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 부르는 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미 있고 좋은 뜻을 품고 아이가 삶에서 중요한 가치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면서 정성 들여 시간을 갖고 짓기도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 특별히 좋은 의미를 담아 짓는 정성을 보이기도 한다.  한 평생 남이 불러주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이름들은 사람들 개인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은행, 동사무소, 각종 계약, 교육 등에서, 사회와 사람들과 만나면서, 계속 이름으로 나를 확인 받고 증명하면서, 좋든 싫든 이름은 전면에 나서게 된다.


나의 의지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서, 괴상한 뜻이나 발음이라서 개명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별칭을 지어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는 등 이름을 둘러싼 개인의 자기증명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번 별별신문에서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이름은 어떤 의미이고, 이 이름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사용되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나를 설명해주는 이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 다양한 이름과의 관계 맺기와 끊기, 다시 기억하기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업소이름과 어떤 의미와 관계가 있을까


 


  <공통 질문 내용>


①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어요? 특별히 그 이름으로 지은 이유가 있나요?


②혹시 같은 가게에 같은 이름을 썼던 아가씨가 있었을 땐 어떻게 했어요?


③이 이름은 얼마 정도(기간) 쓰셨나요?


④가게를 옮길 때는 다른 이름을 썼어요? 아니면 한번 지은 이름을 업소 생활하면서


    계속 썼나요?


⑤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었을 때 전에 쓰던 이름과 헷갈려서 생긴 에피소드 있나요?


⑥이름 지을 때 후보로 생각했던 이름 몇 가지 알려주세요. 어떤 이유였나요?


⑦이 이름으로 만나던 친구나 업소 아가씨, 주변인과 연락을 하고 있나요?


⑧업소 외의 공간에서 업소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이름을 아는 사람을 봤


    을 때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⑨이름을 쓰면서 행복했던 순간, 공포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어땠나요?


⑩업소에서 쓰던 이름 외에 실생활에서 썼던 가명(예명)이나 다른 이름이 있나요?


    어떤 이유인가요?


⑪여러 가지 이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 이름은 왜?


 


업소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화류계에서 실명을 걸고 일하는 여성들은 지극히 드문 경우이고, 손님이 부르기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너무 특이하거나 남성/중성적인 이름보다는 여성적인 이름을 선호하는 편이다. /텐프로아가씨 커뮤니티에서는 언니들은 가명 뭘로 했어요?’라는 질문글에 모음으로 된 거 중 종성(받침)없는 것으로 만들라라는 조언이 붙기도 한다.


굳이 이름을 물어보지 않고 자기소개가 필요 없는 업장을 제외하면,  술을 마시거나 여흥을 돋우는 업장에서는 초이스를 위해 소개를 할 때에 이름을 말하기 때문에 잘 팔리고 기억에 남을만한 이름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업소 형태만큼이나 일하는 여성들의 아가씨이름이 만들어지는 경로도 다양하다. 집결지나 전화발이/여관발이 같은 경우는 업주가 본명을 듣고 업소에서 쓸 이름을 쭈욱 작명해주는 경우도 있고, 안마에서 일 가르쳐준 언니나 삼촌이 쓰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다방은 이름이 아닌 성에 을 붙여 김양, 정양, 박양 등으로 불리기에 가명을 지을 필요가 없어 독특한 성씨를 택해 쓰는 경우도 있다.


화류계에서 본명 쓰면 돈도 못 벌고 잘 안 풀린다는 미신에도 불구하고 실명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실명 자체가 부르기 쉽거나 꼭 가명인것 같아 굳이 따로 가명을 만들지 않는 경우다.


같은 업소 아가씨들과 중복이 안 되면서 잘되는 이름을 짓기 위해 무난한 이름과 특이한 이름, 연예인 이름, 특별히 작명한 이름 등 온갖 작명의 수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이름들은 일할 때만 쓰는 것으로 별다른 감흥도 애정도 없이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게임아이디 같은 스쳐 지나가는 이름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이름 VS 이름


 


어쩌다 짓게 된 이름이라도 성매매 현장이라는 시공간에서 이름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손님이랑 얽히면서 아가씨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망상을 가진 손님은 계속 실명을 알려줄 것을 요구하고, 그때마다 여성은 다른 가명을 알려준다. 때로는 가게에서 잘나가는 브랜드가 된 이름 때문에 가게를 옮겨도 그 이름을 쓸 것을 요구 받기도 한다. 잘 나가던 아가씨의 이름을 같은 업소 아가씨가 단골까지 이어받는 경우도 많다. 여성의 업소이름은 게임아이디 같다고 하지만 어떤 여성에게는 생애에서 특별한 의미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


화류계 사람을 그 이름으로 만나고, 성형외과처럼 보험 처리를 할 필요 없는 병원에서는 실명이 아닌 업소이름으로 이용하면서 업소이름은 관계 된 모든 이가 알고 사용하는, 내 자신이 되는 것이다.


 


가게 바꿀 때마다 이름 바꾸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그러면 내 이름 같지도 않아서 이상해


 


남자친구가 본명을 물어봐도 알려는 주지만 절대 부르지 못하게 하는 이름, 이미 화류계에 들어온 사람이고 이쪽 일을 하고 있는데 괜히 옛날 기억 떠오르게 하는 이름(본명)으로 불리는 게 왠지 싫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일을 하면서 친하게 된 업소 여성을 남자친구에게 소개시키면서 본인을 본명으로만 부르게 하고 만나게 된 과정도 말을 맞춰놓기도 한다. 절대 업소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름은 여성이 경험하는 두 세계를 가르거나 만나게 하고 전혀 다른 세계로 존재하게 하는 마법의 주문과 같다.


