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8 여성의날 맞이 버닝썬 게이트 기획연재 4탄 : 남성유흥문화의 장, 성산업 _혜진

디자인 by 개미코

 

2019 3.8 여성의날 맞이 이룸의 급 기획연재 4탄 : 남성유흥문화의 장, 성산업 _혜진

 

클럽에 가는 것에 회의가 들었던 적이 있다. ‘클럽오는 여자’라는 그들 제멋대로의 구분은 문제적이고, 그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받는 것은 불쾌하다. 물리적, 사회적 시선은 애써 무시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추행과 폭력은 그 공간에서는 ‘당연한 것’이기에 각오를 해야 한다. 각오한다 해도, 클럽에 가는 여성이 클럽 안팎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뻔히 아는데, 결국 소비되기 위해서 가는 것 아닌가라는 회의가 들었었다.

경찰과의 유착관계, 약물강간, 성접대, 성형대출… 연일 연결고리들이 밝혀지며 한국사회 남성유흥문화와 산업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버닝썬 사건으로, 클럽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클럽은 어떤 공간인가, 우리는 왜 클럽에 갈까.

구체적인 이유야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큰틀에서는 적당히 취해서 풀어진 기분으로, 큰 음악이 들리고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텐션을 올려주고 나의 신남을 표현할 수 있는, 놀기 위한 공간이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은 이 신남과 즐김의 완성을 위해서는 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단지 섹스가 필요한거라면, 자유로이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공간일텐데 클럽은 그런 공간이지 못하다. 여성과 놀기 위해서 (자기 딴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이런 곳에 온 여자니까 보여주려고 이렇게 입고 온거지, 만져도 되겠지’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을 보면, 요상하게도 그들은 ‘어떤 부류의 여자들’로 자기들 마음대로 구분짓고 그들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니 같이 놀자는 인사를 엉덩이를 만지는 것으로, 성기를 갖다 대는 것으로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클럽은 여성들에게는 ‘자기가 이러고 싶어서 온 거니까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과 갖은 희롱과 추행, 강간이 뒤따라오는 젠더화 되어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남성들의 신남은 ‘어떤 부류’로 구분지은 여성들을 일방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채워지고, 여성들은 제멋대로의 구분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받고 선택되어진다.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남성들의 흥을 위해 여성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은 수요가 되어 상품을 만들어내고 산업을 만들어낸다. 남성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완성시키기 위해, ‘홈런’을 위해, 테이블을 잡으며 돈을 쓰고 약물을 사용하여 의사가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남성들의 욕망이 클럽의 돈벌이가 되어, 클럽들은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상품을 내 놓는다. 테이블을 팔고, 룸을 팔고, 술을 팔고, 약물을 판다. ‘입밴’을 통해, 유흥업소 종사자 고용, 여성 섭외 등을 통해 ‘물관리’를 한다. 그렇게 남성의 흥을 위해 여성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모여 성희롱을, 성폭행을, 약물강간을 만들어낸다.

남성들의 이 욕망은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 어떠한 노력도 들일 필요가 없이, 더 함부로 할 수 있는 여성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로서 성매매는 존재한다. ‘어떠한 부류’로 자기 멋대로 구분 짓고, 함부로 해도 된다고 여기면서, ‘헤픈 여자’로 사회적 비난까지 하는 그 메커니즘에서, 더 손쉽게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더 함부로 할 수 있기 위해 ‘돈 받고 이런 일 하는 여자’라는 ‘어떠한 부류’의 극단을 구분해냈다. 돈을 냈으니까 재단과 평가, 선택은 권리가 된다. ‘와꾸’를 따지며 고르고, ‘마인드’와 ‘서비스’를 요구하고 평가하는 것이 권리가 된다. 더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니까 희롱과 추행, 강간, 물리적 폭력 등 갖은 폭력은 더욱 쉬운 일이다. 그리고 이 욕망들은 어찌나 거대한지 자기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을 세세하고도 많은 선택지를, 다양한 상품을, 거대한 규모의 성산업을 형성한다. ‘버닝썬’ 사건만 보아도 유흥 공간에서 남성의 욕망을 위해 소비되는 여성, 이 욕망을 상품으로 하는 유흥산업, 더 손쉬운 욕구 실현을 위한 약물제공, 더 손쉽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성접대, 그 안에서 평가받고 선택되어지는 여성들의 성형수술 알선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남성의 욕망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욕망은 클럽, 성매매업소 이외의 공간에서도 디지털성범죄를 포함한 포르노로, 성폭력으로, 여성을 성적대상으로서의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건재하다.

