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세미나 세번째 후기 – 남자들의 방(남지)

<남자들의 방을 읽는 여자들의 방>

2026 성매매/성산업 활동가 세미나 3차 후기

남지(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성매매/성산업 세 번째 세미나에서 함께 읽은 책은 <남자들의 방>. 보자마자 찌푸리게되는 “남자들의 방”은 예상처럼 답답했다. 그런데 남자들의 방을 읽는 우리들의 방은 뜨거웠다(정말로 넘 핫했음). 야밤에 이여인터 교육장이 터질듯 모인 퀴어, 이주, 장애 등등 여러가지 규탄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너무나 말이 많고, 웃음이 많고, 화가 많고,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의 방은 초이스도 없고, 상석도 없고, 접시도 있었다. “접시가 있다는 것”을 새삼 소중하게 느꼈다.

 

성매매/성산업을 하나의 언어로만 설명하지 않기 위해 서로 다른 운동에 흩어져있는 여자들이 같은 책을 붙잡고 각자의 질문을 꺼냈다. 발제는 저자인 황유나 전 이룸 활동가가 맡았다. 작년에 베트남 현지조사를 함께 다녀온 유나님이 저자로 함께하니 반갑고 묘했다. (나는 유나님의 빅팬이다(고백). 책에 사인도 받았다.) 어제는 하노이 뒷골목으로 나를 데려갔던 사람이 오늘은 책 속에서 남자들의 방을 해체해주었다.

 

‘경계’에 대한 질문을 되짚어본다. 합법과 불법, 노동과 폭력, 성매매와 성폭력, 피해자와 노동자. 우리는 자주 이런 경계에 기대어 문제를 설명한다. 우리는 오히려 그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경계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가리는지 질문했다. 성매매가 불법이라서 문제라면 합법인 유흥주점과 벗방은 괜찮나. 성폭력과 성매매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1차’는 정말 문제없나. 우리의 언어는 그렇게 빈약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없는건가.

 

<남자들의 방>은 유흥업소를 성을 사고파는 장소로만 보지 않는다. 그곳은 남성들이 서로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장소다. 남자 한 명이 여자 한 명을 소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남자들이 함께 방에 들어가고, 함께 고르고, 함께 경험담을 나누며 “우리는 남자다”를 확인하는 구조다. 그래서 제목은 ‘남자의 방’이 아니라 ‘남자들의 방’이어야 했다. 우리는 한국 남성들은 왜 이렇게 우르르쾅쾅 떼로 몰려다니는지 궁금해했다. 다른 남자들과의 상호 인증과 네트워크가 있어야 접속되는 세계라니…(^^)

 

남자들의 방에서 여성은 ‘재미’를 주는 존재로 배치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여자는 재미있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남성을 즐겁게 해야 하지만, 웃음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보기 좋아야 하고, 분위기를 맞춰야 하고, 술을 따라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하고, 농담과 요구와 침범 사이에서 계속 아슬아슬 판단해야 한다. 유흥업소의 ‘아가씨노동’은 그래서 단순히 술을 따르는 일이 아니다. 남성들의 기분, 체면, 위계, 욕망, 폭력 가능성까지 읽어내는 고도의 감각노동이다. 특히 “아가씨들은 접시가 없다”는 관찰이 서글펐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술을 따르고, 물티슈를 깔고, 남성들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만들지만 정작 자신이 먹을 접시는 없는 사람들. 이 장면은 유흥업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 가족, 관계 안에서 비슷한 자리에 놓여왔다. 차리고, 치우고, 맞추고, 돌보고, 중재하지만 정작 자기 몫의 접시는 없는 자리. 우리는 아가씨노동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세상 곳곳의 젠더화된 노동을 함께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게는 작년 베트남 현지조사 경험이 계속 겹쳐진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여인터)는 현지 실태조사 프로젝트에서 문제를 “국경을 넘는 성·인종착취 강간문화”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이름을 붙였던 이유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해외 성매매’, ‘디지털 성범죄’, ‘베트남 여성 대상 젠더기반 폭력’이라고만 부르면 중요하고 거대한 구조가 잘려나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제방에서 벌어진 일은 여성의 신상과 성적 이미지, 심지어는 강간 영상을 유포하고 방법을 공유하는 디지털 성착취였고, 대상이 된 여성들은 우연하게 베트남 여성이 아니었다. 한국 남성들이 오래도록 성적·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인 존재로 상상해온 동남아시아 여성이 특정하게 표적화되었다. 성착취는 이미 인종화된 세계에서 기획되고 있었고, 인종주의는 여성의 몸을 더 쉽게 침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또 그 착취는 온라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베트남 현지의 한인타운, 유흥업소, 후기사이트, 기업 주재원 문화, 관광산업, 국제결혼중개업과 맞물려 오프라인 산업 구조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 대표적인 현지의 도시는 상상속 한인타운, K-어쩌구 핫플이 아니라 한국 남성의 성적 소비를 중심으로 식당, 숙박, 마사지, 가라오케, 이동수단, 온라인 플랫폼이 완벽하게 짜여진 구조였다. <남자들의 방>에서 한국의 유흥업소 안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보았다면, 이여인터의 베트남 현지조사에서는 그 방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확장되는지를 보았다. 방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인종착취’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에 더욱 조심스러움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명명은 흩어진 문제를 보이게 하고, 기존의 잘못된 경계를 흔드는 힘이 있다. 동시에 새로운 경계를 만들 위험도 있다. 우리가 ‘성·인종착취’라고 말할 때, 베트남 여성을 오직 착취당하는 피해자로만 고정하거나, 베트남을 위험과 피해의 장소로만 타자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여성을 규정하는 이름이 아니라, 여성을 그렇게 위치시키는 권력관계를 규정하는 이름이어야 한다. “베트남 여성은 피해자다”가 아니라, “한국 남성 중심의 성산업과 인종주의적 욕망이 베트남 여성의 몸과 도시를 침해 가능한 존재와 공간으로 만들고, 그 구조가 국경을 넘어 재생산되고 있다”는 말이어야 한다.

