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원이 알고싶다②]이야기하기 위해서_견과류

[회원 인터뷰_그 회원이 알고싶다]

이야기하기 위해서
 
 

인터뷰이_견과류
인터뷰어_완  두 

 

지난 5월 강남역 주변 남녀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 의해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화장실에서 기다리던 피의자가 6명의 남성을 보낸 후 최초로 들어온 여성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었다. 

회원인터뷰를 목적으로 견과류를 만난 건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난 후였다. 우린 늦은 저녁, 카페의 딱딱한 의자에 기대 앉아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멋쩍게 웃었다. 

“책을 읽으려는데 손에 잘 안 잡히는 날이야….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 나의 일, 나의 문제잖아. 사실 전부터 늘 있어왔던 사건들이지. 그때마다 매번 이런 기분들이 올라왔다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다시 사라지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참담한 기분이 올라오는 동시에 거기에 먹히지도 말자. 그런 생각 말이야. 먹혀버리면 뭔가 할 수 없으니까….”

 
 
견과류의 동생까지 우리가 함께 산지 5개월. 새삼스레 안부를 묻는 나에게 견과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말은 ‘강남역 사건’이었다. 나는 준비해온 질문지를 덮었다. 그리고 꽤나 긴 시간 강남역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인 견과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날 우리가 만난 이유를 잊게 할 만큼 강남역 사건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전부를 압도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견과류는 답답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뱉듯 말했다. 평소 그녀의 신중한 성격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1. 직업이 생길 줄 알았는데….

 
견과류는 이룸의 회원이자 여성단체에서 성폭력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일주일에 한 번 장애여성학교 한글반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고, 웹진 무구 편집진이자 필진이며, 2012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준비한 모 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덜컥 등단까지 해버린 작가이기도 하다. 사실 이 중 견과류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즉, ‘돈이 되는 일’은 1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과류는 이 모든 일을 곁에서 보기에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또 즐겁게 해내고 있었다. 상담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간 있어서”라고 여유롭게 답하는 그녀가 먹히지 않기 위해 그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내 직업은 사실 특정하기가 어려워. 계속 바뀌거든(껄껄껄).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처음 한 일은 모 문화예술단체 활동가로 있으면서 강의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였어. 2년간 했지. 다음으로 인터넷서점에서 신간도서 리뷰를 쓰거나 저자들 인터뷰도 하고 책에 관련된 컨텐츠 만드는 일을 또 2년 했어. 그다음이 언론사 콜센터였어. 최근 3월까지는 인문학강의를 개설하는 단체에서 데스크 업무를 봤어.”
 
 
콜센터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던 견과류는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퇴사한 후 수중에 있던 돈으로 여성단체에서 진행하는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이수했다. 면허를 따기에도 역부족이었던 돈으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을 받고 나면 직업이 생기는 줄 알았다"는 견과류는 100시간 수업을 마칠 때쯤엔 직업 대신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성폭력상담원 견과류의 책장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여성주의를 접했어. 대학 다닐 때도 여성학 강의를 들어본 적 없고, 문학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질 법도 했는데 그동안은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 있었어도 지나쳤을 것 같고. 여성주의로 100시간 빵빵 채운 강의를 듣다보니까 이걸 이론으로만 갖고 있고 싶지가 않고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더라고. 근데 직업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 사업에 치였던 삶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면서 활동을 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작년 여름 교육이 끝난 후 10월부터 성폭력상담원으로 활동 하게 됐어.

 
문제는 먹고 살아야 하잖아. 월세도 내야 되고. 그런데 주5일제 회사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다양한 형태의 직업을 경험하면서 주5일제로 일해도 가난하고 알바를 해도 가난하다면 시간이라도 있는 방식의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을 것 아냐. 돈 드는 건 못해도… 솔직히 그런 생각은 들어.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나라가 그렇게 생겨먹었잖아(발끈!).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 콜센터… 정말 무지 힘들었어. 소소한 곳에 다 지원했는데 다 떨어져서. 내가 나이가 딱 서른이 되가지고 너무나 불리한 나이고 나 스스로 커트라인을 낮춘 거지….”