그치만 여성들에게도 신날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 그들 제멋대로의 구분에 재단되고 평가될 걱정 없이, 어떤 욕망을 위해 소비되고 있다는 찝찝함 없이 마음껏 신나고 싶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차피 어디서든 소비 될 거, 좀 더 그들 입맛에 맞게 굴고, 꾸며서 상품이 되어 보지 않을래.’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선택지가 매력적이지 않게끔, 그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끔 살만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선택지를 만들어내고 여성들을 촘촘히 옭아맬 수 있는 정교하고 거대한 산업을 형성하는, 어디서든 여성들이 남성욕망을 위해 소비되게끔 널리 그러면서도 빽빽하게 퍼져있는 남성유흥과 강간문화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활동이야기

[활동한꼭지]성매매 문제를 빼고 여성인권 논할 수 없어_완두

성매매 문제를 빼고 여성인권 논할 수 없어
[완두의 젠더 프리즘] 성매매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들

완두

 

“콜센터에서도 일해 봤고… 다른 일반적인 일도 여럿 해봤어요. 한 번은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는데 쪽팔려서 그냥 바로 나와 버렸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가겠어요. 저는 이 일이 저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으니까.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주변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요….”

 
나는 그녀와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와 산부인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서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그때마다 그녀는 길을 잃고 헤맸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 앞으로 마중을 나간 날, 서른 살의 그녀는 자신이 성매매를 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녀는 그 뒤로도 몇 차례 길을 잃었다.

 

그녀가 진료실에서 나오면, 병원 로비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수납처 간호사에게 결제할 카드를 내밀었다. 간혹 병원 관계자는 그녀와 함께 온 나에게 둘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현재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의료 지원을 목적으로 내담자와 방문한 병원에서 정확하게 내 소속을 밝힌 적이 없다. 그녀 역시 꽤 여러 달 만난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본인의 성매매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전국 2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 현장 방문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법률, 의료 지원을 하고 심리상담, 자활센터, 쉼터 등 필요한 자원을 연계한다.)

나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며, 상담을 매개로 성매매 여성들과 만나고 있다. ⓒ완두

 

강요 vs 자발, 성매매 여성에 대해 틀에 박힌 이미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일하지만 스스로를 ‘성매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고 관련자를 고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법적 개념이자, 사람들에게 각인된 ‘피해자’라는 개념이 성매매 여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기엔 너무나 협소하다고 느낀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 피해자’를 위계, 위력,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에게 성매매 여성을 만나는 일은, 그 여성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원을 이용할 때 겪는 차별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지원 내용도 그와 연관된 것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폭행, 감금으로 대표되는 ‘강요에 의한 성매매’나, 소위 텐프로와 명품백 이미지를 근거로 하는 ‘자발적 성매매’가 성매매 여성의 맥락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그로 인한 낙인은 성매매 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단일한 경험의 결과로 ‘피해자화’한다. 또, 범죄 피해자로서 권리의 회복을 시도할 때는 극악한 폭력과 그에 무력해진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때문에 많은 내담자들은 경찰서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택시에서 ‘성매매(했거나 하고 있는)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성매매 경험이 노출됐을 때 마치 ‘나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무시해도 되는 사람’으로 볼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과거 그리고 현재의 성매매 경험은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에 성폭력, 몰카, 데이트 폭력, 사기 등의 피해를 겪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이 된다. 친구, 연인, 가족, 동료에게 비난을 받고 배제당하는 이유가 된다. 탈성매매를 해도 업주나 사채업자에게 위치가 발각될까봐 결혼, 주민등록, 주소 이전을 미루게 된다. 남성에겐 성을 사는 경험이 사회생활의 일부로 별 문제될 것이 없는 반면, 여성에겐 성을 판 경험이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공백으로 남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성매매 여성의 ‘피해’는 물리적 폭행, 감금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으로 파고드는 구체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누적된다.

