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4탄_성매매와 성폭력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붙들고가는, 여성학 연구자 남승현

성매매 여성 불처벌 릴레이 인터뷰 4탄_성매매와 성폭력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붙들고가는, 여성학 연구자 남승현

인터뷰이: 남승현(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박사과정 수료)

인터뷰어: 이룸

불처벌 세미나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도대체 ‘성매매’는 무엇일까?, 법적/사회적으로 어떤 행위를 ‘성매매’라고 정의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적 장면을 ‘성매매’라고 부르고 있나?” 라는 성매매 자체에 대한 고민과 “성매매 과정에서의 반인권적인 행태를 규율할 수 있는 전략을 형법에 국한되지 않고 찾아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폭력을 핵심 주제로 삼고 여성학적인 연구를 고민해 온 불처벌 세미나팀 멤버 남승현님은 세미나 과정에서 나온 이와 같은 질문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2013년부터 이룸의 회원으로 활동해온 여성학 연구자 남승현님은 이룸의 소수자 성매매 사업과  이룸 공부방의 멤버로 활발하게 이룸 활동에 함께 해왔고,  <성매매여성 불처벌> 팀원으로 1년 동안 성매매와 여성 처벌, 이를 둘러싼 법과 담론에 대한 고민을 키워왔습니다. ‘진상’과 ‘성폭력’의 경계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성매매 여성의 안전권에 대한 상상, ‘노르딕모델’을 어떻게 현지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 불처벌 세미나팀 이야기까지,  남승현님이 나누어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순서]

1. ‘적절한 거래’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 성폭력과 성매매 사이에서

2. 변화하는 성산업 안에서 연달아 소환되는 ‘여성’

3. 성매매 여성의 안전권 상상하기 

4. 불처벌 세미나: 노르딕 모델을 어떻게 현지화할 것인가?

5. 코리안 모델을 찾아서: 접대를 규율하라!

6. 답답함을 견뎌보자는 제안 

1. ‘적절한 거래’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 성폭력과 성매매 사이에서

 

이룸: 남승현님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주제와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남승현: 기본적으로 저의 핵심 주제는 성폭력 문제,  섹슈얼리티이에요. 제가 성매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계기는 ‘진상과 강간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폭력의 경우에는, 예를 들면 ‘어떤 거래물을 받더라도 성폭력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논의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논지를 마주할 때 되게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요.  큰 틀에서는 맞아요. 성별 권력 관계를 바탕으로 한 폭력으로 명명할 수도 있는데,  성폭력이라는 개념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담론 투쟁의 장에 있는 것인 만큼,  어떤 것을 폭력으로 명명하고 어떤 행위를 정상적이고 로맨틱한 관계라고 명명하는지에 대한 연장선 위에서 어떻게 성매매까지도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되는거죠.  각각의 영역이 교집합을 가지는 방식으로 연결돼 있는 거 같은데 각 영역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지점을 명료화하기는 참 애매하고 어렵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사실 우리는 성매매나 성폭력이나 모두 젠더 관계의 반영이자, 폭력적인 섹슈얼리티의 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지배적 인식은 아니죠. 소위  떡볶이 사건 1같은 경우를 보면  가해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건 성매매다”, 반대쪽에서는 “이건  성폭력이다”라고 맞붙는데 ‘아니 그럼 성매매면 괜찮나?’ 이런 생각이 계속 올라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성매매가 성폭력의 상대항이라고 해야 하나, 성폭력의 폭력성을 면피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방식이 있구나. 하지만 성매매의 장 안에서도 성폭력으로 명명되는 행위가 또 따로 있고… 그 사이의 관계가 뭘까? 어느 시점에 이건 폭력이 되고, 어떤 이해 관계에 의해, 무엇을 고려하면서, 누구에 의해 성매매로 위치 지어질까? 고민해요.

