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3. 터울

드디어 페이드포 북토크의 마지막, 세 번째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터울님이 적어주셨어요.  맞아, 이런 얘기도 있었지! 하며 읽고

아 터울님은 이런 연결선상에서 성매매를 고민하는구나, 하며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후기를 읽으며  10월 18일 페이드 포 북토크로 잠시 이동해보아요.

<페이드포> 북토크 후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터울

 

2019년 10월 19일,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의 북토크가 개최되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인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풀어놓은 이 책은, 당사자만이 경험하고 기술할 수 있는 현장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현장 위에 도사리고 있는 성산업과 젠더 억압의 구조 양자 모두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드문 저작이다. 다만 이 책이 아일랜드의 성산업과 성매매 경험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번 북토크에서는 책의 내용과 비교하여 한국의 성산업과 성매매 관행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는지에 대해 집중했다. 패널로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과 김주희 선생님, 이루머인 별님께서 참석해주셨고, 장내는 자리를 가득 채운 청중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먼저 아일랜드와 한국 공히 별반 차이가 없다고 평가되었던 것들 중 인상깊었던 건 다음과 같았다. 성매매 여성 입장에서, 성구매자 남성들 중 성적 취향이 스스로 ‘변태적’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차라리 대하기 쉬웠고, 자신의 성욕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구매자 남성일 때 오히려 예기치 못한 다양한 폭력과 ‘변태적’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대목이다. 이것이야말로 젠더 기반 폭력(GBV)의 가해가 어떤 특수한 남성의 사례가 아니라,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제도적 남성성이 발현된 결과라는 증거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께서는, 성구매자 남성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성폭력 가해 남성의 경우에도 겉보기엔 너무나 멀쩡한, 소위 ‘일반적인’ 남성일 때가 많다고 덧붙이셨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 남성의 서사 또한, 피해자에게 딱히 해코지하려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 “남자라면 으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여겨서”라는 식이 많다. 이는 성매매를 비롯한 젠더 기반 폭력을 특수한 사례로 치부하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성욕’의 얼굴을 한 제도적 남성성에 대해 사회구성원들, 특히 남성들이 스스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물론 젠더 기반 폭력이 제도적 남성성의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과, 모든 남성들이 젠더 기반 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계급, 인종 등 모든 구조가 그렇듯이 가부장제 또한 개인의 행위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니고, 페미니즘에 대한 세간의 오해 또한 이렇게 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데서 출발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미투 운동을 겪어오면서, 모든 남성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성폭력 가해 남성만큼은, 가해가 발생한 그 순간 가부장제가 제공한 ‘일반적인 성욕’의 교범에 빙의된 ‘제도적 남성’으로 평가할 수 있고, 그의 행위가 그 자체로 범죄라는 합의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이 책은, 성구매자 (이성애)남성 또한 그 ‘제도적 남성’의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아일랜드와 한국의 사례 가운데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과 김주희 선생님께서 정리해주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양에서 구성된 남성공동체와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이 동등한 남성끼리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희화화하거나 실제로 ‘교환’하는)연대를 전제로 했다면, 한국은 여기에 미국(일본) 남성과 한국 남성의 위계가 추가되는 점이 서로 구분된다. 즉 동등한 남성이 아니라 외국 남성에게 뇌물(접대)를 주는 한국 남성의 구도가 자리잡고, 그 접대의 도구로 한국 여성들이 활동되는 방식이다. 이를 ‘식민지 남성성(colonial masculinity)’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외교매춘, 사업매춘, 기생관광으로 이어지는 밀실 성매매의 관행으로 반복되어왔고, 최근의 버닝썬 사태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재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날 북토크에는 다행히(?) 나 말고도 몇 명의 남성들이 더 있었다. 그 중에 게이인 남성은 아마도 더 드물었을 것이다. 반성매매 단체의 행사에 참석하는 게이의 입장으로서, 이런 자리에 올 때마다 느끼는 소회가 있다. 본래 이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스로 대단히 꺠어있거나 PC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게이/퀴어 커뮤니티를 직업상 바깥 세상에 설명하다보니 젠더·섹슈얼리티 체계를 다루는 페미니즘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와 이성애중심주의와 시스젠더 권력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동시에 작동하고, 최근의 퀴어·페미 관련 논쟁들은 저 구도에 대해 보다 통합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증거에 가깝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또 이 북토크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피해에 대한 공론’과 ‘프라이드’가 서로 양극단의 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전자는 여성운동, 후자는 퀴어운동의 전략으로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여성운동이 피해의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퀴어운동은 팔자가 편한 자들의 놀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운동이 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막대한 ‘피해’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동시에 여성단체들을 만난 내담자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피해’로 직면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에 경험하는 자력화를 ‘프라이드’라 부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이 책이 뜻깊었던 것은, 수많은 질곡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구조와 함께 응시해내고, 그럼으로써 이렇게 자신을 드러낼 만큼 과거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던 저자의 ‘프라이드’가 행간에 묻어났기 때문이다. 내 고통의 까닭을 알게 된 뒤에 짓는 환한 웃음과 그로부터 배어나는 한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이 날 북토크는 온 마음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존엄을 얻기 어려웠던 사람이 존엄을 되찾을 때, 인권의 원의 또한 그 자리에서 오롯해진다. 귀한 자리에 초대받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활동