 

내담자를 조력하기 위해 공적 자원을 이용하는 상담원 역시, 내담자의 성매매 경험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때때로 서로의 친척, 동료, 지인이 된다. 사실, 나는 내담자 옆에 서서 간호사에게 나를 지인이라고 소개할 때 이것이 내담자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내담자를 위하는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에 대한 회피는 회복과 자기 긍정의 기회를 늦추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에서, 여성으로서 연결된 억압을 목격한다

성매매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여성이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차별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씨네21> 대담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홍미리는 “폭력이란 누군가의 삶의 반경을 점점 좁히는 것”([스페셜] 영화계 내 성폭력 다섯 번째 대담: 여성학자와 활동가 – 조혜영·송란희·권김현영·김홍미리, 2016년 12월 7일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한 ‘가해’는 당사자 간의 폭력을 포함해 “내 말을 무시하는 것,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 나를 눈치 보게 하고, 왜 신고했냐고 얘기하는 것” 등 성차별 사회에서 가해 행위를 부추기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자체가 다 독립적인 가해”라고 말했다. 그러니 개별 사례에 대한 대응 지침을 넘어 “전반적인 폭력과 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와 구제의 대상을 질병이나 침해된 권리가 아닌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여성은 십대부터 노년까지 다양하다. 상담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원치 않은 성적 요구와 외모와 나이에 따른 멸시부터 자원에 대한 통제권이 결여되는 일까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밀접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차별을 가시화하는 일은 전체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일과 닿아 있다.

 

그러나 가시화해야 하는 영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법에 근거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지원 내용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상담원과 내담자의 관계 맺기는 내담자가 경험한 ‘피해’ 내용을 우선으로 파악하며 시작한다. 법률, 의료, 자활 등 관련 지원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에게 정해진 지원금을 기준으로 자원을 연계하는 식으로 만나기 때문에, 상담원이자 활동가인 우리의 위치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이 상담과 지원을 받는 것은, 여성이 오직 피해로만 점철된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행위에는 비용을 마련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고, 미용실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예약 시간에 맞춰 나가는 등 다양한 자원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주변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의 일상을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상담자인 나는 내담자를 ‘돕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담자와 내담자로 만나는 우리는 각자의 ‘말하기’를 통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겪는 연결된 고통을 목격한다. 서로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목격하면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공통의 억압을 확인하고, 그에 대항해 다른 사회를 만드는 일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성매매 여성이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움이 될 만한 병원을 알아보고, 수면의 어려움이나 복용약물을 살피고 조절할 수 있게 조력하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의료 지원의 목표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성매매 여성 개인이 호소하는 지금 당장의 문제를 지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이런 상태라도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다는 내담자의 말은,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여건이 잘 고려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그 여성이 어떤 상태든 여성이기만 하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성매매라는 ‘일’의 성격을 알게 해준다.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나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관심이 있다. 개개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통을 가하는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매매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을 강조하지 않고도 권리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앞으로는 고통을 느끼는 나와 고통을 가하는 세계에 어떻게 반응하고 말하고 행동할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목격하고 질문하고자, 상담을 매개로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의 남성 사회를 최전방에서 마주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과 연결되지 않고는 페미니즘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본 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www.ildaro.com/sub_read.html?uid=7753)

활동이야기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편파적인 앰네스티 정책안에 대한 주관적인 논평 세 번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박혜정

 
 
낙인, 낙인, 낙인…
성매매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논거 중 하나가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앰네스티 또한 낙인(stigma)을 성판매자 인권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논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사회적 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다. 앰네스티는 이 두 가지 원인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성판매자가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여겨지다 보니 처벌이나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고 한다. 나는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주장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낙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인식이다. 앰네스티는 어떠한 사회적 성규범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앰네스티의 전체 주장과 논리를 놓고 추측할 수밖에 없겠다. 내 생각엔, 앰네스티가 말하는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란 ‘섹스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것’, ‘성판매는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앰네스티가 성구매, 성매매 알선을 포함한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성적 규범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중적•성차별적인 성규범인데,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은 이를 강화시키는 행위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다. 
 
