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언니 작업장]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불량언니 작업장]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시 중‧노령층 등 사각지대 성매매여성 사회적응 프로그램“과

“여성/빈곤/담론화 사업”을 시작하며

 

2018년 시작한 [불량언니 작업장]3년차를 맞이했습니다.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되면서 이룸과 인연을 맺고 있던 쪽방의 중장년 여성분들과 머리 맞대고 만든 [불량언니 작업장]은 “손뜨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여성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지요. 이룸은 다른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 및 재개발 과정에서 집결지에서의 삶이 타의적으로 뿌리 뽑힌 여성들이 겪는 깊은 우울감을 전해 듣곤 했습니다. 청량리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성매매 집결지는 사회적으로 격리된 공간이었기에 그 공간에서의 폭력과 착취 경험은 집결지 내부로만 고인 채 바깥으로 발화되지 못했고 폭력, 착취가 자신의 생활터전이자 일터의 기본 전제였던 여성들의 삶은 우울과 상실, 배제감을 배태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의 재개발은 개개인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고 있던 상흔이 폭발하는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일종의 절망을 붙들고 버티던 여성들에게 여성의 목소리와 삶을 외면한 재개발 과정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직면하도록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량리 집결지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개발되면서 그 공간에서 만나온 여성들과 또 어떤 경로를 만들어나갈지를 고민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다른 성매매 산업의 공간으로 이주한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아닌, 이미 삶의 터전이 청량리 지역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개개인의 네트워크와 자원이 성매매 집결지의 운영체제에 맞춰 제한된 중장년 여성들과 보다 자주, 깊이 만나게 되었지요.

 

[불량언니 작업장]은 어떻게든 같이 만나자, 그래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혼자 지금을 버티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색해보자, ‘성매매’로 제한되고 격리되었던 일상의 가능성을 확장해보자 는 기치를 토대로 운영되어왔습니다. 한 해 동안 되는대로 물품을 만들어보고, 물품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고, 물품을 판매하면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겪었습니다. 같이 배우고 만든 물품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했습니다만,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빠른 속도와 경쟁체제에서 그 가치는 ‘현물화’되기 어려웠습니다. 생활에 충분한 수익을 얻기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룸은 사업장인가?”라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수익을 얻기 위해 홍보를 하고 판매를 할 전문성을 이룸의 활동에서 우선순위에 둘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스템과 근대적 노동방식을 개개인의 몸에 훈육하는 방식이 [불량언니 작업장]과 이룸이 지향하는 가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2019년을 계획하면서 언니들과 이루머들은 [불량언니 작업장]을 생활비를 벌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국가지원을 받지 않고 [불량언니 작업장]을 운영하려 했던 이유도 동일합니다. 한국의 사회복지체계는 선별사회복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조건과 환경에 맞게 신체를 훈육하지 않으면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할 만한 자원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소위 ‘부양가족’이 있다면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삶을 ‘가족’의 책임으로만 전가합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제공하면서 그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노동 수익이 발생하면 ‘중복수급’이라는 이름으로 수급비를 깎습니다. 현재 성매매피해지원체계 역시 이와 동일한 한계를 지닌 채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불량언니 작업장]의 언니들은 필요와 욕구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은 조건에 맞춘 지원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속도와 삶의 양태에 맞춰 서로의 자원을 분배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았기에 매 순간 ‘돈’과 ‘가치’의 영역에서 흔들리고 갈등했습니다.

 

서울시 중노령층 등 사각지대 성매매여성 사회적응 프로그램의 탄생

2019년 2월, 서울시 성매매 집결지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가 토건자본의 돈벌이를 이유로 재개발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회의가 진행되었고 이룸 역시 논의에 함께 했습니다. 이미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졌지만 다른 집결지의 문제와 성매매 산업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기에, 그리고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의 재개발 과정에서 목도한 문제들이 다시 또 반복될 염려 속에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지자체 조례가 아닌 형태로 집결지 여성들의 이주와 삶의 변화를 지원할 수 있는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와 현장단체들은 어떻게든 여성을 지원할 방식, 여성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쟁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이룸은 개별 현장 단체가 자신들의 제한된 자원과 역량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또 다른 작업장을 만드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이룸은 서울시에 성매매 집결지의 중장년 여성들의 상황을 도시의 노년 여성 빈곤 문제와 연결된 현실로 접근해야 함을 제안했고 장기적으로 노년 여성 빈곤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활로를 모색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룸의 제안은 서울시의 수세적인 반응에 힘을 잃었습니다. 또한 당장 확보 가능한 자원이라도 활용하여 현장의 여성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현장단체의 판단이 우세하였고 이룸 역시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로 다른 수익이 발생할 경우 수급자격이 위태로운 여성들 역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울시의 태도가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믿었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 언니들의 절반이 수급자였기에, 다른 현장의 중장년 여성들 역시 대부분 수급자이기에 ‘중복수급’과 상관없이 지원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고 놓을 수 없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원칙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 없이 [불량언니 작업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은 계속 있었습니다. 2018년과 19년 [불량언니 작업장]을 운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울시 성평등기금’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운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수의 프로젝트에 공모했지만 한정된 인원과 함께 하는 [불량언니 작업장]의 의미를 오롯이 인정하고 지원해준 곳은 ‘서울시 성평등기금’이 유일했습니다. 3년 연속 지원을 받을 시 공모자격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에 20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불량언니 작업장]을 운영할 것인지, [불량언니 작업장]의 재정적인 독립이 가능할지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여성들을 지원할 수 있다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사업이 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새로운 모험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서울시와의 논의 끝에 서울시는 2개소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룸은 위에서 언급한 가능성,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안이 없다면 해당 사업에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국가지원체계 안에서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를 운영하면서, 3년간 현장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제도화된 사업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온 경험에서 비롯한 높은 경계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룸이 못 받더라도, 다른 단체에서 기초생활수급 여부와 상관없이 중장년 여성들과 만날 수 있다면 의미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0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서울시는 서울의 5개 상담소 모두에게 “서울시 중‧노령층 등 사각지대 성매매여성 사회적응 프로그램“ 운영비를 2020년 1년동안 한시적으로 배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 1월, 기초생활수급자의 중복 수급을 해결할 수 없다며 말을 바꿉니다. 사각지대 여성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서울시에서 생각한 ‘사각지대’는 어디였을까요?