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2. 제이

10월 18일 스페이스청에서 열린 [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당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는데요,

그 날의 후끈후끈 열기를 전해줄 두 번째 후기를  ‘제이’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성매매 산업을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서로 기댈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공유합니다.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참여 후기

– 제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X 김주희 X 정희진>?! 천재적 콜라보잖아, 이건 꼭 가야 해! 그렇게 병원 예약 시간까지 조정해가며 북토크 현장에 뛰어갔습니다. 역시 그런 생각을 저만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꽤 넓은 행사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의 매끄럽고 여유로운 진행으로, 이룸의 별 활동가, 연구자 김주희 선생님, 정희진 선생님이 각각 패널로서 1부에서는 책 <페이드 포>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꼽으며 이야기했고, 2부에서는 <페이드 포>가 아일랜드 성매매 현장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생각으로 넓혀가게 도와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순서무관 후기로 적어보려 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의 손아귀에 놓여있을 때, 사람들은 현실에서 비롯된 수치심과 우울증에서 기인한 수치심을 구별할 수 없다.”, “성 구매자 중에서 ‘변태’가 ‘일반적인’ 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정희진 선생님이 <페이드 포>에서 짚은 구절입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여성 및 사회적 약자들의 경험을 연결하여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성애 성기결합 섹스 자체의 폭력성과 찝찝함, 그것이 정상이 되는 세계 안에서 여성이 겪게 되는 우울, 그리고 그 우울을 둘러싼 혼란(이건 병에 의한 증상일까, 끔찍한 세상에 대한 윤리적 반응일까?)에 대한 지적에 공감했습니다.

또 성구매자들의 습성과 ‘일반 남성’들의 일상 문화와의 연결선도 부각되었는데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담론의 특성으로서 소위 ‘양남’, ‘일남’에게 굽신거리고 ‘여자’를 제공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과정,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일부 한국 남성이 구매자가 될 수 있었고 자국 남성을 타겟으로 한 성산업이 형성되었던 역사가 거론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한국 남자들이 더 ‘잘나가는’ 남자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나도 성매매할 권리(또는 나도 강간할 권리)’를 평등에 대한 요구처럼 들먹이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희진 선생님이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명명한, 외세에 억압됐고 그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고수하면서 여성 성 착취의 문제에서 자기를 쏙 빼거나 오히려 자국 여성의 위로를 정당한 자기 몫으로 요구하는 남성들. 정말이지 한심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격렬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심하고 비겁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만들 수 있을지가 개인적으로 고민입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이 거래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별성’과 ‘일시성’이라고 짚은 김주희 선생님의 말에 몇 번이고 내적 무릎을 쳤습니다(의자 구조상 실제 무릎을 치기 어려웠음). 항상 성매매라는 문제를 다룰 때 ‘남성’의 돈으로 ‘여성’의 성을 산다는 점을 차치하고 관념적 ‘성의 거래’를 중심에 두는 게 현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고 느껴왔거든요. 레이첼 모렌이 성구매자가 성매매 여성에게 통제권을 주고 복종하는 상황을 즐기는 거래에서도 권력은 전적으로 구매자에게 있음을 적은 대목을 소개하며, 김주희 선생님은 흔히 ‘여자도 호스트바에서 남자 성 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현상을 대칭적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지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성산업에서 ‘남성의 돈으로 여성을 산다’는 것의 또 다른 핵심은 남성이 비용 지불 이외의 어떠한 감정노동도, 관계적 노동도 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여성을 쓴다는 것임을 짚어주셨어요. 비용을 지불한 이는 그 ‘비인격적 관계맺기’ 자체를 구입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돈 낸 만큼을 뽑아낼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되는 게 자연스런 수순일 것입니다. 그러니 성매매 현장에서 구매자가 사람을 비인격적 존재로 ‘막 다루는 것’은 월권의 영역이 아닌 상품에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일 거 같습니다. 이 ‘막 다룸’에는 물리적이고 명시적인 폭력만 해당하지 않을 거고요.

