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이태원>을 함께 보았습니다 & 청량리 집결지 반상회 사진전

지난 2017년 12월 20일에 이룸과 강유가람 감독이 함께 주최한 영화 ‘이태원’ 상영회가 이룸의 이웃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있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이태원과 청량리에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도 있었는데요, 영화 시작 전에 마련된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감독x활동가와의 대화시간도 30분을 훌쩍 넘겼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진지한 눈빛과 질문으로 하나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상영을 먼저 제안해주신 강유가람 감독님께 깊이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룸 활동가의 영화 이태원을 보고 드는 생각과 고민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영화 이태원을 보고.

 

작성 : 성지윤(기용)

 

청량리588과 후커힐은

나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70대시라는 얘길 들었고 나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물었다. 그분은 아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키언니를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보면서도 그전에 다른 분께 아는척 한게 괜히 머쓱해졌다. 난 너무 전형적인 70대 노인을 생각한거다. 영화에도 나오는, 공들여 손질한 앞머리와 쏟아질 것같이 빽빽한 속눈썹, 열손가락 파란 매니큐어까지. 청량리 언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키 언니가 워낙에 특별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괜히 ‘역시 이태원인가!’ 그랬다. 칙칙한 청량리와는 다르게 힙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이룸에서 처음 이태원 아웃리치를 가던 날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후커힐을 나와서 화려한 불빛을 보자 괜히 기분이 흥청망청해지는 것이 왠지 술을 마셔야할 것만 같은.

 

다양한 성매매 업종에 따른 여성들 사이에 선긋기, 혹은 위계가 존재한다. 룸살롱 여성들은 집결지 여성들에 대해 ‘거긴 진짜 막장’이라거나 반대로 집결지 여성들은 룸살롱 여성들에게 ‘나는 깔끔하게 연애만 하지 지저분하게 술 먹는 거 안 한다’라는 식이다. 이것의 이태원 버전이 ‘나는 드런 한국 놈들 상대 안 한다’ ‘미국은 한번 가봐야한다’일테다.

 

청량리588은 성매매를하는 것이 확실한 곳이고 이태원은 노골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분위기가 된다. 이태원이 덜 성매매적인 곳이라는 듯, 청량리의 청소년통행금지 푯말은 24시간인데 이태원의 통행금지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다. 이태원에 처음에 콘돔을 갖고 들어갔을 때, 마치 콘돔을 보며 키득거리는 중학생처럼 ‘어머 콘돔이야~’ 라며 웃으시는 통에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주냐는 거다.

 

청량리든 이태원이든 집결지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일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말 말 그대로 그 곳에 일하는 공간인 가게에서 숙식까지 모두 해결하거나 매우 가까운 곳에 주거를 두고 있다. 사는 동네와 직장이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것은 분명 특별한 상황이다. 집에서 자고 나와서 일하는 내내 가게에 있다가 지척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고. 멀리 나가는 일 없이 안에서만 맴맴 도는 까닭에 여성들에게 이 동네가 주는 의미가 훨씬 더 특별해진다. ‘가정 동네’가 아닌, 일반적이지 않은 동네 안에서 살면서 ‘이태원이라면 택시기사도 드러운 소리만 하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척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입구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착취를 견뎌야하는 곳이다. 이룸이 이태원 아웃리치를 3년째 나가면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여성이 있어도 가서도 여성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사장의 눈치와 다른 아가씨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처음 상담이 연결될 때 절대 이태원 와서도 아는 척 하지 말 것을 몇 번이나 당부한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연결된 여성들의 많은 수가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다. 그녀들의 일과 이 높은 유병률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부동산을 가진 자와 아닌 자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부적절하게도 ‘역시 한국에서는 집을 사야하나..’라는 생각을 한건 나뿐이었나. 나는 세 여성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삼숙은 ‘웨이츄레스’가 아닌 사장님이고, ‘내가 양갈보가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만 외로울 뿐, 가게를 사두었던 덕에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인터뷰의 배경이 되는 그녀들이 살고 있는 집은 각자의 경제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 정부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기지촌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한 바 있다. 미군들에게 ‘깨끗한’ 여성들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성병검진을 실시했고 여성들에게는 당신들이 외화벌이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대해 나키언니는 ‘엉덩이 국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또한 그 동안 당신이 이 나라에 외화를 벌어다 준 공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받는 복지 지원에 대해서도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다양한 이방인들이 드나드는, 왠지 좀 무섭고 위험한 우범지역이던 이태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그 다양성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 되었고 그 매력은 예술가들, 트렌디한 가게들을 끌어들였다. ‘나키’가 낮게 읊조렸듯 이미 이태원은 땅이 꺼질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리고 영화 속 젊은 예술가들은 이 동네가 더 유명해지질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 안 된다는 소문이 돈다고, 재개발되면 갈데없는 못 사는 사람은 어딜 가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그녀의 바람이고 당위일 뿐 개발은 사람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할 뿐이다.