이 바닥에서는 새로 부여된 이름으로 불리면서 다른 세계의 본명을 지우고, 일을 그만 두게 되면 화류계이름으로 살았던 세월은 잊어야 할 시간과 기억으로 취급된다. 성매매 경험 여성은 그 이름으로 맺었던 관계도 부정해야 하고, 실명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안전하게 사회에 안착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없었던 일, 없었던 관계, 없었던 사람으로 취급하기에는 업소이름으로 살면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생활했던 시공간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업소이름과 실명의 간극은 끊임없이 대결을 하며 여성의 삶의 경험을 분리시키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워서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있기도 하다.


 


과거를 호명하는 이름과 마주하기


 


◯◯야!”


애인이랑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같은 업소에서 일했던 동료가 지금 애인은 모르는 업소이름으로 나에게 아는 척을 할 때.


인터뷰했던 여성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한 인터뷰를 했던 아홉 명의 여성은 모두 일을 그만둔 상태에서 길을 걸을 때 가게에서 쓰던 업소이름을 듣는 순간 대답을 하거나 화들짝 놀란 경험을 이야기했다.


과거의 업소이름으로 살았던 경험은 부지불식간에 현재의 생활을 침범하기도 한다. 업소를 나와서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했던 순간 여성에게 날아드는 업소의 민형사소송 소장에 박혀있는 실명은 오히려 업소이름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상세히 떠올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며 무슨 일을 했는지를 진술서에, 법정에서 설명해야 하는 압박감을 가지고 말이다. .


 


업소에서 가명 쓰던 언니들은요. 낯선 사람이 이름을 물어보면 습관적인 거짓말쟁이가 돼요. 본명이 아니라 가명을 써요. 손님이 가명 말고 본명을 가르쳐 달라고 해도 80%는 또 다른 가명을 가르쳐줘요.”


 


50대 여성은 일했던 집결지에 거주지가 있어서 일을 그만둔 지금도 과거 동료와 관계했던 사람들과 마주치곤 한다. 집결지 일을 그만두고 식당을 다닐 거라고 하자 주변의 너는 경◯(업소이름)로 살 사람이지 무슨 다른 일이야하는 비아냥과 마주하면서 힘들었던 시간을 이야기했다. 이 경우는 30여 년 동안 호명되던 이름이 담고 있는 삶과 방식은 다른 삶을 시도 때도 없이 침범하면서 본인이 계획한 미래계획을 부정하는 것이였다. 이 여성은 끊임없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은 좋든 싫든 필요했고 4년여를 자신이 달라질 수 있는 다른 이름의 사람임을 노력했다고 한다. 여성에게 이 노력의 과정은 뒤돌아보기도 싫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 오롯이 담고 있는 이름은 처음에 의미 없이 만들어졌지만, 현재의 삶을 좌지우지하면서 괴롭히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닌, 지독한 낙인을 다시 만나는 것


 


결혼여부, 성경험과 상관없이 여자가 업소일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지독한 혐오와 낙인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돈 벌려고 하는 몸 함부로 굴리는 여자라는 남성의 시각은 사회에 그대로 투영되어 순결한 여성에 대한 칭송과 타락한 여성에 대한 낙인을 공고히 한다. 성매매 경험 여성은 일을 하면서도, 일을 그만두고도, 이러한 사회적 차별을 너무 잘 알기에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의 50대 여성은 직업소개소를 통해 식당 서빙일을 하는데 집결지를 이용하던 단골이 아가씨이름을 부르고 아는 척을 해서 식당을 옮겨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손끝이 야물고 성실해서 어떤 식당을 가도 칭찬을 받는다는 여성은 한 가게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한다. 지역을 불문하고 어디에서 불쑥 여성의 업소이름과 생활을 아는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하거나 식당주인에게 사실을 알린다면 ,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야겠구나하는 생각만 든다. 식당주인은 식당에 찾아서 깽판을 쳐대는 집결지 단골보다는 그 단골 때문에 식당을 그만둔 여성에게 언니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네. 내가 사람 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망이네.’같은 말을 하기 일쑤다.


또한, 화류계이름은 자신의 지워야만 하는 과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좋았던 순간, 답답함을 나눌 수 있는 숨통이 될 때도 있어서 업소이름으로 소통하는 관계들을 끊지 않고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고, 기억하기 싫은 이름이라 하더라도 즐거운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지만 예쁘다고 해주고, 사랑한다고 해주면서 많은 돈도 벌게 해줬던 인생의 쨍했던 순간도 함께 있는 이 복잡한 이름의 호명이 가진 힘을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택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전망을 발목 잡는 과거를 직면하는 것은 단순히 좋았던 것 나빴던 것을 곱씹으며 추억하는 것만이 아니다.누군가는 숨도록, 누군가는 계속 떠돌도록 하는 이 지독한 낙인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인터뷰한 여성들 중에는 유독 본명을 개명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이름 때문에 삶의 굴곡이 심했다고 느끼면서 굴곡 없는 삶을 염원하는 마음이다. 다른 삶을 기획하며 나이 들어서도 불릴만한 좋은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이 성매매 경험여성에게 가해지는 지독한 낙인까지 사라지게 하고 갈아엎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텐데말이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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