 

이 이야기는 별 활동가님이 발언한, 성구매자가 ‘구매하고자 욕망하는 것은 섹스가 아닌 성폭력’이라는 말과 연결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는 “Paid for ______”, 과연 무엇에 대한 지불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 활동가님은 성매매 여성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해 오면서, 바로 이렇게 그 자체로 비인격적인 거래의 경험이 누적됨으로써 그 당사자 개인들에게, 또 사회에 무엇을 남기는가- ‘그 고통과 효과를 언어화하고 문제화하기’라는 과제를 수행해오며 알게 된 것들, 고민한 것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늘 어떤 문제가 ‘왜’, ‘누구에게’ 그 문제의 ‘무엇이’ 문제적인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는 과정에 폭력이 추가되어서, 또 그 행위에 낙인이 추가되어서 문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폭력과 낙인이 제거된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곧 (남성을 위한) 몸이고 열등한 존재라는 자아인식을 체화하게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성매매 행위라는 점을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납득하게 만드는, 당사자에게 특히 은폐되어 있는 구조들이 있고, 그 구조 바깥엔 최저시급 이하의 임금으로 근근이 사는 것만이 대안으로 존재하는 상황- 이것 역시 그 자체로 폭력이나 착취의 문제로, 심각한 사회적 고통의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까. 별 활동가님의 이야기는 다시금 성매매를 밀실 폭력이 발생하는 ‘특수한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뒷받침되고 또 그 둘을 지속하게 하는 구조로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주희 선생님이 여자들 사이에 소위 “끕”의 차이(위계)가 있다는 환상을 재생산하면서 구매합리성을 만들어내는 업계의 논리가 얼마나 성매매 바깥에 있는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위계와 조응하는지를 짚어주셨던 점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고진달래 활동가님은 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셨어요.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깊이 공감되는 고민이었습니다. 당사자를 피해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발화를 할 것인가- 항상 고심하게 되고, 자주 후회하게 되곤 합니다. 이날 자리에서 뚜렷한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희진 선생님이 레이첼 모렌은 자기가 경험하거나 생각한 것의 약 10퍼센트 정도를 썼을 거라며 “표현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협상력”이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사자의 증언이 당사자의 삶을 포함하여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그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별 활동가님이 북토크 중간쯤 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그 업계 밖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기 경험에 대해 다르게 의미화하거나 이해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다시 생각났습니다. 정답이나 힌트 같은 건 아마 없는 거 같아요. 더 말할 수 있는, 더 많이 귀 기울여 듣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윤리적 매개자’, ‘듣기의 공동체’로서의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요. (하지만 힌트나 정답이 혹 있다면 언제나 대환영..)

 

두 시간에 어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쏙쏙 담았지 싶다가도, 한 시간쯤 더 들었으면 좋겠다 하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패널들 각자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케미’가 두드러지면서 책 내용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이 고민하며 행사를 준비했을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웠어요. 북토크 현장에선 사실 의자에서 떨어질 뻔할 정도로 웃긴 순간들이 꽤 있었는데 ‘오프더레코드’였던 터라 이 후기에 적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행사장을 나오면서는 홀린 듯이 <페이드 포>를 구입했습니다. 근데 아직 못 읽었네요… 조만간 꼭 읽고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활동

191018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1._숨

10월 18일 스페이스청에서 열린 [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당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는데요,

그 날의 후끈후끈 열기를 전해줄 첫번째 후기를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 샘에서 활동하고 있는 ‘숨’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성매매 산업을 여성주의적으로 고민하는 데에 서로 기댈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공유합니다.

