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루인(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정치적 의미 투쟁의 과정을 거쳐 구성된다. 때로 그 투쟁은 개인사나 가정사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 그 의미 투쟁은 국가 간 권력 관계와 군사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이 얽혀 있는 국제 정치 질서 차원과 함께 진행된다. ‘간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제니퍼 라우데는 살아서 국제 정치에 직접 영향을 끼칠 활동을 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라우데의 죽음은 국제 정치, 특히 미국과 필리핀 두 국가 사이의 협정과 트랜스 혐오가 긴밀하게 얽히는 장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며 일을 해온 라우데가 미 해군 일병 조셉 스콧 펨버튼에게 살해되었을 때 라우데의 죽음은 죽음 자체가 갖는 안타까움으로 애도되지 못했다. 주변 친구와 가족에게 라우데의 죽음은 트라우마이자 날벼락 같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라우데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성판매도 하는 트랜스여성이라는 점은 라우데의 죽음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라우데를 비난할 근거가 되도록 했다.

 

가해자 펨버튼은 라우데를 살해한 날 밤, 동료에게 “‘그것’이 고추를 갖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뒤에서 ‘그것’의 목을 졸랐다… 나 쉬메일을 죽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것it.’ 3인칭 단수 it은 대체로 물건이나 직전 사건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전화 통화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을 지칭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미국인 펨버튼은 제니퍼 라우데를 ‘그것’이라고 불렀다. 가해자 펨버튼에게 제니퍼 라우데는 삶이 있는 인격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괴물이었을까? 사람이 아니라 “쉬메일”이라는 멸칭에 가까운 범주 명명으로만 지칭할 끔찍함이었을까?

 

라우데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이 가해자 펨버튼에게 공감했다. “그 괴물이 여자인 척하고 얘기 안 한 거면 해군이 불쌍하다”, “호모들을 다 죽여라!”, “트랜스젠더 남자가 거짓말 한 거네. 이건 성폭력이야”, “펨버튼이 피해자다”, “라우데는 여자가 아니야, 남자지”, “정당한 살인이다. 이분은 미국으로 모셔와야 한다. 자기가 뭔지 숨기면 큰일 나는 거야…” 펨버튼을 불쌍히 여기고 제니퍼가 진짜 가해자라며 제니퍼를 비난하는 반응은 트랜스 혐오 살인 사건에서 항상 등장하고 이를 트랜스 패닉 방어라고 부르는데, 이 반응은 트랜스라는 범주 자체가 범죄이자 죽음을 야기할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트랜스젠더퀴어가 상대방에게 자신을 트랜스라고 미리 밝혔다는 증거가 부재할 때, 이것은 상대방에게(그리고 사회 전체를 향한) 기만이자 사기이며 상대방(과 사회)을 농락하는 행동이 된다. 트랜스를 비난하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때 트랜스 혐오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상대방이 트랜스라서 충격 받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해했다는 논리를 적극 펼칠 수 있다. 패닉 방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트랜스가 살해된 사건에서 살해된 트랜스를 가해자로 만드는 문화적 태도다.

 

가해자 펨버튼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펨버튼의 살인을 변호했다. “그는 남성과 성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당하는 기분이었고 역겨웠다고 말했습니다. 펨버튼은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문장만으로 수만 가지 논의가 가능하지만 몇 가지만 추려보자. 이성애자를 자처하는 사람의 명예란 무엇인가? 이성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예인가? 남성의 명예는 무엇인가? 남성 동성 간의 성관계는 남성의 명예를 해치는 일인가? 그런데 트랜스여성은 남성인가? 남성이란 무엇인가?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죽이는 행동은 명예로운 일인가? 펨버튼은 어디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가? 패닉 방어 논의에서 많은 가해자 남성은 남성성의 위기를 겪었다며 살인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트랜스여성 제니퍼 라우데는 왜 죽어야 했는가? 라우데의 약혼자 마크 수셀벡은 “왜 그곳에 가게 되었든 그녀의 죽음은 그 안에서 일어난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맞다. 라우데가 성판매를 했건 트랜스여성이건 다른 무엇이건 그 어떤 이유도 라우데가 살해될 근거가 되지 않는다. 라우데가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제니퍼 라우데의 어머니는 제니퍼의 무덤 앞에서 “그 놈이 네 꿈을 다 훔쳐갔어”라고 말했다. 제니퍼의 어머니에게 제니퍼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한 사람이며 기억할 추억과 역사가 있는 가족이다. 어머니에게 제니퍼는 더이상 온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온기가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라우데가 죽은 뒤 사회적 분위기 혹은 여론은 라우데의 죽음을 사건으로만 만들었고 가해자 펨버튼을 인간화했다. 펨버튼의 어머니는 펨버튼이 무척 착한 아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의 어느 페이지에선 펨버튼의 어린 시절 사진을 올리며 펨버튼의 인간성을 강조했다. 그 정점에 펨버튼의 누나가 있다. 펨버튼의 누나는 동성인 여성과 결혼을 앞두고 있고 펨버튼은 그런 누나와 매우 친한 사이라는 진술이 등장한다. 이 진술은 펨버튼이 퀴어에게 적의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리하여 트랜스여성 라우데를 혐오할 이유가 없음의 근거가 된다. 이를 통해 다음의 논리가 구성된다. ‘퀴어 인권 선진국인 미국에서 자랐고 퀴어와 친숙한 펨버튼은 라우데가 트랜스라서 살해한 것이 아니다. 라우데가 펨버튼을 기만하고 속였고 그로인해 펨버튼이 충격을 받아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펨버튼이 진짜 피해자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퀴어 혐오와 인종주의가 만연한 사회다. 동성애에 우호적이라고 해서 곧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비규범적으로 사는 가족 구성원에게 호의적이라고 해서 비규범적 타자에게도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논할 때 피해자는 괴물이 되고 가해자는 인간이 된다.

 

제니퍼 라우데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펨버튼이 가해자라고 해도 미국 군인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미국의 오랜 식민지였고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지배적 영향을 받고 있다. 동시에 미국과 필리핀은 외국군방문협정(VFA)을 맺었고, 이를 통해 미군이 필리핀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1년이 지나면 필리핀은 미군 범죄인를 처벌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군 중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라우데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국제 정치 질서에도 위치한다. 라우데의 가족을 지원하고 라우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 중 메레디스 탈루산과 나오미 폰타노스의 입장 차이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영화의 스토리 진행을 담당하는 메레디스는 필리핀계 미국인이며 트랜스여성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논평을 하는 나오미는 필리핀인이며 트랜스여성이자 활동가다. 이 둘은 다큐멘터리 말미에 재판부의 결정을 두고 다른 입장을 보인다. 메레디스는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 소재 감옥에 구금하기로 한 것을 두고 “미국이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오미는 이 판결이 “자기들[미국] 뜻대로 된”것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미국은 펨버튼의 신병을 필리핀에 인도하지 않았다. 나오미의 지적처럼, 재판부는 펨버튼에게 과실치사라는 경미한 유죄판결을 했고 이것은 VFA와 미국의 입장을 최대한 신경쓰고 있음을 드러냈다. 라우데의 죽음은 미국 제국주의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말해준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은 없으며 죽음이 언급되는 무수하게 많은 지형을 통해 죽음의 의미가 생산된다. 그렇게 생산된 의미가 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거나 친구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답답함과 슬픔이 더 커지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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