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칼럼] 그 중에 나를 만나,,_숨


그 중에 나를 만나,,


 

5월은 정말이지 무슨무슨 날이 많다. 덕분에 긴 연휴가 생겨서 푹 쉬었고, 찾아보지 않던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됐다. 어린이날에는 형제들끼리 공원으로 간단한 소풍을 갔는데, 사람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자전거 조금 타다가 치맥만 후딱 먹고 뜨끈한 시장 국밥집으로 서둘러 갔다. 아이들을 위한 날이긴 하지만 술 좋아하는 형제들이 모였으니 또 몇 순배 돌아간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
요즘 외숙모가 많이 우울해 하셔서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외삼촌이 하시는 거 보면 외숙모가 그렇게 가슴앓이 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살아오던, 이제는 다 늙었지만 아직도 철없는 남자 어른. 사실 외삼촌 뿐만이 아니다. 그런 건 우리 집도 그랬다.

우리 아빠도 외삼촌 못지않았지 뭐.”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야. 우리 엄마아빠는 자식을 정말 잘 만났다는 거지~”

오오, 굉장히 적절한 표현인데! 흐흫흐.”

이때 형부가 나서며 하는 말, “아이구, 자식 잘 만난 거의 최고는 우리 부모님이지~!!”

크크킄. 부모를 잘못 만난 괴로움을 얘기하는 것 보다 훨씬 즐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부모 때문에 꼼짝 못하던 유년 시절과 말도 안 되는 부모의 태도에 저항하며 몸부림치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보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꿔 보기도 하고 모든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부모만큼 나 역시 이상해질 때가 있다는 걸 경험하기도 해서 많이 아파했다. 내 안의 수많은 갈등이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 같아 멀리멀리 도망치거나 하염없이 악에 받치기도 했다.

사람들과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내 상처가 얼마나 큰지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었고, 그걸 또 쿨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축소시키고 희화화하기도 했다. 피해의 경중을 가리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에게는 내 경험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경험을 말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렇게 가족에 대한 지긋지긋한 감정이 있더라도, 물리적으로 인연을 끊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 이슈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그렇게 다시 부딪히고 싸우고 체념하고 이해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스스로를 보호하고 불합리를 통제하면서 어린 시절에 무력했던 감정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식들은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 부분에서 만큼은 부모보다 자식이 확실히 더 나은 것 같다(더 아픈 사람이 더 많이 고민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부모와 화해하고 싶지만 성인군자가 아닌 자신을 발견할 때, 자책감을 가지고 끙끙 거리기보다는 이런 표현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엄마아빠는 나를 정말 잘 만난 거야. 나니까 이 정도라도 잘 살고 있는 거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