페이드 포 PAID FOR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북토크 후기

청소년지원시설 평화의샘 (조서윤숙)

뜨끈한 떡과 간식을 한아름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페이드포를 번역하고 이룸과 함께 출간작업을 한 안서진님이 소개됐다. 책출간의 배경을 담담히 이야기해 주었고 모두들 귀담아 들었다. 곧바로 여성학자 정희진, 김주희, 그리고 이룸의 별, 고진달래가 무대에 함께 올랐다.

그럴싸한 출판사를 낀 것도 아닌데, 오 참말로 보기가 좋고 아름답다. 성매매를 말하는 먼 나라의 책을 회원과 활동가와 여성학자가 함께 만들고 소개하는 오늘의 이 장면은 이룸의 현장성과 담론화 과정의 치열함을 오롯이 드러냈다.

1부에서는 패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소개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희진님의 자기고백에 가까운 토크들 무엇? 아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어버렸다. 김주희님은 그걸 또 수습한다며 잘 포장해 주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알아서 하랬다가. 결국은 두 사람의 케미라는 것이 이번 북토크에서 폭발했다. 이런 진귀한 장면 너무 좋다.

1부에서 소개된 구절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 소개된 와중에 내게 더욱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어본다.

 

성 구매자 중에서 변태일반적인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 6.첫 날

며칠 전 한 사회심리학자로부터 수년 전의 강간미수살인사건 범인과 면담한 사례를 들을 일이 있었다. 그 범인은 프로파일 과정에서 피해자를 몰래 훔쳐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제가 강간을 하면 했지 그런 변태 같은 짓은 안 해요”하며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에게 강간행위는 남성성을 표출하는 자랑스럽고 우쭐한 것이었고 그 밖의 것은 좀스럽고 남성으로서 하자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성구매를 하는 ‘일반적인’ 남성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도 어차피 구매자고 어차피 지갑 권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변태’나 ‘일반적인’ 구매자나 그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에서는 큰 차이는 없겠으나, 소위 ‘일반적인’ 구매자들이 과잉된 남성성을 폭력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경험한 저자에게는 이러한 분석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게 했을 것이다.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직업이라는 말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 1.첫 번째 질문

다른 직업들과 확연히 달리 성매매를 간단히 집 문밖에 두고 들어올 수 없는 복잡한 여러 요인들이 있기에 그러하다.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성매매라는 비밀에 매여 평범한 사회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구별되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몸이 남성의 성을 위한 도구로 끊임없이 사용되고 위험천만한 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순간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일의 맥락 상 다양한 중독에 처하게 되고 중독은 다시 성매매를 강요하면서 주류사회로부터 멀어져서 ‘타자성’이 극대화된 특수한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와 연결해서 내가 덧붙이고 싶은 인상 깊은 부분도 있다. 레이첼 모렌은 우리 사회가 성매매에 대해 ‘성인 간의 합의’라고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반격한다. 성매매라는 진면모를 알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에 합의하기란 불가능하다(- 6. 첫 날)는 것이다. 성매매 되는 많은 자들의 경우 성인이 아니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도 하고.

2부에서는 각 패널들에게 한국 성산업의 구조적인 맥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국가와 여성을 식민지화한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도 식민주의가 군사주의로 확장한 가운데 권력형 성접대 안에서 여성들에게 같은 역할을 요구했던 한국사회의 맥락을 짚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흐름이 어떻게 남성문화와 여성들의 빈곤 문제에 기반한 성매매와 연결되는지, 여성의 몸을 남성경제의 도구로 활용하는 맥락 등을 살펴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고민들이 무게감 있게 오고 갔다. 그 중에서 달래의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성주의자들도 선뜻 쉽게 접근하기 힘든 것이 성매매 이야기다. 그렇게 어렵다.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고 세상에 내어 놓으려고 한다. 이 중요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어떤 윤리와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하는가(대략 이런 요지로 기억됨)” 그에 대한 답은 모두에게 어려웠으나 그 질문만은 모두에게 남았으리라.