 

유나님은 왜 우리는 노동자라는 지위를 쟁취하려 하고, 왜 피해자라는 지위를 쟁취하려 하는지 물었다. 어떤 범주가 더 맞느냐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이해받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왜 그런 ‘이름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지를 묻는 질문처럼 들렸다. 피해자와 노동자라는 말은 현실에서 분명 절박하게 필요한 언어이지만, 그 어떤 말도 여성들의 경험을 온전히 담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깔끔한 어떤 개념 하나로 삶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그 범주 안팎에서 당사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연결되고, 저항하는지를 보는 일 아닐까. 

 

베트남 박제방의 존재를 알게 된 여성들이 서로 위험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 남성들의 폭력과 착취를 경고하기 위해 직접 맞불작전의 텔레그램방을 만들었던 것이 떠오른다. 누가 대신 조직해준 대응이 아니었다. 혐오와 폭력에 혐오와 폭력으로 대응하는 방식에 껄끄러움과 걱정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용기는 위험 속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정치적 실천이었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가. 그건 피해 서사를 넘어선 권력투쟁이었고, 이여인터가 고민없이 현지로 떠난 강력한 이끌림이기도 했다.

 

다시 세미나로 돌아와, 이 날의 토론은 벗방과 인터넷 방송, 팬싸인회, 픽업아티스트 산업, 클럽, 일터 안의 여성 역할까지 자기고백과 가족고백 등등에서 뻗어나갔다. 어느새 우리는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있는 남자들의 방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방의 구조를 조금 더 정확히 보게 되었다. 남성성은 여성을 타자화하고 배제하며 서로를 승인(ㅋ)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여성의 노동은 보이지 않을수록 더 쉽게 착취된다는 것. 피해와 노동, 선택과 강제, 착취와 생존은 좀처럼 아름답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두껍고 푹신한 언어다. 피해를 말하되 피해로만 수렴하지 않고, 노동을 말하되 착취를 지우지 않고, 구조를 말하되 당사자의 움직임과 저항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 언어말이다.

 

세상은 자주 여자들을 쓰고 버렸지만, 우리의 말, 운동, 기록, 연대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접시가 놓이지 않는 자리를 서로 알아채주고, 말할 공간을 빼앗긴 여자들의 말하기를 잇고, 국경을 넘는 착취의 구조에 국경을 넘는 연대로 맞서야 한다. 남자들의 방은 오래되었지만, 우리의 방도 만만치 않고, 침침한 그 방과 다르게 문짝을 활짝활짝 열어재끼는 담대함과 환기가 있다. 또, 우리의 방은 말이 참 많고, 질문이 참 많고, 잘 안 흩어지고, 언제나 연결된다.

 

그래서 4회차 세미나 주제는 <성매매처벌법 개정안>이다. 그럼 다음 세미나 후기에서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