젤라이저의 [친밀성의 거래]가 매우 정치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자의 논의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친밀성에는 언제나 모종의 거래, 매개물도 있고, 거래물도 있고. 물질적인 거래가 수반된다. 그 거래가 어떨 때는 화대일 수도 있고, 월급일 수도 있고, 선물일 수도있다’는 아이디어에는 동의하거든요. 친밀성과 거래의 영역을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무엇과 무엇을 등가로 조합하는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래와 액수,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젤라이저의 문제의식은 친밀성과 물질적 거래를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거래와 매개물 간 관계라는 장을 연구의 대상으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특정한 관계, 거래, 매개물 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젠더 규범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전에 이룸에 갔을 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제 성판매 경험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말할까?’ 라는 질문을 안고 온 적이 있어요.  젤라이저의 논의를 통해서 보면 성판매여성이 생각하는 가능한 매칭이 어긋났다고 생각할 때, 성매매와 성폭력의 경계가 만들어지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적절한 거래’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매칭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거나 깨거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동의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는 게, 어떻게 보면거래에서의 동의란 ‘관계에서 특정한 행위를 예상하고 감내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정도 행위가 있을 거라고 예측하고, 대가를 예상하고, 이 부분에서 동의를 하겠다는 건데 그 동의가 어떤 사회적 구조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굉장히 불평등하고 문제적일 수 있죠. 사실 ‘동의’라는 것이 강제의 반대개념처럼 사용되면서, 동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맥락과 배경, 조건에 대한 비판과 고민을 간과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성판매 여성들은 어떤 거래에 ‘동의’하지만, 그렇게 동의했다는 점이 사회구조적인 강제성을 배제한다고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동의의 조건, 거래의 조건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더 섬세하게 분석, 비판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어떻게 보면 성판매 여성들도 이걸 통해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래물, 대가의 적정선이 있는거죠. 일정 정도는 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성판매자가 동의한 내용과 성구매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래의 내용은 또 차이가 있잖아요.   이럴 때,  ‘사회적으로는 이와 같은 차이를 어떻게 명명하고 있나?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명명할까? 어떤 방식으로 조율할까? 그것을 폭력이나 사건으로 규정하게 되는 맥락은 어떤 것일까? 언제 그걸 노동이라고 명명해서, 자신의 위치를 바꿔 보려고 할까?’ 이런 생각들로 뻗어나가더라고요. 

동의가 ‘너 돈 받았으니 뭔 문제냐’ 정도로 그치지 않으려면, 결국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내용은 적절한 거래와 경제적인 대상, 즉 무엇이 거래되고 무엇을 보상이라고 볼것이냐는 그 틀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거래 조건이 ‘떡볶이’였기 때문에 성폭력이라는 식의 이야기 속에는 사실 “떡볶이가 화대냐, 어떻게 이걸 화대로 보냐”는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죠. 그렇게 하면서 사실 어떻게 보면 ‘무엇이 적절한 거래인지’를 인식하는 과정에 우리도 동참하는 게 있는 거죠.  물론 단순히 거래물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행위자들의 위치성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지만요. ‘떡볶이라는 게 어떻게 화대일 수 있느냐, 사기를 당했다, 피해자다’ 라는 이야기 안에는 ‘상식적으로 거래의 조건으로 볼 만한 대가가 아니다’ 라는 문제의식이 있는거니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떡볶이가 아니라 상당한 금전적 거래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달라지는 걸까? ‘경제적인 거래가 없었다’, 혹은 ‘경제적인 거래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거래였다, 그러니 성폭력이다’ 라는 논리만으로는 성폭력 혹은 성매매를 구성할 때 넘어설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적절성의 기준이 있는데, “우리는 그 ‘적절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어떻게 개입해서 바꿀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저에게는 성폭력과 성매매를 고민하면서 뚫고 나가보고 싶은 지점입니다.2

  

2. 변화하는 성산업 안에서 연달아 소환되는 ‘여성’ 

이룸: 지난번에 N번방 이야기를 하면서  성매매와 성폭력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남승현: 기술 발전이랑도 관련돼 있을 수 있는데요. 지금까지 성매매가 고전적인, 직접 대면 서비스로 이야기되어 왔잖아요?  구체적인 판매자 한 명과 구매자 한 명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관계로 상상되었던 것이죠. 물론 포르노 사업이 있기도 하지만요.  이미지 기반의 성산업이 가능해진 사회가 됨으로써, 고전적인 성산업이 벗방부터 시작해서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이미지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영역까지 확장되는 듯 해요. 성매매 산업 자체가 더 커지면서 더 많은 범위의 성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성산업 입장에서는 성적인 걸 이용해서 돈을 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여성이 ‘성매매 여성’이냐, ‘벗방 bj’냐  ‘성폭력 피해자’인가는 중요하지 않겠죠. 여성들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수익을 창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품으로 소모되어 버린 여성들을 누구라고 명명할 것인지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거죠.  같은 ‘상품’의 위치에 놓여졌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층위가 완전히 같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온라인 성산업의 상품으로 다뤄진 여성들은 사회적으로도 성매매 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치지어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성폭력 피해,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로 호명되기도 하죠.

