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박혜정

 
 
낙인, 낙인, 낙인…
성매매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논거 중 하나가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앰네스티 또한 낙인(stigma)을 성판매자 인권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논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사회적 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다. 앰네스티는 이 두 가지 원인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성판매자가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여겨지다 보니 처벌이나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고 한다. 나는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주장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낙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인식이다. 앰네스티는 어떠한 사회적 성규범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앰네스티의 전체 주장과 논리를 놓고 추측할 수밖에 없겠다. 내 생각엔, 앰네스티가 말하는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란 ‘섹스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것’, ‘성판매는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앰네스티가 성구매, 성매매 알선을 포함한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성적 규범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중적•성차별적인 성규범인데,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은 이를 강화시키는 행위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낙인’ 말고, 성판매자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는 낙인과 편견을 생각해보자. 성판매 여성들이 흔히 마주하는 낙인과 편견은 ‘섹스를 밝히는 문란한 여자’, ‘돈만 주면 몸을 허용하는 쉬운 여자’, ‘결혼•연애 등의 관계적 바탕 없이 불특정 다수의 남자와 섹스하는 더러운 여자’ 등이다. 이러한 편견은 그 반대편에 있는, ‘대상이 아닌 행위자로서의,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남성’, ‘다수의 대상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능력있는 남성’이라는 남성 일반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관되어 서로를 뒷받침한다. 즉, 남성은 자신의 왕성한 성욕을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 성욕의 수동적인 대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성규범이다. 이러한 이중적 성규범은 적극적인 성적 존재로서의 남성이 성적 욕구를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성판매 여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성판매자의 절대다수가 여성(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이며 성구매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성판매 여성은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므로 낙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한 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성규범’에 의한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성에 관한 이중 관념을 뒤엎는 인식과 제도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앰네스티가 정말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싶다면, 역으로 남성이 여성을 성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여성이 남성을 성구매하는 것만 비범죄화하고 적극 장려하자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앰네스티가 성규범을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과 연관지어 파악하면서 엉뚱하게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을 비범죄화하자는 결론을 내는 걸 보면,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성규범은 성매매 여성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낙인과는 좀 다른 성규범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앰네스티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이 성규범이 사실은 ‘성은 사고 팔아선 안된다’는 몰성적인, 단순하고 얕은 수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앰네스티가 낙인의 제거를 위해 성매매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싶다면, 기존 성규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과연 성매매 비범죄화가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 및 낙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포르노그래피 산업을 놓고 생각해보자. 미국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포르노그래피를 생산, 배포하는 것이 합법이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에 출연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및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편견과 낙인은 단순히 불법/합법이라는 형사적 제재의 이분법으로 인해 생산 또는 감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편견과 낙인은 유형•무형의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발생하고 유지된다.

 

포주의 언어와 닮은 앰네스티의 논리

낙인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누가 그 낙인을 살찌우고 있으며 낙인은 누구에게 이롭게 작용하느냐이다. 앰네스티는 낙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노동은 일반적으로 고도로 낙인화된 행위이며, 성노동자들은 국가와 비국가적 행위자들에 의한 편견과 차별을 일상적으로 마주한다. 성노동자들은 종종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비판받으며, 그 결과 처벌과 비난, 또는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노동의 범죄화는 성노동자들에게 범죄자적 지위를 부과하며, 이는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따라다닐 수 있다. 이는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을 확인시키고 강화시키는데, 이는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을 하면서 스스로 위험과 처벌, 비난을 불러들인다고 보는 것이다. 역으로, 성노동자들은 또한 그들을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도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노동자들을 피해자로, 심리적으로 손상된 개인으로 정형화시키는 것은 해롭고 성노동자들의 역량을 떨어뜨리게 되며, 이는 근거가 없는 정형화이다."
 