#2. 듣는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는 일 

 

견과류가 촉촉한 눈으로 문장 끝에 “10알….”을 보탤 쯤, 나는 최근 눈에 띄게 살이 쪽쪽 빠질 정도로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한글반 강사 활동에 대해 물었다. 견과류는 두근거렸던 한글반 개강식 날을 떠올렸다.


 
“4월부터 2~30대 발달장애여성 7명과 주1회 한글 공부를 하고 있어. 첫 수업 앞두고 긴장을 많이 했어. 장애여성을 처음 만나는 거였고 난 실수하고 싶지 않았거든. 사실,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에게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되고 그냥 그렇게 알아 가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상담을 할 때도 한글반에 갈 때도 성폭력피해자나 발달장애여성에 대한 정해진 상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 같아. 나의 긴장은 거기서 온 거지. 그런데 문득 내가 평소 다른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나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안하고 있거든. 내가 너무 과도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경직 되어있었구나… 그래서 한글반 첫 날 ‘저도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는데 저를 처음 만나는 건 여러분도 같으니까 출발점이 같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는 걸 목표로 한글반 잘 해보자’라고 인사를 했지."

 

▲ 한글반 참여자분의 노트
 
견과류는 한글반 활동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집중하는 법을 새로이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한글반 참여자분들과의 관계 맺기는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긴장감이 아닌, 타인을 관찰하고 경험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준다면서 말이다. 견과류는 이런 집중은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닌 모든 관계에서 가져야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분들한테 집중해서 알게 된 것이 생길수록 내 주변 관계들에 대해 놓친 것들이 있었겠다 싶은 게 있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라는 게 쉬운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런데 듣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시시각각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들리는 거랑 다를 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 듣는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는 일이라는 것을 한글반 하면서 좀 더 실감하게 된 거 같아.”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견과류는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야기하다’라는 동사에는 나만 있어서는 성립이 안 돼. 혼자 있는 방에서 말하는 것을 독백한다고 하지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잖아. 이야기를 한다는 건 결국 쌍방의 연결, 소통,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거고 그건 이야기를 듣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견과류는 의식하지 않으면 금방 혼자 떠드는 사람이 되고 그런 ‘고인 물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며 예로 그분을 꼽기도 했다.
 
 
“너무 벽을 치고 혼자 있는 것 같잖아. 나는 그 사람의 말을 해독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분의 스피치에 대해 이를테면 새해인사나 연설 등이 조롱거리로 돌아다니는 건 그 사람이 혼잣말하기 때문인 것 같아. 언어능력은 대화를 통해 성장 하는 건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퇴행을 하고 있다고… 고이지 조차 못하고”
 
 
나는 견과류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해준 것들과 강남역 사건을 경험하는 견과류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처음 견과류가 말한 먹혀버리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뭔가’는 어떤 것일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전에 이런 기사들 봤을 때를 생각해보면 특수한 사건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지금 이건 이거라서가 아니라 내가 관점이 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에 나의 삶 다른 여성들의 삶과도 연결 되어있다는 걸 알아서 가슴이 더 아픈 것 같아. 전에는 그런 연결성에 둔하고 못 봤다고나 할까."

 


▲ 웹진 '무구'(mugu.kr)에서 연재중인 견과류의 <우리·말> 
"일단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 나의 이야기로부터 행동하고 출발하는, ‘그런 일이 있었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 그런 말들이 쌓이는 만큼 움직여지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고 어려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자각했어. 이제까지 내가 써온 글들은 내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한 글쓰기였던 것 같아. 나는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타인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대할 때도 타자화 하기 더 쉬워진다고 생각해. 이런 것들을 글쓰는 공부를 열심히 할 때는 계속 놓치고 있었어. 그게 나의 한계였던 것 같아. 새로운 한계들은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 나는 여성이고 나는 30대고 나는 성소수자잖아 그런 것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 된 것 같아.”

