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룸 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 그 이후

2019 이룸 영화제 활동가 후기 _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 이룸 영화제와 함께해주신 분들께 보내는 감사의 편지 –

 

영화제가 끝나고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린 분들도 있지만 미처 그러지 못한 분들이 훨씬 많아요.
마음을 다 전하기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어떻게 영화제를 했을까? 아직도 안믿긴다 꿈같다
차차와 마주앉아 일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 시간이 넘 좋습니다.
기획단/자원활동가 텔방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뜨겁고 진지하게 적어주시는 관객후기들도 마냥 좋네요.

처음 해보는 행사여서, 욕심을 부려서, 더 파고들지 못해서, 시간과 몸의 한계로, 채우지 못한 빈 부분들, 보완가능했던 누군가의 수고, 미처 다독이지 못하고 흘러나간 마음들, 잘 모르면서 섵부르게 던지고 본 것들이 보입니다. 이것들을 포함한 영화제 경험 전체를 처음부터 곱씹으면서 다시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더 큰 인내와 침착과 명민으로 이룸 영화제라는 한 세계를 가꿔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룸 영화제 어떻게 보셨을까요?

기획단 7명이 길어낸 감응과 분석을 슬로건과 두 섹션으로 구조화해, 이틀간 다섯편 425분의 영화, 16인의 중층적인 현장/연구/작품/생애 경험을 녹여낸 330분의 씨네토크와 라운드테이블, 9인 9편의 영화읽기 원고와 프로그램북 글쓰기로 풀어냈습니다. 남성중심적 사회를 드랙으로 해체해 소수자의 공포를 힘으로 전복하고자 한 공연을 했고, 불량언니 작업장에 터를 잡은 한 여성의 수작업을 매개로 58인의 시민들이 서로의 일상을 교환한 전시 그리고 작업장 여성들의 <이태원> 관람 및 프로그램 게스트 무대인사 자리를 통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세분의 제작자가 포스터와 책, 홈페이지와 트레일러를 만드셨고요, 두 수어통역사분이 이틀간 릴레이 통역을 해 주셨습니다. 영화제 곳곳의 얼굴들을 남겨주신 사진가도 계셨지요. 영화제가 덜커덩 굴러가게 만든 자원활동가 회원들 -기용, 유결, 현미, 현우- 의 힘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250여명의 관객 여러분이 코쿤홀로 와주셨어요. 전문 상영관이 아니어서 좌석, 소음, 상영실수 등 불편함들이 있었음에 참으로 죄송함을 전하며, 영화제가 정말로 누군가들에게 가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것들이 프로그램 하나 하나마다 실제로 펼쳐지면서 연결되고 확장된 순간들을 잊기 어려울 것 같아요. 무대에서 그래, 여기선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지 하는 말을 누군가 상상보다 더 뼈저리게 하고 있을때 세상이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프로그램들이 선형적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가로지르며 연결되는 것을 느꼈어요. 그 그물망들로 세계를 길어올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바닷속에 오래 침몰해있던 고통과, 절망과, 분노와, 삶의 구체들을요.

 

울수 없고 무너질수 없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꿈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탓할수도 책임을 물을수도 없는,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꿔야 하는 꿈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꾸지 않은 꿈> 씨네토크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임윤옥 선생님께서는, 전국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조합의 20대 여성노동자 위원장이 ‘특성화고 졸업생은 한해 25만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야기에 너무나 놀랐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자리에 있던 모두가 함께 놀랐지요. 그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안에는 물론 이룸에서 만난 여성들이 있습니다. 빈곤한 여성들에게 공장노동과 성산업은 맞닿아 있으니까요. 그이들을 보이지 않게 밀어넣은 빈곤구조가, 두 공간의 착취구조가 이어져있는 것입니다. 홍효은 감독님께서는 울산에서 구미로 이주하여 만난 20대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너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내가 담아왔는데 거기에 대한 답이 나에게 없다, 이것을 어떻게 엮어낼지 전혀 모르겠다”는 우울속에서 편집을 하셨다고 합니다. 대공장의 정규직 남성노조, 대졸 청년 노동자들, 근로기준법과 노동의 가치라는 노동자의 힘과 주체화 문법이 무력해지는 현장을 한국 사회의 빈곤한 젊은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고, 무엇부터 어떻게 싸워야 하고 적은 어디에 있는가?(홍효은)”을 질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노동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출구가 안나오는게 정직한 절망의 현장인 거잖아요.(임윤옥)” “그렇게나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고 전시되지만, 사실 그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착취들을 보이는 어떤 매개체도 없다. 세계의 이면들에 대한 관심과 조망이 필요하다(김주희)”

흠흠 쓰다보니 이걸 하나하나 다 쓰려면 한달 걸릴 것 같아서 마무리를… 오늘이 소식지 마감이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북 원고와 관객후기를 하나씩 하나씩 올릴 예정이니까요, 읽어봐주세요. (#2019이룸영화제 태그를 달아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프로그램 속기록도 꼼꼼히 읽고 찬찬히 소화해 이룸의 활동으로 풀어나가겠다 다짐해 봅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못다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만나며.

 

이룸이 배우고 발전시켜나갈 문제의식들을, 여쭙고 경청할 목소리들을 가득 모을 수 있었던 영화제였습니다. 이룸의 반성매매 활동 방향성은 이것이다! 라는 지금의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이 반성매매에 대해 더 긴 문장을 쓸 수 있도록, 각자가 천착해온 의제들이나 삭혀두었던 삶의 경험들, 노동/빈곤/군사주의/퀴어/이주/재개발/젠더섹슈얼리티폭력 등등을 그 현실감 그대로 성산업과 연결짓고, 그 기저에 성산업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안내하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매매 이슈가 낙인과 차별에 침식된 협소한 언어로만 타자화되면서 피해자들이 문제구성의 중심이 됨에 따라 이에 대답할 의무가 성판매 경험 자체나 당사자성에만 집중 포화되는 담론상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폭력의 쉘터가 될 사회적 시공간의 부재로 인해 경험이 해석되지 않고 자연화되면서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반대로 지나친 조심성이나 완벽함에 대한 내외적인 요구로 되레 침묵하고 유보하며 얼버무리게 되는 상황들도 있습니다. 이 현장의 ‘감추어진 절망’과 ‘만들어진 욕망’을 다 알기도 전에 규범이나 당위로 결론내림으로서 안전한 서사로 패씽되고 결국 연대의 지점이 사라져버리는 상황들도 있습니다. 성매매는 여성, 소수자, 인간 보편의 사회적 문제이므로, 성매매에 반대하는 일은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일로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성매매 현장과 접촉하되 넓고 중층적으로 읽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가 너무나 절망적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피가 거꾸로 솟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장기적인 시간성을 사수하며, 절망을 응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미래로 보내진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달라지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 우리의 몸과 삶이 나이들고, 꿈꾸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직면하고, 거부하고, 싸우고, 버티는 시간은 그냥 주어지는게 아니라 관계속에서 엮어나가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자연적인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시간은요.

이제 숨을 쉬고, 울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면밖으로 나와, 세계를 더 노려보고 악다구니쓰며, 매달려 끌어당기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해야겠지요. (아 피곤해…)

 

그전에 좀 쉬려고 합니다.
고생한 이루머들, 자랑스럽고 멋져요. 누구보다 영화제를 견인한 심장 차차야, 이제 야근이 아닌 칼퇴 메이트로 새삶을 살아보자.
고생한 기획단 레나와 소윤, 불투명한 우울속을 빛나는 언어로 물들이며 함께 걸어준 두 사람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여전히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로부터
이제 겨울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2019 이룸 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