구소,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 초청 공동정범 상영회와 GV를 다녀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뒀던 글을 씁니다.
공동정범 꼭 보세요! (관객 1인의 입소문)
이룸의 청량리 반상회 응원해주세요.

_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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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의 시간

 

작년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이 한창이었을때 gate 22의 이태원 상영회에 갔던적이 있었고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찾아갔다. 내가 이 공간을 둘러싼 상황을 단편적이고 납작한 몇개의 말들 외에는 이해할 역량이 없다고 느꼈다. 매일 상황은, 사건은, 장소는 쏟아져들어오는데 나는 터져나가고 넘치고 우그러졌다. 목격자라는 역할, 활동가라는 위치는 나에게 어떤 책무를 주었지만 그걸 수행할 나라는 자리는 계속해서 좁아지는 핀조명 같았고 나는 한발로 서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내 발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 있는 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목격자의 윤리에 관해서 였다. 이태원의 세 여성들을 보듯, 평택의 마마상과, 그리고 청량리의 우리들. 김일란 감독님은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들을 다 겪고 나서 버티고 나서 질문들을. 질문을 부르는 질문들을. “마음을 앞지르지 않”아 시간이 필요한.

 

졸업전 학교에서 몸담았던 공간을 잃고 뒤이어 리모델링이 시작되었고 거칠게 페인트로 그림이 그려져있던 갈라진 나무문은 유리문으로 교체되었다. 여닫이였나 미닫이였나 아니면 자동문이었는지.. 그 문의 소거는 그 시기 우리들에게 퇴거를 선언하는 확실한 증거였다. 오래되고 낡았기에 바뀌어야한다. 낡고 오래되어 불이 잘 붙는 물질들 틈에서 조심조심 살아서는 안된다. 불이 난다면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에 가로막혀 제때 도착하지 못할것이다. 안전 미관 편리성 우리는 그런 가치들이 우리를 소거한다는 듯 더욱 엉망으로 살아져야 했다. 더 얼기 쉬운 곳으로 물이 배어나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청량리에서 작년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파쇄된 종이위의 글자들처럼 잘게 나뉘어 의미를 표면에 고정시킬수 없는 말로 되어갔다. 철거가 진행중인 청량리를 배회하는 일을 했다.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마지막 물품을 전해주려고. 마지막 남은 유리방 맞은편 마지막으로 고립된 여성들이 거주하는 달방 모텔에서 타로로 점을 쳤다. 카드위에 각자가 어디로 가게될지 적혀있었을까.

 

 

증언의 모순, 모순의 증언

 

그 시기 이룸은 갈등을 겪었고 소진이 왔다. 다 타고 남은 잿불로 움직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공간의 사람들 – 쪽방 여성들과 제주 먼 섬의 바다에 갔다. 바닷가의 그림같이 잔디밭이 깔리고 흔들그네가 있는 숙소에서 십년전 청량리의 사진들과 그날 우리의 얼굴들을 찍은 사진들을 같이 펼쳐놓고 기억을 얘기했다.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듯. 우리는 그 모진 곳에서 살아남았고 이렇게 만났다고 기억을 얘기했다. 아이를 낳았었고 늙었다고. 숲이 된 남일당 터의 운명과 청량리 588의 운명은 고층 타워팰리스를 향해 간다. 빈 땅을 차지하며 쇠락하는 것들. 철거와 강제퇴거 이후의 폐허, 그곳을 저도 압니다. 저도 그곳에 살았어요. 살고 걸었어요. 네개의 큰 지류로 나뉘는 길, 넷째 골목 초입의 유리방과 그 다음 길로 연결되는 여관골목, 그 입구에 서있던 큰 나무와 고양이, 택시로 메워져있는 두번째 길과, 청과시장 옆의 붉고 컴컴한 불빛, 굴다리를 끼고 올라가면 만나는 쪽방 언니들의 믹스커피. 좋은일 하느라 수고가 많네요 하는 인사.