앰네스티는 성판매 여성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편견이 성판매자에게 해롭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예전에 성판매 여성들을 위한 지원 홍보물을 만들면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지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여성들이 상담소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성판매 여성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성판매 여성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성매매 업주와 관리자들로부터 “여성단체 사람들은 너희를 사람으로 안 보고 업신여긴다. 그 사람들이 널 도와줄 것 같애?”라는 말을 평소에 들었다고 대답했다. 외부 정보로부터 고립되고 바깥 인간관계도 상당부분 끊긴 성판매 여성들은 ‘바깥 세상’과 ‘여성단체 사람들’을 포주들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정말 생사가 오가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상담소에 상담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할 때, 이들을 무조건 피해자로 보거나 심리적으로 손상된 자들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상담원과 활동가들이 지원 과정에서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지원 여부와 범위, 개입 정도를 정한다. 
 
이처럼 낙인은 성판매 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낙인은 성산업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성노동자를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편견은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상당 부분 부풀려져서) 성산업을 유지시키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유포시키는 거짓 신화이다. 앰네스티의 언어가 ‘포주의 언어’와 닮아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여러 곳 있는데, 낙인에 대한 부분 역시 그러하다(어떤 부분들은 포주들이 평소에 떠드는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앰네스티는, 성판매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에 대해 (포주들이 유포하는) 잘못된 편견을 긍정함으로써 강화시키고 있다. 이제 의문이 풀린다. 앰네스티가 낙인을 그렇게 문제시하면서도 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 말고는 뚜렷이 이야기하는 게 없고 낙인의 원인이 되는 성규범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않는지를. 앰네스티는 사실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는 데 별 관심이 없고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를 위해 낙인 제거를 ‘구실’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논의는 정책안에 붙어있는 ‘국제 앰네스티 연구 결과 요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논리의 비약이 한층 심한데, 왜냐하면 인종주의와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으로 인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든 예로,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성판매 이민자 여성이 길거리 사람들로부터 “니네 원숭이들한테로 돌아가라”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민자이자 성판매자인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 그 모욕 안에 인종주의와 성매매 낙인이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강화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멋대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니, 앰네스티가 바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진실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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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e-loom.org/?p=861
2편 https://e-loom.org/?p=864
 

논평성명서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두 번째

  •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두 번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박혜정
     

     

    앰네스티에게서 성판매자의 인권을 위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
     
    성매매에 관련한 앰네스티의 정책안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사람들 너무 순진하네’라고 생각했다. 성판매의 비범죄화를 성매매 문제 해결의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판매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판매자의 인권이 높아지고 이들에 대한 낙인은 줄어들며 이들에 대한 성구매자들의 폭력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매매 문제가 이렇게 간단하면 정말 좋겠구만. 그러나 정책안을 다 읽고 나서는, 이번 정책안이 앰네스티가 순진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기 위해 성판매자의 인권 보호를 앞에 내세우고 있음이 분명히 보였다. 
     
     
    이번 정책안에 드러난, 성매매에 관한 앰네스티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18세 이상의 개인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성판매를 한다면 인신매매가 아니며, 어떤 사회적 억압 하에서도 개인에게는 여전히 선택 능력이 남아 있다. 성판매자가 성을 팔겠다고 결정했을 경우 사회는 이를 존중하여야 하며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② 성매매의 비범죄화와 합법화는 다르다. 합법화할 경우 그에 따라 각종 규제들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규제들은 결국 상황에 따라 성판매자들을 처벌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합법화가 아닌 비범죄화를 해야 한다. 
    ③ 성판매자를 처벌하면 성판매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화된다. 그러므로 낙인의 제거를 위해 성판매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④ 성구매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성구매자를 처벌하면 성구매자들이 처벌을 피해 개인 영역에서 성구매를 하려하고, 그러면 성판매자가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아진다. 
    ⑤ 성매매 알선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성판매자가 직접 알선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⑥ 각 국가는 누구도 성매매를 강요당하지 않도록, 성판매자가 성매매를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성판매자들이 건강과 주거, 교육, 사회보장 등의 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각종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만들 것인지는 각 국가가 알아서 해라.)
     
    많은 사람들이 앰네스티의 ‘의도’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앰네스티가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며 제일 앞에 내세우는 것이 성판매자의 인권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람들은 성판매자의 인권을 위한다는 진심이 있고 의도도 좋은데 잘 몰라서, 또는 성노동론 진영의 자료만 접하게 되어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게 된 것일까? 난 그렇게 믿어줄 정도로 순진하거나 무지하지 않다. 이들은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기 위해 자료들을 편향적으로 선택했고, 인용했다. 
     