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분류는 굉장히 허구적이라고 생각해요. 성매매산업 자본은 끊임없이 ‘뉴페이스’를 찾아 모든 여성의 이미지를 소환하고 돈벌이로 활용하잖아요. 모든 여성의 이미지와 몸이 돈벌이 수단인 성매매산업자본에게 성매매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죠. 고민이 계속되고 있어요. 한편 이 모든 것을 다 성착취라고 하면 뭉뚱그려지는 게 있잖아요? 그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모든 것을 다 성착취로 명명했을 때  오히려 성매매 산업의 현장을  비가시화 시키는 방식으로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이에요.

 

3. 성매매 여성의 안전권 상상하기 

이룸: 성폭력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비동의 강간죄이야기를 해볼까요. 여성운동에서는  ‘동의’의 맥락과 환경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법이 ‘동의’를 납작하게 해석해 온 역사를 생각해보면 성매매 과정에서의 성폭력 상황을,  ‘돈을 받았으니’ 혹은 ‘돈을 받기로 약속했으니’ 동의했다고 여겨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생기기도 해요. 성매매 여성들을 그 현장에서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나 여성들의 법적인 권리, 구제장치가  마땅치 않기도 하잖아요. 

남승현: 비동의 강간죄3가 중요하죠. 한편 이 논의를 경유해서 성판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시화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고민의 과정 속에서 노동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성매매를 하는 과정에서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아이디어가 여성 폭력 법제 안에서는 답이 안 나오니까, ‘노동법으로라도 좀 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거죠.

성판매 여성을 피해자의 위치로 인정받게 하려면 현행 법으로는 인신매매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노동법이라도 적용되면 어떻게든 할 말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거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게 안 보이니까 이런 저런 방식을 떠올려보는거예요. 지금 이미 차려진 판에서 무기로 쓸만한게 뭐가 있나? 예를 들면 차라리 단속이 아니라, 적어도 근로 감독관이라도 가서 뭐라도 해 줬으면 좋겠고. 헌데 그럼 여타 노동현장에서는 근로 감독관 제도가 제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게 아니니까 고민되는 거고.

그런데 노동법에 들어간다는 건, 동시에 성매매 산업 자체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게 좀  마음에 걸리는 거죠. 

이룸: 예를 들면 어떤 상황은, 어떻게 개입하면 조금 일하면서 덜 폭력적이거나 덜 착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장면이라든가, 노동법으로 이런 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나요? 

남승현: 제도적으로 업주에게 제재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성매매처벌법으로 알선자를 처벌하고 있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고요. 성판매 여성이 처벌받는 상황에서 알선자에 대한 처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성판매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적 언행에 대한 처벌이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성산업 내의 폭력을 신고하더라도, 그 신고로 인해 스스로가 수사를 받을 위험에 처한다면, 누가 신고할 수 있겠어요? 업주의 폭력적인 언행을 직장 갑질이라고 신고를 할 수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성매매 과정에서 여러 피해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피해에 대해서 산재라도 인정됐으면 좋겠다, 돈이라도 받고 치료라도 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그걸 산재로 신고하고 싶어 할까 회의적인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여성단체에서는 폭력피해를 지원받은 내담자의 정보를 등록하라는 국가의 요구에 모두 반대하잖아요. 폭력으로 접근함으로써, 개인정보를 기입하지 않는 방향을 주장해왔고, 이미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데,  만약 이 사안을 노동법으로 접근한다면, 산재 신청 등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신상을 기입해야 할텐데, 그 절차를 당사자들이 원할까?  탁상공론으로 그칠 가능성은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에휴 다 부질없다 싶기도 해요. 같은 공장에서 라인을 타도 직접고용으로 인정받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이걸 직고용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요. 

이룸: 산업의 핵심 행위자인 알선자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방법에 대한 고민과 그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한 고민, 이 두 가지를 생각했을 때 폭력 가해자, 피해자 일대일 구도를 주로 적용하는 여성폭력 피해자로서의 담론이 아니라 노동법을 적용하면 여성들이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조금의 도움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로군요. 

남승현: 사회구조 속의 개인이 아닌, 법 앞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법 제도 상에서, 피해자의 위치를 가지지 않으면서, 어떤 권력 관계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법은, 근로기준법 혹은 노조법밖에 없는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대안이 되나 생각해 보게 되는 거죠. 그런데  불법 파견을 해도, 농성을 해도 안 되는 판에… 자본이 만만치 않아요.

4. 불처벌 세미나: 노르딕 모델을 어떻게 현지화할 것인가?

