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_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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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안녕? 별별신문에 소희의 그림들을 싣고 싶어서 부탁을 했어요. 이 그
림 제목이 <스무살의 초상>?
스무살의 초상. 하하. 오그라든다. 사진을 보고 그린 건데, 스타킹/팬
티 사진–동영상 팔고 그런 거 있잖아. 조건 만남 하는 사람 중에 자기
가 사진 찍어준다고 해서 갖다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 거기서 뒷
모습 찍은 건데 뭔가 되게 맘에 들게 나와서, 또 우연히 다리가 짤린
사진이 찍힌 거야. 뭔가 느낌이 다리가 짤린 느낌? 뭔가 갇혀 있는 느
낌? 그래서 날아가고 싶다고. 내 스무살은 왜 이럴까 하면서 그린 그
림?
날개를 단 이유는? 다리가 없으면 날개라도 있어야지.
어딜 가고 싶어? 하하, 어디라고 생각을 하고 그린 건 아닌데, 그냥 바
깥? 뭔가 오피(오피스텔 성매매)를 했었는데 오피에 몰래카메라가 없
다 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도 나가기가 되게 심적으로 되게 힘들
잖아. 나가면 안 될 거 같고, 계속 기다려야 할 거 같고, 손님 올 때까
지 진짜 계속 대기해야 되는 거니까. 오피는 진짜 그때 밤에 하는 게
있어서 낮에 했는데, 낮에 하면은 예약하는 손님도 진짜 별로 없고, 계
속 기다리며 한 명 오고 그러니까, 혼자 있는 시간도 되게 괴롭고. (옆
방 언니들) 마주칠 일도 없고. 이제 가끔 긴장하고 있다 보면 옆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제 그러면은 나는 손님 없는데, 저 언니는
날씬한가보다? 이런 생각도 들고, 초이스 됐구나, 그런 느낌 들고. 그
냥 계속 지레 짐작만 하는 거지.
이 날개에 까만색 점이 있는데, 새의 눈 같았어. 날개이기도 하지만, 또 하
나의 소희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뭔가 압정 박은 느낌이었는데, 되게 인
위적인 날개? 헤헤. 그냥 나를 이렇게 지탱할만한 다리가 없으니까.
내가 이 땅에 내 다리를 딛고 서있을 수 없다는 느낌? 이 그림을 그린
곳이 마침 학교였는데, 다른 애들은 애들끼리, 얘기도 하고 막 그러는
데, 나는 계속 그 이질감 같은 것도 겪고 있었고, 내 자리는 없다는 느
낌? 그냥 계속 여기에 안 어울리는 느낌? 그게 있었어. 내 발로 내 자
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 응, 설명을 들으니까 더 잘 느껴진다. 그 다음, 이 그림은 <초경>? 이거는 중학
교 때 생각하면서 그린 건데, 학생일 때, 교복 입으라고 머리 자르라고, 되
게 무성적일 걸 되게 강요하면서, 이제 생리 시작하거나 그러면은 갑자기
여자가 됐다고 하고. 그럼 그 전에 나는 여자가 아니었나? 막, 그런 것도 있
구. 왼쪽 사람은 엄마를 생각하면서 그렸어. 인어 꼬리 그린 건데, 인어공주
가 되게 희생적이고 딱 그 여성상이잖아. 그러면서 이제 그 인어(어머니?)
가 딸한테, 생리 시작했으니까 너도 이제 여자가 되는 거라고 안아주고 하
는 거야. 수수하고 그런 무성적이고 막 그런 거에서 뭔가 꾸밀 줄도 알아야
되고 화장할 줄도 알아야 되고, 센스 있어야 되고. 현명해야 되고? 어, 그런 거 때문에 좀 힘들고. 압박감이 느껴졌을 거 같애.
하하 이제 여자구나, 인정해야 되는구나 이런 느낌. 진짜 이 인어한테는 온갖
여성성이 다 들어 있네. 외모부터 해서 성격을 상징하는 인어꼬리라든지, 태아나
생리까지.
이건 언제 그렸던 거야? 열아홉 살 때? 그때는 뭔가 되게 여성스러워야 되는
거, 그게 되게 무섭기도 하구. 그때 조건만남 하고 있었는데 막 그 남자들이
교복 입고 오라고, 청순해 보이니까, 그러면서 뭐가 무성적인 걸 요구하면
서 계속 여성스러워야 되고, 그 요구가 변태 같은 요구도 있고 하니까. 되게
끔찍하면서도 ‘아, 그냥 나는 여자구나, 여자구나’ 하는 느낌.
