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세미나 후기

<Paid For : My Journey Through Prostitution>
Rachel Moran, 2013

 

이룸은 작년 9월 5일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올해 5월 23일 세미나까지 이룸의 회원 안홍 님과 함께 아일랜드의 성매매경험당사자 레이첼 모란이 쓴 <페이드 포> 원서를 읽어왔습니다. 안홍 님은 호주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 한국의 성매매 피해자 지원 현장을 겪은 분이고, 현재는 독립출판사 안홍사의 대표이자 번역가세요. <페이드 포> 책을 만나고 이 책이 꼭 한국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퇴사(!) 독립출판사 설립(!) 번역(!) 작업에 몰입하신 강단 있는 분이지요. 비건 베이커 이기도 하셔서 세미나를 할 때면 피넛버터가 듬뿍 들어간 쿠키며 레몬향이 솔솔 나는 파운드케이크를, 노릇노릇하게 익은 바나나가 들어간 브레드를 구워 와주셨고 이루머들의 마음을 반짝반짝하게 해주셨습니다.

<페이드 포> 는 제목에서도 읽히시겠지만 성매매를 ‘페이강간’ 으로 규정하고 ‘노르딕 모델’ 을 강조하는 스트릭한 ‘반성매매’ 활동가의 글입니다. 레이첼 모란은 SNS에서 TERF로 비판받을 만한 발언을 한 전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안홍 그리고 이룸은 이 책을 납작하고 단편적으로 분류함에 넣어서 독서에서 배제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점의 한국 사회에 소개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를 위해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홍은 이 세미나를 ‘틈새 세미나’ 라 이름붙였고요.

이 글의 장점은 정신장애가 있는, 빈곤한 양육자와 살며 사회로부터 방임되었고 성산업에 유입된 한 여성이 여러 형태의 성매매 일과 약물중독, 본인이 양육자가 되는 경험을 거쳐 ‘정상’ 사회로 편입하는 삶 의 과정 속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되는가, 그리고 그 경험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복합적인 굴절에 부딪치는가를 함께 몸으로 통과하게 되는 독서의 경험을 준다는 점입니다. 그 서술은 늘 가부장제의 검열과 낙인 앞에 서게 되며 타협하기도 하고 기만하기도 하며 순응하거나 왜곡하기도, 주장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한 말하기가 저항인 것이겠지요. 아마 오래 침묵해온 한국 사회에게는 이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고 또 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룸의 화톡 블로그에 연재되어 이제 책으로 묶일 준비를 하고 있는 <진보적인 왕언니>,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밖에도 한국에서 성폭력/성매매 경험을 다룬 여성들의 글쓰기 작업과의 연결 속에서 읽히고 토론되며 개인의 서사가 구조를 투영함을 공적 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서사 자체, 내면 자체, 입장 자체가 구조의 영향 속에서 구조화 되어 있음을 면밀하게 보아야 할 것이고요. 여성들은 다른 시대, 다른 국가, 다른 현장, 다른 배경 속에 놓여 있고 다른 성격, 다른 자아를 갖고 있으며 서로 다른 목적과 의도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들은 존중되어야 하며 토론되어야 하고 성산업의 구체적인 분석들을 비롯 여성, 소수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국 이 책의 폭만큼만 레이첼 모란의 서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 서사를 하나의 주장으로 요약하지 않고 굽이굽이 더 펼치겠습니다(아직 충분히 결론 내릴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 역량을 ‘망설이는 용기’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서사를 계기로 삼아 성산업 현장을 이야기하려고 하며 바로 그 서사가 지니고 있는, 계속 읽도록 만드는 힘을 동력삼아 가부장적 개념이나 이분법에 멈춰 서버리는 것이 아닌 여성들이 실제 겪고 있는 상황을 성찰할 수 있는 장으로 읽는 이의, 듣는 이의 감각을 몰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마 이룸이 책과 책상 앞에서 홀로 대면하고 있을 번역자를 도와 할 수 있는 일은 이룸이 만나온 그 폭만큼의 현장으로 이 책의 폭을 넓히는 일이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호주 등 성매매/인신매매에 대한 서로 다른 법제도와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 국가들 간 여성들의 경험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국 내 국적과 배경이 다른 여성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페이드 포> 세미나 팀은 내일, 6월 5일 예정된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이제 이 책을 겨우 한 번 다 읽었습니다. 세미나때마다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며 다음시간에는 꼭 읽어오리라 다짐했지만… 안홍의 한국어 발제에 기대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세미나를 돌아보며 산발적이었던 토론을 갈무리해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고 책을 홍보하는 작업을 함께 하려고 해요. 그 과정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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