    예를 들면 7쪽의 용어 설명 부분에서, 성노동(sex work)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노동이란 상업적 성행위에 연루된 성노동자가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한 경우(즉,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를 의미하며, 이 점이 인신매매와 다른 점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 정의를 유엔의 HIV/에이즈 프로그램에 관한 가이드북에서 가져왔다고 하고 있다(각주 9). 유엔은 이미 2000년에 만든 의정서에서 인신매매의 정의에서 인신매매적 수단이 사용된 경우 ‘피해자의 동의는 무관하다’라고 하였다. 게다가 이 의정서의 이름은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에 관한 인신매매의 방지와 억제, 처벌에 관한 유엔 의정서」이다. 인신매매에 관한 유엔의 대표적인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앰네스티는 이 의정서를 인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문서에서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넓혀 놓았고, 피해자의 동의가 인신매매 여부 판단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앰네스티는 유엔의 에이즈 관련 프로그램에서 성노동 개념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유엔의 에이즈 관련 프로그램의 가이드북 어디에서도 당사자의 동의가 있으면 인신매매가 아니라는 언급은 없다. 이 정책안의 각주에 언급된 참고 자료들을 보면 대부분 성매매 문제를 ‘성노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연구물들이며, 성착취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연구물은 거의 없다. 
     
    또한 앰네스티가 성판매자의 인권과 안전을 그렇게도 염려한다면, 성판매자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앰네스티가 제시하는 정책은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8쪽에서 성노동에의 유입에 관해 앰네스티가 각 국에 제안하는 것들을 보자.
     
    성노동으로의 유입에 관해, 각 국가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 국제적인 인권법 상의 의무와 연동하여, 누구도 강제로 성노동에 유입되지 않도록 하며 강제로 유입된 자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과 법, 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하라.
    ․ 소외된 개인과 집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역량 강화하고 개인적 행위성을 존중하며 인권의 실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을 하고 고용과 교육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라.
    ․ 성노동 영역에서 흔히 드러나는 소외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차별(고용에서의 차별을 포함)을 근절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다하라.
    ․ 관련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함에 있어서 성노동자들(여러 형태의 차별을 경험하는 자들을 포함)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조언을 얻으라.
     

    이 네 가지 권장사항을 읽으면, 성노동의 유입과 관련해 각 국가가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시는가? 네 번째 사항을 빼면 도대체 뭘 하라는 소리인지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온통 ‘효과적인’, ‘적절한’, ‘모든 필요한 조치’와 같이 모호하면서 아름다운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적절하며 무엇이 필요한 조치인지는 니네가 알아서 찾아내라는 것이다. 
     
    사실 앰네스티가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정책은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뿐이다. 자,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나가는지 한 번 10쪽을 들여다보자.
     
    성노동의 범죄화에 의한 인권 침해에 대응해, 각 국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 상호 동의하에 성적 서비스와 보수를 교환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처벌하는 법을 폐지하고, 이러한 법을 도입하지 않도록 하라.
    ․ 성노동의 운영적 측면에 관한 형법적 금지는 (권위의 남용을 통해 성판매를 강요하는 등의) 명확히 성판매 강요로 읽혀질 수 있는 행위에 연루된 자들로 제한하라.
    ․ 성노동에 국한된 법 뿐 아니라 노숙, 공공장소 소란행위, 이민 등에 관련된 다른 법에서 사실상 성노동 또는 성노동자를 범죄시하여 차별적으로 시행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성노동자들이 법 제도 하에서 동등한 보호를 받고 노동과 건강, 안전 등의 다른 법 적용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라.
     

    자, 차이가 느껴지시는가? 성판매자의 인권 보호와 관련해서는 ‘효과적인’, ‘필요한’ 등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모호하게만 표현하며 두루뭉실 넘어갔는데, 성매매의 비범죄화 관련해서는 굉장히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비범죄화의 영역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으며(성구매, 성매매업소 운영 등까지 비범죄화해야 한다), 성매매 관련법 뿐 아니라 다른 법들에서도 성매매를 범죄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구체적인 예까지 들고 있다. 이 정책안에서 앰네스티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며, 사실 구체적인 주장은 이 부분밖에 없다. 앰네스티의 의도가 그리 착하거나 순진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모든 규제는 위험하다. 그러므로 다 없애자?