그러면서도 자기들과 섹스 해줘야 되구? 응. 되게 막 순수해야 될 거 같구, 교
복입고 순진한 척 해야되구 이제. 하, 그러면서도 뭔가 이뻐야 되고. 흐하.
나는 구매자들이 되게 어려운 걸 바라는 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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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많이 그리는구나. 항상 되게 외롭고 누가 나를 좀 이끌어줬으면 좋겠고 벗어나고 싶은데, 이 장소를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 남자면 그 의미가 없
잖아? 남자가 행하는 폭력에서 구해주는 사람이 남자면 뭐가 달라지지? 그냥 뭔가, 같은 여성, 누군가 언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게 있었어? 성매매 경험이나 이제 집에서 아빠한테 맞았으니까. 그런 거 되게 많이 고민했던 게, 집에서 나오고 지
금 남자친구랑 같이 사는데 아빠라는 남자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남자에게 의존을 하면서 살고 있는 거니까, 그게 항상 걸리고. 처음에 조건 만남 할
때 자해하는 느낌으로 시작을 했는데, 점점 돈이 필요해지고 돈 때문에 하게 되고. 건전알바를 했었는데, 돈 체불 임금도 계속 생기고 막. 식당에서 한
번 일 했었는데, ‘너 뭐 방학 때 뭐하냐, 자기랑 같이 여행 가자. 같이 숙소 잡자, 남자친구 있냐’, 계속 섹드립 치고 엉덩이 만지고 지나가면서. 통로가
좁아서 부딪히는데 막 만지고 그러니까, 아 이 정도 접촉이면 노래방 보도하는 거랑 별로 차이가 없잖아. 그 모욕 견디고 시급 4000원 받는 거 보다 그
냥 비슷한 강도로 노래방 보도 해가지구, 3만원 받는 게 낫지, 막 계속 그런 데로 가게 되고, 아 짜증나. 근데 때리는 사람도 있고 핥아달라고 하는 사람
도 있고 진짜. 하나하나 말하자면 되게 많으니까, 그런 거 생각하고 그냥 구매자들이 개새끼니까. 그딴 새끼 보기 싫으니까. 아 진짜 미칠 거 같애, 막
계속 즐기냐고 물어보고, 아니 나는 돈 벌려고 하는 건데 계속 즐기냐고 물어봐.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참. 그러면서 되게 죄책감 없애려고 하
는 거? ‘너도 즐기니까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 존나 패고 싶어. 즐기긴 누가 즐겨 씨발. 그러게나 말이야.
앗, 이 작품! <내가 사는 곳의 이정표>는 여러 가지를 오려 붙였네? 꼴라주. 별별신문에서 준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눈 가는 부분을 잘라내서 붙인 건데,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김연자)>라는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 같은 느낌으로 그린 거야. 기지촌 얘기잖아. 근데 거기서 와 닿았던 부분이 되게 끔찍한 그 순간 속에서도 즐겁게 사는 공동체 그런 느낌, 그런 게 있었다고. 이거 붙이면서 이게 끝이 아니라 다음에는 되게 환하게 덩실덩실 춤추는 그림도 그릴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렸어. 되게 힘들고 힘들고 힘든데 그냥 즐거운 일 없어 보이는데 그 안에도 또 뭔가 살만한 게 하나씩 있더라구. 소희한테 힘 든 와중에 살만했던 경험이 뭐가 있어? 예를 들면? 최근에 임신중절하고 나서 아는 언니한테 업소 얘기랑 일한 것 얘기했는데, 부정당하지 않았다는 거. 이제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좋았구. 그리고 최근에 진짜 이거 너무너무 좋은 일인데, 학교를 안 간다는 거. 하핳 최고지! 어 최고! 그래서 그림 그리면서 계속 힘없고 나 말고 누군가가 이렇게 받쳐줘야 됐고 항상 기대고 있고 그런 그림이었는데, 이제 그걸 벗어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그렸어.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혹시 그림 모임 하면 할래? 응! 여건만 되면. 나는 같이 하는 거 좋아하니까! 흐. 그냥 모여서 얘기할 수 있다는 거? 혼자라는 게 제일 힘드니까.
<쿵짝쿵짝> 사는 건 왜이리 지랄맞은지 꺄뀨꺄뀨 카페에서 분칠하며 단골소님 기다릴 때 근처에 앉아 공부하던 대학생 사뭇 진지하게 열중하고 있는 모습. 나와 같은 이십대인데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