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 프로그램 관객후기

_유결(마음충전소 결)

 

이룸이 영화제를 한다기에, 별 생각없이 스탭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이틀간의 영화제를 마치고 진행된 뒷풀이는, 살아남은 소수와 함께 우리집까지 와서 동이 튼 뒤까지 이어졌다.

 

영화제 내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이후에 마련된 씨네토크와 라운드테이블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계속 올라오던 묵지근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그냥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하느라 그런건가 했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나오는대로 떠들어대다보니, 그제서야 내 감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빈곤한 여성으로 살아왔으나, 언제나 나의 빈곤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때는 IMF가 터진 직후였다. 사람들은 나라를 살리겠다며 금을 모았다. 학교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을 운운하며 금을 모으자고 했다. 우리집은 그렇게 보탤 금붙이 하나 없었지만 나는 국채보상운동 운운하는 그 정의감에 젖어 몇 해 전 외할머니가 주신 작은 금반지를 내놓았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반지 팔아서 술이나 한 잔 더 사먹을걸 그랬다.

 

여튼 IMF의 여파가 우리집에도 미쳤다. 아버지는 그래도 대기업 직원으로 트럭을 운전했었는데, 아버지네 팀은 통째로 아버지네 팀보다도 규모가 작았던 중소기업으로 옮겨지고 급여는 반토막이 났다. 이미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시험까지 화려하게 망한 나는 지방에 있는 사립대에 입학했다.

 

IMF가 터진 뒤에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난을 딛고 일어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빈곤과 무능을 등치시켰고 나는 내 가난을,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아버지는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밤새 술먹고 새벽에 음주상태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부잣집의 스물두살짜리 아들내미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차를 받아버렸다. 아버지의 병실에 와서 자기자랑하던 가해자의 아버지도 잊혀지지 않는데, 아버지 과실도 있다고 와서 우기던 경찰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그걸 다 들어주고, 심지어 어린 손주의 미래를 위해 선처해달라는 할머니의 눈물에 바로 탄원서를 써주셨다. 그리고 합의금을 한 푼도 안받으셨다. 나는 자취방 월세며 생활비로 받던 30만원이 끊어졌다.

 

동기들 사이에서 방학 때 돈을 버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공장에 가면 돈이 좀 된다더라. 골프 캐디 일을 하면 돈이 좀 벌린다더라. 몇학번 누구는 휴학하고 1년동안 공장에 가서, 캐디 일을 해서 학비를 벌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나는 공장에 가고싶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내가 과외가 아닌 공장이나 골프장에 가서 돈을 버는 건 화이트칼라로 살기 위해 공부를 해온 내가 나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았으니까.

 

 

연희와 린은 야간근무를 하면서 호주에 갈 자금을 모으고 본국의 가족을 부양한다. 둘은 열심히 산다. 정말 열심히 산다.

 

나는 그런 장면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때 마다 이상한 부채감에 시달린다. 힘들었던 대학시절에 공장에도 가보지 않았던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있는데, 무능한 주제에 열심히조차 살지 않은 사람일까봐 두려운 것에 가깝다. 가난하더라도 죽도록 열심히 일하기라도 해야, 그나마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각인된 것 같다.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과외를 하며 하루하루 버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매달 내야하는 월세와 고픈 배를 채워야한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인자하기 그지없던 자취방 주인할아버지는 일주일 밀린 월세 때문에 나무문을 부서질 것 같이 두드리며 월세를 재촉했고 결국 그 때 처음으로 현금서비스라는 것에 손을 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게, 캠퍼스 안에 버젓이 카드를 발급해주는 테이블이 있었다. 벌이도 없는 학생들에게 한도 수백만원짜리 카드를 발급해줬다. 발급받으면 주는 사은품을 받겠다고 발급받은 카드가 이미 여러장이었으니까.

