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칼럼]식은 커피는 씁쓸했다_알렉스



식은 커피는 씁쓸했다

 
-알렉스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친구에게선 연락이 없다. 
분명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 하고선 …. 미리 주문한 커피는 점점 식어가는데…

 

1.

나에겐 보고 있으면 가슴이 짠해지는 친구가 있다.

한 아파트에서 마주보고 사는동안 그녀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부러워했고
어느 날 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에 눈물로 뒤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그 일이 있은 얼마 뒤 잘 있으라는 인사와 함께 옷가방만 들고 집을 나가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행복을 질투했던 철없었던 나에게 오히려 미안해했던 나의 친구.


남편의 의처증으로 인해 실패한 결혼생활을 잊으려 발버둥치듯 일에 몰두하며 그녀의 상처가 아물 때쯤
그녀는 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 사람의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며 나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미친년이라고 욕하며 말리는 나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신고를 하던 그 날
그녀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이없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친구는 정신을 놓는 듯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두 번째 결혼도 남편의 폭행으로 끝이 나면서 친구에겐 이혼녀라는 두 번의 낙인만을 남겼다.

자신은 실패자라고 이혼녀 딱지를 두 번씩이나 달고 부모님얼굴을 도저히 볼 수 없다고 울부짖는 그녀에게
나는 어떤 말로도 위로해 줄 수가 없었다.

2.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겠다며 서울로 향한 그녀는 메이크업 공부를 하며 잘 지낸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녀와 연락이 끊긴지 5년만의 소식이였다.
 
서울 명동 4번 출구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그녀를 나는 지금 기다리고 있다.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며 어떻게 변했을지 그녀를 상상한다.

이층계단으로 나의 눈길이 향하며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낯익은 얼굴 

"어머!~ 현경아 !~"

보고 싶었고 보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한번 해보지 못한 미안함과 반가움에
단숨에 일어나 맞이하는 나의 모습엔 눈물이 찔끔 콧끝이 찡끗했다.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니? 뭐야"
 
어떤 대답을 기다리지도 못할 만큼 숨가쁘게 몰아치는 질문에 인자한 부처님 미소로 꺼낸 그녀의 첫 마디는

"너 많이 변했다 얼굴이 왜이래? 피곤해보여!"
 

그래. 내가 요새 관리를 못했다. 그 말을 들으며 살펴본 그녀의 모습은 부티 좔좔 흐르는 풍족한 사모님 포스가 확 풍기면서 순간 쫄바지에 가디건을 걸친 내 모습이 조금 초라한 것 같았다.

“관리 한 번 받으러 와. 잘해 줄께.” 하며 그녀가 내민 명함에는 뷰티끄 실장님이 된 그녀의 이름이 박혀있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서울살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같지 않은 친구의 말투와 제스처가 너무 낯설어 뭔지 모를 씁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약속이 있다며 저녁은 나중에 하자고 하며 먼저 일어서는 그녀에게 앞으로 계속 연락하자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오늘 왜 만났는지 잘 모르겠는 맘으로 어수선했다.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우울한건지….. 식은 커피처럼 씁쓸한 이 기분 모르겠다.
 
그렇게 맹숭숭한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찜찜한 오늘의 만남을 다시 생각해봤다.
내 기분이 왜 이렇게 우울한지……
 
불행했던 친구의 모습이 강력히 자리잡은 기억 위에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예전처럼 그녀를 안쓰러워하며 위로해주는 입장이여야 할 것 같은데
너무나 잘 지내는 그녀의 모습에 이제 더 이상 나의 연민 따위는 필요없을 만큼 변해버린 모습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상상하기 힘들만큼 밝아진 그녀의 모습이 낯설어서일까?…….
아님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기가 어색해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난 아직도 그날의 씁쓸함이 다음번의 만남을 망설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