이룸: 2020년 1년 동안 이룸의 ‘성매매 여성 불처벌’ 팀으로 함께 하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국내의 성매매 여성 불처벌 담론 분석과 해외의 노르딕모델을 비교분석하는 ‘3팀’에 참여하셨어요. 3팀에서 어떤 걸 했는지 간단한 소개와 함께 어떤 배움과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승현: 노르딕 모델을 어떻게 지역화, 현지화 시킬 것이냐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해외 법제 비교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하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냐면 일단 처음에는, 논문들 보면 ‘성노동’을 주장하는 논문의 경우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이렇게 3국을 주요한 국가 모델로 삼는 것 같더라고요. 합법화와 전면 비범죄화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비교한 논문은 그래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노르딕 모델에 대한 글들은 노르딕 모델을 도입한 국가들 사이에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분석하기보다는 “노르딕 모델 만만세, 역시 스칸디나비아야!” 이런 느낌이었어요. 

우리 팀은 노르딕 모델을 도입한 국가들의 입법 과정과 실제 진행 과정에서의 세부적인 차이를 살펴보자고 캐나다와 프랑스의 상황을 살펴보았는데, 그 기획 자체가 재미있었고요.  특히 캐나다는, 착취된 사람들과 공동체의 보호에 관한 법률 Bill C-36 Protection of Communities and Exploited Persons Act 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아이디어가 있었죠.

법에서 성을 판매하는 자를 자유로운 개인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입할 가능성을 참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캐나다에서의 노르딕 모델 도입 과정과 이를 둘러싼 담론, 운동의 장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캐나다의 노르딕 모델을 비판하는 기사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많더라고요. 진보적이라고 하는 많은 단체와 선주민 단체들도 굉장히 많이 반대를 하고 그 논리는 ‘노르딕 모델이 오히려 성 판매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였어요. 여기에는 캐나다에서 노르딕 모델이 보수적 정당을 통해 도입되었다는 지점이나, 각 국의 성산업 내부에서 인종이 작동하는 방식, 이민정책 등도 서로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봐요. 이를 보면서 노르딕 모델을 고민할 때, 각 국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성산업의 구조, 노르딕 모델이 의제로 등장하게 되는 방식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흐름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노르딕 모델을 대안 삼아 사용하고 주장하고 있는데, 각 국가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노르딕 모델이 도입되는지, 각 국가 별로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역동 및 관계에 대해 좀 더 보고 싶어졌어요. 전 세계적으로 퀴어 운동 단체들은 왜 성노동론에 친화적인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퀴어 이주민 운동 단체들의 위치에서 노르딕 모델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프랑스와 캐나다의 상황을 조사하면서 노르딕 모델이 이주여성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한국 같은 경우 인종 문제가 성매매 산업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고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법이 과연 누구에게 적용되고, 이주민 여성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궁금했는데, 그런 부분들을 조사를 하다가… 이건 우리 역량으로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실제로 그 단체들이나 각 국가에서 어떤 정치적 지향이나 어떤 요구들과 문제들, 이 노르딕 모델이 위치지어지는지 알아야 하는데 기사 몇 개, 논문 몇 개로는 어렵고 인터뷰를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런 부분의 어려움에 맞닥뜨렸던 것 같고. 

확실히 알게 된 건, 우리가 노르딕 모델이라고 하지만 노르딕 모델도 어떤 세력에 의해 어떤 논의과정을 통해 도입되는지, 그 사회의 주된 성매매/산업의 양상이 어떤지 등에 따라 나라마다 다를 수 있고, 그렇다면 한국에서 적용하려는 노르딕 모델이 뭐냐, 그게 유효한 조건은 무엇이고, 한국 버전이 필요한 거 아니냐, 라는 문제의식으로 나아갔죠.  노르딕 모델이 마치 전 세계적인 인권 담론의 모델인 것처럼 되는 것도 고민해 볼 지점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운동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는지, 그게 어떠한 곤경에 마주하는지, 제일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 같더라고요. 노르딕 모델이라는 이 운동의 언어와 모델이 어떤 방식으로 지금 수용되고 있는지, 각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위치지어져서 어떤 현실을 낳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됐어요. 

<불처벌 3팀의 문제의식과 맞닿는 논문을 발견!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5. 코리안 모델을 찾아서: 접대를 규율하라!

이룸: 그럼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코리안 모델을 상상한다면, 뭐가 한국형 모델에 들어가야 될까요? 노르딕 모델의 핵심 키워드는, 여성은 처벌하지 않고 구매자와 업주는 처벌한다, 수요 차단인데요, 이와 별개로 한국형 성매매의 규제법을 우리가 상상을 해 본다면 이 요소는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게 있을까요?

