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빨간거북 양미(여성노동인권교육활동가)

 

‘벽’ 혹은 ‘시선’ : 7080 ‘어린 여공’과 2012 ‘공순이 언니들’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공순이 언니들’에 대한 일종의 ‘괴담’을 말한다. “길가다 마주치면 죽일 듯이 노려본다. 젊은 나이에 공장에 다니면 성격이 그렇게 된다. 기가 세다. 무섭다. 욕 잘한다. 술 잘 마신다. 벽이 좀 높지, 그런 인식이 박혀 있다.” 의미 없는 말들이고 근거도 없는 말들이다. 그럼에도 고등학교에서 길가다 목격한 ‘그런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이 영화가 2012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7080시절 이른바 ‘공순이’에 대한 당시의 편견을 말한 거라고 착각하고 싶을 만큼. 이야기는 ‘어린’ 여공이란 시선 속에 담긴 얄팍한 양심이나 동정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의미와 뜻이 모호한 웃음과 시선과 인식의 높은 ‘벽’에 대한 단정이 있을 뿐.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고, 벽은 더욱 두터워졌다.

 

하지만 모든 것엔 조그마한 ‘틈’이 있고, 그 틈이 타인과 나의 연결점을 찾아 공감하는 인권감수성이라면, 그 틈을 더 넓혀 차가운 시선과 두터운 벽의 한 귀퉁이라도 허물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그런 시선과 벽 따윈 거두고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빈곤한, 노동하는, 여성의, 신체에 새겨진 고통과 상흔들

 

삶이 스스로를 기록하는 저장장치가 있다면 그것은 신체가 아닐까. 신체는 스스로가 가진 삶의 조건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삶을 지탱한다.

 

모르겠네 모르겠네
흘러가는 시간과 손금 사이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우울함, 두려움: ‘한번 공순이는 영원한 공순이’, ‘어느 날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공장 밖에 없었다’는 현실. 모든 것이 후회가 되는데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후회조차도 부질없는 현실 속에서 눈물이 나고 속상한데 또 그러려니 하게 된다. 생각하기 싫은데 친구들을 만나면 또 짜증이 나고 뒤끝이 생기면서 뭐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떠올라 우울하다.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고, 분명히 해 봤던 일인데 하기 전부터 겁을 먹게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겁을 먹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뭐 때문인지 생각하다 또 속상하고 눈물 나고 우울해진다.

 

선택지 없음: 다음날 출근하라는 말에 통근버스에 실려 가는 몸. 어딘지도 모르고 도착한 곳. 소음, 귀마개, 신체의 이곳저곳 구멍들을 통해 삐져나온 열악하고 고된 노동의 흔적들(솜). 창문 없는 공장, 작업복, 명찰, 열악한 캐비넷, 정직원만 먹을 수 있는 아침밥, 사람취급 못 받으며 야근에 특근, 주말근무해서 받은 추가 수당은 다음 달에 병원비(과로, 편두통, 영양결핍과 불균형)로 더 많이 지출해야 하는 마이너스 삶. 반말(야, 이년아!), 김밥이나 쭈쭈바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한 번도 출근한 적 없는 곳에 출근하기 위해 기다리다 퇴사 처리되고, 아빠한테 차비 좀 줘 하기 싫어서 업소에 나가려고 아는 남자친구와 첫 경험을 치뤘어. 10만원이 필요해서 90만원 수수료를 내 가며 돈을 빌리고. 대학을 갈 수 없어서, 대학을 가도 졸업할 수가 없어서, 대학을 가도 졸업을 해도 의미가 없어서… 이 모든 것에서 나의 선택은 없어. 끔찍해.

 

학대: 몸뚱아리 조심해. 혼자 살잖아. 학부모에게 실실 웃어서 만만해 보여. 스트레스는 나보다 연약한 존재에게 전가된다. 고통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아래로 모인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럽다.

 

노동하는 기계: 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줘야 수량이 나온다. 짤수기, 탈수기, 압축기, 물기가 하나도 없어서 건어물 같아.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감정도 없고 뇌도 없고 나도 없다.

 

부속품 혹은 폐기물: 내몰기 위해서 미리 물량 땡겨서 만들어 두기. 회사를 너무 오래 다닌 고임금자, 맞벌이니까 한 달 동안 불려 다니기, 동생의 학비와 세금을 내기 위해 업소에서 일하기.

 

산재: 오존이 생기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는 거짓말. 마른기침, 심장마비, 사망, 기관지, 폐질환, 다 하니까 따라하는 거라는 모욕, 축농증, 비염…

 

희망 없는 삶에 연대하기

 

영화를 보며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일센치 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걸까? 부질없는 질문이다.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모든 기대는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 살아야 할 의무를 가진 존재로서 나는, 우리는 무엇에든 기대어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부디.

 

나는 가능하면 그것이 세상의 편견에 지지 않는 공감어린 따뜻한 연대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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