 

1월, 이룸은 여러 날 동안의 논의 끝에 [불량언니 작업장]을 함께 하며 지키고 알리고자 했던 문제의식이 모두 탈각된 서울시의 한시적인 사업을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참여시간에 따른 참여비의 지급, 참여비 지급으로 인해 수급자의 경우 수급비와 수급자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는 현실은 기존 자활지원센터의 답습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빈곤은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낙인,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문제이기에 [불량언니 작업장]은 물품을 만들고 홍보하고 판매하는 모든 시공간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격리된 성매매집결지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맺고 확장하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중‧노령층 등 사각지대 성매매여성 사회적응 프로그램“으로는 [불량언니 작업장]이 지키고자 했던 공동체성, 빈곤에 대한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정책마련 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과 서울시 사업, 그리고 노년/여성/빈곤 담론화 사업을 결의하며

 

‘서울시 사업을 받지 않은 결과 [불량언니 작업장]이 와해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을까?’ 다시 이룸 내부에서 질문이 제기되었고 논의는 재개되었습니다.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이룸은 다소 특수한 상황에 있습니다. 보통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하나의 지역에 한 개소가 위치합니다만 상담소 이룸이 위치한 동대문구에는 2015년 새로운 상담소가 개소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이 상담소와 상담소 이룸은 상담사례가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타 상담소를 “교회”로 인식하고 있고 타 상담소 역시 교회와 상담소 정체성의 분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동대문구의 타 상담소는 서울시와의 협의 과정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상담소가 5개소이니 5개소에게 동일한 지원금을 배분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발상으로 동일한 지역에 있는 타 상담소 역시 서울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이 서울시의 사업을 받지 않고, 동일한 지역의 타 상담소는 서울시의 사업을 받게 될 경우 수급자가 아닌 여성들은 타 상담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보다 안정적인 참여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의 물품 판매수익은 아주 적지는 않으나 상황에 따라 변동이 심합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나 판매수익의 변동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매달 일정한 참여비를 받을 수 있는 서울시 사업은 수급자가 아닌 여성들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 사업을 받지 않을 경우 [불량언니 작업장] 언니들 중 수급자가 아닌 여성들은 동일한 지역의 타 상담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불량언니 작업장]의 공동체성은 와해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맺어온 관계성과 의미가 이렇게 사라져도 괜찮을지, 결과적으로는 이룸이 서울시 사업에 적용하고자 했던 원칙이 훼손되었지만 서울시 사업을 같이 만들어 온 주체이면서 제도 안에서 한계에 맞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업을 받지 않고 손을 떼는 길이 최선인지 최선, 차선, 차악을 고려하는 논의를 지속했습니다.

 

재개된 논의 끝에 이룸은 [불량언니 작업장]과 서울시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서울시 사업은 여성들을 선별적으로 지원하지만 [불량언니 작업장]은 기존의 운영방식대로 수급여부와 상관없이 운영됩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의 기존 멤버가 아닌 새로운 여성들은 서울시 사업에 참여하고 그 범위는 이룸 활동가들의 소진을 최소화하는 안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불량언니 작업장] 운영과 함께 노년/빈곤/여성 담론화 사업을 주요사업으로 삼을 것입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은 하나의 의미있는 시도이지만 다수의 [불량언니 작업장]이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는 중장년 성매매여성이 경험하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빈곤 문제를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에 이룸은 서울시에 요구했던 도시의 노년 여성 빈곤에 대한 분석과 이에 기반한 정책 마련 및 개입방안을 장기적으로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그 과정이 ‘제도화를 버틸 힘’, 그리고 ‘제도화에 맞서 새로운 가능성을 설계할 힘’을 이룸 내부에서 만들어보는 과정이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룸은 제도화된 정책과 지원정책 바깥의 영역 사이에서 그 길항을 견뎌내며 이룸의 길을 찾기로 결정했습니다만 그 결과가 어떨지 알지 못합니다. 이룸을 포함한 사회 공동체가 한시적인 “서울시 중‧노령층 등 사각지대 성매매여성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넘어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착복하고 여성 빈곤을 공고히 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해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가치를 붙들고 갈 뿐입니다. 2020년 외부로 보이는 [불량언니 작업장]의 활동은 18,19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고민들- ”앞으로 [불량언니 작업장]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젠더화된 빈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구체적인, 동시에 복합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현장의 새로운 시도가 제도화된 정책에 포획될 때 기존의 독창성과 문제의식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이 본격화된 시기인 만큼 여러 고비, 질문들을 마주할 것 같습니다. 성실하고 근기(根氣) 있게 긴장, 질문, 고민, 의심, 갈등과 직면하기로 한 이룸과 [불량언니작업장]의 선택에 함께 해주시기를 청하며 긴 편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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