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4 이룸공부방 1기 5회차 후기 by.현우

 늦어도 너무 늦은 5회차 공부모임 후기입니다.. 후기를 쓰겠다 해놓고 이사에, 구직에, 이런저런 일에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제야 글을 적게 되었네요. 모임 때는 늦가을 모기를 쫓느라 고생했는데 벌써 완연한 초겨울이라니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거의 한 달 전 모임을 되새겨 적다 보니 서로 나눈 이야기가 좀체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시간의 고민, 열의를 최대한 떠올리면서 적어 보았습니다.

 

 우선 10월 첫 주 목요일에 있었던 이룸공부방 5회차 모임에서는 박정미 선생님의 논문, “성매매의 세계화와 페미니즘 정치-초국적 성매매에 관한 연구, 논쟁, 운동”과 글 하나를 더 읽었습니다. 이하에서는 박정미 선생님의 논문 중 일부를 요약, 소개한 후 그와 연결된 제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성매매의 세계화와 논쟁

 

 논문을 통해 확인되는 성구매자의 국제이동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합니다. 특히 근대 유럽의 팽창과 성적 지배의 역사는 겹쳐집니다. 캠파두는 “카리브해 지역의 백인 노예 소유주는 흑인 노예의 노동을 강제로 수탈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에 대한 완전한 성적 접근권을 향유”했다고 지적합니다. “그 결과 강간과 성적 학대가 만연했고, 축첩과 성매매는 사회제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적 지배는 제국주의 팽창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며 “반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성매매 관광은 성매매에 대한 욕망이 이동을 추동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시대와 차이가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1960년대 “카리브해 지역의 국가들이 독립 후 관광산업에 의존함으로써 ‘유럽의 유곽’으로 기능하는 신식민지적 상황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쯔엉은 동남아시아의 성매매 관광이 “제3세계의 정치적 긴장과 불안정을 봉쇄하기 위한 비군사적인 도구”라는 미국의 정책적 입장과 해당 지역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맞물려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례로 태국은 1968년 UN 관광의 해 선포, 1970년 세계은행의 관광기획부 설립 이후 세계은행의 권고에 따라 관광산업을 외국인 투자에 대폭 개방했고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국 정부와 미군을 위한 휴식과 오락(Rest & Recreation)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종전 후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관광과 성산업을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는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호텔에서는 성매매를 위한 대실 요금제가 등장했고, 패키지여행 상품에 성적 서비스가 포함되었으며, 관광안내서에 성적 서비스 가격이 명시되었”습니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필리핀과 한국도 경제 성장에 대한 열망,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관광정책, 그리고 미군 주둔의 결과로 성매매 관광이 발전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점에서 성구매자의 국제이동을 포함한 성산업의 세계화는 식민통치로부터 시작해 각 지역의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더불어 제1세계 거주자들의 성적 환상 등 다양한 배경 위에 복합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성판매자의 이동은 이주 또는 인신매매의 측면이 서로 교차합니다. 2010년 여성 이주자는 1억 483만 명으로 전체 이주자의 4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이주와 달리 불법적인 인신매매의 규모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2015년 국제노동기구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2,100만 가량의 강제노동 및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그 중 약 450만이 성매매 관련 피해자들이라고 집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된 피해자 수는 인신매매 규모의 추청치에 비하면 극히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106개국에서 63,251명의 인신매매 피해자가 발견되었고 그 중 성인 여자가 51%, 성인 남자가 21%, 소녀가 20%, 소년이 8%였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72%가 성착취를 20%가 강제노동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여성의 국제 이동이 증가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윤율 저하에 직면한 자본은 새로운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사람들 역시 생존의 위기를 타개하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로 향”합니다. “그런데 제3세계 출신 이주자들이 제1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자국에서의 교육수준이나 숙련과 상관없이 대부분 열악한 노동으로, 특히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 보살핌노동, 성노동에 국한”됩니다. 또한 “제1세계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이주를 제한하고 국경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구하지만, 비공식경제의 상당 부분을 이주자들에게 의존”합니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초국적 성매매, 곧 성구매남성과 성판매여성의 국제 이동이 증가했다는 건 대다수가 동의하는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관점의 대립과 논쟁, 특히 국제조약과 국제기구를 둘러싼 갈등과 경쟁은 지금도 현재 중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발제를 새로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보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개인적으로 논문과 다른 글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지점과 기억나는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임금노동의 형해화 앞에서

