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 + 라운드테이블 + 드랙킹 아장맨 공연 프로그램 관객후기

_꽃분이

 

Q. <야간근무> 상영 후, 지하철을 한 정거장 걸어갔다며. 왜? 어떤 마음이었어?

 

꽃분 : 먹먹하고, 씁쓸했어. 올라오는 울음을 참기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가며 걸어갔어.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간 토끼굴에서의 다른 세계를 접했던 것 처럼, 난 코쿤홀(Hall이 아니라. Hole)에 들어간거야. 그 다른 세계에서 흐렸던 안경의 초점을 맞춰 나왔다랄까. 스스로 운동성이 있다거나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없는 나 였고, 그저 초대에 응한 것 뿐이었으니. 큰 기대도 없었어. 하지만 그 시간은 나의 감각들을 완전 뒤집어 놓았지.

 

 

Q. 어떤 부분이 인상 깊게 남아?

 

꽃분: 세 가지 파트 모두 느껴지는 것들이 달랐어. 영화 벌새를 보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였거든. 혼자 숨어서 자고 있던 내 방에 영화 <벌새>가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웠다면, <야간근무> 는 눈을 뜨려는 내게 물벼락을 끼얹었고, 라운드테이블은 물벼락을 맞은 나를 흠씬 두들겨 팼고, 아장맨의 공연은 그렇게 정신차리지 못하는 나를 일으켜 세워 안경을 씌워줬어.
영화 <야간근무> → 모자를 눌러쓰고 알바를 한다거나, 애매하기 싫어서 떠난다는 워킹홀리데이 등. 아마 연희는 직면한 현실 속에서 절망을 알았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었을 것 같아. 아주 잘 다듬어지고 허울 좋은 ‘어학연수, 경제적 이득, 취업도 가능한.’ 것으로 본인의 욕망을 보기 좋게 씌우는 모습에서 나를 봤어. 푸-욱. 찔러 들어왔어. 비행기에서 내린 연희의 모습과, 영화 시작 린의 내래이션이 겹쳐지는 상상을 하며, 찔린 내 가슴이 숨막히며 먹먹하던 때 라운드 테이블이 시작되었지.
라운드테이블 → 마지막의 레나님 이야기가 선명하게 남아있어. 내 삶에 두고두고 남을 이야기일거야. ” (레나) 이 말하기를 통해 저는 성장했고, 모든게 괜찮아요 라고 말하기가 힘들고 싫어요. 성장이 결과로 끝나버리는 획일화된 기대감이 숨막히기 때문이에요. 결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곧바로 다른 삶이 이어지지도 않을거에요. 성장은 지속될 것이고, 새로운 것들은 내게 낯설기에 위태로울 수 있어요. 이 말하기가 끝나면 전 아플거에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들을 직면했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적나라하게 글과 말로 펼쳐내고. 사람들에게 전달했다는 그 용기에 너무 감동했고. 박수 쳐 주고 싶었어.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의한 너무나 쉽게 위로를 건네는 말 들이 있잖아. ‘다 잘 될 거에요. 괜찮아요.’ 이런 위로 보다 더 큰, 내게는 감히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위로의 말로 다가와 엄청 뭉클했어. 눈물 참느라 혼났어. 소윤님의 이야기는 여성으로서 내게 주입 되어진, 사회에서 요구하여 생겨난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 단 한번도 그런 검열적 사고를 해본적이 없었는데 더 크고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거야. 또한 그때 까지만해도 말야, 내게 있어 소윤님은 소위 ‘가진 자.’ 로 분류가 되어있었어. ‘(나보다 더 경제, 문화, 지식적으로) 가진자가, 무슨 고민이 있어 홧병이 생기는가.’ 라며 비꼬아 들었던 것도 사실이거든. 하지만 이 상영회 이후, 아픔과 고통은 개인의 서사로 부터 왔기에 생겨난 그것 그대로 존중해야한다 라는 깨달음을 얻었어. 아마 상영회 이후, 많은 것들을 곱씹어 보던 내게 씌워져있던 편견과 감춰진 욕망의 단물이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Q.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나부터 현실을 직면하고 그 욕망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 대신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보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꽃분 : 맞아. 그 보편성을 기저로 이 사회는 ‘함께’ 공생하는 길, 외롭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거야. 라운드테이블과 같은 기회, 그런 기꺼이 말하고 들어주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 되돌아 보고 싶어졌어 나도.

 

 

Q. 드랙은 어땠어, 처음이었지?

 

꽃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장르였지. 막연한 기대로 시작한 아장맨의 공연은 생각보다 노멀했고, 눈과 귀가 즐거웠어. 하지만 ‘남성의 목소리가 나오니 주의해주세요.’ 멘트와 함께 시작된 공연은 나의 멘탈을 아작냈어. 하하하. 들려오는 남자들의 다양한 멘트에 심박수는 올라가고 그 멘트들을 내뱉던 지난 날의 남성들의 얼굴들이 막 뒤섞여 올라오는거야. 속으로 쌍욕을 한바가지 하면서 눈물도 참았고.

 

 

Q.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꽃분 :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내 인생을 지나온 동안 만난 모든 남성들이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입장으로 듣고 있으니까 잘못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단박에 알겠는거야. 객관화 시켜 되돌아 보게되는 굉장한 경험의 기회였어.

 

 

Q. 얼마나 자연화 되어있으면 자각도 못하고 있었을까.

 

꽃분: 응, 그래서 막 내가 안타깝고.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서글펐어. 연애에 대한 새로운 다짐도 하게 되더라고. 그런 상태로 코쿤홀을 나왔으니, 제정신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었겠어? 하하하. 영화 <헤드윅> 을 정말 좋아해서 몇번을 다시 보았지만, 그날 이후로 헤드윅의 마지막 장면이 어느 때 보다 강렬하게 떠올랐.어. 발가벗은 몸으로 그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는 헤드윅의 뒷 모습 말야. 그와 같은 선상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아. 상영회는 선명하게 다가온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가야할지, 그 방향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 이제는 발을 떼어봐야겠지.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상영회에 초대해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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