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후기 3탄 by 장유경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후기 3탄

by 장유경

 

12일 이룸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나는 정보의 홍수가 터져 나오는 걸 목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재개발로 인해 청량리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문제인지,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청량리 집결지 안으로 들어가 재개발을 지켜보아 온 이룸은 토론회에서 이때까지 일어났던 상황들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나는 토론회 날 처음으로 청량리 재개발을 성매매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쓴 이야기로써 접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는 5분가량 다루던 얘기는 알고 보니 2시간을 채워도 모자란 얘기였다.

재개발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끊임없이 이용당하고 무시당해왔는데, 여성들의 주변에는 재개발이라는 주제로 복잡하게 얽힌 포주, 조합, 정부가 있었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토론회에서 설명을 들었어도 나중에 다시 책을 읽어봐야 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얼마나 갈피를 잡기가 어렵고 절망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당장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성매매란 일상이고 삶을 꾸리는 큰 비중이라서 쉽게 탈업하기도, 그렇다고 계속 착취당하며 이어가기도 어려운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알아서 싸워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합법화”를 외치는 것은 성매매 착취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토론회에 참석하기 전까지, 성매매가 불법인 이유는 사회가 성매매를 안 좋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성매매 합법화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토론회를 통해 경찰이 포주를 단속하는 것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제공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 처한 상황과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인권이 짓밟히는 것을 경험하는 여성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며 ‘성매매’ 자체가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합법이 되면 여성들이 성매매를 탈업하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 것을 깨우치면서 ‘합법화’가 무조건적인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토론회를 통해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내가 정말 성매매 여성들의 얘기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인권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토론회를 듣고 나자,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일은 음지에서 흔히 있는 일, 누군가 선택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치부될 일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일인 것이다.

 

토론회 자료집 & 속기록 보러가기

토론회 후기 1탄 by 현우 보러가기

토론회 후기 2탄 by 소윤 보러가기

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후기 2탄 by 소윤

 

예전부터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을 들으면 꼭 나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동안 살면서 ‘나’를 움직였던건 나 자신이 아닌 타자들, 구체적으로 나의 친구들이었는데, 이 날도 정신차려보니 친구 손에 이끌려 대방역 여성프라자에 와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 토론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화끈한 불량언니’가 만든 귀여운 수세미들이 나를 반겼다.

“도안은 됐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나는 내 맘대로. 내 맘껏 만들거야!” 화통. 화끈한 불량언니! 식당일부터 야채 판매까지 안 해 본 일 없는 거친 손으로 뭘해도 끝내주게 잘하는 재주꾼입니다.

꼼꼼하고 체계적인 토론회 자료집만큼이나 수세미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메모지에 적힌 말이 마음에 든다. 나랑 비슷하네. 나도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

토론회가 끝난 후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친구 손에 또 한번 이끌려서 소감문을 쓰게 되었다. 남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도 친구 따라서 소감문까지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정말 웃음이 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론회 들으면서 질문도 하고 필기라도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어쩔 수 없다. 기억나는대로, 내가 느낀대로, 내 맘대로 쓸 수밖에.

1. ‘임파워먼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말 걸기’의 정치학

‘반성매매운동’과 ‘성노동 담론’ 간의 긴장과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동안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접해왔던 텍스트 중엔 성노동 당사자들의 에세이나 인터뷰도 있었고, 이론적 차원에서 두 담론간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한 텍스트도 있었다. 그런데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참고문헌을 만난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최근 미투 운동이 이렇게 활발한데도 어째서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못했던 걸까’라는 질문도 생겼다. 집결지 여성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야말로 ‘안전하게 생존할 권리’, ‘여성의 안전공간 보장’이라는 반성폭력 운동의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내가 자료집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집결지 폐쇄 투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말 하기’ 자체가 굉장히 딜레마적인 조건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낙인찍히고 차별받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무엇을 주장하는 경험 자체는 특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집단을 이루어보는 경험이 여성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이 집단은 무감각하다.(자료집 36p.)”

“성매매 여성들은 재개발/폐쇄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 위기에 대해 발화할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을 겪는다. 성별화된 빈곤과 젠더폭력이 상호 교차하는 성매매의 복잡성을 담아낼, 성매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싸움 자체가 부재한다. 집결지 싸움에서 가장 쟁점이 되어야 할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일반적인 철거투쟁, 시민권투쟁의 언어로 표상될 수 없다. 다른 언어가 절실하다.(자료집 37p.)”