앰네스티가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낙인’ 말고, 성판매자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는 낙인과 편견을 생각해보자. 성판매 여성들이 흔히 마주하는 낙인과 편견은 ‘섹스를 밝히는 문란한 여자’, ‘돈만 주면 몸을 허용하는 쉬운 여자’, ‘결혼•연애 등의 관계적 바탕 없이 불특정 다수의 남자와 섹스하는 더러운 여자’ 등이다. 이러한 편견은 그 반대편에 있는, ‘대상이 아닌 행위자로서의,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서의 남성’, ‘다수의 대상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능력있는 남성’이라는 남성 일반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관되어 서로를 뒷받침한다. 즉, 남성은 자신의 왕성한 성욕을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 성욕의 수동적인 대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성규범이다. 이러한 이중적 성규범은 적극적인 성적 존재로서의 남성이 성적 욕구를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성판매 여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성판매자의 절대다수가 여성(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이며 성구매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성판매 여성은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므로 낙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한 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성규범’에 의한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성에 관한 이중 관념을 뒤엎는 인식과 제도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앰네스티가 정말 ‘비범죄화를 통해’ 성판매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싶다면, 역으로 남성이 여성을 성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여성이 남성을 성구매하는 것만 비범죄화하고 적극 장려하자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앰네스티가 성규범을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과 연관지어 파악하면서 엉뚱하게 성구매와 성매매 알선을 비범죄화하자는 결론을 내는 걸 보면,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성규범은 성매매 여성들이 실제로 사회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낙인과는 좀 다른 성규범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앰네스티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이 성규범이 사실은 ‘성은 사고 팔아선 안된다’는 몰성적인, 단순하고 얕은 수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앰네스티가 낙인의 제거를 위해 성매매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싶다면, 기존 성규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과연 성매매 비범죄화가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 및 낙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포르노그래피 산업을 놓고 생각해보자. 미국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포르노그래피를 생산, 배포하는 것이 합법이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에 출연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및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편견과 낙인은 단순히 불법/합법이라는 형사적 제재의 이분법으로 인해 생산 또는 감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편견과 낙인은 유형•무형의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발생하고 유지된다.

 

포주의 언어와 닮은 앰네스티의 논리

낙인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누가 그 낙인을 살찌우고 있으며 낙인은 누구에게 이롭게 작용하느냐이다. 앰네스티는 낙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노동은 일반적으로 고도로 낙인화된 행위이며, 성노동자들은 국가와 비국가적 행위자들에 의한 편견과 차별을 일상적으로 마주한다. 성노동자들은 종종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어긴 사람들로 비판받으며, 그 결과 처벌과 비난, 또는 사회적 배제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노동의 범죄화는 성노동자들에게 범죄자적 지위를 부과하며, 이는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따라다닐 수 있다. 이는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을 확인시키고 강화시키는데, 이는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을 하면서 스스로 위험과 처벌, 비난을 불러들인다고 보는 것이다. 역으로, 성노동자들은 또한 그들을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도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노동자들을 피해자로, 심리적으로 손상된 개인으로 정형화시키는 것은 해롭고 성노동자들의 역량을 떨어뜨리게 되며, 이는 근거가 없는 정형화이다."
 

앰네스티는 성판매 여성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성판매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편견이 성판매자에게 해롭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예전에 성판매 여성들을 위한 지원 홍보물을 만들면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지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여성들이 상담소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성판매 여성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성판매 여성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성매매 업주와 관리자들로부터 “여성단체 사람들은 너희를 사람으로 안 보고 업신여긴다. 그 사람들이 널 도와줄 것 같애?”라는 말을 평소에 들었다고 대답했다. 외부 정보로부터 고립되고 바깥 인간관계도 상당부분 끊긴 성판매 여성들은 ‘바깥 세상’과 ‘여성단체 사람들’을 포주들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정말 생사가 오가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상담소에 상담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단체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할 때, 이들을 무조건 피해자로 보거나 심리적으로 손상된 자들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상담원과 활동가들이 지원 과정에서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지원 여부와 범위, 개입 정도를 정한다. 
 