 

청량리도 그랬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헐린다는 소문만 있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지만 어느 순간 정말로 다 헐려지는 때가 왔다. 업주들은 보상금의 액수를 두고 서로 싸우고 등을 돌렸고 여성들은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되는 상황을 하루하루 버텼다. 아마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의 문제일 뿐 갈 곳도 없는데 밀려나야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그 고민의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인지 ‘영화’님은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인터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순자 언니는 인터뷰가 끝나고 ‘그거 들춰보면 쓸만한 게 없을거다’라면서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다 하셨다. 언니의 낮은 한탄에 내가 좋은 대답을 찾지 못했던 그 순간이,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혹시 ‘영화’님도 순자언니와 비슷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태원에 사는 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참 놀랐던 것이 모자이크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참 소중한 이 영화를 탄생하게 해준, 영화에 출연할 용기를 내준 여성 세분께 감사드린다.

불량언니 작업장

다큐 <이태원> 상영회에 초대합니다.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X 강유가람
<이태원> 상영회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태원>을 상영합니다.
[이룸]과 강유가람 감독은 3년 째 이태원 아웃리치를 진행중입니다.
이태원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기억과 일상을 따라가며
이태원의 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이태원>을 통해 청량리를 비롯하여 재개발을 마주하고 있는 서울 곳곳의 공간,
그리고 잊혀지는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로그램:
18:30~ 19:30 이태원/청량리 아웃리치 사진 전시
19:30~ 21:00 ‘이태원’영화 상영
21:00~ 21:30 강유가람 감독X기용 활동가의 대화

일자: 2017.12.20. 수 18:30~21:30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왕산로 19라길 13)
참가비: 상영장에서 자율후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소정의 현금지참 부탁드려요!

참가신청: https://goo.gl/kzq9kb
(준비를 위해 상영신청 뒤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의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mail) eloom2003@naver.com/tel) 02-962-6279

활동이야기

2016년 10월 청량리와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with 윤정원, 강유가람)

10월에도 어김없이 청량리와 이태원 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청량리는 10월 5일, 이태원은 10월 6일에 다녀왔는데요.
이번에는 특별히 윤정원(a.k.a 모름)님과 강유가람(a.k.a 고래)님이 아웃리치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예~
윤정원 님은 청량리 아웃리치에, 강유가람 님은 이태원 아웃리치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청량리 아웃리치 후기 (글쓴이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이룸 후원회원이 된지 반 년이 넘어갑니다. 지역사회에서 산부인과의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과, 그러던 중 학생때의 친분이 있던 유나와의 인연으로 이룸에 처음 발을 들여놨습니다. 진료연계? 의료상담? 정말 아무 밑그림도 없이 막연하게 이것저것 던져보는 저에게, 이루머들은 아웃리치를 같이 가볼것을 제안했습니다. 
 
