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지난 3월 24일, 이루머+이룸의 든든한 울타리인 고래 님과 백소윤 님이 이태원 아웃리치에 함께했습니다. 사실상 올해 첫 아웃리치였는데요. 2월을 지나며 격화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이번 아웃리치 물품은 손세정제와 핸드크림, 비누, 서울시의 긴급지원정책 안내물을 담은 ‘코로나19 키트’로 준비해 갔습니다. 사회적 재난 국면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상황도 살펴보고자 했어요.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문을 연 업소는 많지 않았습니다. 한 업소 문에 붙여져 있는 시 당국의 영업중지 권고문도 눈에 띄었고요. 대부분의 업소 문이 닫혀 있어 언니들을 많이 만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준비해간 물품의 반절 정도는 전달하지 못했지만, 문을 연 소수 업소의 언니들은 반갑게 물품을 받아주셨어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각 부문별 어려움과 소상공인들이 겪는 타격이 주목받는 한편으로, 성산업 내의 여성들이 겪는 타격과 어려움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거나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성차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빈곤한 여성들의 상황을 이용하고 활용하여 성산업을 지속, 팽창시켜온 한국 사회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며 뒤틀린 태도를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이태원 소방서 근처로는 ‘꿀밤포차’라는 가게에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길게 입장 줄을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꿀밤포차 옆으로 같은 대로변에 접해있는 다른 건물의 업소들은 모두 퇴거된 상황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원작 웹툰 작가가 운영하는 술집이라고 하네요.

웹툰, 그리고 방송 등의 파급력과 이를 둘러싼 문화자본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한 것들이 부동산 자본과 맞물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빚어내는 풍경이 씁쓸함으로 다가왔어요. 이 공간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살고 일해 왔던 이들, 불균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시스템 속에서 활용가능한 자원이 많지 않았던 이들은 다른 삶의 기회, 자리 혹은 공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개인화되는 사회적 모순을 감내한 채 계속해서 사회의 주변부로, 빈곤한 상황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말이죠. 한국의 역사적, 정치경제적인 단면이 상호 교차하며 응축돼 있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성찰할 것인지 화두를 던지고 공론의 장으로 논의를 넓혀 나가는 일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