남승현: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접대용으로 사용되는 성매매를, 성 구매한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까. 성 접대에 대해 접대를 이용한 회사에 부담을 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룸싸롱에 성 접대를 하러 가고, 그걸 이용한 기업을 어떻게 좀 처벌했으면 좋겠다. 특히 유흥업 포함해서 그게 이용됐을 때 회사에 최소 벌금을 물린다든지 해서. 회사 대표가 징역까지 산다면 법이 통과가 안 될 거 같고, 만약에 그런 법이 생긴다면 룸싸롱에서 성접대를 하려고 할 때 직원들이 먼저 말리지 않을까요? ‘야 너 지금 미쳤어? 우리 대표 감방 보낼 셈이야?’ 하겠죠? (웃음)

하지만 적어도 그런 정도는 부담을 지어야 하지 않나. 한국의 특징은 성 산업도 성 산업인데, 그걸 떠받치고 있는, 성접대 문화인 것 같아요.4성매매 이야기할 때 개별적인 거래로 이루어지는 성구매를 이야기하기 쉬운데, 집단적인 남성 연대로 이루어지는 성문화가 성접대로 이어지고. 결국 그런 비용들이 회사 돈으로 되는 경우도 있을 거고. 어떤 방식으로 돌리고 돌리고 해서 끝없이 진행되는, 그 부분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낙인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낙인이 단순히 ‘문란한’ ‘음란한’ 여성에 대한 낙인일 뿐만 아니라, 원미혜 선생님이 논문에서도 지적했듯이 낙인도 계급, 인종에 따라 다층적으로 작동하잖아요. 

특히 지금은 능력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무능력하다는 낙인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요. ‘여자는 할 일 없으면 몸 팔면 되지’ 라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에서의 낙인인거죠. 그래서 되게 계급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에 한 유튜버가 성매매 여성 지원 정책을 거론하면서 “왜 국가가 ‘이런 애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보면서도 저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문란한 여성에 대한 비난을 큰 전제로 하되 능력주의라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 거 같더라고요. 그 부분, 능력주의를 어떻게 타파할까. 사실 뭐 비정규직이든, 여러 사안이랑 맞물려 있긴 하죠. 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6. 답답함을 견뎌보자는 제안

남승현: 제가 불처벌팀하면서 안고 가게 된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성매매 현장에서 성폭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사회적으로는 성매매는 모든 행위에 대한 동의, 성폭력은 동의의 전적인 부재로 읽히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성매매 현장에서의 동의의 경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여성주의자들은 그걸 어떻게 바꾸자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두번째로는 노르딕 모델을 어떻게 지역화할 수 있을까? 제가 갖게 된 문제의식 혹은 질문을 인터뷰를 읽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딱 잘라지지 않는 지점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 피해자로만 환원시킬 수도 없지만,  모든 걸 노동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해결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도 동의할 수가 없어요.  성매매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 자체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접어둔 채로, 노동으로만 명명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대안을 못 찾겠고. 

성매매를 둘러싼 굉장히 다층적인 결들, 교차하는 축들, 무엇이 거래되고, 왜 특정한 방식의 섹스가 사용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그 사용 가치도 객관적이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여성주의 운동은 예를 들면 쾌락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지 생각하고 그 쾌락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바꾸자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딱 명확하게 보이는 듯한 이분화된 담론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같이 생각해 보자. 답답하지만, 같이 고민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1. “2014년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가출 여성 A가 가출 일주일 만에 성인 남성 6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고인들은 재판에서 피해자가 성관계에 합의했으며, 당시 피해자에게 사준 떡볶이가 성매매에 대한 ‘화대’였다고 주장했다.”225쪽, <‘개인의 선택’을 넘어 성매매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묻는다>,  <<불처벌>>, 남승현[]
  2. 남승현이 이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글은 <<불처벌>>(휴머니스트, 2022)에서 읽을 수 있다.[]
  3. ‘폭행’ 혹은 ‘협박’을 강간의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는 현행법의 개정을 요구하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명확한 동의를 구했는지를 강간의 구성요건으로 전환하자는 취지로 비동의 강간좌/비동의 간음죄로의 개정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1/lawrevision/[]
  4.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은 9년만에 모두 무죄로 판결되었다. 검찰의 제식구 감싸주기 수사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학의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참고: https://m.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208112120035
    술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검사들은 1인당 접대비가 100만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96만원으로 계산) 법적 처벌을 피해갔다.
    참고: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611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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