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레나(학벌을 비판하면서도 욕망하는 모순 덩어리)

 

연희는 한국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다니지만 졸업 하지 않은 상황에서 25세가 된 여성이다. 졸업을 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준비’라는 루틴이 아닌 공장에서 ‘평범’하게 일하던 중, 아침 퇴근길 버스에서 출근하는 사람의 통화내용을 듣고 한참 생각한다. 카메라는 클로즈업 상태로 연희를 꽤나 오랫동안 카메라에 담아내며,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는 여성의 통화내용을 선명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자신의 상태를 ‘애매’하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부딪히며 생겨나는 파열음이 들린다. 연희가 버스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알 것만 같다.

 

‘어, 나 이제 출근해. 버스야.’라는 통화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울정도로 울기 시작했고, 당황스러웠다. 어디서 이입을 한 거지, 왜 저 말이 사무치게 아플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연희가 비참함을 느꼈을 거라고 인지하자 ‘정상’이란 범주에 속하지 못해 방황하던 나의 삶을 떠올리게 됐다.

 

면접 때마다 왜 사이버대학을 다니냐는 말에 나의 부모는 인품은 좋지만 가난하고, 그러한 부모 밑에서 성실하고 바르게 커왔고, 나의 생계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조건,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하며 ‘착실’하고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고 말해왔다. 반은 맞고 반은 거짓임에도, 그냥 살기 위해서 거짓말 할 수 있지 뭐, 하고 넘길 수 있음에도 나는 내 삶을 거짓덩어리라고 여겼다. 나는 성실하고 바르지 않으며, 대학을 ‘못’갔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죄책감은 내 삶을 온통 잘못됐다고 비난하며, 게으르고 무능력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정상’적인 삶을 거짓으로만 두기엔 참을 수 없었고, 실현시키고 싶었다. 인서울 4년제 대학이 필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대학은 모를 수가 없지’, 라고 여겨지는 곳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았다.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진짜 목적은 취업이 아니다. ‘어느 대학’을 다닌다는/나왔다는 말로 소속감을 얻을 수 있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겐 많은 것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아무도 내게 집안사정과 가난을 묻지 않을 방패가 필요했다.

 

캄보디아에서의 삶 보다 나을 것이라 여겨지는 기회의 땅, 한국으로 온 린은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라는 위협을 받자 있는 힘껏 째려보고, 주말특근을 요구하는 공장장의 압박에 ‘한국 사람도 주말에 일하냐’는 반문을 던지고, 자신의 친구에게 연희를 ‘좋은 한국인 친구’라고 소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연희가 갑자기 호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넌 한국인이고 이 땅이 기회의 땅이라고, 왜 모르냐는 듯이 외친다. 연희는 질문으로 답한다. 너는 한국에 와서 힘들었냐고. 린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 중 ‘한국에 온지 벌써 4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무섭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던 린은 혼자 자전거를 고치러 다니면서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괜찮을까’ 하고.

 

린은 연희가 공장을 그만두겠다는 소식을 안 뒤, 처음으로 화를 낸다. 무엇일까. 짐작해 보건데, 죽었다 깨어나도 가지지 못할 소속감, 타자가 아닌 삶, 무엇을 하든 나를 쳐다보지 않는 삶 등과 같이 있는 그대로 여겨지지 못하는 삶에 대한 누적과 자신과 같은 줄 알았던 친구가 떠날 때 느껴지는,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입시에 실패하고 이런저런 삶을 살던 내게 ‘실패자’가 아님을 알려준 계기가 있었고 그렇게 ‘운동’에 발을 들였다. 함께하던 사람들이 정말 좋았고, 20여 년간의 삶속에서 묵혀왔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 했다. 하지만 자꾸 이들과 나를 다르게 바라보고 꼬이게 만드는 게 있었다. 나는 없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학생회, 학생운동 이야기를 들을수록 끼고 싶고, 이해하고 싶었으며 선망도 생겨났지만 어느 순간 그 이야기를 끔찍히도 듣기 싫어했다. 그럼에도 나는 입을 다물고 ‘내가 대학을 못가서 그래’, ‘대학가면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멍청하다’는 언어폭력을 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과 농담이겠지, 하며 넘겨왔다.

 

말을 삼키고 다시 학벌로 꼬여가던 시간들이 결국엔 터져 나오면서 정말 괜찮았던 시간들 인건지, 함께 쌓아나간 시간들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자기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민했다.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지? 나는 또 다시 ‘소속’없이 혼자가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애써서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고 받아들였건만, 나는 또 다른 실패자가 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들 자기를 잘 챙기면서 살아왔는데 넌 미련했다고. 넌 ‘멍청하다’고. 어떻게 하면 ‘멍청’해지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살았지만, 생각보다 잘 안됐다. 여전히 느리고, 잘 못 알아듣고, 빠릿빠릿하지 못하다. 나는 똑똑하고 무엇이든 잘해내던, 좋은 학벌을 지닌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종종 ‘좋은 대학을 가면 내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환상과 기대감이 존재한다.

 

이런 내가 너무 싫고 수치스럽다는 감정의 파도 때문에 몇날며칠을 힘들어하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고통 받으면서 글을 써내려 가야하는 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힘들면 안 해도 되는데, 그럼 실무자들이 너무 괴롭겠지, 라는 애정 섞인 미안함도 있지만 그보다 멍청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겨질까봐 두려웠다. 사회에 내 존재가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길 간절히 바라기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을 가고 싶은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못하겠다기보다 그게 내 꼬임을 풀 수 있는 대안이 아님을 알아버렸고, 내가 ‘멍청’’한지 아닌지, 실패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분석보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온 몸이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하겠는 감각이 한 무더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붙잡고 나의 경험을 최대한 덜 꾸며내어 가며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혼자서 전단지 배포하는 일을 할 땐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공장에서 일할 때는 고개 한번 들지 않아 회색빛이 돌던 그이들은 서로를 마주할 때 자신들의 감정에 맞는 색으로 밝혀진다. 버겁고 지치는 삶이지만 만나서 반갑고, 마음은 엉켜있지만 망가진 자전거를 고치고 함께 바다에 가 폭죽을 터트리며 드러낼 수 있는 만큼 속을 비추면서 말이다. ‘나’라는 존재가 탈을 쓴 채 상처를 잘 감당하고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거나 원치 않는 방식으로 환원되어 설명 되는 게 아닌, 연결 될 때 나오는 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끌려가거나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 서로의 중력을 이해할 때 나올 수 있는 힘. 무엇인지 명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영화에서 얼핏 본 광경을 믿고 싶어졌다.

 

꼬여있는 나를 직면하고,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닌 그저 감응하고, 각자의 차이, 파편화된 경험을 영화 <야간근무> 라운드테이블에서 배치해보려고 한다. 모든 여성이 겪는 억압이라고 선언하기엔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들이 잔존해 설명되기 부족했지만, 선을 긋기엔 같은 시간/공간을 공유하며 물적-심리적-관계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를 느끼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네 사람의 연결고리를 포착했다. 감당할 수 없고 채워질 수 없는 언어들로 서로의 차이와 경험을 옭아매지 않되 기존의 세계에서 분석되어오던 방식이 아닌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 연결지어보려고 한다. ‘밀레니얼세대’, ‘영영페미’, ‘2030세대’, ‘청년’과 같은 언어들로 묶여져서 이야기되던 서사를 <섹션 1 성매매에 대해 말하지 않기 : 영화 “야간근무” – 여성 빈곤 라운드테이블> 라는 제목으로 함께 덜 다치고 더 직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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