이 질문을 곱씹다 보니 오래 전 이루머들과 함께 봤던 영화 <헬프>가 떠오른다. 백인 주인과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는 흑인여성가정부들의 목소리가 책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여성으로서의 억압은 주변화된 정체성과 계급까지 교차할 때, 그들의 목소리가 반란이 되고 변화를 이루기까지 수많은 장애물을 이중삼중으로 만나게 된다.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상호교차성을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만약 우리 사회가 사회에서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여기서는 이를테면 성매매를 경험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 하고자 세계를 재구성하고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그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이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성매매경험 여성 혹은 남성성에 포섭되지 않아 차별 받았던 남성들 또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어렵고 복잡한 싸움을 진득하게 붙잡고 가는 이룸이 필요한 이유다.

레이첼 모렌, 안서진과 함께 한 이룸의 페이드포 한국판 출간은 우리가 성매매에 대한 기억을 삭제한 채 여성인권을 논해도 되는지 질문을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페이드포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을 통해 ‘여성의 문제가 다양한 주변부의 문제들과 교차하고 경합하는 가장 첨예한 장이 성매매’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집단에 비판적인 언어를 발굴하고 이미 쓰던 언어도 다시 벼리어 개발하는 일은 페이드포와 이룸의 질문을 지속시키고 상기시킬 수 있다. 항상 가장 주변화된 이들을 상기시켰던 크렌쇼가 했던 말은 지금 여기에서도 필요해보인다. “그들이 들어갈 때, 우리 모두 들어갈 것이다.”

 

 

 

활동

<청량리: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북토크 후기 3탄 by. 레나

*북토크에 와주시고, 부스를 지키며 큰 도움 주셨던 이룸의 친구, 회원 레나님의  청량리 북토크 후기를 공유합니다. 기꺼이 내어줬던 도움과 꼼꼼하고 세심한 후기에 깊이 감사드려요:)

 

2018년 11월 30일, 역을 나오자마자 눈물이 핑 고일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일과가 끝나고 나니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자원봉사하기로 약속했기에 발을 바삐 움직여 북토크가 열리는 스페이스 노아로 향했다.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쁜 이루머들이 눈에 들어왔고, 피곤함을 제쳐두고 몸을 움직이며 청냥이, 청량리 책, 불량언니 작업장에서 만든 물품을 꺼내놓고 응대를 하다 보니 금세 자리가 찼다. 귀여운 청냥이와 책을 받아보고 좋아하는 참여자들과, 여성들과 이룸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길로 흘끔 보다가 곧 북토크가 시작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이룸에서 준비한 알찬 간식을 한손에 챙기고 자리에 앉아 마련해준 커피를 마시며 한 숨 돌리니 이루머들이 자리에 앉으며 “<청량리 :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 북토크”가 시작됐다.

 

시작 멘트로 책 제목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 책의 부제 ‘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의 의미가 인상 깊었다. 청량리 집결지라는 공간은 외부의 시선으로, 환상과 낙인으로 얽혀 재단되고 평가되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있고, 이들의 기억을 기반으로 집결지에 얽혀있는 지배구조를 풀어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이번 책에 인터뷰어로 참여한 여성들의 녹취록을 작성하는 작업을 할 때 여성들의 서사를 들으며 ‘빈곤’과 ‘자원이 없는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잡혔던 기억이 났다. 책에서 이 단어들이 어떻게 서술되고 표현될지 매우 기대됐다.

 