    앰네스티는 성매매의 비범죄화와 관련해서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처벌과 규제를 꺼리는 입장이다. 심지어는 성구매와 성매매업소 운영에 대해서도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역시 성판매자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서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앰네스티가 이번 정책과 관련하여 발표한 Q&A에 잘 나타나 있다. 노르딕 모델이라 불리는, 성판매자만 비범죄화하고 성구매자 및 알선자를 처벌하는 모델에 대해 앰네스티는 이 같은 제도가 성판매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이들을 착취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가령 성구매자가 경찰에 적발될 것을 두려워해 성판매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오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그러면 성판매자가 위험에 처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성매매 알선을 범죄시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성매매 업소 운영’이나 ‘홍보’를 처벌할 경우 성판매자들까지 범죄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란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성판매자가 함께 일할 경우 ‘성매매업소’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까지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과감한 의견 치고는 근거가 빈약하다. 앰네스티가 오로지 드는 근거는 이러한 처벌과 규제가 성판매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성판매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아마도 유일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를 처벌하지 말자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와일드한 결론으로 껑충 뛰어버릴 수가 있지? 머리가 띵하다. 그래도 뭔가 더 근거를 갖고 있겠지 기대하며 앰네스티가 정책안 뒤에 덧붙여 놓은 「국제앰네스티 연구 결과 요약」을 읽어 보았다. 여기서는 더 가관이다.
     
    여기서는 연구의 핵심 결론으로 성매매의 범죄화가 위험한 이유 네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이유를 보자. 여기서는 “성노동자들은 다양한 성노동 관련법에 의해 처벌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데, 여기에는 성판매와 직접 관련된 법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즉, 성판매를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법 뿐 아니라, 성판매와 관련된 다양한 행위(예를 들어 호객), 성구매, 성판매 홍보, 성매매업소 운영 등을 규제하는 법에 의해서도 성판매자가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에서는 거리 성매매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공공 장소에서 드러내놓고 성판매 또는 성구매를 제안하는 것은 처벌된다고 한다. 홍콩에서도 성판매 행위는 불법이 아니지만 호객 행위는 처벌 대상이며, 혼자 일하지 않고 두 명 이상의 성판매자가 함께 일하면 ‘부도덕 업소’로 간주되어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앰네스티는 성판매 뿐 아니라 호객, 성매매 업소 운영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서도 비범죄화해야 성판매자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성매매와 관련한 거의 모든 규제를 풀자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앰네스티가 모든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명백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각 국가가 자국 상황에 맞도록 규제를 만들어야 하며, 그러나 그 규제들은 성판매자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말씀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러나 앰네스티는 분명히, 성판매자가 처벌되거나 그들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위해가 되는 규제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 규제는 그것이 성구매에 대한 것이든, 성매매 업소 운영이나 성매매 알선(포주 행위)에 대한 것이든 나쁜 규제이며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거리에서의 성매매 호객까지 처벌해선 안된다고 하니, 앰네스티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할 ‘성매매 규제’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성매매에 관한 모든 규제가 풀리면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 돈으로 섹스를 사는 것도 합법이고 성매매업소 운영과 홍보도 합법이며, 어느 장소에서든 성매매 호객을 하는 것도 합법이라면 말이다. 상상은 각자에게 맡기고 싶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논평성명서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박혜정

 

