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② “혐오의 시대”를 통탄한다

2020 이룸의 시대한탄 ② “혐오의 시대”를 통탄한다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 복무와 여대 입학에 반대하는 인종차별, 분리주의, 혐오 정치를 옹호하는 근거로 반성착취 피해가 제시되는 글들을 보고 충격에 빠져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기 직전 저는 이주여성 쉼터에서 성매매 피해 이주여성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는 여성 청소년 쉼터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매매를 한 여성이 어떻게 감히 일반 여성들과 생활 할 수 있느냐는 전형적인 낙인입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군, 여대, 여성쉼터, 여성화장실, 여성목욕탕, 여성감옥 등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출입권을 얻는 것이 시스젠더 여성들의 오염과 강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까요? 생물학적으로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요? 자지권력을 누리다가 여자인척 한다고 해서 여자가 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향해 현재 한국사회의 성착취 문제가 생물학적 성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진단하는지 되묻고자 합니다. 이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들의 구체적인 트라우마들이 소환되고 있습니다. 성착취 피해 여성들이 전 생애의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증상들이 실재하며 공적이고 구조적인 인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성착취 문제 원인의 전부를 이러한 증상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성착취의 원인이 남성에게 내재한 성욕을 해소하려는 생물학적 특성, 즉 남근과 남성호르몬 등 남성 육체의 존재 때문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여성 타자화 논리와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성착취는 노동, 주거, 안전 등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빈곤과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적인 사안입니다. 이를 남성 개인에 의한 여성 개인에 대한, 섹스로서의 성폭력으로 접근할때 그 귀결은 “서로 사고 팔겠다는 것들이 하는게 뭐가 문제냐?” 라는 성매매 합법화가 됩니다. 래디컬과 보수가 만나는 지점이지요. 전혀 래디컬하지 않습니다. 중국인은 중국에서, 동양인과 난민과 이주노동자와 빈민은 정해진 국경과 거주지역 안쪽에서, 성매매 여성은 업소에서 그러니까 정해진 자리에서 살아가라는 가장 보수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방법론을 그대로 이식하여 여성들의 해방공간을 만드려는 투쟁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설 자리는 없으니 남성성을 본질화하고 위협을 과장할수 밖에 없게 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교육이나 지원 체계같은 당연한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을 목숨걸고 막습니다. 이것이 여성운동 입니까? 아닙니다.

성착취 피해 여성 역시 성에 대한 정상 규범의 경계를 넘는 존재입니다. 가부장제 사회는 정조를 잃었다는 가당찮은 명목으로 피해 여성들에게 폭력의 원인이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합니까, 경계를 넘는 존재들을 공격하고 포섭해 경계로 다시 구획하고자 합니까? 트랜스젠더 여성도 남성사회의 억압을 받아왔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첨언은 위와 같은 실천을 덮을 수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못가립니다.

퀴어 운동 내부의 게이, 트랜스젠더 여성 등이 남성중심성을 배태하고 이로 인해 성노동을 옹호한다는 점이 트랜스젠더 인권과 여성 인권이 함께 갈 수 없다는 논거로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퀴어와 성노동, 포르노, 대리모 산업의 친연성이 있되 여기에는 정말 여러가지 맥락, 한국에는 또 그만큼의 복잡한 맥락이 있음을 차치하고요. 저는 그렇다면 반성착취 운동이 트랜스젠더 혐오 진영의 대표주자로 부각하는 상황은 문제가 아닌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반성착취 운동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성인권과 퀴어 인권은 같이 갈수 없다며 성별이분법에 의한 차별과 소수자성 개념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여성이야말로 성별이분법에 의한 억압을 몸으로 견뎌온 소수자이므로, 이 억압을 부정하는 순간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래디컬한 힘을 잃고 여성 개개인 혹은 상상된 여성 범주를 “피해자”로서 법제도에 기입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가부장제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의 곁에서 헌신해온,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억압과 차별의 최종심급이었던 “반성착취”에 저항하고자 하는 여성운동이 가장 보수적인 혐오정치의 선봉에 서게 된 상황에 분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