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고양이의 봄_바람

 

고양이의 봄

이번 달은 특별히 전 이루머(!)인 바람님이  살랑살랑 봄바람에 어울리는 칼럼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전 이루머 특집 칼럼! 재미있게 봐주세요~ 
 

2년 전 봄, 나는 그곳에 있었다. 동네를 다 꿰뚫고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목공소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던 골목. 그 때의 나는 긴 여행을 준비 중이었는데, 밥벌이에 대한 시도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면접을 본 이룸에 면접의 신(이루머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답게 떡하니 붙는 바람에 엉겁결에 다시 출퇴근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일을 해야 한다면 여기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직접적인 상담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맡았는데 처음 일주일은 출근 후의 공복이 낯설었다. 이 시간에 배가 고프다니, 아니 깨어 있다니!!
 
지원하던 내담자의 갑작스런 연락두절이나, 진행하고 있는 일의 더딤을 별다른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때가 되어서야 내가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그러는 동안 이룸에 여름이 와버렸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로 뜨거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을 맞보게 된 것이다. 출근 하자마자 켠 에어컨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 바람 좀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때 이루머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진흥원에서 받아야하는 100시간의 상담원 교육이 여름인 게 다행이라고 잠시 생각했었다. 그 교육을 통해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다지는 시간을 가지고, 현장을 배우기 위해 통합지원센터가 잘 꾸려져 있는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전주는 처음이었다. 실습을 나가게 된 센터가 한옥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내심 놀고 싶은 마을을 잠시 품었지만, 정말 일만 했다. 나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동안 당신들이 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전북 활동가들의 의지가 결연했으므로!
 
이룸으로 돌아왔을 땐, 계절이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처음 법률지원을 하게 된 날 아침, 다니고 있는 직장에 반차까지 내고 달려온 J언니는 그저 연신 고맙다는 말 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여태 기억에 남아 가끔 되새겨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처음과 다름없이 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짊어져야 할 짐이 있으면 기꺼이 거들어 주는 사람이 아마도 많지 않았으리라. 잘 기억나지도 않는 지나온 일과 사람들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해왔을 그녀의 삶의 고단함이 전해져 적잖이 무거운 오후를 보낸 기억이 있다. J언니는 괜찮을 거라고, 오히려 나를 우리를 위로했다.
 
그 후로 한 번의 법률지원 동행과 두 번의 상담이 있었고, 나에게는 다시 여행 병이 도졌다. 나는 앞 뒤 없이 그만둬야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입사한 지 4개월만이었다. 그래도 최단기간 활동가에게도 밥은 먹여 보내야 한다며, 맛있는 밥집을 찾아 외식하러 나가던 그 길에서 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종종 마주치던 길고양이들과 달리 집에서 막 산책 나온 것 마냥 털은 곱게 빗긴 하얀색에 오드아이를 한 녀석이었는데,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사명 하나로 5층까지 데리고 와 씻기고 먹이고 한 지 이틀 만에 사라진 아이. 후에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녀석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찬장에서 야옹 거리며 밥 달라고 울어댔다고. 지금은 좋은 집사 만나서 대접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니, 그 날의 염려는 그만 내려두어도 좋겠다.
 
J언니가 지금쯤은 훨씬 가벼워졌을지, 전북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여전히 힘내서 잘 걸어가고 있는지, 이루머들은 맛있는 밥집을 드디어 찾아냈는지를 왕왕 떠올리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지만, 내 이십대의 마지막 활동지였던 그곳을 한 동안은 여전히 마음에 담게 될 것만 같다. 안녕! 만능엔터테이너 깡통, 결이 고운 허허, 발레리나 보리, 용기 있는 기용, 그릇이 큰 숨, 그리고 용두동 길고양이들! 다시 봄은 올 테니까, 우리는 그저 타박타박 걸어가자. 길 위에서 우리 또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그 날 만난 하얀 고양이처럼!
 

_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