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박혜정

 
 
낙인, 낙인, 낙인…
성매매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논거 중 하나가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앰네스티 또한 낙인(stigma)을 성판매자 인권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논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사회적 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다. 앰네스티는 이 두 가지 원인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성판매자가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여겨지다 보니 처벌이나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고 한다. 나는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주장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낙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인식이다. 앰네스티는 어떠한 사회적 성규범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앰네스티의 전체 주장과 논리를 놓고 추측할 수밖에 없겠다. 내 생각엔, 앰네스티가 말하는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란 ‘섹스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것’, ‘성판매는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앰네스티가 성구매, 성매매 알선을 포함한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성적 규범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중적•성차별적인 성규범인데,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은 이를 강화시키는 행위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낙인’ 말고, 성판매자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는 낙인과 편견을 생각해보자. 성판매 여성들이 흔히 마주하는 낙인과 편견은 ‘섹스를 밝히는 문란한 여자’, ‘돈만 주면 몸을 허용하는 쉬운 여자’, ‘결혼•연애 등의 관계적 바탕 없이 불특정 다수의 남자와 섹스하는 더러운 여자’ 등이다. 이러한 편견은 그 반대편에 있는, ‘대상이 아닌 행위자로서의,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남성’, ‘다수의 대상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능력있는 남성’이라는 남성 일반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관되어 서로를 뒷받침한다. 즉, 남성은 자신의 왕성한 성욕을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 성욕의 수동적인 대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성규범이다. 이러한 이중적 성규범은 적극적인 성적 존재로서의 남성이 성적 욕구를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성판매 여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성판매자의 절대다수가 여성(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이며 성구매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성판매 여성은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므로 낙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한 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성규범’에 의한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성에 관한 이중 관념을 뒤엎는 인식과 제도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앰네스티가 정말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싶다면, 역으로 남성이 여성을 성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여성이 남성을 성구매하는 것만 비범죄화하고 적극 장려하자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앰네스티가 성규범을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과 연관지어 파악하면서 엉뚱하게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을 비범죄화하자는 결론을 내는 걸 보면,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성규범은 성매매 여성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낙인과는 좀 다른 성규범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앰네스티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이 성규범이 사실은 ‘성은 사고 팔아선 안된다’는 몰성적인, 단순하고 얕은 수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앰네스티가 낙인의 제거를 위해 성매매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싶다면, 기존 성규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과연 성매매 비범죄화가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 및 낙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포르노그래피 산업을 놓고 생각해보자. 미국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포르노그래피를 생산, 배포하는 것이 합법이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에 출연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및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편견과 낙인은 단순히 불법/합법이라는 형사적 제재의 이분법으로 인해 생산 또는 감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편견과 낙인은 유형•무형의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발생하고 유지된다.

 

포주의 언어와 닮은 앰네스티의 논리

낙인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누가 그 낙인을 살찌우고 있으며 낙인은 누구에게 이롭게 작용하느냐이다. 앰네스티는 낙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노동은 일반적으로 고도로 낙인화된 행위이며, 성노동자들은 국가와 비국가적 행위자들에 의한 편견과 차별을 일상적으로 마주한다. 성노동자들은 종종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비판받으며, 그 결과 처벌과 비난, 또는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노동의 범죄화는 성노동자들에게 범죄자적 지위를 부과하며, 이는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따라다닐 수 있다. 이는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을 확인시키고 강화시키는데, 이는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을 하면서 스스로 위험과 처벌, 비난을 불러들인다고 보는 것이다. 역으로, 성노동자들은 또한 그들을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도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노동자들을 피해자로, 심리적으로 손상된 개인으로 정형화시키는 것은 해롭고 성노동자들의 역량을 떨어뜨리게 되며, 이는 근거가 없는 정형화이다."
 

앰네스티는 성판매 여성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편견이 성판매자에게 해롭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예전에 성판매 여성들을 위한 지원 홍보물을 만들면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지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여성들이 상담소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성판매 여성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성판매 여성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성매매 업주와 관리자들로부터 “여성단체 사람들은 너희를 사람으로 안 보고 업신여긴다. 그 사람들이 널 도와줄 것 같애?”라는 말을 평소에 들었다고 대답했다. 외부 정보로부터 고립되고 바깥 인간관계도 상당부분 끊긴 성판매 여성들은 ‘바깥 세상’과 ‘여성단체 사람들’을 포주들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정말 생사가 오가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상담소에 상담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할 때, 이들을 무조건 피해자로 보거나 심리적으로 손상된 자들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상담원과 활동가들이 지원 과정에서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지원 여부와 범위, 개입 정도를 정한다. 
 
이처럼 낙인은 성판매 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낙인은 성산업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성노동자를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편견은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상당 부분 부풀려져서) 성산업을 유지시키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유포시키는 거짓 신화이다. 앰네스티의 언어가 ‘포주의 언어’와 닮아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여러 곳 있는데, 낙인에 대한 부분 역시 그러하다(어떤 부분들은 포주들이 평소에 떠드는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앰네스티는, 성판매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에 대해 (포주들이 유포하는) 잘못된 편견을 긍정함으로써 강화시키고 있다. 이제 의문이 풀린다. 앰네스티가 낙인을 그렇게 문제시하면서도 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 말고는 뚜렷이 이야기하는 게 없고 낙인의 원인이 되는 성규범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않는지를. 앰네스티는 사실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는 데 별 관심이 없고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를 위해 낙인 제거를 ‘구실’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논의는 정책안에 붙어있는 ‘국제 앰네스티 연구 결과 요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논리의 비약이 한층 심한데, 왜냐하면 인종주의와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으로 인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든 예로,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성판매 이민자 여성이 길거리 사람들로부터 “니네 원숭이들한테로 돌아가라”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민자이자 성판매자인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 그 모욕 안에 인종주의와 성매매 낙인이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강화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멋대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니, 앰네스티가 바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진실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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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e-loom.org/?p=861
2편 https://e-loom.org/?p=864
 

논평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