이처럼 낙인은 성판매 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낙인은 성산업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앰네스티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성노동자를 도우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편견은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상당 부분 부풀려져서) 성산업을 유지시키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유포시키는 거짓 신화이다. 앰네스티의 언어가 ‘포주의 언어’와 닮아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여러 곳 있는데, 낙인에 대한 부분 역시 그러하다(어떤 부분들은 포주들이 평소에 떠드는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앰네스티는, 성판매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에 대해 (포주들이 유포하는) 잘못된 편견을 긍정함으로써 강화시키고 있다. 이제 의문이 풀린다. 앰네스티가 낙인을 그렇게 문제시하면서도 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 말고는 뚜렷이 이야기하는 게 없고 낙인의 원인이 되는 성규범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않는지를. 앰네스티는 사실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는 데 별 관심이 없고 성매매의 전면 비범죄화를 위해 낙인 제거를 ‘구실’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낙인에 대한 앰네스티의 논의는 정책안에 붙어있는 ‘국제 앰네스티 연구 결과 요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논리의 비약이 한층 심한데, 왜냐하면 인종주의와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성판매자에 대한 낙인으로 인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든 예로,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성판매 이민자 여성이 길거리 사람들로부터 “니네 원숭이들한테로 돌아가라”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민자이자 성판매자인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 그 모욕 안에 인종주의와 성매매 낙인이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강화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멋대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니, 앰네스티가 바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진실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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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e-loom.org/?p=861
2편 https://e-loom.org/?p=864
 

논평성명서

절대강좌 : 퀴어+성매매 후속모임 성매매 세미나, 차차의 후기

소심한 아해의 세미나 스케치
 

2013 이룸의 절대강좌 <퀴어+성매매> 후~ 첫 세미나가 드디어 열리었습니다!
절대강좌와 관련한 소수자 성매매 문헌을 읽는 두 달 여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죠~.
 
첫 번째 세미나에서는 다음의 세 개의 텍스트를 보기로 하였어요.
 
원미혜, ‘성판매 여성’ 섹슈얼리티의 공간적 수행과 정체성의 (재)구성
원미혜, 여성의 성 위계와 ‘창녀’낙인 : 교차적 작용을 중심으로
이현재, 성적타자가 인정되는 도시공간을 위한 시론-매춘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발제문을 읽으며, ‘여성이라는 타자와 성판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격한 토론을 진행하였지요.
맹목적으로 강의나 토론내용을 적는 버리고 싶은 강박적 습관을 가진 저였기에 이렇게 후기도 쓰게 되었는데요.
빼곡하게 적인 종이를 보니 대략 이런 내용들이 있네용.
 
성판매 여성 전반에 대한 낙인이 다양한 차별과 억압의 문제와 연결, 성판매 업종 내부의 위계와 낙인 존재,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저항하는 가능성(노동조합이 있는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
세 개의 텍스트가 성판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등등.

 
으음. 좀 와 닿지 않네용. (거칠고 산만하지만) 원미혜씨의 텍스트 발제를 마치고 나눈 이야기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차례로 ‘조각조각’ 남겨봅니당.
 