아웃리치 구역은 크게 유리방 구역과 쪽방구역, 여인숙 구역으로 나뉩니다. 유리방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정육점 불빛으로 알고있는 그 이미지이고,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여인숙은 펨푸(pimp, 집결지 골목에 나와 있으면서 성판매여성과 손님을 연결해주는 포주. 주로 중장년여성) 들이 운영하고 수명의 여성들이 고용된 형태이고, 쪽방은 생애주기 가장 말년의 단계 언니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청량리에서도 한쪽 구석에 위치해 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마다 다른것들을 보겠죠. 깊이 파인 언니들의 가슴골이 보일수도, 빨간 불빛으로 기억할수도, 차창을 조금 내린채 천천히 지나가는 차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건 평균 15cm 가 넘는 높은 힐, 담배를 물고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있는 바 의자였습니다. 틀림없이 신체활동이 적은 직업이고, 햇빛을 적게 보기 때문에 비타민D 가 부족하여 뼈와 치아가 약할 것이고, 거기에 잘못된 자세와 허리에 무리가 가는 힐까지. 유리방 언니들의 자세에서 든 생각은, 쪽방 언니들과의 만남에서 명확해졌습니다. 중장년으로 갈수록, 이룸이 지원하는 부분은 의료지원부분이 점점 커지는데요, 디스크와 골다공증, 치아문제 같은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첫 아웃리치의 마지막 루트정도에서 눈길을 끈건 어느 한 유리방이었습니다. 쇼윈도 유리창 공간 뒤로, 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그야말로 1m 정도 남짓밖에 안되는 겁니다. 고시원과 비교가 될까요. 고공농성 진료지원을 자주 다니는 친구가 이야기해준 농성장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하늘 위, 바람이 세게 불어 첨탑 주위로 60cm 남짓하게 밖에 공간을 만들지 못해, 몸을 구겨 가둔 잠을 자고 떨어질까 공포심이 계속 든다는 이야기. 서울시내 한복판 가장 번화가지만, 몸을 가둘 공간은 겨우 1m. 저기서 섹스가 가능해 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려다가 쑥 들어갔습니다. 열악한 노동의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겁니다.
 
어쨌든 이 언니들은 존재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하고 있으며,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병과 피임 인공임신중절 정도 생각하고 시작한 이룸 후원이었지만, 아웃리치를 통해 이들의 삶과 노동을 조금은 가까이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세번정도의 아웃리치를 함께 했지만, 제가 눈썰미나 친화력이 안 좋아서인지, 언니들이 자주 들고나서인지. 아직도 항상 서먹서먹하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요. 라고 썼는데 11월에 청량리를 완전히 철거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 어떤 공간에서 어떤 노동을 하게 될까요.
 
 10월 6일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글쓴이 강유가람, 다큐멘터리 <이태원> 감독)

 

이번 아웃리치는 언니들과 유난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년 넘게 만나면서도 한 번도 가게 안에 들어와서 앉으라고 이야기 해주시지 않았던 

F언니도 들어와서 커피를 타주시면서 정치이야기, 추워져서 그런지 밖에 눈이온다며 

농담을 계속 하시기도 했습니다. 

 

S언니는 애지중지하는 반려견이 뺑소니에 치여서 다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경찰에 신고할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치료비도 많이 나왔을 텐데 

꼭 뺑소니범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 때마다 차를 대접해 주시던 A언니는 이번에는 신기한 미숫가루라떼를 주셨네요. 

진상 ‘손님’들에 대한 불만, 술을 많이 먹어야해서 숙취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일 하는 사람은 오래 살면 뭐하냐는 한탄까지..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속내를 털어놓아주셨습니다.

 

한 언니는 자기 업소에 있던 언니가 쉘터에 갔는데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구요, 

다른 업소에서는 이태원 업소 초입에 있는 가게 두 곳에 팻말이 쳐진 곳은 곳 이제 철거되고, 

재개발이 될 거라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언니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이룸로고가 새겨진 이번 아웃리치 물품 보온병의 인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지속적으로 방문해온 이룸에게 언니들의 신뢰가 쌓였다고 믿고 싶네요. ^^ 

물론 이름은 아직도 잘 기억 못하시지만 ;;; 

 

아무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언니들의 삶의 맥락에도 변화들이 많이 생겨날 텐데요.

다음 달에도 이태원 언덕배기 언니들의 이야기를 좀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후기를 닫겠습니다.

 

활동이야기

[후기] 우리가 이태원에 빚진 것_영화 <이태원> 을 보고

우리가 이태원에 빚진 것
– 영화<이태원>을 보고

완두

 
 
   이태원, 참 심플한 제목이다. 그만큼 이태원에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 가능한 그 곳만의 풍경과 역사가 있다. 하지만 그것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될 때는 이제까지 알았던 혹은 알고 있다고 믿었던 풍경에 균열을 예고한다. 누군가의 증언과 기록은 각자의 풍경이 서로의 경험과 기억에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존재 안팎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구체적인 소리와, 냄새와, 맛과, 온기로 실감한다. 내게 이 영화가 그랬다.