 

 우선 무엇을 노동으로 볼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논의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과학기술과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 확장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인간의 합목적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노동’은 좋든 싫든 자본에 종속된 ‘임금노동’이 일반화된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본래 ‘노동’이었는데 자본에 포섭되어 ‘임금’을 대가로 주고받게 된 ‘임금노동’과 ‘임금’을 받음으로써 자본에게 포섭되어 ‘임금노동’이 되는 경우의 구분과 기준점은 자본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노동력을 상품으로써 팔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양극화되는 과정에서 갈수록 형해화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구분이 형해화됨과 동시에 그와 같은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인간의 존재 역시 흩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그와 같은 형해화 속에서 무엇이 노동이고 무엇이 노동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노동력을 구매한 것만으로도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의 사회적 위치와 이를 용인, 확대재생산하는 구조가 갖는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나를 어딘가에 팔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인간노동력의 상품교환관계에서 임금을 통한 생존만이 가능한 사회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다른 의미에서는 인간을 대상화시키는 행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상상 가능한 현실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논문에서 서술된 성노동 페미니즘이 다른 임금노동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맥락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산업의 착취와 폭력이 엄연히 존재함을 지적해야 하며, 동시에 폐지주의 페미니즘이 성판매자의 행위성을 폭 넓게 이해하며 성산업을 없애는 데 있어 현실 국가와 법체계 안에서의 문제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산업을 확대재생산하고 성산업으로의 유입을 가속화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성산업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혜롭게 풀어나가기란 이 사회의 복잡성만큼이나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반성매매와 성노동 사이에서

 

 성노동도 폐지주의도 단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맥락이 존재하고 그 중에는 성산업의 폐지를 지향하면서도 성산업 종사자의 자발성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성착취와 성노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관점도 존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구매자의 처벌과 성판매자의 비범죄화가 성산업을 사회적으로 지양해 나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곧 성산업 종사자의 자발성을 부정하거나 그들을 무조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성산업이 폐지되어야 한다면 그러면 성노동에 반대하냐는 물음이 돌아오기도 하고, 반대로 성노동에서 말하는 자발성이 무엇인지 이해된다고 하면 그럼 성매매에 찬성하냐는 반문이 되돌아옵니다. 반성매매를 이야기하면서 폐지주의로 수렴되지 않는 전망은 불가능한 것인지, 성산업에 수렴된 사람들의 주체성을 확인하고 그들의 삶을 가로지르는 사회의 복잡한 단면들을 가시화하면서 성산업을 폐지하는 전망을 함께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그와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이 마냥 무의미하거나 또는 회색빛으로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연대

 

 그렇다고 하여 무기력함을 느꼈냐 하면 오히려 반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5회차의 공부모임 중 네 차례만 참여했지만 계속 공부모임에 함께 하고 싶은 건 성산업에 대해 제가 가진 부족할지 모를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폭 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한편으로 너무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단칼에 입장이 나뉘는듯한 성산업이란 사회문제에 대해 각자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과 지혜를 나누는 공간으로써 이룸 공부모임은 공부 이상으로 제게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연대의 자리입니다.

 

 생각 가는대로 글을 쓰다 보니 그 날 참여하신 분들이 해주신 이야기를 적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적게 되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한 달 만에 후기를 적는 터라 귀중한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많이 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 생각이 오로지 저만의 것으로 나온 게 아니듯 그 중에는 다른 분들의 의견과 이야기도 제 것처럼 섞여 들어가 있으리라 위안을 삼아 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데 제 나름의 몫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제 때 후기를 쓰자는 반성으로 글을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