– ‘창녀’ 낙인의 작용은 성판매 업종 내부에도 작동하는데 가령 룸사롱에서 집결지로 이동하기는 해도 집
결지에서 룸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집결지에서 일한 경험이 극비가 된다.
이는 자신의 혹은 특정 업종 내부의 노동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창녀’낙인은 여성 내부에서 낙인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래서 오히려 젠더 역할을 적극 수행하기도 하며, 낙인찍힌 정체성과 거리를 느끼게 한다.
또 한편으로 성판매 여성 스스로 ‘창녀’가 아니라 노동자 혹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점은 낙인을 부정한다기보다
낙인의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 성판매 여성의 나이에 따라 자원이 달라지고 낙인이 쌓여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체감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이에 따라 성판매 여성이(사실은 누구나 그렇다!) 맞서는 현실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 낙인은 다양한 범주와의 관계 속에서 시대에 따라 재구성되는데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현대에서는 능력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전에 예수가 죄없는 사람은 성판매 여성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한 말을 지금 한다면?
‘노력해서 능력 있으면 여성이 대통령되는 시대인데’ 라며 돌을 던질 것 같다.
(이 비유가 섬뜩하게 다가왔는데요, 과연 나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닷.)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반면,
(여성의 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애화/상품화되는 현실과 능력위주의 사회에서)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강화될 수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섹스화된 몸>과 게하드 폴크의 를 보고
고민을 더 활활 불타오르게 하고픈 각자의 욕구를 확인하였지만,
게하드 폴크의 원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구글 번역기를 어떻게 돌리면 번역이 잘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등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겨버리고 말았…;
 
이어서 ‘성적타자가 인정되는 도시공간을 위한 시론’ 텍스트를 보면서
‘성판매 여성이 아닌 ‘매춘 여성’이라는 용어를 쓴 의도가 무엇인가‘,
’글에서 ‘매춘 여성’의 범주를 ‘부르주아’ 계급의 결혼 여성과 대비하여 상정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대체 누가 매춘 여성인가‘, ’가정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고 있는 성판매 여성은 이 글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성애 남성 시민은 ‘매춘 여성’을 금지했던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노골적이고 자연스럽게 욕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 스스로 자신만의 기준에서 ‘매춘 여성’을 규정하고
‘매춘 여성’의 비규범적 이성애적 성적 수행을 단순하게 칭송하는 데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글에서 남성 장애인 성구매자에 대한 성판매 여성의 자긍심을 부각시킬 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언어화될 수 있는가‘,
’인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이 텍스트 내에서 이해가능한가‘ 등 무수한 질문이 쏟아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격한 토론을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말았지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세미나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에는 ’트랜스젠더‘와 성매매와 관련한 텍스트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하였답니다.
 
이상 원하는 만큼 전달하지 못해 자괴감에 쩔고 그래서 아쉽고 뭐 그렇다는 소심한 아해였습니다.
 
 

활동이야기

물음표, 궁금, 그리고??? ㅡ 절대강좌 6강 후기

절대강좌 대단원의 막을 장식한 한채윤님의 강의!
차별과 피해 말고 낙인을 비롯해, 아무도 더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들을 짚어보면 좋겠다며,,
많은 화두들을 던져주셨네요,,

강의를 들은 OOO 님이 후기를  보내오셨어요~(이루머가 적은 게 아님미다,,ㅋ)

6강 6/24(월)은
공포의 정치 거부하기 : 성소수자/성판매 여성의 차별경험의 공통점과 삶의 권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님의 강의였습니다.

이제 OOO님의 쌈박한 후기 소개합니다~^^

모두가 물어봤다.
“강의 어땠어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좋았어요.”
대답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덧붙여서 조금 더 말했다.
“저의 좋았다는 의미는 저가 강의를 들으면서 몇개의 물음표가 제 머리속에 떠올랐냐는 의미에요.”
그제서야 사람들은 조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강의를 들으면서 손바닥만한 페이퍼에 앞뒤로 4장 정도 빼곡히 질문만 적었다.
채윤씨에게 질문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나에게도 질문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또 함께 듣는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했다.
아쉽지만 나의 물음표들은 모두에게 공유되지는 않았다.
 
글쓴이는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하고, 또 HIV/AIDS 인권 운동을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성노동(이라고 나는 쓴다.)을 하는 피해자(라는 말이 아직도 입에 잘 붙지는 않지만.)들을
동성애자 혹은 HIV/AIDS 감염인과 오버랩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강의에 물음표가 많아졌다.
 
성매매도 성노동도 성판매도 어떤 용어를 사용하던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왜 사람들은 단지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걸까?
이것이 우리가 동성애자를 ‘다른’ 사람으로 구분짓는 것과 어느 지점이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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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후기가,, 후속모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하네요~^^
후속모임 첫 만남의 날은 7월 15일 월요일 저녁 7시 입니다.(장소 추후 공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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