   이태원은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 정체성이 뒤섞여 있는 동시에 이태원하면 살인을 먼저 떠올릴 만큼 위험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10년 넘게 재개발이 늦춰져 방치되면서 저렴한 임대료를 보고 모인 청년, 예술가들에 의해 활기를 띠더니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맛집, 서점이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핫’해진 이곳을 [이룸]은 2015년 5월부터 <이태원>의 강유가람 감독과 함께 성매매를 경험하는 트랜스젠더/외국인/이주/여성을 만나기 위해 소방서 뒤편 유흥업소 밀집지역인 우사단길 일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태원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용산을 비롯한 전국 요지에 설치된 미군기지를 상대로 유흥업이 팽창한 지역 중 하나다. 지금은 당시 역사에 관심 있는 언론과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졌듯 기지촌은 미군의 원조가 절대적이었던 시기 여성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기획에서 설치‧운영되었다.
 


▲ 이태원 우사단로14길 일명 '후커힐'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평가받는다. “이태원에 있는 클럽에서 일한 여자들은 이 나라의 국보로 생각해야 돼. 쌍말로 말해 ‘엉덩이 국보’라고. 여자들이 보면 가족들이 셋 넷이 딸려있어. 안 딸려 있는 사람이 없어.” 라고 말하는 영화 속 나키의 증언은 이태원 클럽에서 일한 여성들이 성장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여성들과 이태원은 ‘성장’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을까?
 

   주인공 삼숙, 영화, 나키는 40년 넘게 이태원에 뿌리내리고 사는 노년여성이다. 세 여성은 세간의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당시를 회고한다. 반백년 넘게 살아온 이들의 삶은 실상 폭력, 빈곤,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태원은 그 세월을 함께 겪어낸 이웃과 김치를 나눠먹고, 가장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가족을 부양하고 또 잃어버린 형제를 기다리며 남은 인생을 살아내는 공간이다. 카메라는 세 여성이 이태원에서 일하고, 먹고, 관계 맺고, 노후한 주택으로 불편을 겪는 일상들을 쫓으며 관객에게 ‘지금-여기’의 이태원을 목격하길 청한다.
 

   성매매 경험 여성들은 주로 언론과 유흥업소 후기 사이트에서 오직 ‘몸’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남대문을 가도 다시 이태원 입구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는 이곳에 대한 나키의 애착과, 손수 준비한 음식들로 운영하던 업소의 40주년 파티를 열며 5년 더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치는 삼숙의 바람은 그들을 이태원 지역 주민으로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곧, “여기 재개발 안 될 거야. 말만 그러지 안 돼. 여기 못사는 사람들 많은데 어디로 가라고 갈 데 없는데 씨발 돈 있는 사람이야 팍팍 사서 가겠지만” 이라는 영화의 말이 무색하게도 보류됐던 재개발이 재개 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웃의 건물이 팔리고 철거된다. 나키는 낯선 인파속을 걸으며 “사람이 너무 많아 이태원이 꺼지겠다” 며 자본의 필요가 재촉하는 변화에 조용히 시름한다.
 