 

현장활동가들에게 청량리 집결지 공간은 그리움이나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우리는 수렁에 빠진다. 고립된다. 여성들을 동원하는 철거투쟁에 각을 세우며 빈민/철거민/노동자화의 남성중심성에 반대했고 바뀌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들만이 피해를 보게 되는 재개발과 폐쇄 정책에 반대했기에 이룸은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했고 할수 있는 일을 했고 청량리 반상회라는 소규모의 쪽방 여성 그룹만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의 장소는 이곳이다. 우리가 겪은 일로 우리는 국가에 의한 폭력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밀하게 알게되었고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곳, 벌어질 곳에서 함께할수 있다는 바람을 가진다. 우리가 수렁으로 빠지는것은 그 감정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망루위의 감정들이 산란하듯 그 화염 이후의 감정이 화염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집결지라는 트라우마의 공간을 상실하며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절대적 빈곤의 불안을 어떻게 묘사할수 있는가. 사고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트라우마는 상실될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건 그런 이상한 주장이야? 그렇지 않다. 삶의 관점에서, 공간과 인권의 관점에서, 모순되는것은 다른 문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여성들이 집결지에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함께 할수 없었고 그런 운동은 없다고 여겼다. 공간의 관성이었을뿐. 그러나 여성들이 대책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단속의 형태로 이뤄지는 퇴거 – 퇴거로 완성되는 단속을 증오했다.

 

그러므로 딜레마, 모순을 드러내는 것까지. 그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순에 집요하다. 우리는 증언의 모순이 아닌 모순의 증언으로 다음의 폭력을, 재난을 다른 방식으로 견딜 것이다. 폭력의 핵심으로 더 뚫고 들어갈 것이다.

 

ⓒ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활동

다큐 <이태원>을 함께 보았습니다 & 청량리 집결지 반상회 사진전

지난 2017년 12월 20일에 이룸과 강유가람 감독이 함께 주최한 영화 ‘이태원’ 상영회가 이룸의 이웃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있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이태원과 청량리에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도 있었는데요, 영화 시작 전에 마련된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감독x활동가와의 대화시간도 30분을 훌쩍 넘겼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진지한 눈빛과 질문으로 하나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상영을 먼저 제안해주신 강유가람 감독님께 깊이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룸 활동가의 영화 이태원을 보고 드는 생각과 고민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영화 이태원을 보고.

 

작성 : 성지윤(기용)

 

청량리588과 후커힐은

나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70대시라는 얘길 들었고 나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물었다. 그분은 아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키언니를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보면서도 그전에 다른 분께 아는척 한게 괜히 머쓱해졌다. 난 너무 전형적인 70대 노인을 생각한거다. 영화에도 나오는, 공들여 손질한 앞머리와 쏟아질 것같이 빽빽한 속눈썹, 열손가락 파란 매니큐어까지. 청량리 언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키 언니가 워낙에 특별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괜히 ‘역시 이태원인가!’ 그랬다. 칙칙한 청량리와는 다르게 힙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이룸에서 처음 이태원 아웃리치를 가던 날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후커힐을 나와서 화려한 불빛을 보자 괜히 기분이 흥청망청해지는 것이 왠지 술을 마셔야할 것만 같은.

 

다양한 성매매 업종에 따른 여성들 사이에 선긋기, 혹은 위계가 존재한다. 룸살롱 여성들은 집결지 여성들에 대해 ‘거긴 진짜 막장’이라거나 반대로 집결지 여성들은 룸살롱 여성들에게 ‘나는 깔끔하게 연애만 하지 지저분하게 술 먹는 거 안 한다’라는 식이다. 이것의 이태원 버전이 ‘나는 드런 한국 놈들 상대 안 한다’ ‘미국은 한번 가봐야한다’일테다.

 

청량리588은 성매매를하는 것이 확실한 곳이고 이태원은 노골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분위기가 된다. 이태원이 덜 성매매적인 곳이라는 듯, 청량리의 청소년통행금지 푯말은 24시간인데 이태원의 통행금지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다. 이태원에 처음에 콘돔을 갖고 들어갔을 때, 마치 콘돔을 보며 키득거리는 중학생처럼 ‘어머 콘돔이야~’ 라며 웃으시는 통에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주냐는 거다.