여성주의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핵심은 미투 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결지 여성들을 둘러싼 조건은 “위기에 대해 발화할 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이 되는 것이다. 집결지를 폐쇄하면, 자립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 당장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철거투쟁의 언어로 집결지 폐쇄 반대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 역시 사라져 버린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 뿐만 아니라 반성매매 인권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료집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그래, 집결지 폐쇄해야지. 그런데 집결지 폐쇄하면 여성들은 어떻게하지?”라는 질문은 집결지라는 공간 자체가 얼마나 모순이 팽배한 공간인지 보여준다. 집결지는 성매매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공간이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이 머무르고 구체적인 생활을 하는 거주 공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집결지를 계속 옮기며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거주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자발적 조직화를 실천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렇게 자발적 조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집결지 폐쇄 반대가 운동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집결지 이외의 장소”에서 살아갈 권리를 말하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임파워먼트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 가능성을 신박진영 선생님의 발표내용에서 참고하고 싶다. “여기서 계속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성매매 여성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은 종종 ‘왜 여성들이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개입하냐’는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이 자꾸만 (외부에서) ‘개입’을 하니까 성매매 여성들 내부에서 ‘자율성’과 ‘자발성’에 기반한 실천이 안 되는거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검토한 딜레마적 상황(발화할 수록 고립되는 이중적 억압)을 고려했을때 ‘자율성’과 ‘자발성’의 이름으로 ‘스스로 말하기’가 가능할때까지 개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말 걸기”를 (제3자, 혹은 외부인의) ‘개입’으로 부를게 아니라 “말 걸기”를 통해서 ‘말하기-듣기-다시 말하기’라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정치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 걸기에 동참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2.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화 기획과 여성의 몸

청량리 집결지 폐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 또한 토론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이었다. 성매매여성들과 업주의 관계 뿐 아니라 구청 공무원들, 구청장, 경찰 그리고 용역깡패들까지 이 사건의 이해관계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결지 폐쇄와 관련하여 ‘연대’를 하기 위해 투쟁에 함께하겠다던 조직, 단체들과의 이해관계 역시 결코 균질적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료집에 첨부되어있는 타임라인이 매우 복잡하게 느껴졌다. 집결지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가 폭발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잠시 고민해보니 집결지가 ‘도시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집결지가 완벽히 폐쇄되고 그때까지 남은 여성이 전부 전업한다 한들 그 과정이 도시를 더욱 자본주의적, 가부장적으로 재편하는데 기여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촘촘하게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도시만이 남는다. 성매매로 이윤을 축적해온 세력은 정작 더 거대해지고 교묘해지는 악순환이다.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 역사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성산업이 빈곤하고 취약한 여성들의 생존에 유일한 ‘안전망’으로 승승장구 하는 것에 개입할 수 없다.(자료집, 39쪽)”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울은 ‘고속성장’의 상징이었으며,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자리였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청계천 상인들을 몰아내고 청계천 복원을 강행했던 역사와 공권력을 투입해서 용산 철거민들을 제압했음에도 화재참사에 책임지지 않았던 역사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깨끗한 도시, 관리된 도시를 만들어 온 폭력의 역사에는 언제나 ‘격리와 배제’가 핵심적인 통제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원된 공무원, 경찰, 업주, 용역깡패들이 이런 폭력적인 세계를 만들어온 공모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성구매 남성들을 비롯한 공모자들에게 ‘집결지’라는 공간은 ‘(남성들간의 이익을 교환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이들이 도시에서 내몰린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김주희(2015)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와 금융화 과정에 주목해서 “‘부채 관계(debt nexus)’라는 분석틀”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몸이 어떻게 “담보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성산업’이 하나의 거대한 수익상품 구조로 자리잡고 “성매매 여성들의 채권을 담보로 거대한 규모의 대출이 일어나는 것은 여성의 몸을 합법적으로 담보화(securitization)하며 수익을 달성하는 금융경제적 실천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즉, “금융화된 경제에서의 ‘신용의 민주화’ 이면에는 대출 시장의 말단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몸과 삶을 이윤의 원천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금융적 실천, 즉 ‘담보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http://dspace.ewha.ac.kr/handle/2015.oak/213117)

 

3. 나이, 질병 그리고 빈곤 – 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

사실 여성주의를 공부할 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지점 중 하나가 여성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가정하고 말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즉, 여성으로서 겪게되는 경험은 결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성들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이 어떤 위계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스젠더-이성애자-비장애인 여성의 경험이 결코 여성들 ‘보편’의 경험이라거나 여성들을 ‘대표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을 읽어낼때도 그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서로 다른 위치들이 어떻게 상호교차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를 들으며 내가 가장 관심가졌던 변수들은 나이와 질병 그리고 빈곤이었는데, 성매매 여성들 중 특히나 질병에 취약하고 나이가 많은 빈곤한 여성들의 삶은 성노동 담론에서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주로 속해 있고 활동하는 공간은 캠퍼스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젊은 20대 중심의 대학생들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들이 더 익숙했었던 걸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서울에 있고, 청량리 집결지도 서울에 있는데 각자가 속해 있는 위치성에 따라 삶의 조건이 너무나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입장이 더 올바른가’의 문제라기보단,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일반화’해서 대변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입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들과의 차이와 결코 동일해질 수 없는 이질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끝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나에게 익숙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다.

