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혜진(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이태원과 청량리라는 공간

 

이태원은 용산 주둔 미군기지, 그리고 국가 발전 전략으로서 성매매 관광 및 미군 ‘위안부’를 장려한 한국정부 간 이해관계가 만나는 공간이다. 그렇게 이태원은 기지촌으로 성장해왔다. 이 공간의 역사는, 제기동과 청량리동에 주둔한 미군부대 기지촌으로 형성되어 정부가 성매매 금지 정책을 폄과 동시에 ‘특정지역’으로 선정해 ‘묵인-관리’했던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와 겹쳐진다.

 

현재의 다변화된 성산업 내에서 성매매집결지들은 국가과 부동산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낙후된’ 공간으로 위치 지어졌다. 청량리 성매매집결지는 2017년 재개발로 폐쇄되었고, 그 안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쫓겨나 도시 외곽에 아직 남아있는 다른 집결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집결지들 또한 재개발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태원은 기지촌 역사에서 파생한 ‘이국적’이고 퀴어한 공간이라는 특성과 저렴한 지대로 인해 젊은 예술가들이 터를 잡은 힙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유명세에 뒤따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화두가 되었다.

 

이태원과 청량리의 여성

 

다큐는 긴 세월을 이태원에서 미군 대상 유흥산업에 종사한 삼숙, 나키, 영화 3인의 삶을 조명한다. 당연하게도 긴 세월을 청량리 집결지에서 살아온 불량언니 작업장의 여성들, 이룸이 만나온 많은 여성들의 삶과 겹쳐진다.

 

세 여성은 원가족 혹은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여성들은 원가족의 폭력도 불구하고 그들을 책임지려 하며 자녀에게 미칠 낙인을 걱정하고 아파하며 온 힘을 다해 양육해낸다. 가족과 얽힌 절망적인 상황들과 복잡한 감정들을 온갖 사람들에게서 마주하게 된다. ‘가족’이, ‘자녀’가 여성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인 남편과 거리를 걷다가 ‘늙은 사람도 양갈보하네’라는 소리를 듣는 삼숙의 얘기에서 알 수 있듯, 이태원에 거주하는 여성은 ‘양갈보’로 연결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닌다. ‘청량리 588’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들은 ‘이태원 여성’, ‘청량리 여성’이라는 낙인, 차별, 폭력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보낸 이 공간은 여성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나의 자리가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자기가 인정을 하는 자리에 있고 싶은 거야. 누구나 다’라는 나키의 말처럼. ‘청량리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는 몇 청량리 여성의 말처럼.

 

지금은 식당에서 일을 하는 나키는, 사장의 급작스러운 통보로 수입이 반으로 줄었을 때 “어제는 클럽 뚫고 들어가서 일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니까. 봐바. 나 이렇게 하면 손님빨 좀 받지.’라는 얘기를 건넨다. 유흥산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에게 ‘나이듦’은 어떤 의미일까. ”언제까지 이 일 할 수는 없잖아“라는 말처럼 ‘나이듦’은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성산업 내에서 더 열악한 환경에 배치될 것임을 뜻한다. ‘여성성’은 여성들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이듦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고, 여성들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흐르는 시간을 거스르며 변치 않고 ‘여성성’에 부합하는 몸과 얼굴일 것이 요구된다. 자연스럽게도 시간이 흐르고, 고정된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몸이 되고, 나이가 들고, 일 자체가 힘든 몸이 되어도 다른 자원이 없다면, 별 수 없이 계속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청량리 여성들은 생활비를 위해, 다른 집결지에 나가기도, 식당일을 하기도, 청소일을 하기도, 인력사무소에서 주는 장‧단기 일들을 받아서 하기도 한다. 그리고 ‘팔릴 수 있는 마지노선의 나이’에 자신의 나이에 멈춰놓기 위해, 성형과 시술을 고민하기도 한다.

 

근대의 시간과 여성의 시간

 

이태원, 청량리 두 공간은 미군 기지촌으로써, 국가의 발전전략으로써, 유흥∙성산업 집결지로써,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재개발로, 제국주의∙남성∙국가∙자본의 이해에 따른 시간을 흘러왔다. 이 공간들이 기지촌으로서 구성된 60-80년대에 이곳에 들어와, 그 이후의 긴 시간들을 이 공간에서 보내오고 있는 40-60년대 생 여성들의 삶은 어떤 시간을 흐르며 살아가야 했을까.

 

국가의 발전전략에서 여성들에게는 저렴하고 온순한 노동력으로 착취당할 것, 결혼으로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가정’의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착실하게 비가시화된 존재로써 사회 재생산을 해낼 것, 무조건적 돌봄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가정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시간 각본이 요구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에게는 근대적 시간 바깥에 위치하기를, 그러면서도 멈춰있는 시간 속에 ‘여성성의 본질’이라고 상상되는 바를 지속하고 유지하기를, 서로 모순적인 두 가지의 과제가 주어진다.

 

‘정상적’인 시간 각본에서 벗어난,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의 ‘시간의 흐름’, ‘나이듦’은 더더욱 모순 속에서 고군분투하게끔 한다. 근대의 시간성(남성∙국가∙자본의 시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하고 공간도 변화하지만, 그 안에 그녀들의 시간성은 없다. 그녀들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 요구된다. 가족에게 폭력이 있더라도, 변치 않고 경제적, 정서적 ‘돌봄’을 해줄 것을. 시간이 흘렀더라도, 변치 않고, 여성성에 부합하는 몸과 얼굴이기를.

 

이태원, 청량리, 여성들, 절망과 욕망

 

모진 시간을 보내온 그녀들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호텔을 차려서 돈을 벌겠다는 삼숙, 어디만 어떻게 하면 지금도 업소 가면 돈 땡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감각을 경험하는 많은 여성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유예하여 몸의 한계를 늘리고, 수술을 미루는 여성들, 현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 남편을, 자녀를 찾으며 가족을 붙드는 여성들. 여전히 그녀들의 시간은 흐르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많은 자원 없는 노년이 자신의 시간성을 유예한다. 연금과 부양해줄 만한 가족이 없는, 자원 없는 사람들에게 몸의 기능이 ‘정상성’에서 벗어났을 때 삶을 위한 선택지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일할 수 있는 나이’로 묶어두게 된다. 현 사회의 ‘정상성’은 무엇인지, 어떤 기준의, 누구를 위한 ‘정상성’인지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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