 

청량리든 이태원이든 집결지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일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말 말 그대로 그 곳에 일하는 공간인 가게에서 숙식까지 모두 해결하거나 매우 가까운 곳에 주거를 두고 있다. 사는 동네와 직장이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것은 분명 특별한 상황이다. 집에서 자고 나와서 일하는 내내 가게에 있다가 지척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고. 멀리 나가는 일 없이 안에서만 맴맴 도는 까닭에 여성들에게 이 동네가 주는 의미가 훨씬 더 특별해진다. ‘가정 동네’가 아닌, 일반적이지 않은 동네 안에서 살면서 ‘이태원이라면 택시기사도 드러운 소리만 하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척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입구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착취를 견뎌야하는 곳이다. 이룸이 이태원 아웃리치를 3년째 나가면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여성이 있어도 가서도 여성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사장의 눈치와 다른 아가씨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처음 상담이 연결될 때 절대 이태원 와서도 아는 척 하지 말 것을 몇 번이나 당부한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연결된 여성들의 많은 수가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다. 그녀들의 일과 이 높은 유병률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부동산을 가진 자와 아닌 자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부적절하게도 ‘역시 한국에서는 집을 사야하나..’라는 생각을 한건 나뿐이었나. 나는 세 여성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삼숙은 ‘웨이츄레스’가 아닌 사장님이고, ‘내가 양갈보가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만 외로울 뿐, 가게를 사두었던 덕에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인터뷰의 배경이 되는 그녀들이 살고 있는 집은 각자의 경제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 정부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기지촌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한 바 있다. 미군들에게 ‘깨끗한’ 여성들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성병검진을 실시했고 여성들에게는 당신들이 외화벌이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대해 나키언니는 ‘엉덩이 국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또한 그 동안 당신이 이 나라에 외화를 벌어다 준 공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받는 복지 지원에 대해서도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다양한 이방인들이 드나드는, 왠지 좀 무섭고 위험한 우범지역이던 이태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그 다양성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 되었고 그 매력은 예술가들, 트렌디한 가게들을 끌어들였다. ‘나키’가 낮게 읊조렸듯 이미 이태원은 땅이 꺼질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리고 영화 속 젊은 예술가들은 이 동네가 더 유명해지질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 안 된다는 소문이 돈다고, 재개발되면 갈데없는 못 사는 사람은 어딜 가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그녀의 바람이고 당위일 뿐 개발은 사람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할 뿐이다.

 

청량리도 그랬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헐린다는 소문만 있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지만 어느 순간 정말로 다 헐려지는 때가 왔다. 업주들은 보상금의 액수를 두고 서로 싸우고 등을 돌렸고 여성들은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되는 상황을 하루하루 버텼다. 아마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의 문제일 뿐 갈 곳도 없는데 밀려나야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그 고민의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인지 ‘영화’님은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인터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순자 언니는 인터뷰가 끝나고 ‘그거 들춰보면 쓸만한 게 없을거다’라면서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다 하셨다. 언니의 낮은 한탄에 내가 좋은 대답을 찾지 못했던 그 순간이,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혹시 ‘영화’님도 순자언니와 비슷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태원에 사는 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참 놀랐던 것이 모자이크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참 소중한 이 영화를 탄생하게 해준, 영화에 출연할 용기를 내준 여성 세분께 감사드린다.

활동

2017년 12월 청량리 밤 아웃리치

2017년 12월 청량리 밤 아웃리치

여전히 남아있는 공간, 달라진 풍경…

어느 순간부터 청량리 아웃리치를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황량함이다. 마치 이 곳은 유령도시같다. 서울 한복판 이리 넓은 땅 안에 거짓말처럼 으스스한 죽은 공간이 있다니, 참 이질적인 기분이다. 골목골목을 지날 때마다 으스스함이 퍼진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느낄수 없다.

여전히 두세 가게 문이 열려져 있다. 단속에 걸릴까봐 문을 닫아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서로 안부를 튼 집은 문을 두드리고 직접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게에 잇는 여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수가 없다. 닫혀진 문틈 사이로 물품을 놓아 두고 돌아서면서 우리가 왔다 간 이 흔적이 언젠가 연결 끈이 되면 좋겠다고 바란다.