 

월세 내자고, 밥이라도 먹겠다고 카드를 쓰기 시작한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다. 그 때 매일 걸려오던 카드회사의 독촉전화에 질려 나는 지금도 핸드폰을 벨소리로 해두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상태의 학생들은 많았다. 그 때 어떤 동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야. 그래도 여자는 몸이라도 팔면 되지. 뭐 티도 안나잖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꼭 서울이어야 했다. 옛말에도 있지않은가.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어떻게든 쌓여있는 빚을 갚고 서울에서 제대로 살고싶었다. 서른이 되면 전세집에 차 한대는 가지는 삶을 살 수 있을거라 믿었다. 운동권 출신의 사업가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비정규직 가득한 회사를 만들었고, 나는 정규직이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기본급 80만원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내 사수도, 차장도, 부장도 모두 사장과 같은 계열의 운동권 후배들이었고, 모 진보정당 당원이었으며,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내게 심어주었기에, 정말 열심히 일했고, 비정규직으로 2년만에 퇴사했다. 빚은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갔고, 사장은 고문당했던 경험을 인터뷰하며 정치인이 되었다.

 

 

영화를 마친 뒤 라운드테이블에서 레나와 소윤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레나의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부대껴서 집중해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랑 너무 다른 환경과 삶인 것 같은데 너무 부대껴서 괜히 핸드폰을 들고 이것저것 어플을 실행시키고 있었지만 레나의 이야기만 귀에 들렸던 것 같다.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삶을 살며 위계와 권력에 어떻게 드나들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현타가 온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레나의 이야기가 부대꼈던건 아직까지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빈곤했던 삶을 포장하고 있는 나와 달리 그걸 솔직하게 사람들앞에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이 들통날 것만 같았다.

 

 

학벌을 비판하면서도 욕망하는 모순덩어리.

 

내가 살았던 도시는 고교입시 비평준화 지역이었는데, 그 도시에서는 고등학교 교복이 일종의 계급장이었다. 소위 명문고 교복을 입고있으면 놀다가 늦게 들어가도 공부하다 늦게 들어가는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지 않은 학교의 교복을 입고있으면,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도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밤늦게까지 논다고 손가락질 받는 방식으로. 고등학교가 나뉘면서 친했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면서 이런 식의 학벌지상주의를 계속 비판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명문대에 가고싶었다.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성공하고나서 말하라는 그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다.

 

부모님이 부자가 아닌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집이 가난해도 성공하는 삶을 꿈꿨다. 그 성공의 시작은 대학교였는데, 보기좋게 시험을 망쳤고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가난하니까 낮춰서 지원하고 장학금을 받고 지방사립대를 간 무능하지 않은 나로 포장했다. 학벌을 비판하면서도 나의 학벌컴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학벌지상주의가 잘못되었다는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나는 명문대 타이틀을 꿈꿨다.

 

 

영화에서 보여지던 연희네 집과 린의 집에는 빈곤함이 묻어있다. 어떻게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을 것 같이. 너무 익숙한 환경들을 보면서도 나는 열심히 살아서 더 나은 환경으로 살고있기에 나는 빈곤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다고 나에게 세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빈곤한 여성이 아니라고. 아무리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절망스러운 빈곤을 이 도시에서 성공해낼거라는 욕망으로 꾹꾹 눌러덮고 싶었다.

 

 

레나의 이야기가 유독 와닿았던건, 나는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냈고, 그렇게 드러낸 레나는 강해보였기 때문이다. 애써 포장하고, 내 욕망으로 절망을 덮은 내가 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함이 주는 힘을 본거다. 솔직하게 드러낸 레나는 전혀 실패하거나, 무능하거나, 빈곤하게 보이지 않았다.

 

 

영화제 내내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라는 이 타이틀을 되뇌었다. 대체 누가 이런 기깔나는 타이틀을 뽑았냐고 진짜 거짓말 조금많이 보태서 백번은 말한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이 타이틀이 나에게 다가왔는지, 이 글을 쓰다가 확실히 알았다. 앞에 나열한 나의 서사를 요약한 문장이었다.

 

 

* 처음엔 ‘빈곤한 성소수자 여성’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성소수자 이야기까지 넣으면 대하드라마가 될 것 같아, 빈곤한 여성으로의 서사만 쓴다.

 

 

** 스무살 이후,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다듬어주고 봐주었던 친구가 내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올해 어느 봄날에 먼저 떠나갔는데, 그 친구에게도 이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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