북토크는 1,2,3부로 진행됐는데 1부에서는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의 김대현, 김아람, 장원아, 한봉석 연구자들과 이룸이 함께 작업을 진행하게 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네 분 모두 역사연구자로서 이 작업을 함께하게 된 자신의 맥락,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말씀하셨는데, 말씀을 정말 재치있게 잘하셔서 즐겁게 듣다가 공감되는 이야기를 기록해두었다. 한 연구자는 이룸과 함께 작업을 하기 이전에 역사문제연구소와 그리 멀지않은 청량리 집결지에 관심이 생겨 자료조사를 했는데, 기존 연구 수도 굉장히 적고, 그나마 있는 연구 중 대다수는 여성주의적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성구매 후 작성한 논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성이 성판매를 하게 된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과 고민 없이, 사회에서 인식하는 “성매매여성”으로만 바라봤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결말 같아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또 다른 연구자는 이번 연구를 하며 ‘감정/기억을 역사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답을 내리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구술을 따라가다 보니 청량리 집결지라는 공간에 대한 희로애락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 기억과 감정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추지 않고 연결해 나가는 것에 집중했다고 하셨다. 앞선 이야기와 대비되기도 하고, 그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집결지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기존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성매매여성’으로 대상화하여 바라 보는게 아닌 집결지에 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하고, 외부인이라면 모를 수밖에 없는 그 안의 이야기를 듣고, 청량리 집결지 외부/내부로부터 겹겹이 쌓여 작동하는 지배구조를 찾아내어 이 구조가 어떤 식으로 여성들의 삶에 파고든 것인지 알아내려는 태도 같다. 여성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하고 가감 없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구성하는 것, 나열해놓으니 굉장히 단순해보이지만 이를 해나가며 치열한 고민이 수반된 것 같아 책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2,3부는 이룸이 처음에 현장지원센터를 만들면서 청량리 집결지와 연결되고 이후 청량리 재개발로 인해 생겼던 일들과 불량언니 작업장이 만들어지기 까지 이룸과 이루머, 불량언니작업장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이룸은 처음에 현장지원센터를 설립하며 여성들에게 의료, 법률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지원조건이 ‘탈성매매 시 지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정부가 성매매를 자발/비자발적 성매매라는 관점으로 구분할 뿐 성판매를 하게 되는 여성의 상황을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의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정부의 여러 요구와 조건들이 이룸의 판단과 다르다고 결론짓고 현장지원센터를 반납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을 듣던 중 ‘성매매를 낭만화 하지도, 피해자로만 낙인찍지 말자’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성판매 여성들에게 집결지는 일하는 곳, 먹고 자던 곳,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던 곳이지만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성구매자들의 폭력이 존재함은 물론이고, 업주와 펨푸(중간착취자)가 존재하고, 업주가 여성들을 돌본다고 하더라도 ‘착취’의 맥락을 완전히 떼놓고 볼 수 없고, 그렇다고 집결지의 폭력성에만 매몰되면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꾸려왔는지,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모습들을 소거할 수도 있기에 ‘낭만화와 피해자화’를 견제해야한다고 했다. 여성들의 삶을 그저 소비하거나 삭제하지 않기 위해 입체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입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낭만화/피해자화 하지도 않는 것은 당연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직시하는 것도 방관하듯 손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하고, 같이 살아내고 있는 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시킬지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량언니 작업장의 탄생은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이슈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데, 청량리 집결지는 거대 자본이 개입하기 전에 국가가 나서서 집결지를 조장, 방관해왔고, 그 안에서 성판매 여성들은 억압 받으며 생존을 위해 머물렀고, 여성들을 억압한건 국가뿐만이 아니라 집결지 내부에 있는 이해관계가 다른 착취자들이 있었으며, 재개발 과정에서 여성들은 이들과 동지라는 이름으로 한 깃발아래에 함께 있었다고도 한다. 물론 재개발이 강행되면 업주와 건물주의 입장에서 내쫓기는 상황이고, 여성들에게도 삶을 이어나갈 자원을 마련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부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는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두드러졌는데, 업주와 건물주들은 분명 얼마 전까지 자신들이 알선하던 성매매를 불법이라고 하며 여성들을 쪽방촌에서 내몰기 시작했고 이는 재개발 보상금과 관련되어 벌인 일이라고 한다. 복잡다단한 집결지를 두고서 이룸 역시 여러 고민과 행동을 보이다가, 여성들과의 연결에 초점을 맞추고 불량언니 작업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들로 힘이 잔뜩 들어갈 법도 한데, 불량언니 작업장의 시작은 힘이 잔뜩 들어가지도, 거창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밥 한번 먹어요’라고 말해 약속을 잡고 꾸준히 만나면서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과 ‘우리 다음번에는 뭐할까?’ 이야기하며 허물어져가는 청량리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고, 실을 받아 뜨개질 하고 레몬청을 담구고 비누도 만들며 단순한 일을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서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지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으며, 여러 외부행사에 참여하며 청량리 집결지 폐쇄의 문제점과 불량언니 작업장이 함께하는 의미를 설명하며 여성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량언니 작업장은 이런 점에서 특별하게 와 닿는다. 한국사회에서 기술/경력/학벌과 같은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노년여성이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대안이 또 다른 착취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 그리고 서로의 지지기반이 되면서도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이후 북토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전(!)이 펼쳐졌다. 청량리 책 집필을 위해 여성들과 의 인터뷰 도중 여성들과 이룸과의 관계, 불량언니 작업장에 대한 이야기, 여성들이 느껴온 삶의 감각들이 담긴 영상이었다. 말을 재밌게 잘하셔서 박수를 치고 웃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뭉클하기도 하고, 길지 않은 영상인데도 다채로웠다. 또 여성들이 직접 오셔서 자신들의 삶이 역사로, 책으로 나타나 벅찬 기분과 행복한 소감을 나누었고, ‘우리 이룸’ ‘우리 불량언니 작업장’이라는 말을 듣고 소속감을 느낀다고 생각해 인상 깊었다. 내가 이루고 있는 삶은 계약직사원이 정규직이 되고 싶은 마음을 건드리며 ‘정규직 보다 열심히 일할 것’을 종용하고, 또 ‘어느 회사 다녀요’라고 했을 때 정규직/비정규직이냐를 묻는 질문으로 인해 소속감을 부여해도 괜찮을지 고민할 때가 있다. 이렇게 파편화 된 환경에 있다가 약자를 착취하지 않고 혐오하지 않는 공동체의 일원이 소속감을 느끼고 직접 이야기해 주었을 때, 불량언니 작업장의 지향이 한층 와 닿고 가슴에 새겨진 거 같다. 공간 사용시간 초과 직전까지, 꽉 채워진 북토크 내내 던져진 문제의식과 고민들은 고스란히 책에 담겨져 있다고 한다. 꼭 책을 읽고 여성들의 기억으로 연결된 청량리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 시간 전에 추웠던 날씨는 잊혀질 정도로 열기가 돋아나던 자리였다.

