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 동두천, 의정부 답사 첫 번째 후기_이룸 회원 은재

<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

동두천, 의정부 답사 후기_첫 번째

 

이룸 회원 은재

 

문자 확인을 그렇게 빨리 하는 편은 아닌데, 그날따라 눈이 가서 바로 확인한 문자가 이룸에서 준비한 동두천 성병관리소와 빼뻘마을 답사 안내였습니다. 기지촌 문제에는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고 기록으로는 많이 접한 장소이지만 어째 혼자서 직접 방문해 볼 용기는 없었던 터라, 기회다 싶어 잽싸게 신청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 참여하고 싶었지만 선착순 마감이 되어 못 오신 분들도 많으셨다고 해서, 귀중한 기회로 답사에 참여한 만큼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답사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모여 시작했는데요, 원활한 이동을 위해 이름표를 착용하며 각자 원하는 색을 골라 팀을 나누고 점심과 간식을 받았습니다. 혼자 참석한 거라 답사 내내 멋쩍게 있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이루머분들을 비롯한 기획단분들이 섬세하게 많이 신경 써주신 덕분에 다양한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이동할 때도 제가 속한 팀을 졸졸 따라다니며 헤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수학여행 가는 것 같아 신나기도 했어요. 버스 안에서 참여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며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도 했는데, 저는 ‘궁금한 게 많은’ 은재였습니다.

 

답사 출발 후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동두천 성병관리소였고, 그 뒤로 보산동 기지촌, 상패동 공동묘지, 빼뻘 마을과 캠프 스탠리를 방문해 두레방과 역사문제연구소, 공대위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답사에서 방문한 어느 장소 하나 안내판, 설명문이 없었지만 직접 방문해 생생한 설명을 들으니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왜인지 무척 그립기도 하고, 어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장소가 옛 사진 속 모습과는 다르게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듯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기록물을 접했을 때와는 다르게 (당연하게도) 현장에서만 느껴지는 선명한 감각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렇게 귀한 기회가 있을 때만이 아니라, 정기적인 투어가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전에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방문할 때만 해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는데, 빼뻘 마을로 이동하면서는 완전히 해가 개여 쨍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빼뻘 마을을 소개해 주신 두레방 활동가 선생님께서 애정을 담아 빼뻘 마을의 옛 모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주셨는데, 날씨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지금은 많이 조용해진 골목들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언니들과 빵 구우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골목에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지,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뒷풀이까지 참여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늘 답사의 제목을 다시끔 생각해봤습니다.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한다, 는 건 결국 무엇일까요? 사라졌거나, 사라지도록 요구받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기지촌과 집결지는 전국에 수십 곳이 있습니다. 강제 철거 혹은 상권의 몰락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상황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에서 성산업, 성매매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공간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이 장소를,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을, 여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한다는 건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술을 통해 이 공간들과 역사를 여러 매체에 담아 기록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고, 활동가들은 기지촌의 남은 흔적들을 박물관 혹은 역사관으로 보존하기 위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예술가도 활동가도 아니지만 기지촌의 기억들과 닿아버린 나는 무엇을 균열내고 기억하고 개입해야 할까요? 답사에 다녀오면 좀 더 시야가 선명해질 줄 알았는데, 삶의 감각들이 가깝게 다가오니 좋은 의미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지금 우리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며 업소 등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 여성들이 일하는 공간과 그곳에서 연결된 사람들, 여성들이 겪는 부당한 폭력과 비난들, 여성들이 업소를 떠났다 다시 돌아가게 되는 시스템, 여성들을 착취해 몸집을 키우는 여러 산업은 분명히 이번 답사에서 나눈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기지촌의 역사를 보존하고 우리가 답사에서 다녀온 장소들이 이후에 손실되지 않게끔 하는 작업이 너무나도 중요한 이유는 국가와 자본의 폭력을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로 흘려보내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답사에서의 소중한 경험과 함께,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이룸의 후원회원으로서 성매매 산업이 축소되고 근절되는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