활동

2017년 11월 27일 청량리 아웃리치 후기

* 11월 청량리 아웃리치에는 인근 주민이시기도 한 예지님이 동행해주셨고 후기도 남겨주셨어요. 고맙습니다:) 

11.27 청량리 아웃리치 후기
– 이예지

청량리는 제게 ‘일상적인 공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곳, 옷을 사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동네, 학교 마치면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 모두 저의 일상의 빈 틈을 메워주고 있습니다. 아마 제게도 그런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삶을 살고,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공간이겠죠? 청량리에서 쇼핑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제가 처음 청량리에 왔을 때 느꼈던 것은 청량리는 다른 상업시설들과 섞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고립된 공간같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집결지 자체가 비일상적이고 평범하지 않다는걸 보여주려는 듯 했습니다. 남성들에게 있어서 청량리는 언제나 마음 먹으면 성구매를 하러 들어올 수 있는 공간. 동네 사람들 모두 청량리 집결지가 어떤 곳인지 알지만 또 집결지 성판매 여성들과 함께 청량리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긍정하지는 않는 공간.

하지만 한국 성매매 시장은 2010년 기준으로 추정 7조나 되는데 어째서 성매매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특별하고 ‘루저’ 남성들만 하는 행위로 여겨지는 것인지, 집결지의 여성들은 아주 특수한 존재로 불리는 지, 성을 판다고 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건지, 대체 한국 영화시장보다 훨씬 큰 7조 가까이 되는 수익을 창출하는 이 공간은 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영화보다 더 비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걸까요.

이루머분들과 함께 청량리 아웃리치를 나가면서 재개발되고 있는 집결지를 응시한다는 것이 어떤걸까 생각해본 것 같아요. 남성 중심 개발자본의 시각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밀려나고 무너지는 집결지와 집결지에 있는 여성을,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게 어떤 의미인걸까요.

적어도 제게 아웃리치는 남성이 집결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행위입니다. 성구매자 남성만 진입할 수 있는 공간에 성구매에 반대하는 우리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규범을 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은 꼭 섹스를 해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는 정당하다는 어떤 (우리에게는 정말 말도 안되지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논리와 규범에 도전하고 부수고, 기존의 관점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 걸음 중 하나가 아웃리치 아닐까요!

우리가 집결지나 곳곳에 있는 성매매 업소들을 응시하고, 응시하면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비일상적으로 여겨졌던 남성들의 성구매에 대해서 “성구매는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고 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근래의 청량리 집결지는 재개발으로 인한 건물 철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웃리치 이후에도 들렀던 청량리 집결지는 여인숙이 부서지고 있었고 펨프 이모들이 항의를 하고 있었어요. 자본과 국가가 기획한 성매매 집결지라는 공간을 또 자본과 국가가 무너트린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활동이야기

2017년 10월 24일 수원시 집결지 조례 제정 반대 한터 집회 참석 후기

한터 집회 후기_별

 

지난 10월 24일 광화문에서 열린 성매매 집결지 업주/여종사자 모임 한터 집회에 참석했다. 수원시에서 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날에 맞추어 집회가 열렸다. 청량리에서 수원으로 이동한 여성의 말에 따르면 불참시 벌금 30만원을 내야 하고 영업정지를 먹기 때문에 왔다고 했다. 최근 통과된 성북구 미아리 집결지 조례 제정 이전의 토론회에도 어김없이 한터가 와 있었다. 업주들이 토론장 문 앞까지 아가씨로 일하는 여성들과 동행을 하였고 끝나고서는 바로 인솔하여 갔다.

 