지난 8월 11일, 국제앰네스티는 국제대의원총회에서 성노동에 대한 정책안 통과를 의결했다. 기사를 통해서 접한 앰네스티의 결정은, 성노동을 비범죄화하는 것이 성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존의 성노동론자들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성노동의 비범죄화를 성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제일 시급한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앰네스티의 결정이 어딘지 석연치 않아 보였고, 그래서 7월에 앰네스티에서 발표한 구체적인 정책안을 읽어보게 되었다. 영어로 된 15장의 긴 문서라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정신건강의 유지를 위하여, 업무 시간 외에는 성매매에 대해 읽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열심히 피하는 나로서는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앰네스티 문서를 읽는다는 것이 엄청난 개인적 결의와 희생을 요하는 일이었다. 사실, 끝까지 읽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한 두 장 읽다보니 이들의 무지와 편파성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머어머!”를 연발하며, 볼펜으로 좍좍 분노의 밑줄칠을 해가며 읽은 이 문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요즘 한창 논의되고 있는 성노동의 합법화/비범죄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솔직하게는, 앰네스티같이 큰 국제인권단체도 자기네 편파적인 생각을 당당히 발표하는데, 성매매를 매일 접하는 내가 성매매에 대한 내 주관적인 생각을 드러내지 못할 건 뭐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성매매 현장에서 성판매자들을 만나 지원해 온 활동가로서의 내가 내 경험과 지식에 국한하여 앰네스티의 이번 정책안을 논평한 글이다. 앞으로 3-4회 분량에 걸쳐 앰네스티 정책안을 내 마음대로 부분 인용하며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볼 참이다. 앰네스티의 정책안이 왜 편파적인지도 차근차근 풀어갈 생각이다.

 


해로움 완화의 원칙
 

이 정책안의 도입부(introduction)에서 앰네스티는 이 정책이 ‘해로움 완화(harm reduction)’의 원칙과 신체적 통합과 자율성이라는 인권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글로 조사해보니, ‘해로움 완화’는 본래 약물 중독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안된 공공 건강 전략이다. 이 원칙에 따라, 사회에서 약물 남용 문제가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불법적인 약물 소비를 없애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관점은 십대 임신 문제나 성병 관리 문제에도 도입되어, 십대들에게 섹스를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임신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성병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성관계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홍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앰네스티가 ‘해로움 완화’ 원칙을 어떻게 성매매 문제에 적용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해로움 완화’의 본래 의미와 앰네스티 정책안의 전체적인 골자를 고려해서 추측하면, 성매매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여 성매매를 근절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성매매로 인한 많은 해로움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성매매로 인한 해로움 중 무엇을 해결이 시급한, 보다 중한 해로움으로 볼 것인지는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병 확산을, 다른 누구는 성판매자들의 높은 자살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앰네스티는 성매매에서 어떤 해로움이 중요한 해로움이라고 볼까? 이 정책안을 다 읽고 나서의 나의 결론은, 앰네스티에서 중하게 여기는 성매매의 해로움은 ‘성판매자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 모든 악의 근원이다. 성판매자들이 단속과 처벌을 당하니까 성구매자로부터 폭력을 당하게 되고, 성판매자들이 단속과 처벌을 당하니까 알선자들로부터 착취당하며, 성판매자들이 단속과 처벌을 당하니까 성판매자들에 대한 낙인도 생기며, 심지어는 사회의 인종차별주의까지 강화시킨다. 음. 꽤 단순한 논리이다. 세상 만사가 이렇게 단순하면 참 좋겠다.

 

성판매자의 연령에 따른 인권 침해 여부
 

‘용어 정의’에서, 앰네스티는 성적 서비스와 돈, 또는 재화를 교환하는 18세 이상의 성인을 성 노동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각주를 보면,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은 ‘아동(child)’이다. 도입 부분에서도 이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는데, 앰네스티는 “상업적인 성행위에 관여된 아동들은 심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로 본다고 한다. 앰네스티의 논리에 따르면 17세 여성이 성을 판매하면 심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이지만, 18세 생일날부터는 성을 팔아도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다. 누가 강요하지 않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18세 생일 이전에는 ‘자발적으로’ 성을 팔아도 인권 침해의 피해자인데, 똑같은 사람이 18세 생일만 지나면 성을 팔아도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천하 무적 로봇으로 갑자기 돌변한다는 것인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의 성을 구매하는 사람은 더욱 억울해해야 마땅하다.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13세가 넘는 아동과는 동의하에 성관계를 하면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14살 청소년과 합법적으로 섹스를 할 수 있는데, 그 청소년에게 돈을 주면 갑자기 인권이 유린되나? 앰네스티가 이해하는 성노동이란 도대체 어떤 노동이기에 18세 미만이 하면 인권 침해이고, 18세 이상이 하면 정상적인 노동이란 말인가?

 

 앞으로 2편에서 이어집니다…

논평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