 

토론회 후기 1탄 by 현우 보러가기

토론회 자료집 & 속기록 보러가기

 

 

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참여자 후기 1탄 by 현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과거 영국의 지주들이 경작지에서 농민을 몰아내고 양을 기른 것을 빗대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면, 한국에서는 재개발이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극소수의 지주와 투기자본만이 이득을 보고 대부분의 주민과 세입자는 삶의 공간을 잃은 채 이전만 못한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 현실의 재개발이다.

 

집결지 재개발, 그리고 생존권

 

국가의 묵인과 암묵적인 관리 속에 만들어진 성산업 집결지 역시 이런 재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량리 뿐만 아니라 미아리, 이태원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런 집결지 재개발 현장에서는 어제까지 성산업을 운영하던 포주가 어느 순간 철거민이 되어 성판매 여성의 생존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다른 포주는 성판매 여성들에게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몰아낸다.

 

피아의 구분이 없는 지난한 싸움 중에 성판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미처 건설업자로 탈바꿈하지 못한 성산업의 착취자들은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새 업소를 차린다. 여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빈곤과 폭력은 새로운 건물과 각종 개발에 묻혀 비가시화된다. 자본과 권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의 재생산에 비해 피착취자들의 저항은 힘에 부치기만 하다.

 

대구 자갈마당과 제2, 3의 청량리

 

실제로 모든 것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집결지의 여성과 공간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는 퇴거와 철거를 막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적 변화와 개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대구 자갈마당의 자활사업 조례 역시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라는, 어찌 보면 비어있고 별 힘이 없어 보이는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그 공간에서 억압받고 착취받은 이들의 기억과 삶, 역사 그 자체다. 성판매 여성으로 자갈마당에서 삶을 살아가게 한 이 사회와 구조를 지켜봐온 피억압자의 기억이 역으로 그들의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개입을 가능케 했다.

 

물론 청량리와 자갈마당은 다르다. 공무원과 지역 조폭이자 포주가 합심하여 수십억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기소까지 된 것이 청량리 재개발이었다. 제2, 제3의 청량리가 될 서울 내 집결지 역시 각기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실에서 집결지 폐쇄 또는 성매매 합법화 같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재개발에 대한 접근만으로 또는 성산업에 대한 판단만으로 집결지 재개발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룸의 딜레마, 자본주의의 딜레마

 

집결지 재개발에 대한 이룸의 딜레마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면서도 억압과 불평등에 고통받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딜레마와 닮아 있다. 특히 상품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삶의 포기와 맞닿아 있는 사회에서 상품되기 말기와 같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이 강제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하듯이 집결지 재개발과 성산업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명료히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토론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 이름이 토론회가 아닐 지라도 대부업과 성형대출의 연결고리를 폭로했던 것처럼 성산업의 문제와 재개발의 문제가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짧은 토론회 시간 동안 방대한 고민을 정리해서 발제하신 별님과 복잡다단한 내용들을 함께 정리하느라 고생하신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움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이 가는 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듣는 이가 책임을 나눠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활동력이 부족한 회원이라 매번 토론회에만 참석하게 되는 것 같지만 덕분에 항상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게 된다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후기 아닌 후기를 마무리한다.

 

 

활동이야기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가 열립니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대응이 한텀 마무리된 현재, 당시에는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현장을 복원, 고발, 정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현장을 가로질러 놓여있었던 성매매, 재개발, 여성운동과 정책, 집결지 업주/조폭들의 움직임과 같은 맥락들을 흝어 보고, 이룸이 대응 과정에서의 안고 있었던 딜레마, 고민, 제안을 구체화하여 다른 현장에서 다른 고민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와 또 토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잔뜩 만나고 싶어요.  많이 신청해 주세요.

 

[발제]
이룸의 현장활동으로 녹여내는 청량리 집결지 청량리4구역 재개발/폐쇄에 대한 질문들
_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토론]
1) 대구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한 여성/지역 운동의 경험에서 길어내 보는, 집결지 공간 안팎 여성주의 활동의 고민과 모색
_신박진영(대구여성인권센터)

 

2)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활동과 청량리 집결지, 어떻게 연결하여 볼 수 있을까?
_박은선(리슨투더시티)

 

 

일시  2018.4.12. 19:00-21:00

장소  서울여성플라자 4층 아트컬리지 2관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54길 18, 대방역 3번 출구)

신청  https://goo.gl/forms/ZvooJkbPtQiuFTYB3

 

 

 

문의)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이룸
02-953-6280 eloom2003@naver.com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