이 집회에서는 평소처럼 ‘성노동자 인정’ ‘여성가족부/여성단체 폐지’ ‘성매매 특별법 폐지’ 등의 구호가 제창되었고 특별법으로 인하여 일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한터 집회라고 해서 업주들이 나와서 요새 장사하기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터 대표가 발언하는 것 외에는 여종사자 대표가 전면에 나서며, 착석한 여성들로부터 발언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한터 집회에서 가시화되는 것은 아가씨들의 생존 보장에 대한 목소리이다. 한터의 홈페이지에는 종사자들의 복지에 대한 청사진이 걸려있다. 한터의 전신인 ‘무의탁여성상담소’ 때부터 이들은 자원없는 여성들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이러한 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대구 자갈마당 집결지 앞에는 노숙인 급식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들의 인권과 무관하게 집결지의 지속이든 재개발 이후 보상이든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한다. 청량리 재개발 철거 투쟁 과정에서 업주들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고 여성단체에 문의를 하여 아가씨들의 생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책이 없다는 말을 들었음을 내세우기 위하여, 그리하여 집결지가 존재할수 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기 위하여 대책을 요구했을 뿐이다. 업주들은 이때도 예전에도 최소한의 상담소, 쉼터 등의 존재가 여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았고 개인정보 유출 등 잘못된 소문을 퍼트렸으며 아웃리치 홍보물을 받는 경우 그 가게나 아가씨에게 패널티를 주는 등 종사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막았다. 왜? 그 결과 지금도 여성들은 여성단체에 업소에서 겪은 폭행 등의 사건에 대한 간단한 법률상담 전화를 거는 것조차 주저한다. 대구 집결지의 경우 지난 여름부터 매월 7~9명의 여성들이 조례 대상자로 선정되어 지원금 집행이 시행되자 업주들이 대상자가 오래전에 일을 그만둔 여성이라며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지원금의 실질적인 집행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터는 본부가 있던 청량리였음에도 집결지가 사라져 얻게 되는 재개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 아무런 소란을 일으키지 않은채 가볍게 철수했다. 반대로 한터에 가입되어 있지 않던 집결지들은 조례제정 등이 공론화 되면 한터 회장에게 발언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고 집결지 폐쇄 문제를 성매매 특별법 하나로 뭉뚱그려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이번 집회에서도 여종사자 대표는 우리는 일하는게 힘들며 노동자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이야기는 업주-자본가들이 만든 판의 승인을 받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집결지의 지속이라는 허용된 목적 하에서 말해질 때만 가능했다.

 

재개발에 따른 집결지 폐쇄의 과정에서 여성, 지역 등의 운동단체들은 재개발이 집결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온 여성들에게 미치는 타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한정된 예산과 지역 사회의 성매매에 대한 편견 속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시도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형화된 한터 방식의 집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터 집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개발 투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생존의 목소리를 그녀들을 착취해온 특정 이익집단의 필요를 위하여 전유하면서 전면화된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그 안에서 살고 또 일해온 여성들의 삶에서 당장 시급하게 필요하며 가능한 대안들이 무엇이 있는지 논의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권적인 결론이라고 믿게 만든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에서 박경신 교수가 발언을 하였다. 박경신 교수는 지난 2015년 성매매 특별법 21조 1항 위헌제청 공개변론에서 위헌측 입장으로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였던 사람이다. 당시 위헌 측 참고인 의견은 박경신 교수의 노르딕 모델에 대한 주장,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 식의 집결지 합법화에 대한 주장 등 완전히 상반된 의견이 뒤섞여 있었고 위헌 측 변호인은 성적자기결정권에 의한 위헌 논리를 주장하면서도 이것이 구매자나 알선자 합법화 주장과는 다르다는 위선적인 주장을 했었다. 이러한 복잡한 맥락 속에서 위헌측 입장에 동조할 수 없었던 여성단체들은 성판매여성 비범죄화를 포함한 개정법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집회 자리에서 박경신 교수는, 성평등과 성차별의 견지에서 성노동은 합법화 되어야 하며 동성애와 간통과 마찬가지로 형법으로 성매매를 다스리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발언했다. 성만큼 노동도 특별하며, 성은 금전에 의해 매개되어서는 안되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교수인 자신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우리는 단순히 성이 신성하다거나, 돈을 받고 성이 거래된다거나, 성이 상품화된다는 몇 가지 명제로만 집결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성매매가 왜, 어떻게 문제적인지, 일제시대 유곽이 도입된 이래 집결지에서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얘기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자리에서, 이러한 배치 속에서 이러한 내용으로 발언을 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 성매매 집결지 현장에서 복잡하게 엮어있는 이해관계와 역동이 어떻게 여성의 삶에서의 불평등과 차별을 공고하게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무지이다. 무엇보다 위헌제청에서 한 그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성산업은 다변화되고 성산업에 대한 담론 역시 다변화되며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성매매 집결지라는 장소와 집결지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풀리지 않은 숙제와 같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듯 하다. 박경신 교수의 발언에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이룸에서 청량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 갑갑함을 털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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