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세계를 삭게 할까요?
왜 세계는 삭을 대로 삭아야 세계일까요?”
_최승자, 왜 세계는

 

 

2019 이룸 영화제는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서 아시아 성산업 현장 속 젠더화된 빈곤의 풍경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여성들의 욕망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빈곤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꿈’을 꾸도록 만들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쥐어주는 것처럼 작동한다. 먼 미래를 단계적으로 기획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열악한 삶의 조건은 ‘꿈’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그러므로 그 ‘꿈’은 여성들이 국경을 넘고 도시를 이동하며 소진이 일상이 되도록 일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젠더화된 빈곤의 풍경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사회는 말한다. 니가 ‘다 알고도’ 원해서 선택했다고. 너의 욕망이 좌절과 우울과 가난이라는 결과의 원인인 것처럼 여성들을 심문한다. 하지만 제대로 따지고 보면 오히려 원인으로 지목된 여성들의 욕망이야말로 절망적인 현실을 말하지 못하게끔 사후적으로 구성된 결과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 맞서려면 그 인과관계의 전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하다. 이룸 영화제는 절망을 은폐하면서도 절망에 의존하여 증식하는 욕망의 엔진과, 그것이 굴러가게 하는 도시의 역학을 드러내려 한다.

 

가부장제 국가와 자본의 공모관계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와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를 전혀 무관한 별개의 시공간으로 분할하고, 전자를 낙인찍음으로써 후자의 사회를 합리화한다. 빈곤한 여성들을 분할해 누군가를 오직 ‘성매매여성’으로서’만’ 존재하게 만들고 그럴 때에만 자신의 경험을 증명하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의 관계들은 무엇인가? 성매매여성이라는 범주를 벗어났다고 간주되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성매매여성이 살아가는 세계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되는가? 정말로 세계를 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삭을 대로 삭아야만 하는 것인가?

 

이미 “삭을 대로 삭아”버린 세계에 그저 ‘사망선고’를 내리려고 했다면 우리는 영화제를 시작하지도, 이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 세계를 잘 보기 위해서,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직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외로울 것이라는 믿음이 질문을 던지게 했다. ‘여긴 안 될 거야. 망했어. 틀렸어’라고 말하며 냉소와 환멸로 무장하고 ‘삶을 죽음으로 환원’하던 바로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행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있었단 걸, 단지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부끄러움.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찾아오는 안도감이 이제야 절망을 조금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영화제를 준비하던 과정은 “이렇게 하는 게 맞나?”와 “그래도 일단 해보자”의 무한반복이었으며 무엇 하나 미리 주어지거나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은 ‘한계가 없는 방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방황은 우리에게 해본 적 없는 모험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어주었고, 모험의 과정에서 용기와 도움을 건네준 모든 분들 덕분에 무사히 영화제의 막이 오르려 한다.

 

직면하는 자의 용기가 얼마나 놀랍고 강력한지 알려준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자신이 방황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객분들을 이룸 영화제가 기다리겠습니다. (소윤)

 

2019 이룸 영화제를 함께 만든 사람들

 

기획
고진달래 | 레나 | 별 | 소윤 | 유나 | 차차 | 혜진

 

자문
정소희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 강유가람 영희야놀자 | 레고 서울인권영화제 |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 류진희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장애인접근권
수어통역협동조합 |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 서울인권영화제

 

자막번역/감수
남선 | 서울인권영화제

 

디자인/제작
포스터/리플렛/프로그램북/현수막 이효정 GRAFIK P.L-F | 트레일러 홍혜미 감독 | 홈페이지 부깽

 

씨네토크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 홍효은 <아무도 꾸지 않은 꿈> 감독 |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 유나 | 별 | 레나 | 소윤 | 강유가람 영희야 놀자, <이태원> 감독 | 루인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 차차 | 고진달래 | 이고운 <호스트 네이션> 감독 | 조이스 두레방 | 류진희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 전희경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 혜진

 

프로그램북
소윤 | 별 | 차차 | 유나 |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 빨간거북 양미 여성노동인권교육활동가 | 레나 | 루인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 숲이아 | 조이스 두레방 | 현미 이룸공부방 | 혜진 | 김아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공연
드랙킹 퍼포머 아장맨

 

전시
불량언니 작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