활동

<청량리: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북토크 후기 2탄 by. 리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리아 활동가의 청량리 북토크 후기입니다.

사람과 활동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고통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는 글을 기꺼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 마음의 아픔이 임계점을 넘어가면 몸까지 가누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간신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나가면서 내내 이룸을 생각했다. 그 북토크가 아주 좋았다고,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이룸의 이야기를 듣는 건 멋진 일이라고 써서 드려야 하는데.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어째서 멋진지 알려드리고 싶은데. 빨리 이 통증을 조져버리고 일어난 다음 글을 써야지! 그러나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였다…

나는 내 위치에서 반성폭력 활동을 하면서 성매매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모든 여성이 성매매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를 위해 성산업의 해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버성폭력 산업 해체를 위해 운동하면서 소위 말해 ‘일반인’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여성을 재화로 하는 산업만 도려내어 없앨 수는 없다. ‘나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렇다면 포르노여도 되는 여성이 있기는 한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나 늘 그러하듯이, 성매매에도 여러 이해와 맥락이 충돌한다. 성매매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두렵다. 다들 여성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그것으로 인해 아픔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여성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만 같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그렇게 가로막는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나타날 때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때로는 밉기까지 했다.

미숙할 때, 예컨대 뭔가 한 가지 맥락에만 평면적으로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만이 선의와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사람은 쉽게 타인을 오해하고 미워하게 된다. 나는 아파하는 동안 오해받는다는 것이 괴로운 일임을 앎과 동시에 내가 해 왔던 오해를 직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크기로든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오해 없이 서로에게 닿는 게 가능한 일인지조차 불확실하더라도, 더는 그런 태도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오해의 크기를 줄여나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이상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을 고민하고 지향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들을 최대한 선해 하고, 상대의 진심을 믿으며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열심히 들을 것이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가고 싶고, 나부터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할 것이다.

이 (어쩌면 굉장한 TMI일)과정을 만드는 경험 중의 하나로 이룸의 청량리 북토크가 있었다. 벌써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나 어렴풋한 인상만 남게 되어 처음에 계획했던 것처럼 멋지고 좋았던 점을 일일이 써 내려갈 수는 없어졌지만, 언니들이 이룸과 함께했던 시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따듯했다는 기억이 난다. 내가 미래에 되고 싶어 할 공간이 그곳과 비슷하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으면서도, 분명 아주 소중한 순간을 목격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기분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 밤새 ‘청량리’를 읽었던 11월 30일. 그때 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오해가 남아 있는데도 미움보다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