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11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_노랑조아

“이룸 아웃리치는 이태원으로 나가요.”
“아, 이태원!”

나에게 이태원은 케밥과 재즈의 거리이자 이슬람 사원과 빈티지샵이 연상되는 장소였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로 거대한 충격과 슬픔이 계속해서 새로 생겨나고 있는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사건이 영상으로 소리로 인식되어 내 평범한 시간에도 무거운 그림자로 드리웠다.

이룸은 참사 직후, 그동안 관계 맺은 이들과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빌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지, 너무 놀라지는 않았는지. 많이들 놀라고 안타까웠으며, 한동안 영업을 쉬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태원에서 생업을 하는 이들에게 이 지역이 언제까지 모든 것을 멈춘 침묵의 공간일 수는 없었다. 그곳은 뉴스의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터이고 삶의 장소였다.

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미니 목도리와 별별신문을 같이 포장했다. 별별신문에는 11월 20일에 있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 소식이 실렸다. 큰 가방 세 개에 목도리를 가득 담아 나눠들고서, 우리는 큰길에서 먼 골목골목부터 걸어 들어갔다. “(똑똑똑) 계세요?” 동료활동가가 가만히 문을 두드리고 가볍게 손잡이를 당기자, 뜻밖의 차림의 방문객에게 눈이 동그래진 언니가 나타난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이룸 상담소에요. 오늘 언니 몇 명 계세요?” 언니는 금세 경계를 풀고, 익숙한 듯 반가운 얼굴을 한다. 별별신문이 든 선물을 나누고 안부를 묻는다. 이룸이 이태원에서 쌓아온 시간이 만든 다정함이다.

“너무 안타까워. 그리고 무서웠어요.” 언니들 말로는 참사 이후로 사람이 뜸하고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게를 계속 닫을 수 없으니 이렇게 나와 있다고. 어느 한 클럽 입구 전광판에는 국화 한 송이가 선명하고 ‘깊이 애도합니다’ 글자가 함께 떠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윈도우 정품 인증 메시지가 클럽 이름 아래에 겹쳐 있다. 슬픔과 애도와 노동과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공간. 이태원은 계속 움직이고, 우리의 만남은 다정했다.

나는 신입 이루머로서 아웃리치에 처음 따라 나섰기 때문에 짐을 들고 나르며 열심히 인사를 하는 것 밖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원 활동가가 열심히 상황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러운 다정함 뒤에는 세심한 노력이 있구나 생각했다. 아직은 낯선 이태원, 동료 이루머들과 자원 활동가들을 따라 나도 이곳에서 시간을 쌓고 싶다. 세심한 마음으로 관계를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다정하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상담소를 알리고 골목 구석구석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시간이 쌓여 애정이 될 때까지, 꾸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