   근래 이태원에 정착한 청년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초기 값싼 월세로 흘러들어와 공방과 가게를 오픈한 청년들은 이태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을 꾸미거나 ‘계단장’, ‘마을투어’를 기획했다. 이들은 이곳만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면서 쇠퇴한 이태원에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꿈꿨다. 하지만 도리어 이들의 활동으로 이태원에 사람들의 발길이 늘자 투자자들의 욕망으로 상권이 형성되면서 부동산과 월세가 폭등해 청년들이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이태원은 현재 대표적인 유흥, 소비 공간으로 부상했다. 그 사이 이곳을 아끼고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거와 생계는 개발과 성장으로 위장된 자본권력에 의해 내몰리게 됐다. 세대는 다르지만 기지촌 출신 노년여성들과 청년의 상황은 ‘지금-여기’ 공통의 위기를 공유한다. 그들의 상황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삶과 공간이 이처럼 반복적으로 지워졌고 또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정당화 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2010년 한국 사회의 ‘화대’는 7조원. 같은 해 영화 산업 매출 1조2천억의 5배를 넘는다(<은밀한 호황>, 김기태, 하어영, p.58). 하지만 여성에게 성매매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중단하는 과정에서 빈곤은 떼놓을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이제까지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재개발, 도시정화, 성산업축소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 기업, 땅주인, 업주, 주변 상권과 지역주민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의 이익을 셈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누구의 손에 더 큰 이익이 떨어지는지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그곳에 왜 성매매집결지가 형성됐고 누구의 필요에 의해 지금까지 유지되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곳을 생계유지의 공간이자 '창녀'라는 편견어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의미화 해온 여성들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보상과 계획, 이를 위한 다각적인 논의는 공론화 되지 못했다. 지금 사회는 이유가 뭐였든 성매매여성의 존재와 공간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어떤 공간의 변화를 이야기 할 땐 그 공간에 누가 사는지를 비롯해 그 공간이기 때문에 알아야 하는 역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태원과 더불어 [이룸]이 10년 넘게 아웃리치를 가고 있는 청량리 역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빈곤, 건강, 주거 등의 생존 문제를 오직 자본의 흐름에 의지해 스스로를 전시해온, 그렇게 거주해온 이들의 공간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진다.
 

   최근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가 지역에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 친구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네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일까?” 언제든 내쫓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지금-여기’에서 우리 역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활동이야기

2016년 5-6월 청량리/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이번 아웃리치에서는 자원활동가 강유가람님과 함께 여름용 덧신양말에 이룸 스티커를 붙여서 가지고 갔습니다. 작년부터 여러 차례 아웃리치를 나가면서 이제는 얼굴이 익숙해지고 대화도 나눈 분들이 많은데, 보이던 얼굴이 안 보여서 물으면 일을 그만두셨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신 분들이 계셔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서요. 들고 남이 많은 업종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그 언니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실까 가끔 궁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번에도 몇몇 가게에서는 커피를 얻어 마시며 동네 소식도 듣고 언니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나가던 술 취한 외국인이 저희 길을 막고 방해를 할 땐 한 언니가 나와서 도와주시기도 하구요. 다음 달에는 트렌스젠더 언니들을 위한 특집 기사가 실린 별별신문을 가지고 갑니다. 기대해 주세요!

청량리 아웃리치 후기

6월 7일 화요일 낮에 점점 철거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청량리로 아웃리치를 나갔습니다. 녹색병원의 윤정원 산부인과 과장님이 이번에도 함께 해 주셨어요. 유리방, 여인숙, 쪽방은 각각 철거에 대해 체감하는 정도가 조금 달라보였습니다. 공통적으로 “어찌 할 바가 없으니 계속 버틴다. 시간은 걸릴 거다.”라는 말씀들을 하셨어요. 곳곳에 철거될 공간이라는 노란 스티커를 붙이러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윤정원 쌤은 쪽방 언니들의 의료지원 요청 내용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 보이셨어요. 특히 4-50대의 나이에 비해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이유에는 햇빛을 많이 못보고, 영양이 부족한 것, 술과 담배의 상시복용 등이 있을 수 있다며 영양제 복용을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다음에는 영양제를 들고 갈까봐요!!
(저희는 못보고 지나치는 부분들을 매의 눈으로 잡아내고 이야기해주신 윤정원 쌤~~ 완전 소중해요!!)

밤의 청량리는 여전히 북적북적했어요. 구매자들도 꽤 많이 봤고요. 문 닫혀있던 가게에 새로 들어오신 언니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예전에 알고지내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언니들을 만나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살아갈지, 갈 곳은 마땅치 않은데 생색내기용 이사비만 받아서는 뭘 계획하기도 애매하다는 이야기들, 온몸이 아파서 다른 일을 할 엄두가 안난다는 분…   참말로 답답한 일입니다.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틈바구니로 들어가려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이 까다로워서 쉽지가 않지만, 어찌저찌 같이 머리 싸매보자, 남은 긴 이야기들은 사무실 놀러오셔서 같이 밥 먹으며 나누자는 약속을 하곤 아웃리치를 마쳤어요.
활동가들은 이러저러 복잡한 마음에 쉽게 청량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도를 해봐야할텐데요. 가슴에 돌덩이가 묵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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