 

#3. 낙관의 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견과류는 이룸을 포함해 5곳을 더 후원하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후원하고 싶은 곳이 더 있다며 하나씩 읊어주기도 했다. 견과류에게 후원은 한 마디로 “대신 잘해주십쇼!”다.

 
“말했지만 활동은 인생을 거의 투신하다시피 해야 하는 일이고 나는 그런 그릇은 아닌 거 같아.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쥐뿔도 없지만 쌈짓돈이라도 보태고 싶어. 여러 가지 참여할 수 있는 자원활동이나 모임들이 있지만 돈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 많이는 안하고 있어. 다 오천원씩 하고 있어. 많이 하기도 했었는데 경제적으로 후달리면서 다 소액으로 줄였어. 마음 같아선 많이 하고 싶지만.”

 


▲ "아이럽 리베카 솔닛!"

 

회원 인터뷰를 하면서 이루머 각자는 인터뷰에 응해준 회원에게 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여 선물하고 있다. 나는 견과류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사전에 물어보았고 견과류는 리베카 솔닛 의 <멀고도 가까운>(2016)이라는 책을 골랐다. 견과류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를 통해 리베카 솔닛을 알았고 이후 <예술가의 항해술>(화이트 리뷰 저, 유어마인드, 2015)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그녀가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느낀 솔닛의 낙관이 특히 와 닿았단다. 
 
 
“부조리한 문제들에 분개하고 공분하는 건 나를 태우는 일이잖아.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의 끝에 피로감만 남고 변하는 건 더디고…. 하지만 바로 그 과정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니까 더더욱 솔닛과 같은 낙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폐허를 응시하라>(2012) 라는 책에서 911테러나 자연재해 같은 재난상황에서 있어 왔던 이타적인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 하거든. 세상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나아진다는 메시지가 이상주의자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난 솔닛이야말로 굉장히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해.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낙관은 허황된 이상이 아니라 동력이라고 느껴져.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어려운 현장에 있는 이루머들도 사실은 그런 낙관을 가지고 있어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바꾸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인 거잖아. 그래서 이루머들은 부정할지 몰라도 그런 낙관을 가진 분들 같아. 그래서 나도 꼭 어떤 단체나 어디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어도 내 삶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내 삶에 활동가로서 솔닛처럼 이런 낙관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그래서 이 책을 갖고 싶었어. 왜냐면 살 돈이 없었거든 그래서 인터뷰에 응했어. 인터뷰에 응하면 책을 줄 거라는 낙관이 있었기에! 히히”
 
 
강남역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2000개가 넘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동시에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아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꽃으로, 펜으로, 마이크로, 거울로 이제까지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는 살아가고 싶다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 후로도 헤아려지지 못했던 고립된 고통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분노와 슬픔, 두려움이 한 데 뒤엉킨 목소리들은 그 경험을 함께 껴안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씩을 내보이며 때때로 희망을 점치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을 확인하는 공간, 그것을 실감하는 공간은 강남역 10번 출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 어디에서나 도사리는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위협하는 힘, 그 힘보다 더 큰 저항의 공간이 우리 각자에게 충분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에게 인터뷰는 그런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와 우리, 서로를 지지하는 존재를 확인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런 공간을 내 주변에서부터 꾸미고 세계로 넓혀 변화의 시작이 되게 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견과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믿고 싶은 낙관이다.
 
이룸이 가진 낙관은 무엇일까? 
우리가 가진 낙관은 무엇일까?
언제, 어디에 있든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견과류는 인터뷰가 끝나고 내내 상심한 얼굴이었다. 서로 잘 말하지 못한 것 같다고, 잘 듣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하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다다랐을 때 쯤 우린 서로에게 잘 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난 만남 보러 가기
 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결하는 자, '승짱'을 만나다 (승짱-달래)