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 대독글을 공유합니다.

지난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던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에서 이룸은 이룸이 만난 두 분의 미투를 대독했습니다. 미투_고발글의 전문을 옮깁니다.

 

 

 #미투 하나.

 

“23살 봄, 강간을 당했다. 20살이 되고 대학을 다님과 동시에 프리랜서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쭉 믿고 따르던 회사 과장에게 강간을 당했다. 나는 그전까지 인생을 살면서 단 한 차례의 연애경험도 없었고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남자와 아주 작은 스킨십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날 밤 당했던 모든 폭행은 내겐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웠고, 난 지독히도 더럽혀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당시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 우울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은 더욱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우리 집안은 아빠라는 사람의 외도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한 예로 내가 어렸을 적 아빠는 즐겨 다니던 룸살롱 여자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주고 거기서 우리 엄마와 언니, 그리고 언니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내가 경제적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았다.

 

나의 20대 중반쯤, 언제부터인가 남동생이 카드빚을 몇백만 원 정도 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을 엄마가 카드 돌려막기를 통해 갚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어머니와 동생은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음습한 지하 빌라에서 임시로 살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서 본가를 좀 더 나은 집으로 지원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당연히 공짜는 아니고 약 300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엄마가 전화로 매일 이런 것을 나에게 털어놓을 때, 나는 이 모든 걸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 온라인 알바 사이트에서 시급이 높은 모던 토킹바 알바 자리를 보게 되었고 나는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 가게 찾기가 어려울 거라며 어느 곳으로 오면 마중 나가겠다고 했다. 조금 수상했지만 일단 약속장소에 나가자 전화 받았던 사람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나를 냅다 봉고차에 태웠다. 그리고 봉고차는 어떤 장소로 향했는데, 그곳은 일명 ‘아가씨’가 나오고 술을 파는 노래방이었다. 실장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여기서 같이 일해보자고 말했고,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크게 망설임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라는 사람의 라이터나 핸드폰 문자 등에서 익히 들어봤던 곳이고, 나는 이미 한 차례의 성폭행을 통해 몸이 쾌쾌하게 더러워진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명 ‘노래방 보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는 강남 노래방에서 보도로 일을 했는데 그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실장은 한 노래방의 작은 방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오늘 일은 어땠는지 등을 간단하게 묻더니 갑자기 나를 제압하며 노래방의 소파로 나를 눕혔다. 그리고 내 팬티를 벗기더니 손을 넣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내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다른 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며 조용하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오늘의 페이를 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하의를 모두 탈의하고 내 아래의 그곳으로 자신의 성기를 마구 쑤셔 박았다. 나는 지난 성폭행 경험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힘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반항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몸도 정신도 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는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한 채 조건만남이라는 성판매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실장이란 사람이 나에게 원래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일을 잘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자신과 한차례 섹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어떠한 페이 지급 없이. 내가 깜짝 놀라며 진짜냐며 의심을 하니 그런 나를 오히려 초보 취급하며 빨리 차를 돌려 모텔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강제로 나를 눕혀 거침없이 나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그날부로 그 실장의 조건만남 일은 그만두고 다른 실장의 조건만남 자리를 알아보게 됐는데, 알고 보니 나를 강간한 실장의 말은 완벽한 거짓말이었다.

 

조건 만남을 하며 한번은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됐다. 그 남자는 자신이 커다란 규모의 게임 회사 사장이고 자신과 지속해서 만나면 어머니 빚도 갚아주고 돈 걱정 없이 다시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순진했던 나는 그 남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지속해서 만나며 성관계를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오늘 너에게 주려던 돈을 친구가 갑자기 빌려 갔다느니,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둥 말을 하면서 줘야 하는 돈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람과 열 차례 정도의 성관계를 가졌지만 결국 처음 받았던 십만 원 정도의 돈을 제외하면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더욱더 나의 몸과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 갔다.

 

지금은 정말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반성매매인권행동단체의 지원을 받게 되어 유흥 업종의 일을 모두 그만두었고, 매주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가고 있다.”

 

 #미투 둘.

 

“안녕하세요. 저는 성 판매자입니다.

 

작년 4월 즈음 출장서비스 업종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출장은 실장이 예약을 잡고 손님의 집으로 데려가주는 업종이에요. 손님의 집에 도착해 손님을 만나서 어떤 서비스 예약하셨는지 시간, 금액, 조건들을 확인하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애초에 정해진 것과는 다르게 콘돔 빼고 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습니다. 콘돔 필수라고 콘돔 끼고 하셔야 한다고 달랬어요. 하지만 손님은 듣지 않았어요. 수없이 많이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손님은 몰래 안 보이는 각도에서 콘돔을 빼거나 찢거나 질 안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노콘으로 하지 말라고 빼라고 손님을 밀쳐내려 했지만 체중을 실어서 누르고 계속 했습니다. 힘이 빠졌고 손님이 뭘 하든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어요. 손님이 그런 저에게 자기가 강간하는 것 같지 않냐며 허리 흔들라고 했습니다.

 

‘강간하는 것 같지 않냐’ 그니까 이 말이요. 이걸 계속 생각합니다. 이 감각. 강간을 무엇이라 생각하기에 이 일을 강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강간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잖아요,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를 강간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안 된다고 싫다고 얘기했어요. 수없이 많이 안 돼요. 오빠.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싫어요. 하면 안 돼요. 오빠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노콘 안 된다니까요. 오빠 빼요. 하지 마요. 계속해서 말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손님이 무시하고 계속 했습니다. 체위를 바꿔보자고 머리채를 잡고 팔다리를 구기고 계속 했어요. 그런데 도대체 이 손님은 왜 자기가 강간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까요.

 

막무가내로 하던 손님이 기분 잡쳤다고 욕하고 폭력을 휘두르려 했어요. 옷도 입지 못 하고 긴 외투만 걸친 채 도망 나와 주차장 그늘에 숨어 실장을 기다렸습니다. 실장은 저보고 니가 잘 했어야지. 왜 그것도 못 받아주냐고 화냈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나와서 다음 예약 못 잡았다고 어차피 사후피임약 먹을 거면 노콘으로 옵션 걸어서 잡아도 되지? 라고 물었습니다. 안 된다고 미쳤냐고 했더니 어차피 약 먹을 건데 뭐가 문제냐고 화냈어요. 내 의사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니까 나는 이미 손상됐는데 한 번 더 대주는 게 뭐가 문제냐. 이것이겠죠.

 

여전히 성폭력은 상대방의 의사를 고려대상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기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보지는 자원이고 재산이고 들락거린 고추가 적을수록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데 성폭력은 이것을 무단으로 갈취해서 문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아동의 청소년의 꽃다운 여대생의 성폭력 피해는 사회에서 대신 분노해주지만 여성으로서 가치가 떨어졌다고 여겨지는 노년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나 닳을 대로 닳은, 돈 받고 몸 파는 성판매자의 성폭력 피해 경험은 사회에 공유될 수 없는 거겠죠.

 

지난주에는 룸으로 출근했습니다. 미투가 유행이라고 룸으로 오는 손님들마다 꼭 한 마디씩 해요. 어떤 방에서는 손님이 같이 들어간 언니한테 안희정 고발한 비서 닮았다며 미투 닮았다고 비아냥 거렸어요. 미투 걔 이쁘지도 않던데 한 몫 잡으려고 쇼하는 거다. 여자들이 무섭다. 보지가 벼슬이다. 걔도 보지 팔아서 안희정 비서할 수 있었던 거다. 안희정이 미투한테 잘해줬어야 했는데 소홀하게 대해서 삐져서 저러는 거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언니들의 가슴을 만지면서 너도 미투 올릴 거냐고 미투 당해보고 싶다고 미투 올리라고 했습니다.

 

성판매자는 미투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돈을 지불했으니 이 시간에는 뭘 하든 성폭력이 아니다, 하지만 저는 성판매자지만 룸에서 손님들이 저에게 한 짓. 하지 말라고 막는데 억지로 옷 틈에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추행한 것, 어차피 벗을 건데 왜 가리냐며 치마를 들춰 비웃은 것, 애프터 올라가기 전에 세워보라고 손을 잡아끌어 고추를 잡게 하고 놔주지 않은 것 모두 다 성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고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 어떻든 섹스 경험이 얼마나 있든 어떤 공간에 있든 폭력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한들 성판매자는 이렇게 대해도 되는 닳은 애다. 보지는 남성들이 갖고 있는 자원에 접근하게 해주는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고 대가를 지불하면 언제든 취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런 인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그건 서로 좋았던 섹스나 합의된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었다고 고발하는 건 남성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겠죠. 돈이 부족했나? 보지와 교환한 자원이 부족했나? 그래서 저러나? 이렇게 되는 거겠죠. 내가 업소 와서 얼마를 지불했는데 혹은 데이트비용으로 얼마를 썼는데, 직장에서 내가 너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학교에서 너를 얼마나 신경써줬는데, 아빠가 돈 벌어오는데 딸이라고 있는 게. 어떻게 네가 감히.

 

왜 여성은 여성이 되는가. 왜 여성은 보지를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가 자원을 가진 것으로 취급되며 이 사회는 어떤 사회이기에 보지가 자원으로 통용되며 보지의 접근을 몇 명에게 허락하는 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왜 이제 와서, 꽃뱀 짓이라고 의도가 있을 거라고 비난하지만, 미투 운동은 보지로 한 몫 뜯어내려는 게 아니라 보지로 한 몫 뜯어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회사에 적응하려면 승진하려면 자원에 접근하려면 ‘여성성’을 활용해야 하는가.

 

저는 더 이상 보지로 한 몫 뜯어내고 싶지 않아. 보지로 한 몫 뜯어낼 수 있는 사회는 너무 이상해. 저는 배움의 기회가 공평한 사회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역량을 갈고 닦아 내가 원하는 영역에서 내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나는 인간이다! 새끼들아 여성을 희롱하고 여성 혐오를 동원하며 남성 연대를 공고히 하는 이 사회에 미투 걸 테다.”

 

#2018분동안의_이어말하기 #미투가바꿀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